축구는 독일의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다. 학교 운동장에서뿐만 아니라 동네마다 설치된 축구장에서 아이들은 공을 가지고 마음껏 뛰어논다. 재능을 드러내는 아이들은 엘리트 축구로 진로를 정하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아마추어 축구에 남아 취미 생활을 이어간다. 이 과정에서 축구는 아이들에게 단순한 운동을 넘어,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하는 매개체가 된다.
독일의 유소년 축구는 이러한 성장 환경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시대 변화에 맞춰 규정을 정비하고, 아이들이 좌절보다 기쁨과 재미를 더 많이 경험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하며, 지도자와 학부모 간의 협력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문화를 만든다. 최근 독일 유소년 축구가 어떤 환경 속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눈에 띄는 특징은 무엇인지 살펴보겠다. 필자가 현장에서 들은 감독, 선수, 학부모의 목소리도 담았다.
DFB는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유소년 축구 개혁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3, 5, 6, 9 승리공식
독일축구협회(DFB)는 어린이들이 축구와 계속 친숙하게 지낼 수 있도록 여러 방면에서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지난 몇 년 간 DFB는 개혁의 필요성을 어느 때보다 강하게 느꼈다. 현대 사회에서 아이들이 처한 환경과 관련이 있다. 독일 인구 연구소(BiB)에 따르면 최근 8세에서 12세 사이 어린이들의 비활동적인 시간이 크게 증가했다. 소셜 미디어, 스트리밍 플랫폼의 호황으로 공을 차는 시간보다 스크린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2026년부터 독일에서는 전일제 학교가 의무적으로 시행된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폭 늘어나며, 방과 후에는 학업이나 기타 활동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공놀이할 시간이 줄어들 수 있다.
DFB는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유소년 축구 개혁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DFB의 유소년 디렉터인 하네스 볼프는 '2026년부터 전일제 학교가 의무화되면서 오후 시간에 아이들을 어떻게 유익하게 활동시킬 것인지가 중요해졌다. 스포츠는 그 해답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기나긴 논의 끝에 2024-25 시즌부터 새로운 어린이 축구 시스템이 도입됐다. 3대3, 5대5 경기와 같은, 방과 후 학교 운동장에서도 축구를 할 수 있는 이른바 '소규모 축구'다.
새로운 어린이 축구에서는 필드 크기와 각 필드에서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 수가 대폭 줄어든다. 여러 개의 작은 필드에서 경기가 진행되며, 두 개가 아닌 네 개의 골대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아이들이 나이가 들면서 필드와 팀 크기도 커진다. 아이들이 제한된 시간 안에 최대한 공과 많이 접촉하며 축구에 흥미를 잃지 않고, 나아가 활동량도 늘리게 하기 위함이다. 새로 도입된 시스템은 다음과 같다.
이 시스템은 아이들이 공과 최대한 자주 접촉하고, 모든 경기에서 적극적으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볼프 디렉터는 '소규모 필드에서는 더 강도 높은 축구가 이루어진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매일 만족스럽게 운동 욕구를 해소할 수 있다. 적은 숫자의 선수들이 공을 차기 때문에 모든 아이가 공과 가까워지고, 누구도 게임에서 배제되지 않는다. 특히 골대가 네 개 있는 경기에서는 더 많은 골이 들어가기 때문에 게임의 재미도 극대화된다'라고 설명했다.
연령대 별로 나이와 성장 정도에 따라 맞춤형 학습도 가능하다. G-유스는 벤치에 머무는 선수들 없이 누구나 공과 접촉할 수 있는 재미를 한껏 느낀다. 조금 더 성장한 시기인 F-유스에서는 포지션 이해와 팀워크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E-유스부터는 스로인 등 축구의 공식 규칙이 도입되어 아이들이 점차 정식 경기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G, F 유스 시스템에는 경기에 심판이 존재하지 않는 점도 특징이다. 감독들은 반드시 필요한 순간이 아니면 경기 중 지시를 최대한 내리지 않는다. 이는 아이들이 경기 중 벌어지는 상황을 직접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다.
새 시스템 도입 초기에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특히 G, F-유스에 골키퍼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비판을 받았다. 축구를 시작하는 아이들이 ‘기본 포지션’에 대한 이해도를 쌓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TSV 길힝/아겔스리트 U15팀의 코치 니코 카를은 “오히려 어린 아이들이 주어진 포지션 없이 축구를 하면 창의성을 더 기르고, 눈높이에 맞춰 포지션에 대한 이해도를 더 잘 쌓을 수 있다”고 긍정적인 효과를 전했다.
우려의 목소리는 리그가 진행되며 점점 사그라들었다. 실제 독일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공을 못 차서 실망하고 좌절하는 모습을 더는 보지 않아도 되어 만족스럽다는 입장이다. ESV 뮌헨 U12 감독인 빌헬름 벤스키는 이렇게 평가했다. '나도 축구를 직접 하는 입장이지만 솔직히 11세, 12세 이하의 선수들에게 능력을 기대하는 건 욕심이다. 그 아이들은 스포츠에 재미를 느끼는 게 가장 중요하다. 자기가 직접 움직이고, 볼을 컨트롤해서 골을 넣는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새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아이들이 볼과 접촉하는 순간이 훨씬 많아졌다. 또, 6명으로 구성된 작은 팀에서 한 명도 배제되지 않고 경기에 참여하기 때문에 더욱 좋다.”
DFB가 이 시스템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장기 목표는 단연 다양한 유망주 발굴이다. 볼프 디렉터는 U-21 팀에서 프로 리그로 투입되는 선수가 적어지기 시작했단 점을 지적했다. “우린 그동안 너무 많은 걸 놓쳤다. 이러한 작은 경기 방식을 통해 엘리트 선수들이 개발된다. 그들의 개별 능력은 성장하는 내내 형성된다”며 독일의 새로운 풀뿌리 축구에 기대를 걸었다.
모두를 위한 축구
축구가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는 낮은 진입 장벽이다. 무엇보다 클럽 회원비가 저렴하다. 독일 학부모들이 가장 만족하는 점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이다. 연간 회원비는 평균적으로 약 50~150유로(약 8만~23만원) 선이다. 규모와 전문성이 더 큰 경우에는 회원비가 다소 오를 수 있지만, 그때도 최대 300유로(약 50만원)에 불과하다.
여러 명이 한 가족 내에서 클럽에 가입하면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축구를 하고 싶은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어려움 없이 클럽에 가입하여 공을 차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
ESV 뮌헨 U13팀에 자녀를 둔 어머니 S는 “우리는 아이의 회원비, 장비 비용, 교통비 등을 모두 포함해 연간 300~400유로 정도 지불한다. 지역에 따라 금액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저렴한 편이다. 우리는 이 점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FC 알테 하이데 U-15팀에 자녀를 둔 어머니 N도 긍정적인 피드백을 전했다. “독일 유소년 축구의 큰 장점이 바로 이것 같다. 재력이 있는 집안이든 그렇지 않은 집안이든 모두 동등하게 축구를 시킬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이렇게 낮은 회원비가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부분은 자원봉사 문화에 있다. 많은 경우, 독일의 유소년 축구 트레이너(아마추어)는 보수를 받지 않는다. 특히 연령대가 낮을수록 해당 팀의 선수 출신이나, 선수 출신의 부모가 감독 역할을 맡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앞서 언급한 TSV 길힝/아겔스리트 U15팀의 코치 카를은 선수 출신 학부모이고, ESV 뮌헨 U12 감독인 벤스키는 해당 클럽의 U19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자원봉사로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스포츠 클럽에서 자원봉사로 일하는 문화가 깊이 자리 잡고 있어 가능한 시스템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사회적 책임으로 여기며, 자신의 능력과 시간을 활용해 청소년을 지원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회원비로 발생하는 수입은 주로 경기장 대여나 운영비 등에 사용되며, 지역 후원금이나 스폰서십 등으로 보조를 받는다(물론 프로 구조나 사설 유소년 훈련 센터는 예외다).
벤스키는 “이렇게 선수들이 더 낮은 연령대 팀의 감독을 맡는 것은 흔한 일이다. 실제로 나의 축구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좋은 기회가 된다. 학업과 병행하는 게 가끔 힘들기도 하지만 즐겁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업과 축구(체육) 활동을 병행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학업과 축구의 병행
학교 수업, 숙제, 그리고 훈련을 적절히 병행하는 것은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중요한 과제다. 두 가지 모두 소홀히 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독일에서는 이를 위한 다양한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다. 먼저 독일에는 축구 엘리트 학교가 있다. 축구 재능이 있는 학생들을 육성하기 위해 특별히 설계된 학교들이다. 이 학교들은 DFB와 프로 축구클럽들과 밀접하게 협력하며, 어린 선수들에게 수준 높은 훈련과 학업을 동시에 제공한다.
그 외 일반 학교를 다니는 유소년 선수들도 축구와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훈련은 일주일에 평균 2회 이루어지며, 부담이 크지 않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는 훈련이 최대 3회까지 늘어날 수 있다. 만약 축구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이 중요한 경기나 대회에 참여해야 한다면, 학교 수업의 일부를 면제받을 수 있다. 이때 놓친 수업은 보충 수업을 통해 들을 수 있는 시스템도 마련되어 있다.
물론 두 마리 토끼를 365일 내내 잡을 수는 없다. 학교에서 내주는 과제가 많거나,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훈련 횟수가 늘어날 때는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순간도 생긴다. 이때 대다수의 아이들이 포기하는 것은 축구다.
FC 알테하이데 DSC U15에서 뛰는 베네딕트는 “보통 과제가 너무 많으면 감독님과 상의해서 훈련에 빠진다. 나는 아마추어 소속이기 때문에 학업이 우선이다”라고 말했다. 해당 팀에 자녀를 둔 아버지 M은 “지금 이 아이들에게 축구는 재미있는 활동이다. 결국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가정 하에 스포츠를 즐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TSV 길힝/아겔스리트 U15의 코치 카를 역시 학업을 우선시한다. “아이들이 과제와 훈련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무조건 과제를 하라고 한다. 이 아이들은 선수이기 전에 학생이며, 학생으로서 학업은 가장 중요한 임무다.”
프로 산하 유소년도 예외는 아니다. 심지어 클럽 차원에서 성적 관리에 더 힘쓴다. SpVgg 운터하힝의 유소년 총괄 디렉터 플로리안 렌치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유소년 선수들의 교육을 철저하게 신경 쓰고 있다. 회장이 직접 아이들의 성적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관리하는 수준이다. 만약 학교를 그만둬야 하는 선수가 생기면, 구단에서 과외 수업을 제공해준다.”
독일 유소년 축구 현장에서는 학부모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감독의 공간'으로 인식하고 존중하는 분위기다.
감독과 부모의 철저한 선긋기
유소년 축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두 가지 요소는 바로 지도자와 학부모다. 이들은 서로 밀접하게 협력하며, 아이들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감독은 단순히 축구를 가르치는 사람을 넘어, 아이들이 팀 스포츠를 통해 사회적, 정신적으로 성장하도록 돕는다. 부모는 자녀의 훈련과 경기를 지원하며, 아이들이 축구를 사랑하고 즐길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동기 부여자다. 이 두 가지가 적절하게 작용하여 아이들이 선수로서, 또 한 사람으로서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
지도자와 부모가 각자의 역할을 분명히 인식하고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는 태도도 매우 중요하다. 독일 유소년 축구 경기 현장에서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학부모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정 장면에 대한 환호나 아쉬움의 소리는 있을 수 있지만, 아이들의 움직임에 대한 피드백이나 판정에 대한 항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경기장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철저히 지도자와 코치진의 책임이다. DFB의 ‘페어 플레이’ 규칙에도 부모의 행동에 관한 규정이 포함되어 있다. 유소년 축구에서는 부모가 경기 중 개입하거나 심판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요구한다. 또한, 자녀에게 명령을 내리거나 경기에서 소리치는 등의 개입도 자제해야 한다. 아이들이 경기 중 불필요한 압박 없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만약 지도자나 코치진에 불만 사항이 생기면, 부모는 정기적인 피드백 시간을 통해 이를 건의한다. 이 피드백 세션을 통해 부모와 지도자는 아이들의 발전, 팀워크, 개별적인 요구 사항에 대해 논의한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어떤 지원이 더 필요한지 피드백 세션을 통해 전달받는다. 이 과정에서 지도자가 논외로 두는 부분은 성적이다. 훈련보다 학업이 중요하다는 점을 아이들에게 강조하지만, 학업 성적 관리는 철저히 부모의 손에 맡긴다.
FC 알테 하이데 U-15에 자녀를 둔 어머니 N은 “우리는 아이들의 축구는 온전히 지도자에게 맡긴다. 지도자와 학부모가 해야 할 일이 정확히 구분되어 있다. 서로의 영역은 건드리지 않는다. 건의하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정기 피드백 세션을 통해 전달한다. 대체로 만족스럽다”고 전했다. 바이에른 뮌헨 여자 U-13팀에 자녀를 둔 아버지 F는 “아이가 훈련과 학교를 병행하다 보면 지칠 때가 많다. 학업 성적을 아이 대신 관리해주고, 아이의 원정 경기를 지원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감독과 부모의 ‘따로 또 같이’ 협력은 아이들이 스포츠를 즐기고, 학업에 집중하며, 올바르게 사회성을 키워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이 글은 KFA 기술리포트&매거진 ONSIDE 2월호 ‘COLUMN’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글=정재은(독일 뮌헨)
사진=정재은, FAphotos, 독일축구협회 홈페이지 캡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