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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인터뷰] 관동대 강진웅, ‘늦게 핀 꽃’ 꿈꾸는 그의 축구 인생

작성자한국축구신문관리자|작성시간24.09.05|조회수789 목록 댓글 0

U리그에서 크로아티아, K3·K4리그를 거쳐 다시 U리그로 돌아오기까지. 오로지 경기장에 서기 위해 몇 번이고 넘어져도 일어선 강원가톨릭관동대(이하 관동대) 강진웅은 축구선수로서 또 다시 새로운 챕터를 시작하고자 한다. 

 

2024년을 맞이한 관동대의 올 한 해는 최근 몇 년과 비교해 확연히 달랐다. 지난 6년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던 관동대는 지난 2월 통영기 춘계대학축구연맹전에서 3위를 기록하며 다가올 시즌에 대한 돌풍을 예고했다. 이어 4월엔 강원특별자치도협회장배 축구대회 정상에 오르며 강원도 대표로서 10월 제105회 전국체육대회 출전 자격을 획득했다. 최근엔 U리그1 1권역에서 강등권 탈출까지 이뤄내며 상승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그리고 관동대의 부흥 주역으로 ‘돌아온 고참’ 강진웅을 빼놓을 수 없는데, 그의 커리어를 보자니 어딘가 독특하다. 수원공고를 졸업한 그는 관동대에서 활약 중 2학년 중도에 새로운 도전을 위해 휴학 신청 뒤 크로아티아 리그로 향했다. 그러나 기대도 잠시, 당시 에이전트에 문제가 생겨 세 달 만에 한국으로 귀국했다. 이후 고양해피니스FC, 고양KHFC(이상 해체), 세종바네스FC(현 세종FC)를 통해 K3·K4리그를 누볐지만 연이어 팀 해체 및 인수라는 변수가 겹치며 선수 생활의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이런 난관들은 강진웅의 간절함을 더욱 무르익게 만들었고, 결국 그는 올해 관동대에 2학년으로 복학하며 U리그에 복귀했다. 먼 길을 돌아온 와중에도 단 한 번도 축구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강진웅. 이러한 그의 원동력은 어디서 비롯된 것이며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지 대한축구협회(KFA) 홈페이지가 강진웅을 직접 만나 그의 축구 인생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다음은 강진웅과의 일문일답.

 

 

- 어떻게 축구를 시작하게 됐는지.

대부분이 그렇듯 어릴 적 축구에 처음 빠지게 된 계기는 축구 만화였다. 만화로 접한 축구가 너무 재밌는 동시에 멋있어 보였고, 동네 축구에서 나름 재능을 보였다. 동네 클럽에서 축구를 배우다 초등학교 5학년 때쯤 부모님께 정식으로 축구를 배우고 싶다고 말해 축구부가 있는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됐다.

 

- 축구를 위해 제주에서 육지로 상경했다고 들었다. 

고향이 제주도다. 중학교 입학 시점이 다가오자 좀 더 큰 물에서 축구하고 싶었다. 때문에 중학교 1학년을 마친 후 팀도 없이 무작정 혼자 상경했다. 고모집에서 지내며 홀로 훈련하던 동시에 여러 축구부에 입단 테스트를 봤고, 최종적으로 대신중을 선택했다. 처음 대신중에 다닐 때는 가족이 그리워 매일 운 것 같다. 하지만 축구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고, 이 순간을 극복하지 못하면 축구를 그만둬야 하는 걸 알기에 꾹 참고 버텼다. 이제 와 돌아보면 이때의 간절함을 떠올리는 것이 힘든 시기에 많은 도움이 됐다.

 

- 관동대 2학년 재학 중 돌연 크로아티아로 갔는데.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프로 무대, 유럽 무대를 꿈꾼다. 새로운 도전이 하고 싶었다. 2학년 당시 춘계대회를 마치고 때마침 좋은 기회가 생겨 에이전트와 계약 후 크로아티아 2부 리그에 도전하기 위해 바로 출국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한국과 현지 에이전트끼리 문제가 생겨 원하던 팀에서 훈련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별다른 방법이 없어 3부 리그 팀으로 가 훈련 받기로 결정했지만 그땐 이미 이적시장이 끝난 상태였기 때문에 경기에 뛰지도, 팀과 계약하지도 못했다. 결국 3개월 만에 한국으로 귀국했다.

 

- 당시 한국도 이적시장이 마감됐을 텐데 귀국 후 생활은 어땠나.

한국도 여름 이적시장까지 두 달이 남았기 때문에 제주도에 돌아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이적시장이 열리길 기다렸다. 다만 크로아티아에 있는 동안 제대로 훈련 하지 못해 몸이 다 망가져있었다. 몸을 끌어올리기 위해 매일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테스트를 보러 간 평창유나이티드(K4)에서 바로 탈락하고 말았다. 좌절과 실망감이 당연히 있었지만 그것보단 그저 축구를 하고 싶단 생각이 제일 컸다.

 

- 이후 고양 해피니스FC, 고양KHFC에서도 연이어 운이 따라주지 않았는데.

나를 눈여겨 봐주시던 단장님의 추천으로 K4리그의 고양 해피니스FC에서 훈련 받을 기회를 얻었다. 희망을 가지고 매일 최선을 다해 훈련했지만 당시 팀을 둘러싼 여러 문제로 계약이 불발됐다. 몇 개월 뒤 K3리그의 고양KHFC 동계 훈련에 합류하게 됐다. 당시 팀은 연고지를 찾지 못해 FA컵(현 코리아컵)에 나가지 못했지만 리그에는 참여할 수 있다는 소식에 기뻤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불운은 동시에 찾아온다고, 팀이 돌연 해체되며 또 다시 나의 소속팀이 사라졌다. 

 

- 그런 힘든 상황에서도 축구를 계속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

어떤 상황에서도 축구를 그만둘 것이란 선택지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팀에 소속되지 못한 시간 동안 언젠가는 다시 축구할 날이 온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운동했다. 한강에서 매일 10km 넘게 달리고, 아무 대학교 운동장에 가서 혼자 운동에 집중했다. 그러다 대학교 축구부가 훈련하는 모습이 보이면 정말 서럽긴 하더라. 하지만 좌절하진 않았다. 꿈을 위해 필수로 거쳐야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아르바이트와 병행하며 운동해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 그러다 드디어 세종바네스FC에 입단하게 됐다. 1년 반 만에 그라운드에 나서게 됐는데 어떤 심정이었나.

두 달 후 결국 K4리그 세종바네스FC에 입단했다. 당시 팀 환경이 열악해서 선수 등록을 마친 후에도 유니폼이 나오지 않아 몇 경기를 뛰지 못했다. 이후 유니폼이 지급되고 바로 명단에 들게 돼 여주FC와 경기를 치르게 됐다. 교체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데 “아, 이게 긴장감이구나”라는 것을 오랜만에 느꼈다. 너무 행복해서 경기에 집중해야 하는데 자꾸만 하늘을 쳐다보게 됐다. 기쁨보다 큰 감사함이었다. 팀 훈련이나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뛸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정말 감사했다. 무엇이든 익숙해지면 소중함을 잊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하고,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 짧은 세종바네스FC 생활을 마치고 다시 관동대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인가.

당시 소속팀이 곧 다른 기업에 인수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재계약은 거의 불가능했다. 축구를 계속하고 싶은데 당장 방법이 없었다. 때마침 제주도에 수원공고와 관동대가 동계훈련을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무작정 찾아가 관동대 감독님께 정식으로 축구부에 돌아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는데 감독님이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대학팀에서 좋아하는 축구를 하며 더욱 성장해 프로팀에 들어가고자 하는 굳은 다짐을 한 순간이었다.

 

- 주변 선수 중 다시 대학팀으로 돌아온 경우가 흔한가?

정말 흔치 않다. 대부분 팀이 해체되면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선택하곤 한다. 사실 지금 내 나이대면 축구선수로서 많이 늦었다고들 한다. 그렇기에 주변에서 선수 생활을 지속하는 것이 힘들 거라고 말하지만 나는 경기를 뛰고 축구를 할 수 있는 지금이 너무 행복한 것 같다. 각자의 가치가 다른 것일 뿐이다.

 

- 다시 돌아온 관동대의 이번 시즌 흐름이 좋은데 목표가 있다면.

우선 전국체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축구선수로 평생을 살아오면서 아직 전국체전에 출전해본 적이 없다. 팀의 흐름이 좋기에 전국체전이 매우 기대된다. 리그 순위도 그간 머물렀던 강등권에서 탈출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해 이 성적을 유지하고 싶다.

 

- 축구 그래프에 굴곡이 많았다. 그럼에도 꾸준히 버틸 수 있던 이유가 무엇인가.

딱 두 가지다. 바로 목표와 감사함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진심으로 프로선수가 너무 되고 싶다. 확실하고 간절한 목표가 나를 이끌었고, 감사함을 느낄 수 있던 시간들이 나를 버티게 해줬다. 작은 것에 감사함을 못 느꼈다면 “왜 나만 힘들까”, “왜 나만 이상할까” 자책하며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 지금까지의 축구 인생과 앞으로의 축구 인생을 각각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지금까지의 축구 인생은 ‘감사함’으로 표현할 수 있다. 다시 대학교로 돌아갈 수 있던 것도, 늘 믿어주시는 부모님도, 포기하지 않고 해낸 나에게도 감사하다. 앞으로의 축구 인생은 ‘이름 날리는 축구 선수’로 표현하고 싶다. 나의 일을 즐기며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 마지막으로 어떤 축구선수가 되고 싶은지.

한 마디로 ‘대한민국 최고의 사이드백’이 되고 싶다. 대한민국에는 훌륭한 선수들이 정말 많지만 아직 사이드백에서는 손흥민, 김민재 같은 세계적인 선수가 나오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사이드백으로 유럽에서 성공하는 그런 자랑스러운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 

 

 

 

글 = 나하은 KFA 인턴기자

사진 = 강진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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