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변화한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시대에 따라 선망하고 추앙의 대상이 되는 전술과 색채가 달라진다. 2022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현대축구는 효율을 추구하는 흐름이다. 선수 개인에게는 빠른 판단을 수반하는 축구 지능이, 팀에는 상대 문전까지 빠르게 도달하는 협업 플레이가 최고의 가치로 여겨진다. 물론 이런 능력은 하루 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유‧청소년 시기부터 올바른 방향성을 잡고 축구에 적응해야 하는 이유다.
대한축구협회(KFA)는 2024년 한국축구의 방향성을 담은 기술철학 ‘MIK(Made In Korea)’를 발표했다. 철학의 핵심은 ‘빠르고, 용맹하게, 주도하는’이라는 슬로건에 담겨있다. 이 슬로건은 창의성과 전술 운용 능력을 키우겠다는 큰 그림이자 지향점을 상징한다. ONSIDE에서는 6월호부터 9월호까지 4회에 걸쳐 그 내용을 상세하게 연재했다.
10월호에서 소개하는 유・청소년 훈련 방향성은 MIK가 공개되기 전인 지난해 온라인 보수 교육에서 다룬 내용이다. 언뜻 폐기 대상인 주제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맥락상 연속성을 갖는다. 2022월드컵을 기점으로 달라진 축구 트렌드에 유・청소년 단계의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원칙 혹은 담론에 가깝다. 말하자면 MIK의 프리퀄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현장 지도자들이 올바르게 방향성을 잡고 훈련을 구성하는 데 유효한 가이드가 될 것이다.
세 가지 관점으로 보는 훈련 방향성
유・청소년 훈련은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방향성을 잡을 수 있다. 능동적 플레이(Proactive Play), 승리하는 정신(Winning Mentality), 팀 동료&헌신(Commitment)이다. 하부 개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능동적인 플레이: 선수가 스스로 경기를 판단하고 주도하는 능력이다. 미리 상황을 인식하고 적절한 판단을 내려 의도한 바 성공하는 일련의 과정을 가리킨다. 경기 운영, 효과적인 빌드업, 빠르고 효율적인 공수 전환 예측, 볼 소유 상황에서의 빠른 판단, 공격수가 수비를 속이는 움직임, 기회 창출(연계 플레이), 마무리, 수비수의 위치 선정, 지속적인 스캐닝 등이 포함된다.
특히 공수 전환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현대축구에서 전환이 일어나는 시간은 마법의 시간으로 인식된다. 상대 수비가 정비되어 있는 상황에서 공격을 시도하다 득점하기는 매우 어렵다. 전환 플레이의 속력을 높여야 하는 이유다.
또한 기회 창출의 경우, 특히 파이널 서드에서 움직임이 중요하다. 솔로 플레이, 연계 플레이, 콤비네이션 플레이 등 어떤 플레이를 선택할 것인지 주도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수비수에 적용하면, 곧 상대 공격 플레이를 예측하는 능력이 된다. 상대가 어떤 형태로 공격이 들어오는지, 그에 따라 포지셔닝은 어떻게 할 것인지, 어떤 위치에서 대응하고 블록을 설정할 것인지 등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2) 승리하는 정신: 작게는 일대일에서부터 국면과 상황, 또 전체 게임에서 이기려는 의지의 총칭이다. 공수 일대일 상황에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 것부터 시작이다. 50 대 50 상황에서 볼 소유 의지도 비슷한 맥락이다. 현역 시절 이영표가 “운동장에서 상대와 나 사이 중간 지점에 볼이 떨어졌을 때, 저 볼을 내 볼로 만들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누구의 볼도 아닌 상황에서 내 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국면에서의 승리를 가져온다.
민첩한 의지, 넘어지고 다시 바로 일어나는 정신, 마지막까지 수비(태클), 폭발적 스피드와 체력 같은 요소도 소위 국지전의 승리를 가능케 한다. 이런 순간들이 쌓이면 90분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다. 또 상대가 강팀이든 약팀이든 차이를 두지 않고 ‘동일한 준비’ 태세로 나서야 한다. 기동성, 바디 콘택트, 포기하지 않는 정신 등의 요소도 ‘승리하는 정신’으로 설명할 수 있다.
3) 팀 동료 & 헌신: 축구는 11명이 함께 싸우는 운동이다. 동료를 돕고 동료에게 도움을 받는다. 헌신은 대표적인 덕목이다. 그렇다면 하위 목표도 자연스럽게 정리할 수 있다.
동료 커버, 공격시 서포트, 공격수의 수비 역할(카운터 프레싱), 스트라이커의 볼 압박(슈팅 후 채널링), 마지막까지 수비(태클), 볼 받아주려는 움직임, 팀과 함께 움직임, 역할에 충실, 비난보다 격려, 주심과 상대 존중 등이다.
상기 내용을 현장에서 적용할 때,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리하자. 선수들을 지도할 때 구체적인 단어를 선택하면 전달력을 높이고 목표 의식을 강화할 수 있다. 훈련과 경기 효과를 끌어올리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훈련 효율성 높이는 법
2022 카타르월드컵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테크니컬스터디그룹(TSG)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경기를 풀어가는 선수들의 축구 지능이 과거에 비해 더 발전했다. 이 ‘발전된 축구 지능’을 확인할 수 있는 세부 항목을 훑어보자.
우선 볼 소유 컨트롤, 플레이 국면(공격과 수비, 공격 전환, 수비 전환, 세트피스 등), 볼 리커버리 시간, 라인 브레이크, 미드필드와 수비라인 사이에서 볼을 받는 리셉션이 있다. 또 파이널 서드 진입 방식, 실수 유발, 볼 압박, 기대득점 압박 등이 포함된다.
팀 형태도 주목할 만했는데, 여러 팀이 동일한 4-4-2 포메이션으로 출발한다고 해도 경기 중 상황에 따라 공격과 수비 형태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공격할 때는 스리백 혹은 비대칭으로 수비라인이 변형되는 팀이 많았고, 수비 상황에서는 수적으로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파이브백을 쓰거나 극단적으로는 식스백을 형성하는 팀도 있었다.
이 중 볼 소유와 결과의 상관성에 관해서는 현장에서도 고민해볼 만한 지점이다. 유로 2008에 이어 2010 월드컵에서 스페인이 우승할 당시에는 점유율을 높여 상대를 제압하는 플레잉 스타일이 화두였다. 대륙을 넘어 아시아, 특히 유소년 단계에서도 소위 ‘티키타카’라고 하는 포제션 플레이에 집중했다.
하지만 2022 월드컵에서 점유율이 승리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결선 토너먼트 16경기 및 결승에 오른 아르헨티나와 프랑스의 전 경기를 포함한 총 25경기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가 자못 흥미롭다. 점유율이 높은 팀이 패한 경우는 25%(7경기)였고, 점유율이 낮은 팀이 이긴 경우는 44%(12경기)에 달했다.
대신 라인 브레이크가 더 정교하게 발전하고 있다는 경향성은 두드러졌다. 상대 수비 블록의 유형(유닛)도 다양해지고 있는데, 이 블록을 무너뜨리는 방식에 대한 고민도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라인을 깨트리기 위한 방식으로 오버(선수 머리 위로 패스), 상대 수비수와 수비수 사이를 통과하는 패스, 측면에서 어라운드, 언더랩 혹은 오버랩 등이 있다. 통계를 확인해 훈련에 적용하는 방법을 찾는 것도 효과적이다. 예컨대 득점 상황에서 마무리 지역이다(그림 1 참조). 2022 월드컵 당시 골이 가장 많이 나온 위치는 골대 정면(zone 1)이고, 그다음으로 골대에 가까운 골 지역(zone 2)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는 명확하다. 박스 안, 특히 중앙 지역에서 공격 작업을 마무리하는 훈련을 구성하는 것이다. 실제 현장에서 크로스 상황을 가정한 훈련을 많이 실시한다. 이 훈련이 박스 안, 그리고 박스 안에서도 중앙 지역에서 슈팅하고 마무리하는 훈련이었는지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무엇을 발전시킬 것인가
유・청소년 코칭 프로세스를 고민하는 지도자 중 방법을 몰라 혼란을 겪는 이들도 있다. 2023년 U-17 대표팀 운영을 참조하면 좋겠다.
코칭 프로세스에 적용할 수 있는 요소로 팀 철학, 플레이 원칙 & 게임 모델, 매치 & 훈련 양식, 분석(팀 & 상대팀), 선수단 미팅(피드백), 상황에 맞는 훈련이다. 이 과정을 통해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목표 의식을 공유하고 팀이 추구하는 플레이가 무엇인지 인지한다. 훈련과 경기 플랜을 선명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프로세스는 팀의 철학과 플레이 원칙 그리고 게임 모델을 토대로 진행한다. 다음으로 분석한 내용 혹은 목적을 토대로 훈련을 구성한다. 훈련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면 좋다. 또 영상 미팅 등을 통해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발전해야 하는 부분(목적)에 대해 명확하게 인지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선수들이 완벽하게 몸에 먼저 반응할 정도로 익힐 때까지 훈련하고, 이 과정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면 된다.
종종 드릴 형태 훈련이 좋은지 플레이 형태 훈련이 좋은지 묻는 지도자들이 있다. 정답은 없다. 팀 상황에 맞게 적용하면 된다.
다만 참고할 만한 에피소드가 있다. 2022 월드컵 종료 후 일본축구협회(JFA) 컨퍼런스에서 인용한 내용이다. 유럽 리그로 이적한 일본 대표 선수들의 고강도 훈련 소화 능력을 수치로 확인했는데, 자국 리그에서 뛰던 당시와 비교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유럽에서 실전을 통해 강도 높은 압박을 경험한 선수들이 대표팀에 합류했을 때, 과거보다 운동 능력이 월등하게 좋아진 것이다.
유・청소년 단계의 훈련 현장에 대입해 보면 드릴 형태든 플레이 형태든 실제 경기 중 나올 수 있는 상황을 어떻게 설정하고 훈련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특히 상대에 끌려가는 스코어라거나 추가시간 혹은 종료 직전 같은 상황을 설정하면, 시간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상대의 거친 바디 체크나 압박 등을 경험할 수 있다. 그 안에서 선수 스스로 해결책을 찾도록 반복 훈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드릴 형태보다 플레이 형태 훈련에서 실제 경기와 흡사한 이동량과 강도가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훈련을 구성할 때 도움이 될 것이다.
지도자의 목표는 ‘무엇을 발전시킬 것인가’로 귀결된다. [그림 2]를 참조해 경기 국면을 상정하고 어떻게 훈련을 구성할 것인지 고민해보자. [그림 2]의 국면은 경기장에서 나올 수 있는 거의 모든 상황들에 대한 것이다. ‘조직된 공격’을 예로 들면, 상대가 하이 블록-하이 프레싱일 때 어떻게 빌드업할지, 또 중원에서부터 압박이 들어올 경우 어떻게 공격을 전개할 것인지 등을 고민해 볼 수 있다. 반대로 ‘조직된 수비’ 훈련이라면 하이 프레싱-하이 블록을 설정하고 시도하는 라인이라든지, 디펜딩 서드에서의 수비 방법 등에 대해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훈련 구성의 예
경기력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네 가지가 있다. 기술, 전술, 체력, 정신이다. 기술의 기본으로는 패스, 드리블, 컨트롤, 슈팅, 헤더 등을 꼽을 수 있다. 각각 지도가 필요한 기술이지만 선수 개인의 재능과 반복 훈련이 병행될 때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지도자의 역량이 매우 강조되는 영역은 역시 전술이다. 전술 훈련을 구성할 때는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하면 된다. 숫자와 조합에 따라 개인, 파트너, 그룹, 팀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그룹 훈련은 7대7까지다(그림 3 참조).
훈련 구성에 적용할 수 있는 요소들의 예는 다음과 같다. 개인 전술 훈련시 일대일 중앙, 측면에서의 일대일, 수적 열세(일대이 등) 상황 경험 등이다. 그룹 전술 훈련시 포백 혹은 파이브백에서의 움직임, 측면에서의 수비, 중앙에서의 수비, 박스 안에서의 수비 상황 등을 설정할 수 있다.
팀 전술 훈련시 정비된 상황에서의 수비, 디펜스 서드에서 수비, 미드필드에서 수비, 하이 프레싱, 카운터 프레싱, 드로핑 다운(수비라인 내리면서 정비하는 방식), 세트피스 등이다.
마지막으로 실전으로 가는 훈련 구성은 앞서 언급한 드릴 형태 혹은 플레이 형태다. 각각 장단점이 있다. 드릴 형태는 반복 훈련이 가능하다. 상대의 압박도 설정할 수 있다. 압박이 강하지 않은 상황, 압박이 있는 상황 모두 진행 가능하다. 지도자가 뚜렷하게 목표하는 특정 전술이나 움직임이 있다면 반복 훈련을 통해 발전시킬 수 있다.
플레이 형태 훈련은 실제 경기 상황과 동일 혹은 흡사한 상황에 대한 적응력을 높인다. 실전에 가까우므로 경기 시간 내내 공격과 수비 전환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당연하게도, 지도자가 어떤 형태의 발전을 원하는지에 따라 구성 내용이 달라진다. 지도자와 선수 모두 즐겁고 능동적인 축구로 그라운드에 행복한 기억을 쌓아 가길 바란다.
* ‘2023 KFA 제1차 온라인 보수 교육’ 내용을 지면에서 볼 수 있도록 재구성한 글입니다. 전체 내용은 유튜브 KFA_ACADEMY 채널에서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KFA 기술리포트&매거진 ONSIDE 10월호 ‘SKILL’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온사이드 10월호 전체 보기(클릭)
강사=백영철(KFA 지도자 강사)
정리=배진경
사진=대한축구협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