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편의 vs 사회변혁이 추구하는 목적
인터프리테이션 누가 p337
백성을 소동케 하나이다(5절)라는 혐의에 관하여, 이 혐의는 그 안에 그럴 듯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고발자들이 빌라도로 하여금 그렇게 인식하기를 원했던 그런 내용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실제로 사람들을 소동케 하셨다 : 하나님의 통치를 설교하셨고, 병고침, 귀신추방, 그리고 절망과 낙심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킴으로써
그 통치를 미리 맛보게 하여 군중을 각성케 하셨다.
정치가 한 공동체의 생활과 복지에 관계를 갖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러했다.
예수의 방법과 전통 안에서 사역하느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정치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할 사람은 없다.
공공의 단체는 보수적이며 공고한 현상유지에 의존한다.
다수의 사람이 건강, 희망, 자유에 대한 새로운 맛을 봄으로써 흥분하고 있는 공동체는
지위와 특전이 기존의 질서가 유지되느냐 안되느냐에 좌우되는 사람들에게는 위협이 된다.
권세를 가진 자들은 변화란 값을 치러야 하고, 고통스러우며, 사람들을 소요케 하는 자들을 제거해야
모두에게 유익하다고 합리적으로 주장할 수 있다.
물론 공공의 단체들이 자발적으로 변화될 수도 있고, 변화에 앞장서는 자들을 환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자기 평가나 자기비판은 드물다. 누구라도 발 아래의 땅이 요동하는 것을 느끼면서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누구를 십자가에 못박으면 안전을 확고히 할 수 있다고 약속을 받는다면, 혹자들은 그 십자가 처형을 위한 이유들을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들은 반드시 악한 자들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선량한 사람들일 수도 있다. 정치적 편의가 원래의 목적을 다시 생각하지 않게만 해준다면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그 원래의 목적에서 떠나 정치적 편의로 점차 기울어지게 될 사람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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