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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2026.06.07.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 고린도전서 10 : 1 ~ 13

작성자이성원|작성시간26.06.08|조회수23 목록 댓글 0

지난주간에 선거가 있었는데 역시 대단합니다. 나라를 파랑과 빨강으로 갈라놓고 니편 내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정치는 금방 지나갑니다. 그 일로 우리까지 편을 나누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1:24-25) 모두가 다 지나가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복음은 영원히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선교훈련도 계속되었습니다. 기독교와 이슬람에 대치 상황과 어떻게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해야 하는 것을 보았고 이것은 우리의 막연한 상황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팽팽한 전쟁이고 우리의 선교가 얼마나 위대하고 하나님께서 기대하시고 기뻐하시는지 분명히 알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상황에서 출애굽 사건을 말씀하시며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11) 성경에 기록한 목적을 말씀하시며 지나간 말씀이 아닌 지금 이곳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처럼 민족을 만들기 위해서 애굽으로 보내서 430년간 200만명이 넘는 민족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지도자로 삼아서 애굽을 탈출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노예생활하면서 습성이 된 노예근성을 빼내기 위해서 광야에서 40년간 유혹과 시련의 시험을 합니다. 그렇게 하신 것은 징계를 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복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이 경험한 하나님은 막연하신 분이 아니라 반드시 살아계시고 약속하신 것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에 기록하신 것은 그들의 일들이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깨우치기 위함이라고 하십니다. 마치 형이 잘못해서 아빠한테 야단맞는 것을 보고 동생이 지혜롭다면 그런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동생은 형이 하는 짓을 다시 하다가 아빠에게 얻어맞습니다. 그럼 정말 어리석은 짓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변명에 대해서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받았느니라”(5)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요 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 시험이 무엇입니까?

 

우상숭배하지 말라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7)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 십계명을 받게 하십니다. 40주야를 먹지도 않고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는데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다음 연락이 없자 죽은 줄 알고 그들은 금을 녹여서 금송아지를 만듭니다. 그리고 ‘이것이 너희를 인도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며 그 앞에서 먹고 뛰놀며 제사를 드립니다. 그러다가 삼천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우상숭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이 주인 된 것입니다. 이들은 애굽에서 노예로 살면서 그 근성이 매일 자기 것만 챙기고 이웃을 돌볼 줄 모르고 오직 물질, 자식, 건강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공급하고 지켜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내 것이 아닌데 자기 것인 줄 알고 움켜쥐고 그것을 주인으로 섬기고 살아갑니다.

이들에게 광야에서 만나를 주시며 하루 먹을 것만큼만 거두고 안식일에는 주지 않고 그 전날에는 이틀 것을 거두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꼭 매일 나와서 몇일 것을 거두는자가 있고 또 안식일에 거두러 나오는 자도 있습니다. 그 단순한 것도 지키지 않습니다.

왜 이들이 이렇게 합니까? 지금까지는 먹이시고 입히시고 주셨지만 내일 안 주시면 어떻게 하냐? 미래가 의심되는 것이 불신앙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은 너무 야박한 것 같고 말씀대로 하시는 빡빡한 것 같다고, 애굽에서 하던 우상숭배를 합니다. 말씀이고 뭐고 필요없고 빌면 주는 그런 신, 그래서 우상숭배의 핵심은 ‘지성이면 감천’입니다. 빌고 빌면 하늘도 감동해서 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을 조롱하는 것입니다. 다 필요없고 잔소리하지 말고 달라면 주는 신을 원합니다.

지금 이것이 교회안에도 가득해서 하나님을 알기 원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기도하고 달라고 졸라대면 좀 빡빡하고 잔소리도 말고 그냥 주는 신을 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격적이십니다. 그분을 알고 그분과 누리며 자녀다운 삶을 원하십니다.

교회안에서 우상숭배 금지입니다.

 

음행하지 말라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는 자가 되지 말자”(8)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나왔을 때 미디안 사람들이 미인계를 써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간음을 하게 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그들을 쳐서 이만사천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고린도 지역에는 아프로디테여신 신전이 있고 여 사제가 천명이나 있었습니다. 거룩한 창녀들입니다. 신전에 제사하러 온 남자들과 음행하는 것이 그들의 제사입니다.

그것이 고린도에 만연한 문화입니다.

그런 문화가 자연스럽게 교회안에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셨는지 보라 이만 사천명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망한다는 것입니다.

로마가 기독교를 그렇게 없애려고 했는데 어떻게 로마의 국교가 될 수 있었습니까?

황제부터 고위관직들이 자기들은 그렇게 음행하면서 자기 며느리는 누구를 얻을 것인가 걱정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 처녀들은 정결하고 말씀대로 삽니다. 돈이나 관직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을 보쌈해서 며느리로 삼는 것이 유행을 합니다. 그렇게 며느리로 삼았더니 아이를 낳으면 모두 말씀으로 양육하고 그리스도인이 되게 만들고 얼마 있으면 아들도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황제부터 고위관직까지 그렇습니다.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하고 모든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게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할 때는 로마의 기독교 인구가 상위에서 58%였다고 합니다. 황제의 어머니도 아내와 자녀들도 다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음행하는 자는 망합니다. 다른 죄는 몸 밖에서 짓는 것이지만 음행은 몸 안에서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거룩한 성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시험하지 말라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9)

그들은 수없이 하나님을 경험했으면서도 조금 힘들고 어려우면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고 시험합니다. 그로 인해서 불 뱀을 보냈고 수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사탄은 내게 이런 말로 시험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4:3)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네가 하나님을 믿는데,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왜 이렇게 가난하냐? 몸은 왜 아프냐? 네 아들은 왜 그렇게밖에 못되냐? 기도했는데 왜 응답하지 않냐?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우리의 상황에 꼭 맞는 말로 말을 합니다. 반박하지도 못하게 그렇구나 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속는 것입니다. 사기꾼이 속일 때 상황이 딱 맞지 않습니까? 사탄은 최고의 사기꾼입니다.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마4:7) 말씀하셨고 마귀를 물러갔습니다.

왜 물러갔습니까? 그 놈이 물러 갈놈입니까? 속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이 들고 누가 내게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외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원망하지 말라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10)

시험하다가 자기 뜻대로 안되면 바로 뛰어나오는 것이 원망입니다.

반드시 생각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내게 해 주신 것이 뭐가 있나’입니다. 사실은 다 해줘서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누군가 사람들은 ‘네 잎 크로바를 찾으려고 세 잎 크로바를 짓밟는다’라고 합니다. 세 잎 크로바의 뜻은 행복이고 네 잎은 행운입니다. 매일 행복을 원하십니까? 한번의 기적을 원하십니까? 기적이 없으면 불행한자인 줄 아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만약에 내 아들이 엄마에게 해 준게 뭐있는데 그런말을 했다면 무슨 마음이 듭니까? 하나님은 전능자이신데 항상 그런말을 듣고 산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조금 잘되면 금방 교만해지고 조금 힘들면 금방 원망을 합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13)

신앙은 성장해야 하는데 성장은 기다림입니다. 그것이 신뢰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내가 성장하기를 원하셔서 지금도 기다립니다. 더딘 것이 아니라 기다림입니다. 성경이 이렇게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기 위해서 기록하셨다고 하시면서 기다립니다. 그냥 기다리고만 계신 것이 아니라 성장하다가 넘어질수 있는데 넘어질 때 쯤 되면 말씀이 들리게 하시든지, 누군가를 통해서 깨닫게 하시든지, 다른 길을 열어주시든지 피할 길을 주셔서 지금까지도 오게 하셨습니다.

그럼 나의 장래도 믿으십시오.

오늘도 그분을 알고 그분과 함께 누리고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드립니다.

 

1. 지금 선교훈련을 잘 받고 있습니까? 이슬람에 복음을 전해야 하는 상황을 이해하십니까?

 

2. 광야에서 말씀을 성경에 기록한 것은 우리의 본이라고 하십니다. 그럼 그들의 우상숭배, 음란, 시험, 원망으로 당한 고통을 보며 지금 나에게 무엇을 경고한다고 느껴지십니까?

 

3. 하나님은 지금도 참고 계십니다. 성장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시험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피해서 승리해 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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