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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람 데오(Coram Deo)의 삶

작성자빌립.|작성시간20.12.16|조회수495 목록 댓글 0

헬라어에는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로 구분하여 표시하고 있다. 성경 말씀에도 시간을 나타내는 두 개의 단어로 된 구절이 있다. “때(크로노스)와 기한(카이로스)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 알 바 아니요”(행1:7)라는 말씀이다.

 

“크로노스”는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이요 달력이나 시계로 표현되는 연속적인 시간 개념이다. 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며, 저장할 수 도 없고 빌려 주지도 받지도 못한다. 모든 사람에게 시간은 똑같은 비율과 속도로 흐른다. “크로노스”는 측정가능하고,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지속성을 지닌다.

 

“카이로스”는 때가 꽉 찬 시간으로 구체적인 사건의 순간, 감정을 느끼는 순간,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순간이다. “카이로스”는 자신의 존재 의미를 느끼는 절대적인 시간이며 하나님과의 관계성 안에 있는 시간이다. 보통은 시간의 길이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있으면 시간이 짧게 느껴지고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는 시간이 느리게 지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상황이나 가치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감각적 차원의 시간을 “카이로스”라고 말한다. 때로는 “기회”라고 표현되는 입체적인 시간의 개념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위해 허용된 “크로노스”의 시간인 현재(現在, present)를 뜻있는 일을 하라고 주신 “카이로스”의 선물(膳物, present)로 만들어 가는 존재이다. 그러기에 누구에게나 “카이로스”의 시간과 사건이 있게 마련이다. 결혼 이후의 나의 삶을 돌아 볼 때, 나에게도 세 개의 “카이로스” 사건(사원-사업-사역)이 있었고 이를 통해 지금의 위치까지 성장해 왔음을 알게 된다. 내가 목사로 기름부음을 받게 된 것은 내 삶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카이로스 사건이었다.

 

첫째는 코람 호미네(Coram Homine, Before a man)의 카이로스이다.

이는 “한 사람 앞에서”의 삶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최고의 의사결정권자, 실권자, 실세에게 인정받으면 남들로부터 실권자나 실세가 가진 힘을 동일하게 행사할 수 있는 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는 것이다. 세상의 대부분의 조직은 정상에 서있는 이 한 사람을 향하여 때로는 충성을 다하기도 하고 때로는 아부를 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한 사람 앞에서”의 삶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기에 치열한 경쟁이 있고 그 경쟁가운데 부러움과 좌절이 함께 나오기도 한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치열한 과정을 거쳐서 중견그룹의 회장 비서실장과 그룹자금본부장이라는 위치를 3년간이나 지켜냈다.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그런 자리였지만 그것을 통해 내 삶의 목표와 뜻을 이룰 수는 없었다.

 

둘째는 코람 포풀로(Coram Populo, Before the crowd)의 카이로스이다.

이는 “대중들 앞에서”의 삶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코람 호미네”의 삶에 이어서 많은 사람들 앞에 서있는 자요 그들과 남다른 깊은 관계를 맺어야 하는 요즈음 CEO라고 불리는 “사장(社長)”으로서의 삶이다. 나는 이 시절 임직원과 협력업체의 가족들을 포함하여 약 1천여 명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늘 고통스럽고 고독하며 고도(孤島)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극도의 외로움이 휘몰아치는 삶이었다. 스탭들의 조언을 경청하지만 언제나 최종적인 결정은 혼자서 해야 하고, 일의 결과에 대하여서도 혼자서 책임을 져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이 자리도 정리하도록 강제적으로 역사하셨다. 바로 IMF라는 과정을 통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새로운 창조적 파괴가 진행되었는데 혼란과 불안의 시간이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목회의 길을 가도록 예비하고 계셨다.

 

셋째는 코람 데오(Coram Deo, Before God)의 카이로스이다.

이 “코람 데오”는 “신전의식(神前意識)”이며 세상의 그 어떤 삶보다도 “하나님 앞에서(in front of God)”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in the presence of God)"의 삶이 우선하는 것이다. 이 “코람 데오”는 하나님 앞에 있는 자신을 의식하는 삶이다.

 

기독시인 윤동주는 이 “코람 데오” 정신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고 노래하였다.

 

다윗은 자신의 죄의 근본적인 이유가 “코람 데오”의 실종으로 인한 것임을 고백하였다.

 

요셉은 “코람 데오”의 정신이 아주 탁월한 사람이었다.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고 말하며, 결코 하나님이 마음 아파 고개 돌리실 일을 하지 않았다. 이것이 “코람 데오”, 즉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의식이다.

 

칼빈(John Calvin)은 “하나님 앞에서 나의 마음을 당신을 위하여 기꺼이 즐겁게 드리기를 원한다.”라는 모토를 평생 지니고 살았다. 이후 “코람 데오”는 모든 개신교의 신앙고백이자 양심선언이 되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이지 결코 "사람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다.

 

특별히 기름 부은 자인 목사는 “코람 데오” 신앙을 통하여 삶이 예배가 되고, 예배가 삶이 되는 생활을 살아가야 하는 하나님의 사람이어야 한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특별히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드리기를 결단하는 것이 목사로서의 첫 기도제목이다. 또한 이것이 마지막 기도의 내용이기를 소망한다.

 

 

코람 데오(Coram Deo)

 

Coram Deo(코람 데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이 무엇일까요?.

이 말은 종교개혁자 루터가 즐겨 쓴 말입니다.

루터는 많은 저서를 남겼습니다.

그의 저서들 가운데서 여러번 [코람 데오(Coram Deo)]라는 아주 유명한 말을 합니다

코람(Coram)은 “--의 앞에서, 면전에서”라는 접두사이며 데오(Deo)라는 말은 “하나님”을 뜻하는 말입니다.

누가복음 1:3절과 사도행전 1:1절에 나오는 [데오빌로]는 실존인물이지만 그 이름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말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코람과 데오의 합성어 코람 데오는 [하나님 앞에서]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람 앞에 서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Coram Deo!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그리스도인은 오늘을 종말처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선 성도인 우리들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의식하고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모습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은 “이렇게 살겠습니다.”라는 약속을 하고, 이를 실천하며 살 것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루터의 저서 [식탁대담]중 “세상의 본질에 관하여”라는 장에서는 루터는 이 세상의 사람들을 세 부류로 나누고 있습니다.

1. 첫째 부류는 자신의 부패한 본성과 행동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한채 양심의 가책없이 태평스럽게 사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2. 둘째 부류는 율법앞에서 두려워 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느끼며 좌절감에 시달리며 사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3. 셋째 부류는 자기 죄를 인정하고, 죄로 인하여 멸망할 자임을 잘 알면서 복음에 귀기울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값없이 주시는 은혜로 죄사함 받음을 믿고 하나님앞에서 의롭다함을 받으며 온갖 선행으로 믿음의 열매를 나타내며 사는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코람 데오란 라틴어 'coram Deo'는"주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여호와 앞에서"등의 표현

코람은 '~의 앞에서'이고 데오가 '하나님'이라는 뜻의 라틴어입니다.

"주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여호와 앞에서"등의 표현

코람데오가 사용되는 통상적인 의미는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히 행하라는 것입니다. 즉 모든 행동을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다는 하나님의 주권인정을 하는 말입니다.

 

코람 데오란 라틴어 'coram Deo'를 그대로 읽는 소리로 라틴어로 'coram'은 '앞에'라는 뜻을 지니고, 'Deo'는 '하나님'을 뜻합니다.

 

이 두 단어가 합쳐져서 '하나님 앞에서'라고 말할 수 있지요. 이것은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부패했던 중세 신앙가운데 크리스천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이름을 높이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권위아래 살며 하나님 안에 사는 삶의 방식을 요약해서 주창했던 말입니다. 영어로는 'before the face of God'으로 대신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사람 앞에(coram hominibus)' 잘보이고 '세상 앞에(coram mundo)' 명예롭고 잘 살기 보다 오직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한 뜻을 구하며(롬12;2) 사는 삶일 것입니다.

 

AD400년경에 번역된 라틴어 성경 벌게이트역을 보면 다음과 같이 신구약 성경에서 인 단어가 사용되고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구약 - 창 6:11, 민 10:9, 신 4:10, 12:18, 16:11, 26:3, 대상 13:8, 10, 16:1, 대하 33;12, 왕상 8:65, 에 8:21, 욥 15:4, 32:2, 시56:13, 잠 3:4, 전 5:2, 단 6:10, 말 3:14

 

신약- 눅 12;6, 24:19, 행 8:21, 롬 4;22, 고후 2:17, 4;2, 7:12, 12:19, 갈 1:20, 딤전 5:4, 5:21, 6:13, 딤후 4;11, 계 3:2, 8:4

 

(교역자님들 이 말씀들을 깊이 연구하고 묵상하시면 좋은 설교 연속해서 5편은 충분하실 것입니다. 코람데오의 삶1, ...삶2, 삶3....)

 

이것은 그 당시 종교개혁자들이 내세웠던

 

Sola Scriptura 오직 성경

Sola Fide 오직 믿음

Sola Gratia 오직 은혜

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

이라는 다섯 가지 슬로건의 기초였던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진정한 '코람데오 신앙생활'은 '하나님 주의'-하나님의 관점에서 늘 내앞에 계시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며, 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 앞에서만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도 동일한 믿음을 지켜나가는 삶일 것입니다.


[출처] 코람 데오(Coram Deo)의 삶 (은혜성서교회) | 작성자 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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