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르앗은 요단 강 동편, 해발 고도 600m의 고원지대로 물이 많고 초목과 수풀이 잘 갖춰진 지역이었다(민 32:1; 대상 5:9; 아 4:1).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20년동안 외삼촌집에 머물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천사와 씨름했던 얍복강이 있으며, 이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아가서에는 이렇게 표현했다.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 같구나 ”(아4:1).
이 땅은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당시 아모리 왕 시혼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모세가 사신을 보내어 통과하게 해 달라고 하자 그들은 싸움을 걸어왔고 이스라엘에게 패했다(민21:24). 모세는 이 땅의 북부(얍복강을 경계로 북쪽)는 므낫세 반 지파, 남부는 갓과 르우벤 지파에게 분배하였다(민21:24;32:33~42; 신 3:13; 수 13:24-31).
사울이 최초로 이스라엘 왕이 되었을 때 사무엘을 신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그를 왕으로 받아들였으나(삼상10:24), 일부 비류들은 그를 멸시하고 동조하지 않았다(삼상10:27).
당시 암몬 사람 나하스가 길르앗 야베스(길르앗 땅의 주요 성읍)를 침공했을 때 야베스 사람들이 서로 화친하자고 제의하자, 나하스는 “내가 너희 오른눈을 다 빼어야 너희와 언약하리라 내가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리라”라는 말로 거절하였다(삼상 11:2).
이에 야베스 사람들이 사울의 고향 기브아에 가서 그 사실을 알리며 도움을 청하였다(삼상11:4).
사울은 소식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 십만 명과 함께 가서 암몬 사람들을 대파하고 승리를 거두었다(삼상 11:11).
이 일은 사울이 백성들로부터 왕으로 인정받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백성들은 사울을 반대하던 자들을 끌어내어 죽이자고 했다. 그러나 사울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백성들을 진정시키고 백성들과 함께 길갈로 가서 백성들의 추앙을 받으며 정식으로 왕이 되었다(삼상11:15).
사무엘도 이일을 좋게 보고 백성들을 향해 이 모든일이 하나님의 뜻임을 공표하며 오직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고 당부하며 자신도 백성들을 위해 여호와 앞에서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결단코 범치 아니하겠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삼상12).
사울은 베냐민 지파였고 그가 왕이 되기 전, 조상들(기브아 사람들)은 레위인의 첩 행음 사건으로 온 이스라엘의 분노를 샀고, 백성이 미스바에 모여 베냐민 지파를 응징하기로 결의 했을 때(삿20:1), 아이러니하게도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총회에 불참하였다.
당시 베냐민 지파(기브아 사람들)는 사과는커녕 오히려 온 이스라엘에 대항하여 싸움을 벌였고, 거의 멸절되다시피 대패하였다. 그러나 싸움이 나기 전 미스바 총회에서 베냐민 지파에게 여인을 주지 않기로 맹세하였기에 (삿21:1)베냐민 지파는 대가 끊어질 위기에 처했다.
궁여지책으로 온 이스라엘은 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길르앗 야베스를 공격해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살육을 저지른 후 젊은 처녀 사백 명을 (삿21:12) 붙잡아 베냐민 지파에게 보내어 대를 잇게 하였다.
그 숫자로도 부족하여 베냐민 남자들은 포도원에 숨었다가 명절 때‘실로’에 오는 여인들을 붙잡아서 아내로 삼으라고 권하며, 이 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막아주겠다고 했다(삿21:19~21).
사울은 훗날 자신의 고향 기브아에서 불레셋 군대와 전투중에 그 아들 요나단과 함께 생을 마감하였다. 이때 불레셋 군대는 시체들 중에서 사울을 찾아내 그의 목을 베고 시신을 성벽에 걸었다. 그러나 정작 그의 시체를 거둔 사람은 다윗이 아니라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었다(삼상31:8~13). 다윗은 그 소식을 듣고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감사의 말로 표시했다.
“야베스 사람들에게 전령들을 보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주 사울에게 이처럼 은혜를 베풀어 그를 장사하였으니 여호와께 복을 받을지어다” (삼하2:5).
성경은 세상의 모든 섭리가 하나님 안에 있음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르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결국 모든 비극의 원인은 섭리를 거스름에서 생겨나고 그 일을 통해 인간은 또 깨달음을 얻으며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게 된다. 성경의 모든 기록은 그러한 인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 사울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원해서 왕으로 세움 받은 사람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달라고 구할 때 이 일은 철저하게 하나님에 대한 불신으로 여겼다(삼상8:7).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을 향한 원성의 목소리가 컸고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에 응함으로써 또 다른 깨달음을 주려고 했다.
사울이 그 왕정치하에서 보여준 일들은 철저하게 인간적이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보내진 다윗을 배척하였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성급하게 행동하는 면도 있었다. 성경에서 길르앗 야베스와 사울의 관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과거 사울이 속한 베냐민 지파가 이스라엘 총회에서 멸절되다시피 되었을 때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총회에 참석하지 않음으로 베냐민 지파의 운명에 동조하였다.
그리고 그 일로 사울은 길르앗 야베스가 암몬에 의해 곤경에 처했을 때 도움을 주었으며 사울의 죽음도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성벽에 올라 그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지내주었다.
굳이 생각해 보면 길르앗 야베스는 므낫세 반 지파의 땅이고 요셉의 자손이며 라헬의 두 아들이 베냐민과 요셉이라는 점을 미루어 볼 때 혈통적으로도 길르앗 야베스와 사울은 남다르지 않았을까?
사울의 인간적인 면과 또, 다른 지파들과 유별나게 행동한 베냐민 지파의 모습이 야곱이 사랑한 라헬, 그리고 그가 편애한 자손 베냐민과 요셉으로 생각이 이어진다.
<옮긴글>
[출처] 길르앗 야베스 (은혜성서교회) | 작성자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