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교회는 ‘연합’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해 왔다. |
노곤채 목사(풀가스펠뉴스 대표)
연합집회, 연합성명, 연합기구, 연합선언.
한국교회는 '연합'이라는 언어를 반복해 사용해 왔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은 늘 뒤로 밀렸다. 어디까지가 연합인가. 무엇까지 함께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이 생략된 연합은 종종 미덕이 아니라 혼란의 다른 이름이 된다. 연합은 선한 언어이지만, 성경과 교회사 어디에도 무조건적 연합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연합에는 기준이 있고, 그 기준을 상실한 연합은 오히려 교회의 경계를 흐리게 한다.
지금 한국교회가 다시 물어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이 연합은 복음을 선명하게 하는가, 아니면 경계를 허무는가.
가톨릭과 개신교
협력은 가능하나, 교회적 일치는 다른 문제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연합 논의는 늘 ‘에큐메니즘’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해 왔다. 사회 정의, 평화, 인권, 구제와 같은 공적 영역에서의 협력은 이미 현실이 되었고, 이는 일정 부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지점은 협력과 일치의 경계가 흐려질 때다. 가톨릭과 개신교는 교황권, 성례 이해, 교도권 구조 등 교회 이해의 핵심에서 본질적인 차이를 지닌다. 이는 전통의 차이라기보다 교회론 자체의 차이다.
이 간극은 선언이나 합의문으로 봉합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특히 협력을 마치 ‘이미 하나가 된 것처럼’ 표현하거나, 교회적 일치를 암시하는 순간 신학적 혼란은 피할 수 없다.
보수 교회의 관점에서 볼 때, 공적 영역에서의 협력은 가능하다. 그러나 신앙과 교회 구조의 통합을 암시하는 연합은 신중해야 한다. 연합이 협력을 넘어 교회 정체성의 혼합으로 나아갈 때, 그 연합은 경계를 넘어선다.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통합은 갈등을 낳고, 연대는 가능하다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의 차이는 단순한 신학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구원론, 은혜 이해, 인간 의지에 대한 전제가 다르며, 이 차이는 역사적으로 교단 분리로 이어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 현장에서는 두 전통이 공존해 왔다. 이유는 분명하다. 복음의 중심을 공유하되, 체계의 차이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차이를 지우려 할 때 발생한다.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의 ‘통합 교단’은 현실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 설교, 교리 교육, 목회 철학에서 충돌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선교와 사회적 책임의 영역에서의 연대는 충분히 가능하다. 통합을 목표로 할수록 갈등은 커지고, 연대를 목표로 할수록 공통분모는 선명해진다. 보수 신학의 관점에서 중요한 원칙은 분명하다. 차이를 인정한 연대는 가능하지만, 차이를 부정한 통합은 오래가지 않는다.
NCCK와 한교총
연합 구조가 만들어내는 긴장과 한계
NCCK와 한교총의 관계는 한국교회 연합 논의에서 가장 복합적인 지점 중 하나다. 두 기관은 단순히 성향이 다른 조직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제의식과 역사적 배경 위에 형성된 연합체다.
NCCK는 에큐메니컬 전통을, 한교총은 복음주의·보수 교단 중심의 연합 플랫폼을 표방해 왔다. 이 차이는 선언이나 조직 개편만으로 해소될 성격이 아니다.
그래서 이 질문은 정직해야 한다. 두 기관의 통합 혹은 전면적 연대는 어떤 결과를 낳는가. 한교총 내부와 보수 교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연합 논의가 한교총이 지닌 대표성과 정체성을 흐릴 수 있다는 우려가 반복적으로 제기돼 왔다. 통합 자체가 곧 문제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신학적·노선적 차이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채 덮어둘 경우, 그 부담은 결국 내부 갈등으로 되돌아온다.
재난 구호, 종교 자유 수호, 사회적 위기 대응과 같은 제한적 영역에서의 협력은 가능하다. 그러나 신학적 프레임과 공적 발언 구조가 충돌하는 지점까지 통합을 시도할 경우, 연합은 곧 분열의 다른 이름이 될 수 있다.
연합의 기준을 잃을 때
연합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성경은 연합을 말하지만, 동시에 경계를 말한다.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는 말씀은 세상과 단절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경계를 잃은 결합을 경계하라는 요청으로 이해돼 왔다.
연합은 목적이 아니다. 복음이 목적이다. 연합이 복음을 선명하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흐리게 한다면, 그 연합은 재검토돼야 한다. 한국교회가 반복해서 연합 논란으로 상처를 입는 이유는 분명하다. 연합의 범위와 기준을 먼저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합을 말하기 전에, 경계를 먼저 세워라
연합은 말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분위기로 만드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연합은 진리를 지킬 용기를 전제로 할 때만 가능하다. 지금 한국교회가 다시 붙잡아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이 연합은 복음을 선명하게 하는가. 이 연합은 진리를 세우는가, 아니면 갈등을 미루는가. 기준 없는 연합은 화해가 아니라 후퇴다.
보수 교회는 연합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경계 없는 연합은 분별해야 한다. 연합은 미덕이 아니다. 진리 위에 설 때만, 연합은 은혜가 된다.
노곤채 목사 / 풀가스펠뉴스 대표, 한국기독언론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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