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최근 AI 시대를 이끄는 젠슨 황은 "성공을 위해서는 많은 고난과 실패를 경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실패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성장하게 하는 영양분이며, 어려움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길러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말은 이미 2500년 전, 하나님께서 다윗의 삶을 통해 보여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과거나 현재나 여전히 사람을 살리는 생명력과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고난이 없는 인생을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낙망의 고난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르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난과 어려움을 경험합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 관계의 아픔, 경제적인 어려움, 자신의 한계로 마음이 무너지므로 낙망합니다. 낙망은 희망 없는 삶을 의미합니다. 때로 우리는 희망 없는 낙망의 삶을 살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고난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가 아니기에,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하나님께서는 낙망으로 불안해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윗 역시 낙망으로 불안함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앞에서 주저앉지 않고, 자신을 향해 "하나님을 바라라"고 선포합니다. ‘낙망’은 단순히 기분이 우울한 상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무거운 짐에 눌려 스스로 일어설 힘을 잃어버린 상태를 뜻합니다.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이 허리를 굽힌 것처럼, 미래를 바라볼 힘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불안’은 마음이 요동치고 흔들리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거센 파도에 배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처럼, 그 심령이 걱정과 두려움으로 삶의 방향을 잃은 것입니다.
시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바라라’ lj'y: (3176 야할 VHMFYSy liyji/h) 기대하다,기다리다,인내하다.
사람이 심한 낙망으로 무기력해지면 깊은 절망의 수렁에 빠지게 됩니다. 사방이 꽉 막힌 상태로 어둠의 노예가 되어, 어떤 소망도 품을 수 없고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답답한 인생이 됩니다. 하지만 이때가 하나님만을 바라볼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절망의 생각에 빠져 허덕이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 수 있는 믿음의 능력을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향한 도움을 요청하기보다 의지적으로(어떤 일을 이루고자 하는 적극적이고 강한 마음)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올바른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며 억지로라도 일어설 때, 그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붙드시고 일으켜 세워 소망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사람은 어려움을 만나면 본능적으로 누군가의 도움을 찾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사람을 통해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은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하지 않으면 주위에 돕는 사람이 없으면, 자신의 상황과 처지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외톨이 의식’과 부정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우리는 사람을 의지하려는 심리적 불안에서 반드시 벗어나야 합니다. 삶의 통제권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어 하나님의 참된 평안과 기쁨을 회복하여야 합니다.
시 42:5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도우심’ h[;Wvy] (3444 예슈아 NFP t/[Wvy]) 구원. 승리. 해방.
‘도우심’의 ‘예슈아(יְשׁוּעָה)’는 구원, 승리를 뜻합니다.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예수’와 같은 어원입니다. 사람은 힘들고 어려우면 자기의 힘과 인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문제 해결보다 성령 충만하기를 먼저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시선을 하나님께 돌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 죄의 문제를 십자가에서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의 풍파 속에서도 우리를 붙잡고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은 단순히 우리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정도로 그치지 않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승리의 평안과 기쁨이 동반합니다. 그러므로 힘들고 어려울수록 인간의 방법보다 먼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향해 얼굴을 돌려야 합니다. 그 삶에 하나님의 구원과 승리, 그리고 행방이 있습니다.
민 6: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과거에는 삶의 필수품이 부족한 '절대적 궁핍'의 고난이 많았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는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일상의 평안함을 빼앗기곤 합니다. 대중매체나 SNS를 통해 타인의 삶과 자신을 비교하며,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인생’, ‘나도 저것을 갖고 싶은데…’라는 소유욕에 사로잡혀 삶을 어둡게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영원히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한 평강을 얻은 승리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에 초점을 맞추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로켓 배송’이라는 단어가 대변하듯, 우리는 무엇이든 즉각적인 보상이 이루어지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전화를 걸려면 일일이 다이얼을 돌리거나 버튼을 눌러야 했지만, 이제는 말 한마디로 세상의 모든 정보를 알고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삶에 조급함이 고질병처럼 자리 잡았고, 기다림의 미덕은 사라졌습니다. ‘기다림의 시간’을 '무능함'으로 취급하여 이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하나님은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확고한 목적과 방향이 올바로 되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낙망과 불안으로 거세게 요동할지라도, 하나님의 응답이 조금 더디게 느껴질지라도, 오히려 하나님을 바라보며 찬송할 수 있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시 42:5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찬송하리라’ hd:y: (3034 야다 VHICXS WNd<%/a) 고백하다. 감사하다. 경배하다.
사람이 살면서 정말 깊은 절망과 좌절에 빠지면 그저 한숨만 나옵니다. 찬양하며 기도해야 함을 머리로는 알지만, 주체할 수 없는 낙망의 눈물로 ‘멍하니’ 있게 됩니다. 그럼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머물러 성령님을 의지하며 찬양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에 성령께서 그 삶을 이끌어 주십니다. 세상의 대적들이 자신을 조롱할지라도, 한숨 섞인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기를 멈추지 않으면, 심령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감사가 그 삶을 이끌어 가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부터 고난의 아픔은 완전히 가라앉고, 감사로 하나님만을 찬양하게 됩니다. 찬양은 우리의 기분과 형편이 좋아질 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의 한가운데 서 있을지라도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찬양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여 우리를 '감사의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우리의 삶은 원망과 불평에 익숙해졌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고난 속에서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오히려’의 뜻은 ‘계속해서’, ‘여전히’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낙망이라는 절망의 자리에서도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계속해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신뢰하며, 변함없는 여전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찬양으로,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믿음의 삶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