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주석서를 읽으면서
어제 성샘주일예배에서 믿어야 한다.
지식만으론 않된다는 지적
월요일 새벽 일어나서 주석서를 읽는다.
요한 당시 예수에 대한 인식을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
하나님과 동등된 분(5:18)이 논쟁적이었다.
이 지식을 처음 받아들인 요한 공동체와 지금의 공동체와는 이 복음에 대한 느낌에 차이가 있다.
그들이 결단하고 받아들이는 믿음은 현실적이고 충격적이나
오늘의 교회가 받아들이는 믿음은 보편적인 지식이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지적인 동의일 수 있다.
결이 서로 약간씩 다른 오늘날의 믿음에서 서종채목사님은 언더우스 3세와의 기억
제3자인 원종수 목사에 대한 증언
오늘날에도 목사는 직업에서 자유로와서 심부름뿐으로 심방을 가면 또다른 예비된 사람들 만나서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구원에 이르도록
상담(짐 로저스)과 선포를 하게 되는 섭리를 말씀하셨다.
물론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된다고 하셨다.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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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에서 언급된 예수의 메시야라는 주제를 당시 랍비나 현자들이 숙고했었음이 나타난다(요 7:50-52)
그들은 역사적 정황에서 즉, 예루살렘 도시가 포위되고 수십년이 지난 후에 그들이 가졌던 메시야 개념에 비추어보았을 때
반대하는 명백한 근거를 찾았다.
즉 그들이 가졌던 지리적, 현세적 메시야 관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들이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에서 완전한 기독교적인 성숙을 파악하지 못했다(요한 인터프리테이션 p164).
현대 요한복음의 논쟁은 브루클린의 예쉬바 학도들과 맨하탄, 브롱스의 신학부 사이에 격렬한 논란거리가 된다.
수백년 유대교와 기독교 역사의 조명 하에서 상호 중재했던 적은 없었던가?
결코 없다고 말하지 못한다.
요한복음의 기독론은 미쉬나의 증거를 통해 보면 랍비들이 받아들이기에 그렇게 어렵지 않은 결론이다.
요한은 랍비들이 이러한 결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