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쓰는 날
살포시 입술담은 꽃에게서
깊은 향기를 맡듯
일상을 회상하며 노트를 펼친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사선으로 난 상처들을 기억하면서
육신이 아닌 영혼의 몰매라서 이유가 없다
답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들이다 숲이다 심해 산호초 우거진 풍광이다
갈바를 알지 못하는 이들의 작은 알갱이들이
그들의 챗기가 되는 일이지
이정표를 건네받은 이에게는 즐거운 소풍이다
하루의 성적표를 받아든 목록을 천천히 받아 적는다
스스로의 존재감은
타인이 불어주는 입김의 무게로만 가늠하는 일
한 사람의 기억도
한송이의 꽃잎과 들풀의 가냘픈 진통도
모두가 순수 저울의 추로 가치를 부여받는다는
복종의 개념이 사람을 사람되게 한다
한 낮의 바람을
낱장의 가벼운 이불을 꺼내 덮고 맞이하는
별빛 빛나는 이밤
목례하듯 가볍게 고개숙여 드리는 숙명의 기도
깊은 숲 붓꽃 순정으로 맞이해야 비로소
우리는 진짜 태초의 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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