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8일 새벽 5시, 시차를 위해 뜬 눈으로 밤을 새우며 김연아를 보다가 겨우 두시간 눈을 붙였다. 8시 비행기라 5시반에는 집에서 나가야했다. 다행히 집과 공항이 참으로 가깝다. 이번 비행기는 일본의 JAL 항공. 도쿄를 경유해 로마로 가는 제일 저렴한 비행기 표를 구할 수 있었다. 돌아올 때는 로마에서 도쿄까지 가는 이탈리아의 Alitalia를 탔는데, 그래도 JAL이 낫더라.
하늘이 무척 맑았나보다. 나리따가 가까워오자 저 멀리 후지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말끔하게 후지산을 보기는 처음이다. 정말 1년 내내 눈이 쌓여있었구나. 일본에서 두시간의 대기시간을 지나 1시쯤 로마에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어직도 얼떨떨한 기분, 서쪽으로 서쪽으로 해를 쫓아가는 낮시간 비행이라 유난히 잠이 안온다.
자신은 시차에 완전히 적응했다며 혼자 쿨쿨 자고 있다. 한국과 이탈리아의 시차는 8시간. 우리가 갈 때는 썸머타임이라 7시간이었는데, 들어올 때는 썸머타임이 끝나서 8시간으로 늘어나있었다. 이번 비행은 무려 도합 14시간이다. 8시에 비행기를 탔으니 그 다음날 도착해야하는데, 시차 덕분에 저녁에 도착한다.
이 곳은 아마도 사이베리아, 시베리아인듯하다. 아마도 비행 5~6시간이 지날 때쯤이겠지. 창가 자리에 앉아서 하염없이 지도와 바닥을 비교하던 범인이가 찍어놓았다. 눈 덮인 골짜기가 끝이 없다. 이런 사진을 찍는게 쉬운건 아니지 싶다. 중국쯤을 지나지 않을까 했던 내 생각과는 달리 JAL은 러시아 위쪽으로 올라가서 스칸디나비아반도쪽에서 남부로 방향을 트는 노선을 갖고 있었다. 이때쯤엔 새벽이었는데, 다시 날이 밝아져서 가도가도 해가지지 않았다.
두번의 기내식과 한번의 간식을 먹고 겨우 비행기에서 내렸다. 추리닝 차림이 부끄러워 사진이 없다. 로마가 춥다더니, 정말 말도 안되게 추웠다. 유럽의 스며드는 추위가 스멀스멀 들어온다. 그래도 시간이 아까웠다. 내일은 크루즈를 타러 치비타바키아라는 외곽으로 이동해야한다. 민박집 프리하우스에 가방을 던져놓고 바지만 갈아입고 시내로 나왔다.
민박집 아저씨가 알려준대로 떼르미니 역에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떼르미니 역은 로마에서 가장 큰 기차역인데, 고대 로마어로 '목욕탕'이라는 뜻이란다. 지하철 노선 2개도 지나고, 기차도 수십대가 지나서 터미널만 30개정도 되고 엄청 크다. 공항가는 기차도 여기서 탄다. 잘은 모르지만, 버스도 여러대 지나가는 것 같았다. 1유로에 90분 이용이 가능한 로마의 버스 겸 지하철 표를 사야하는데, 한참을 헤매고 보니 신문 가판대에서 사는거란다. 다들 문을 닫는 참이라 서둘러야했다.
1. 이 곳은 '산탄젤로 Sant'Angelo' 성이라는 곳이다.
이 안에 들어가면 박물관이 있다는데, 밤이라 역시 들어갈 수 없었다. 바로 앞으로 로마시내를 지나는 피우메Fiume라는 강이 흐르고 있어서 야경이 무척 유명하다. 정말 큰 성인데 사진으로는 스케일을 느낄 수 없어 안타깝다. 성 입구를 시작으로 산탄젤로 다리가 이어지는데, 주변에 늘어선 천사 조각상들이 화려하기 그지없다.
가까이서 보면 대충 이런 조각상들이다. 밤이라 사진이 명쾌하게 나오진 않았다. 사이즈가 어느정도인지 사진으로는 안느껴지지만, 대충 사람의 두배정도 크기다. 나는 사실 엄청 무서웠다. 밤이라 조명을 비춰보니 으시시한 것이 만화를 너무 많이 봤나, 살아서 저 십자가를 던지면 어쩌나 싶더라.
2. 이곳은 '나보나Navona 광장'이다. 산탄젤로 성에서 판테온 가는 길 중간쯤 위치하고 있다. 오늘의 코스는 사실 지하철역 두 정거장 정도의 짧은 거리였지만, 추워서 정신이 없고 코끝이 빨갛다. 이탈리아어로 Piazza가 광장이란 뜻인데, 로마시내에는 이런 광장이 무척 많은 듯했다. 50m마다 지도상에 그 글자가 보였다. 저 뒤에는 고대 조각상을 본뜬 것이라고 생각된다. 원본이 뭔지는 잘... 저 시간대가 겨우 밤 9시정도 였는데 관광지가 아닌 곳에는 사람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관광지 근처에는 어김없이 노천 카페가 곳곳에 있고 겨울처럼 불을 피워놓은 곳도 있었다. 로마사람들은 털코트입고 부츠신고 다니더라. 결국 노천 카페에 달려들어가 뜨거운 차를 마시기로 했다.
저 성급한 손길을 보라. 온 몸이 절절 녹았다. 사실 유럽에가서 에스프레소를 마셔보리라 했는데, 결국 못 마셔보았다. 살짝 못 먹으면 어쩌나 겁도 났고, 속 쓰리다 여행이 힘들어질까 싶기도 했고. 사실 이탈리아에서 스파게티도 먹을 수 없었다. 사정이 길어 그 것은 마지막날에 들어야할 듯 싶다.
3. 판테온 Pantheon 이다. 2세기 경 자신들이 믿는 모든 신을 위해 지은 신전인데, 이후 가톨릭 성당으로 이용되고 있단다. 가톨릭 측에서 보면 우상을 위한 신전이었는데 그대로 남겨서 자기들이 믿는 하느님과 성모마리아를 위한 집으로 바꿨다는게 잘 이해되지는 않지만, 부수기 아까울만큼 세계적인 건축물이긴 하다. 저 밑에 있는 범인이를 보면 기둥하나에 12.5m라는 판테온의 놀라운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처음 판테온을 봤을 때는 대단하다, 웅장하다 느꼈는데 그리스와 터키를 돌면서 조금은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되었다. 로마는 그리스식 건물에서 자신들이 취하고 싶은 부분만 취해서 건축물을 많이 세웠다고 한다. 그래서 판테온도 앞부분은 그리스 신전들, 특히 아크로폴리스 신전을 본딴 모양이고, 내부는 돔모양 지붕을 유지했다. 지름 9m터라는 돔 천장의 창문도 아깝게 볼 수 없었다.
여기서 잠깐. 로마는 참으로 불친절한 도시다. 이런 대단한 유적앞에 설명하나 써놓지 않는다. 도시 곳곳에 기념비도 많고, 천년을 넘은 건물도 여럿 있는데, 설명이 없어 놓치기 일쑤다. '알고 싶으면 너희들이 공부해와, 그 정도는 해야하지 않겠어?'하는 거 같아 유적으로 벌어먹고 사는 나라의 뻔뻔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한마디로 쏘쿨! 아무리 무단횡단해도 다 세워주는 언제나 사람이 먼저인 인본주의의 끝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내가 쿨하지 않다보니 이런 면이 좋지만은 않았다.
4. 기념비들. 이런 기념비가 시내 곳곳에 있다. 얼핏 20m는 되어 보이는 이 기둥들이 내 눈엔 굉장했는데 로마인들은 심드렁 했다. 그래서 역시 이름을 알 수 가 없다!!! (찾아보니 기원전 2세기에 명상록의 저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독일원정을 기념하여 세운 원기둥이라고 한다.) 자세히 보면 전쟁의 공적이 그림으로 촘촘히 새겨져있다. 로마라는 도시가 얼마나 많은 전쟁과 정복자들의 손을 거쳤는데 느껴지는 부분이다. 신기했던것은 그런 전쟁을 겪으며 우리나라 문화는 모두 없어졌는데 유럽사람들은 어느 시기 이후 보존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이런 것을 모두 남겨두었다. 위의 판테온도 그러한 것 중 하나이다.
5. 그 이름도 유명한 '트레비 Trevi 분수'.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헵번이 요기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단다. 지금도 근처에 맛있는 아이스크림 집이 많다는데, 밤이라 아이스크림 집들은 문을 닫은 듯하다. 저 조각상들은 시내 다른 곳에 있는 개선문에 있는 조각을 본 뜻 것이란다. 이 분수에 동전을 던져넣고 가면 다시 로마에 올 수 있다는 전설(???)이 남아있어 아직도 분수 바닥에 동전이 꽤 있었다. 물론 나는 1유로가 아까워 던지지 않았다. 하하. 밤에도 사람이 많이 찾는 곳인지 조명이 훤해서, 야간 사진도 아주 잘 나왔다.
로마는 아쉽게도 좀도둑, 소매치기들이 많기로 유명하다. 곳곳에 집시들도 있어 돈달라며 위협을 하기도 하고 위험하기 짝이없다. 우리도 집시가 한명 쫓아왔었다. 사실 로마가 아닌 다른 도시에서 우리는 실제 소매치기를 당했고 말도 안되는 유럽식 소매치기에 어딜가나 가방을 꼭 안고 주변을 살피며 다녀야했다. 그래서 로마의 야간 관광을 살짝 걱정했는데 관광지 주변에는 밤에 경찰이 계속 감시를 하고 있어 꽤나 안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또한 중요한 유적지 근처를 지하철들이 지나고 있어 지하철 역만 잘 찾는다면 광관이 그리 어렵지 않다. 물론 지도를 잘 읽는 기본소양을 갖추길 바란다.
관광의 시작과 끝이었던 로마는 사실 다른 곳의 3,4배 정도의 유적을 갖고 있었지만, 충분한 시간을 갖고 그것들을 감상해볼 수 없었던 것은 아쉽다. 하지만, 누가 유럽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갈 수 있으랴. 갔다와서 느낀 것은 스스로 사전에 충분한 정보와 지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교통편에 대해서, 지리적 위치와 유적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갖는다면 시간적 불리함을 만회할 수 있다.
실제 이 여행을 계획한 범인이는 google map으로 실제 로마시내를 샅샅히 훓었다. 구글맵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세계적인 관광지의 놀라운 실제 3D입체영상 지도를 제공한다. 또한 유럽을 갔다온 사람들의 실제적인 정보로 가득한 URANG이란 네이버까페는 조금씩 달라지는 관광지 사정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해주니 유럽여행시 참고하면 정말 좋다.
이 날 범인이는 프리하우스의 민박집 주인님과 포도를 앞에둔 채, 주식 이야기를 했고, 추위에 지치고 비행시간에 지친 나는 죄송하지만 인간적인 부분보다 동물적인 필요에 의해 먼저 잠이 들었다.
아저씨 미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