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들의 영혼이란
물감이 질 좋은 도화지에 스미는 것처럼 손쉽게 자연과 시간 속으로 젖어든다.
붓이 한 번 부드럽게 간 자리가 바로 그들의 영토이다.
하지만 사는 일은 그렇지 않다.
때론 힘든 덧칠이 필요한 뻑뻑한 작업이다.
이를테면 크레파스로 거대한 벽화를 그리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추억에도 속도라는 것이 있다.
나는 아주 드물게 그 속도를 감지하곤 한다.
나는 내 그림 속의 인물과 사물들이 그 추억의 속도로 움직이길 원했고,
그 그림들에서 지나간 내 모습들을 반추할 수 있기를 추구했다.
.추억의 속도를 내게 창시한 사람은 아버지다. 따라서 아버지는 내 슬픔의 교주이다.
나는 아버지의 후란넬 양복감의 팔랑거림을 기억한다.
아버지의 야윈 다리는 양복바지 안에서 지구를 지탱하며
천천히 삶이란 궤도를 산책하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 곁에서 손을 잡고 있었고,
그 산책이 그냥 산책이 아니라 길고 긴 노정이라는 것을 훗날에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그 훗날, 추억의 속도로
저 피안의 세계를 향해 사라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쓸쓸히 지켜보아야 했다.
*글: 이응준의 단편소설집 '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 중에서 .
*그림: 19세기 영국 화가 애킨슨 그림쇼 (Atkinson Grimsh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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