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24:67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모친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모친 상사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위로를’ !j'n: (5162 나함 CW.VNIMZS !jeN:YIw") 위로하다. 안위하다. 후회하다.
사람은 깊은 상실을 경험할 때 진정한 위로를 갈망하며, 영혼과 생각이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맥없이 힘을 잃고, 삶의 생기를 잃어버린다. 그러나 이삭은 달랐다. 3년 전 어머니 사라를 여읜 후 깊은 상실감 속에 있었지만, 해 질 무렵 들판에 나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기도하였다. 이러한 이삭에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을 통해 리브가를 ‘위로자’로 보내주셨다. 리브가가 장막에 들어감은 그동안 비어 있는, 사라의 자리를 채웠음을 의미한다. 장막은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처소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날 우리의 교회와 가정 역시,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영적 장막’이어야 한다.
이삭은 리브가를 장막으로 들여 아브라함 가문을 이어가게 하므로 슬픔과 상실의 공간을, 위로와 소망의 공간이 되게 한다. 우리도 슬픔과 상실의 자리가, 나 한 사람으로 위로의 공간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복음의 사명을 이어가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삭은 리브가를 아내로 맞이한 후 위로를 얻었다. ‘위로하다’의 뜻은 ‘후회하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삭은 리브가를 아내로 맞이한 것을 후회하지 않고 사랑하였음을 보여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심을 후회하지 않고 사랑으로 언제나 함께하신다. 이 사랑은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확고한 의지이며 헌신적인 순종이다.
구원받은 우리의 삶은 결코 영원한 절망이나 상실로 끝나지 않아야 한다. 우리의 영원한 위로자이신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받는 신부로서, 장막에 들어가 새로운 안위(몸을 편하게 하고 마음을 위로 함)와 즐거움을 채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복음 계승자의 직분과 사명을 온전히 이루어 후회 없는 삶을 이루어야 하겠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