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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예수님의 3대 사역

작성자별하나사랑|작성시간24.09.27|조회수31 목록 댓글 0

예수님의 3대 사역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두루 다니사' 갈릴리 지방 곳곳을 두루 다니신 것을 말합니다. 욥2:2절에 하나님이 사단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의 대답은 '땅에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였습니다. 예수님도 여기저기 두루 다니셨고 사단도 여기저기 두루 돌아다녔습니다.

 

차이점은 예수님은 가르치시고 전하시고 고치시기 위해서였고, 사단은 먹이 사냥을 위해서였습니다. 지금도 사단은 여기저기를 돌아다닙니다.

 

벧전5;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또한 요10:10절에서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은 선한 목적을 위하여 두루 다니시지만, 사단은 악한 목적을 위하여 지금도 두루 다닌다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을 자기 앞으로 모이도록 선포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겸손하게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세상에 오신 주님은 친히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면서 복음사역을 하셨습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갈릴리는 204개의 마을이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대부분 각 고을마다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본문 속에서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할 곳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이 중요한 사역을 위해서 택하신 장소가 있습니다. 어디입니까? 바로 회당입니다. 회당이라는 말은 '함께'라는 말과 '모인다.'라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이 회당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에 성전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되자, 마을 중심에 회당을 짓고, 율법의 말씀을 가르치고, 자라나는 자녀들을 교육시켰던 장소입니다.

 

그 후로 회당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우 중요한 삶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성전은 예루살렘 한 곳 뿐이지만 회당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 곳이면 어디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회당을 마을 광장 중심이나 성읍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다 세웠는데 그 방향은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곳으로 두었다고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오직 제사만을 드리는 집이었다면, 회당은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재판하며, 공부하며 토론하며 회의도 하는 다목적 기능을 가진 신앙과 삶의 중심센터였고, 심지어 나그네를 위한 여관과 같은 역할도 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회당은 예배의 처소요, 학교요, 문화의 광장이요, 친교의 터전이었습니다. 사실 초대교회의 전통은 성전보다는 회당적인 기능을 더 많이 이어받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한국 교회가 바로 회당교회 역할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주일에 모여서 예배만 드리고 모든 사역이 끝나는 교회가 아니라, 이 지역 속에서 회당적인 기능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회당에는 세 부류가 모였습니다.

 

⑴ 기도하는 자들이 있었고,

⑵ 율법과 예언서를 낭독하는 자들이 있었고,

⑶ 말씀을 배우고 질문을 하고 토론도 하는 무리들이 모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곳 갈릴리에서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약한 것을 고치시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의 삼대 사역이라고 말합니다.

 

여기 가르치는 사역은 현대 용어로 교육입니다. 그리고 복음전파는 전도와 설교입니다. 또한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시는 사역은 '치유사역, 상담사역'입니다.

 

그러니까 ⑴교육(디다케)입니다. ⑵전도(케리그마)입니다. ⑶병든 세상을 치유하며 섬기는 봉사(디아코니아)입니다.

 

① 예수님의 첫 번째 사역은 가르치시는 사역입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사역의 중심은 교육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교육적 사명이 있으며, 성도는 배움과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의 종은 잘 가르쳐야할 사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의 사역을 자세히 보면, 가장 많은 시간과 힘을 쏟은 것은 12명의 제자를 선택하시고, 그들을 교육하며 훈련시키신 일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지상 명령도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교육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교육자로 말하면 가장 뛰어난 교육자였습니다. 가르치는 내용이 뛰어난 진리였으며, 가르치는 방법이 뛰어나셨습니다. 마7:28절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 다 훌륭한 선생이지만 예수님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는 내용부터가 세상의 교사들이 가르치는 내용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어찌 회당에서 뿐입니까?

 

산에 올라가서도 가르치셨습니다. 그 유명한 산상보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닷가에서도 가르치셨습니다. 눅5장에 이른 새벽부터 가르치셨습니다. 가르치실 때 우리들이 깜짝 놀라곤 했습니다. 이구동성으로 '가르치시는 것이 서기관과 다르다. 그에게는 권세가 있다'고 감탄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가르치셨을까요?

 

⑴하늘의 도를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의 존재, 또 하나님과 우리 인간과의 관계, 하나님의 사랑,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것과 섬길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⑵사람의 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인간이 지켜야 할 윤리와 도덕, 사랑의 윤리, 가정의 윤리, 겸손의 윤리, 화해의 질서에 있습니다.

 

⑶생명의 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사망의 길로 달리는 인생이 생명을 얻고 소망 속에 사는 비결입니다. 그 길이 곧 예수 믿는 길입니다. 요14:6절에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⑷처세의 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육신을 위하여 살지 말고 영을 위해 살며, 높아지려고 하지 말고 낮아지며, 또 남을 주고 살며, 남을 비판하지 말고 자기를 반성하며 진리 아닌 것을 위해 살지 말고 진리 위해 살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⑸물질의 도를 가르치셨습니다. 물질은 하나님의 나라에 쌓아주어라, 그곳이 제일 안전합니다.

 

⑹말세의 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인류의 종말이 있음을 가르치셨으며 그러므로 경성하여 준비하는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살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⑺심판의 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사람은 선악 간에 향한 대로 보응을 받는다고 합니다.

 

②예수님의 두 번째 사역은 복음 전파입니다.

 

전파한다는 말은 '캐루소'라고 하는데 근원적인 뜻은 '선포하다. 외치다'의 뜻이고 '설교하다'의 뜻도 됩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들에게 선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늘나라에 진리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강단에서 설교하는 것도 복음전파입니다. 주님의 설교의 재료는 오직 천국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설교 속에 개인의 생각과 방법 개인의 경험과 의도가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

 

이것은 설교가 아닙니다. 교회에서는 반듯이 성경이 강해되어야 합니다. 신문을 가지고 설교해서도 안 됩니다. 민주화를 가지고 설교해도 안 됩니다. 인권을 가지고 설교해도 안 됩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방법대로 성경말씀은 한 구절 한 구절 깊이 묵상하고 강해하는 것입니다. 또한 복음전파는 1:1의 전도도 해당합니다. 요4장에 보면 예수님은 한 여인을 전도하시기 위해 유대인들이 그렇게 멸시하는 이방 땅 사마리아에 가셔서 우물가에 여인에게 생수의 복음을 주셨습니다.

 

③예수님의 세 번째 사역은 고치는 사역입니다.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것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세상에는 병든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자요, 불쌍한 자입니다.

 

⑴예수님은 육신의 질병을 치료하시는 의사이십니다.

예수님은 복음과 함께 수많은 질병을 고쳐주셨습니다. 말씀이 증거 되는 곳마다 치료의 능력이 나타나 세상에서 고칠 수 없는 수많은 병자들이 찾아와 고침 받았으며, 군대귀신이 들려 공동묘지 사이에서 사악하고 무서운 성품으로 변해 버린 자를 고쳐주셨으며(마8:28),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하는 여인을 고쳐주셨으며(마9:20-22), 앞 못 보는 소경을 고쳐주셨으며(마9:27) 요5장에 베데스다 연못가의 앉은뱅이를 고쳐 주셨습니다.

 

⑵예수님은 정신적인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이십니다.

현대인들은 산업사회에 살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삽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감정을 억제하지 못할 때도 많고 사고를 치고 심지어는 살인까지 갑니다.

 

상습적인 마약 중독자가 늘어가고, 술집과 나이트클럽 등 향락산업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현대인들이 정신적인 질병에서 고통 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 증거입니다. 이러한 정신적인 질병에서 치료받으려면 만병의 의사이신 예수님을 만나야 됩니다.

 

⑶예수님은 영혼의 질병을 치료하시는 의사이십니다.

육체가 병들어 있는 것도 비참한 일이나 정신적인 질병은 더 불쌍하며 더욱 비참하고 무서운 질병은 영혼의 질병입니다. 육체적인 질병이나 정신적인 질병은 때로는 현대의학으로 치료받을 수 있으나 영혼의 질병은 세상에서 치료받을 수 없고 결국은 멸망당하는 무서운 질병입니다.

 

영혼 치료는 예수 앞에 나아와야 합니다. 영혼은 죄로 인해 병들었기 때문에 그 죄의 문제는 주의 보혈로만이 치료될 수 있습니다.

 

▶병이 걸리는 원인도 많습니다.

 

⑴피곤해서 오는 병이 있습니다.

⑵병균의 침입으로 오는 병이 있습니다.

⑶유전적으로 오는 병도 있습니다.

⑷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기 위해서 오는 병도 있습니다.

⑸연단을 주기 위해 오는 병도 있습니다.

⑹깨닫게 하기 위해 주는 병도 있습니다.

⑺죄의 대가로 오는 병도 있습니다.

⑻자기의 과실로 오는 병도 있습니다.

⑼마귀 사단이 가져다주는 병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어떠한 병도 우리 주님은 고치실 수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분이 우리를 만드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병만 고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모든 약한 부분을 다 고치십니다. 그 누구라도 예수 앞에 은혜 받고 능력 받으면 육신의 질병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격도 변화되고 환경도 변화됩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실패자가 성공자로, 미련한자가 지혜 있는 자로 바꿔집니다.

 

막16:17-18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예수님의 3대 사역(마태복음 4:23-25)

 

 

마태복음 4:23-25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 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제자들을 부르신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에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9장 35-38절에서도 본문과 똑같은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나무를 자르면 나이테를 볼 수 있습니다. 이 나이테는 나무의 단면이지만 거기에는 나무의 역사와 여러 가지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몇 년 됐고, 언제 많이 자랐고, 언제 가뭄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마치 나이테와 같습니다. 비록 짧은 본문이지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 공생애 삶을 간단히 요약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영과 혼과 육 이 세 면과 관련해서 사역하셨습니다. 영의 구원을 위해서는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고, 혼의 구원 즉 정신, 인격의 변화를 위해서 가르치셨고, 몸의 구원을 위해서는 치료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는 삶을 산다는 것은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본받을 뿐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을 본받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우리가 계승해야 할 예수님의 사역, 즉 교회의 사명을 살펴보게 되는 것입니다.

 

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사역이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가르치심, 둘째는 전파하심, 셋째는 치유하심입니다.

 

가장 먼저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소개되고 있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사역에 있어서 가르치심이 가장 중요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3년 동안 12명의 제자만을 가르치셨고, 가룟 유다를 제외한 11명을 이 세상에 남기고 떠나셨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셨다고 했는데 회당은 바벨론 포로 이후 생겨난 제도로서 유대인이 거주하는 마을이면 회당이 건립되었습니다. 한 자료에 의하면 당시 예루살렘에만 460개 내지 480개의 회당이 있었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이나 주요 명절 때 회당에서 율법을 배우고 기도하는 일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회당에서 가르치셨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랍비라고 불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배척으로 인해 점차적으로 회당 밖의 비공식적 자리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게 오라”고 부르시고,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최종 목표는 배우고 일군이 되어 가서 제자 삼는 사역을 감당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이 좋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깊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자연계시를 통해 하나님을 아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주어졌습니다. 성경을 배우지 않고서는 구원에 이르는 영적 지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를 믿는 일은 배우는 일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신앙 인격을 키워주는 진리의 학교입니다.

 

그런데 배우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덮어놓고 믿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맹신입니다. 영적 성장에 가장 치명적인 장애물은 만족하는 것입니다. 만족하면 성장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삶의 태도에 있어서는 자족해야 하지만 성장에는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하기까지 계속 성장해야 하고 우리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께서는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것은 함게 있으면서 삶을 통해 가르치시고 나가서 전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열 두 제자 외에 70인 제자를 세우시고 전도를 위해 두 명씩 짝을 지워 그들을 파송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에 앞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기셨는데 그것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증거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님의 사역을 본받아, 또 주님의 유언에 따라 생명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천국 복음’이라는 말씀은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의 성격을 규정해주는 것입니다. 강단에서 정치 이야기, 시사 이야기, 경제 이야기, 철학 이야기가 나와서는 안 됩니다. 강단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가 나와야 합니다.

 

천국 복음은 오늘날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명심해야 할 주제인 것입니다. 강단에서건, 개인적으로 전도하는 자리에서건 전파되는 말씀은 천국 복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 전파에서 중요한 것은 내용과 아울러 열정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신 것은 잃어버린 양을 찾으시는 목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전도는 단순한 의무감, 또는 일시적으로 흥분된 감정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영적으로 죽어 있는 불신자의 모습, 살아 있으나 죽은 자와 다를 바 없는 그들의 비참한 영적인 상태를 볼 수 있는 눈과 그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주님의 마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이 없으면 전도자가 되기 어렵습니다.

 

아무런 아쉬움이 없으면서도 아쉬운 듯 애걸해야 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전도하면 하나님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외아들 예수까지 십자가에 내어주시면서 까지 사람들에게 복을 주지 못해 “제발 복을 좀 받아 달라”고 애원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전도를 위해서 지불해야 할 대가는 나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만약 불구덩이에 빠져 있는 사람을 구원하려면 불 속으로 뛰어 들어야 합니다. 만약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구원하려면 물속에 뛰어 들어야 합니다.

 

불에 데지 않고 불 속에 있는 사람은 구하기 어렵고, 물에 옷이 젖지 않고 물속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보좌를 버리시며 사람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죄인들과 자리를 같이 하셨고 그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전도했습니다. 그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고전 9:22)라고 했습니다. 몇몇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비우고 전도 대상자들의 자리에 서서 눈높이를 맞추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공생애 사역의 세 번째는 치유하심인데 이 이유에 대한 내용은 24절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 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신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예수님께서 병 고치는 모습을 주목해 보면 예수님께서 찾아가서 병자를 고치시지는 않았습니다. 본문에서도 데려오는 자들을 고치셨는데 병 고침의 사역은 어떻게 보면 부수적인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신 목적은 병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심도 있지만 치유의 기적을 통해 예수님께서 메시아 되심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가르치고, 전파하는 일에 대해서는 교단마다 한결같지만 병 고침에 대해서는 입장에 차이가 있습니다. 기적을 초대 교회의 특수한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은 오늘날에는 기적이 없다고 말을 합니다.

 

반면에 오늘날도 동일하게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상황은 오늘날과 분명히 다릅니다. 오늘날과 초대 교회 때가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필요하면 언제라도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성결교의 경우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을 전도 표제로 삼고 있고 이것을 사중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신유라는 말은 하나님의 은혜로 병 고침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신유를 믿는다고 해서 의학을 부정하거나 거부하는 결코 아닙니다. 의학도 하나님의 자연은총에 속하는 것입니다. 의학을 감사해야 합니다.

 

치유를 위해서 우리는 먼저 병이 나는 이유를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병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 첫째는 사망에 이르는 병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기 위한 질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한히 오래 사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회복 불가능한 질병이 있습니다.

 

만약 모든 병이 믿음으로 낫는다면 믿음이 좋은 사람은 아무도 죽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데려가시기 위해서 병을 주셨을 경우 무슨 수를 써도 회복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연단을 위한 병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벗어나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바로 세우시고 훈련하시기 위해 질병을 주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9장을 보면 어떤 병들고 눈먼 사람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요 9:2).

 

이에 예수님은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 9:3)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를 고쳐 주셨고,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질병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사망에 이르는 병, 연단을 위한 병,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입니다. 이 가운데 마지막 병이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치유해 주시기 원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4-15절을 보면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고 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라”,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치료자이심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한다고 해서 모든 병이 다 낫는 것은 아닙니다. 간절히 기도했어도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치료하는 것이 아닙니다. 치료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치유가 항상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바울은 세 번씩이나 자신의 질병을 치료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병이 낫고 안 낫고는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께서 치료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라파 되심을 믿고 기도할 뿐입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병의 성격입니다. 대개 사람의 병은 몸의 병, 마음의 병, 영혼의 병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몸의 병은 의사가 고칩니다. 마음의 병은 정신의학자, 심리학자, 상담자의 몫입니다. 영혼의 병은 목사가 고칩니다.

 

그러나 실제로 몸, 마음, 영혼은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한 부분이 아프면 모두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치유는 세 영역에서 다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25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따르니라.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사역하셨지만 예수님의 소문이 퍼져 나가자 수리아에서 뿐 아니라 이제는 데가볼리, 예루살렘, 유대, 요단강 건너편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본문에서 좀 생소한 지명은 데가볼리인데 이곳은 요단강 동편과 갈릴리 바다 남쪽에 위치한 도시들의 연맹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소문은 쉽게 퍼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소문이 팔레스틴 북쪽 갈릴리에서 남쪽 유대 그리고 요단강 동편 지역에 이르기까지 퍼지고 허다한 무리들이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 예수님은 따르던 사람들은 단순한 추종자였지 제자로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다만 이적과 축복만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단순히 종교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 교회를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은 군중이 아니라 제자입니다. 우리는 군중 속의 한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전인격적으로 인정하고 따르며 그리스도의 사역을 본받아 행할 수 있는 제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의 단면을 살펴보았습니다.

 

복음전파, 가르침, 치유는 예수님의 3대 사역입니다. 이것은 나름대로의 독특하고 독립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 건설’이라는 지상 목표를 향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이 세 가지 사역은 오늘날 교회가 주님께서 오시는 날까지 지속적으로 감당해야 할 교회의 3대 사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많은 열매를 맺는 성도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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