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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2026.06.21. 모든 것을 견디느리나 - 고린도전서 13 : 1 ~ 13

작성자이성원|작성시간26.06.22|조회수22 목록 댓글 0

지난주에 교회에서 공동식사는 성찬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정말 행복한 교회였습니다. 부자는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며 섬기려고 잘 준비해서 식사를 나누고 그들이 주님께 예배를 드리고 구원의 감격에 눈물 흘리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세상에서는 무시를 당해도 교회에 오면 모두 형제와 자매라고 불러주고 함께 좋은식사를 하면서 예배가 너무 행복하고 좋았습니다. 그렇게 식사를 준비하면서 이미 은혜이고 식사를 나누며 주님을 기념하고 그런 식사는 성찬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교회에 파당이 생기면서 제일 먼저 깨진 것이 성찬인 식사입니다. 식사준비를 안해 온 것이 아닙니다. 끼리끼리 먹고 가난한 성도가 밤늦게 예배를 드리러 와서 피곤하고 배가 고픈데 나누어 주지를 않고 부자들은 일찍와서 잔뜩먹고 포도주에 취해서 주절거립니다.

예배가 시험거리입니다. 바울은 그런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그럴려면 식사하지 말라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구원하신 형제와 자매를 밥 한그릇으로 실족하게 하면 네 죄를 먹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오늘 본문 13장 사랑장을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바울은 부드러운 목소리를 읊조리듯이 말씀했겠습니까?

사랑은 이렇게 하는 거야, 구체적으로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달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4-7) 모든 것을 참고 견뎌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복음으로 산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전능자이신 주님이 이 땅에 찾아오신 것도, 매를 맞고 벌거벗겨진 채 끝까지 참고 견디신 사랑 때문에 내가 사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나는 어떻게 사랑해야 하나요?

 

의지로 사랑을

“사랑은 오래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4) 사랑의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정이 따라가서 사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자식을 사랑한다든지, 연인을 사랑한다든지 하는 감정이 따라가서 하는 사랑은 얼마든지 참고 온유하고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안에서 그것이 가능하냐는 것입니다.

오래참고, 온유하고, 감정으로 됩니까? 안됩니다. 감정이 아닌 의지로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내 속마음은 안 그런데 내가 겉으로 오래참고 온유하고 있다면 이것은 가식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울면서라도 하다보면 가능하도록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11) 사랑에 대해서 대하는 태도를 보면 믿음의 어린아이인지 장성한자인지 보입니다.

 

이럴 때 참고 견뎌내야 성숙한 자입니다.

잘못 평가받았을 때, 자신이 형편없는 사람, 거짓말쟁이, 신앙이 없는 사람으로 평가받았을 때 참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참아야 합니다.

불공평할 때, 차별대우 받았을 때입니다.

부정직할 때,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두고 거짓말을 할 때 참아야 합니다.

속이고 기만하고 손해를 끼칠 때 참아야 합니다.

약속을 어길 때도 참아야 합니다.

악평하고 욕할 때도 참아야 합니다. 악담, 거짓정보, 습관적으로 다른 사람을 멸시할 때 참아야 합니다. 참는다는 것은 너무 어렵습니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하는 마음으로 나를 조급하게 할 때 참아야 합니다.

내 한마디로 성도가 넘어지고 시험 들 것이라면 참아야 합니다.

바울은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딤전1:16)

예수님은 이런 상황을 주십니다.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마5:39)

우리가 예수님처럼 이런 욕을 들어 보았습니까? 이때 우리 예수님은 어떤 행동을 취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잠잠하시고 오래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죄가 있어서 잠잠하셨습니까? 예수님이 힘이 없어서 오래 참으셨습니까? 아닙니다.

우리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신데 그분은 오래 참고 견디셨습니다. 나를 구원하시고 내게 이렇게 하면 구원이라는 본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성격이 급하고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변화가 되었습니까?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어떻게 참으셨는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욕하고 비방할 때도,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러 갈 때도 참고 기다려 주셔서 지금 내가 사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은사보다도 사랑을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13:1) 예언하는 능력과 산을 옮길 능력이 있어도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고린도교회에는 방언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들이 갈라져 있었는데 방언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바울파들입니다. 바울은 말씀을 잘 가르쳤지만 바울에게는 많은 은사도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또 다른 곳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떠났고 아볼로가 말씀을 가르칩니다.

바울파인 방언의 은사를 받은 성도들이 아볼로가 설교를 할 때 앞에 나와서 방언을 하면서 떠들어댑니다. 교회에서 예배가 엉망이 됩니다. 방언의 은사가 있던 바울파 사람들이 아볼로의 설교를 들으면서 성령이 없다면서 무시를 합니다.

이 소문을 들은 바울은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1-3) 여기서 예언하는 자라고 하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들의 신령한 기준은 방언이었습니다.

방언을 하는 자는 성령이 그 안에 있고 방언을 못하면 성령이 없다는 것입니다.

방언을 하는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영적인 사람이고 하나님께서 나만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이고 자기를 자랑합니다. 자기가 주인 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방언보다 예언이 중요하다고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에는 지금 그런 상황입니다.

방언이 무엇입니까?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14:2) 방언은 기도할 때 하나님과 신령한 비밀을 나누는 하나님과 관계를 말하는 것이지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기도하는 능력이 있고 병고치고 귀신을 쫒아낸다고 해도 사랑이 없이 내가 주인되어 신령한 사람처럼 자랑하고 교만하게 행하면 주께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7:23) 사랑이 없는 은사는 주님께 버림당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은사가 있다고 기도해주고 돈을 받고 하던 모든 사람들이 그 마지막이 비참해집니다. 왜입니까? 자기가 주인되어 영광을 다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는 은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를 위해 사랑을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라”(14:22)

바울의 관심은 오직 교회입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어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행20:28)

교회는 하나님의 피값으로 세운 곳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피값으로 사신 성도들이 모인 모임이 교회입니다.

이제 교회에서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4:5)

예수가 나의 주인되신 것과 이를 전파해서 성도들을 세우기 위해서 종된 자처럼 헌신하고 섬기는 것이 성도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방언을 할때는 통역을 하고 예언을 할때는 두세 사람이 말씀을 듣고 분별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33)

성숙한자가 되라는 것은 교회를 세우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이나 신령한 것이라고 할찌라도 교회를 무너지게 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피값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곳입니다.

행복해야 합니다. 교회는 성장할수록 더욱 더 배려해야 하고 사랑하는 것이 성도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사랑장은 이렇게 교회를 위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대상이 교회입니다. 교회안에서 꼭 이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방언도 예언도 하나님이 주신 은사인데 그 은사가 교회를 어렵게 만들어서는 안되고 오늘도 믿음으로 모든 것을 견뎌주십시오, 그렇게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1. 감정이 아닌 의지로 사랑해야 합니다. 어느 하나 내 마음에는 쉬운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의지하고 내 의지로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2. 은사보다도 사랑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교회입니다. 교회를 교회되게 성숙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헌신하고 계십니까?

 

3. 모든 것을 견뎌내는 것이 사랑입니다. 나에게 사랑이 없습니다. 내 안에 계신 그분이 나를 어떻게 사랑하였는지 아는 사람만 사랑합니다. 지금 그 사랑을 알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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