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주석서를 아침에 읽으며 요한복음 서두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p 263)
이전까지는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이 함께 거하시는 이중인격체를 가진 분이시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이시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보내진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시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새벽에 본 본문은 말씀의 관점에서 명확한 인식을 하게 해주었다.
새로운 요소는 복음전도자들과 동시대인들에게 매우 충격적일 만큼이나 새로운 것으로
시내산에서 말하여진 율법에 포함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말씀이 최소한 동일하든지, 아니면 이보다 더
뛰어났다는 가정이다. 요한복음은 예수를 공관복음서가 침묵했던 대로 하나님의 대변자로 묘사한다.
예수와 하나님의 관계는 이점에서 명백하다.
그는 들었던 것을 말하고 가르침을 받았던 것을 가르친다.
아버지에 대한 예수의 충실성은 그에 대한 똑같은 충실성을 야기시키고 그 결과는 영생으로 최후 시대의 생명을 얻게 한다(12:50).
바레트의 통찰
요한이 49절을 주해하면서 공적인 사역에 대해 그의 최종적인 요약을 끝내는 것은 매우 특이하다.
예수는 독립적으로 위대한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전혀 아무 것도 인다. 이 복음서의 첫부분에서 예수는 아버지에게 전적인
복종의 삶을 산다. 그러나 두번째 부분에서 그는 똑같은 복종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설교자의 의무는 명백하다. 그것은 예수를 단순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를 그 자체- 갈릴리의 유대인으로
성육신 되어 우리에게 온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로 알아야 하는 것-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