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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남수단 국가대표’ 평창 마틴의 끝나지 않은 K리그 도전기

작성자한국축구신문|작성시간24.10.11|조회수665 목록 댓글 0

지난달 28일 FC충주와의 K4리그 경기 후 마틴이 사진 촬영에 임하고 있다.


 

남수단 국가대표 출신인 평창유나이티드FC(이하 평창) 마틴 사위의 K리그를 향한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축구선수라는 꿈 하나면 충분했다. 남수단으로부터 10,136km나 떨어져 있는 한국에 와 K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되기를 꿈꾸며 하루하루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평창의 공격수 마틴이다. 

 

 

1:100의 경쟁률을 뚫고 얻어낸 한국행

마틴은 이집트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와 함께 생계를 위해 남수단으로 돌아간 뒤 동네에서 친구들과 공을 차다 축구 선수의 길을 걷게 됐다. 이후 2014년부터 한 유소년 팀에서 생활을 이어오던 마틴의 축구 인생 그래프에 한국이라는 페이지가 생긴 건 한국과 남수단의 합작 프로젝트 <아프리카 축구 영웅 만들기> 덕분이다.

 

<아프리카 축구 영웅 만들기>는 2016년 한국 스포츠웨어 전문업체 스켈리도스포츠블루(이하 스켈리도)와 남수단이 함께 시작한 것으로, 남수단의 열악한 스포츠 환경 속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유망주를 발굴해 한국 축구 시스템 안에서 키우는 프로젝트다. 2014년부터 남수단 축구 국가대표팀 총감독을 맡고 있던 임흥세 감독의 존재가 크게 작용했다.

 

남수단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에 나선 마틴.


 

프로젝트가 첫 선을 보이기 무섭게 남수단 내에서는 많은 조명이 비춰진 것과 달리 당초 마틴은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마틴은 “당시 소속된 유소년 팀의 훈련 장소 거리가 꽤 됐을 뿐더러 주말마다 나가는 게 귀찮아서 출석을 자주 안했다”며 “그러던 중 우연히 길거리에서 코치님을 만났는데 그 프로젝트에 무조건 나가보라고 하셨다. 나 정도의 실력이면 가능성이 있다고 밀어주셨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는 “처음에는 안 믿었다. 비슷한 프로젝트가 잘 안 된 경우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다른 프로젝트들과 다르지 않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말씀해주셨으니 한 번 나가봤는데 남수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님까지 보러 오셔서 깜짝 놀랐다. 그때 정신 차리고 무조건 잘 하자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놀랍게도 마틴은 수많은 유망주들이 모인 테스트에서 100:1의 경쟁률을 뚫고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게 됐다. 그는 “말도 안 되게 기뻤다. 가족들도 정말 좋아했다. 가족과 멀리 떨어지는 건 아쉽지만 더 좋은 곳에서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기쁜 마음뿐이었다”며 “목표가 무조건 해외로 진출해 프로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한국행이 정해졌을 때 정말 꿈이 이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느꼈다”고 떠올렸다.

 

마틴은 국내 무대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남수단 축구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됐다.


 

‘Korean Dream’ 마틴, 꿈에 그리던 국가대표가 되다

한국에 도착한 마틴은 안산그리너스 U-18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기쁨도 잠시, 마틴은 난관에 봉착했다. 바로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으로 인해 선수 등록에 실패한 것. 당시 미성년자였던 마틴은 규정상 부모님과 한국에 체류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탓에 공식 경기에 나설 수가 없었다.

 

마틴은 “처음 훈련했을 때 축구를 다시 배우는 느낌이었다. 한국에 오기 전까진 나도 실력 있는 선수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남수단에선 잘하는 선수를 따라하는 게 대부분인데, 한국 선수들은 기본기가 탄탄하고 신체조건도 강했다. 하지만 규정에 걸려 주말마다 경기에서 활약하는 팀 동료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답답했다”고 털어놨다. 

 

결국 마틴은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린 끝에 2018년이 돼서야 고양시민축구단(해체)에 입단했다. 오랜 기다림이 그를 더욱 성숙하게 만든 덕분일까. 마틴은 경기 감각이 부족했음에도 입단 첫 시즌에 15경기 8골을 넣으며 부활을 알렸다. 이듬해에는 20경기 11골을 기록하며 완벽히 적응한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활약을 계기로 마틴은 2019년 11월 처음으로 남수단 축구 국가대표팀의 부름을 받았고,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예선에서 데뷔전까지 치렀다. 그는 “고양시민으로 팀을 옮길 때 무조건 경기에 나갈 것이라는 각오로 노력했다. 간절한 마음이 기회로 이어졌고, 남수단에서 연락이 왔을 땐 노력해온 시간을 인정받은 것 같았다”며 “대표팀 소집 당시 긴 비행시간도 너무 설레서 엄청 금방 도착하는 느낌이었다. 대표팀의 막내였지만 선발명단에 든 게 신기했다. 많은 관중 앞에서 뛰는 게 긴장됐지만 최대한 데뷔전을 즐겼다”고 말했다.

 

과거 고양시민축구단에서 활약할 당시 마틴.


 

갑작스러운 위기 속 기회... 이제는 고국의 축구 발전 향해 달린다

마틴의 상승곡선은 계속됐다. 그는 이전 시즌 활약을 통해 2020년 새롭게 출범한 K3리그의 양주시민축구단으로 팀을 옮기며 한 단계 더 높은 무대로 도약했다. 별도의 적응 기간은 필요 없었다. 그 결과 이듬해 같은 리그에 속한 울산시민축구단(이하 울산시민)의 사상 첫 외국인 선수로 입단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하지만 울산시민에서의 생활은 기대와는 달랐다. 이유는 부상이었다. 팀에서 자리 잡지 못한 마틴은 고양시민 시절 함께한 코치의 도움으로 2022년 K4리그 FC남동(해체)으로 향했다. 그러나 악재는 끝이 아니었다. 시즌 중도에 구단이 해체된 탓에 마틴은 순식간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돼버렸다. 

 

그는 “울산시민에서 부상으로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며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다.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방법을 몰랐다”며 “FC남동도 정말 힘들게 간 팀인데 하루아침에 없어져 정말 허무했다. 외국인 용병인지라 다른 팀 찾기가 더 어려웠다. 여기서 남수단으로 돌아가야 할 수도 있다는 무서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팀이 없던 채 혼자 훈련하던 마틴은 아마추어 리그인 K5리그 소속 서울TNTFC에 들어가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 여유가 없었다. 그 해 말 한국에 거주할 수 있는 비자가 만료 예정이었기 때문. 불안이 커질 때쯤 마틴은 평창 입단 테스트에 합격하며 마지막 기회를 잡았다.

 

마틴이 평창유나이티드 경기에 입장하며 스태프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있다.


 

그는 공백기가 무색하게 첫 시즌부터 리그 전 경기에 출전해 5골 3도움을 올리며 빠르게 녹아들었고, 4년 만에 다시 한 번 남수단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며 재기에 성공했다. 마틴은 “그동안 너무 힘들어서 사실 대표팀 생각이 안 났다. 무조건 한국에서 자리 잡는다는 생각만 했다”며 “힘겨운 시간을 이겨낸 뒤 간 대표팀은 느낌이 달랐다. 첫 발탁 때는 즐겁기만 했다면 새로 갈 때는 비장했다. 대표팀에 다녀와서 바로 그 주에 리그 경기를 뛰었다. 이 팀에서 나를 정말 믿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더니 피곤했던 게 사라지고 몸이 되게 가벼웠다. 대표팀 발탁으로부터 자극이 많이 된 것 같다”고 전했다.

 

그렇게 평창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마틴의 현재 목표는 20살 때 세웠던 첫 목표와 동일하다. 마틴은 “평창도 감사한 팀이지만 더 높은 K리그로 올라가고 싶다. 몇 년 전에는 상위 리그에 올라가 적응하는 게 어려웠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더 잘할 자신감이 있다. 열심히 축구한 뒤 선수 생활 말미에 다시 평창으로 자랑스럽게 돌아오고 싶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바닥까지 찍은 뒤 다시 올라와 프로 무대에서 뛰는 이야기가 힘든 환경에서 꿈을 꾸는 선수들에게 큰 희망이 될 것 같다. 남수단으로 돌아갔을 때 고국의 축구 발전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라고 다짐했다.

 

 

 

평창 = 손지호 KFA 인턴기자

사진 = 마틴 제공, 손지호 KFA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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