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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 은혜의글

예수는 역사다」를 읽고

작성자좋은열매|작성시간26.06.06|조회수0 목록 댓글 0

역사 속의 예수, 내 삶 속의 예수

- Lee Strobel의 「예수는 역사다」를 읽고 -

블레싱데이를 보내며, 「예수는 역사다」를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복음은 단지 교회 안에 머무는 지식이나 신념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살아 있는 진리라는 사실이었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남편의 권유 때문이었다.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약간 낯설게 느껴졌다. 보통 내가 읽던 기독교 신앙 서적들은 믿음을 전제로 시작하는데, 이 책의 시작은 오히려 의심을 전제로 이야기가 시작되었기에 긴장되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이 이야기의 시작이 아내의 신앙 생활의 즐거움이었다는 점이다. 저자는 아내가 예수를 믿은 이후 누리게 되는 즐거운 비명을 들으며 오히려 혼란과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 의문이 결국 예수를 탐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반성이 되었다. 나의 신앙 여정 속에서 과연 누군가가 나의 삶을 통해 예수에 대해 궁금함을 품었던 적이 었었는가 하는 질문이 마음 깊이 다가왔다. 신앙은 단지 교회 안에서의 열심이나 익숙한 종교 생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드러나는 기쁨과 변화로 증명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의 처음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나 자신의 신앙생활의 방향을 다시 돌아보게 되고,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깊이 묵상하게 되었다.

 

특히 저자가 무신론자 기자였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더 흥미롭게 했다. “믿기 위해 쓴 책”이 아니라 “반박하기 위해 조사한 책”이라는 점이 나에게는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동력이 되었다. 평소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예수님의 탄생과 십자가, 그리고 부활의 사건을 저자는 “과연 사실인가?”라는 질문으로 나에게 다가오니 당황스럽기도 했다. 나는 왜 이 모든 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 들였을까? 왜 아무런 의심을 품지 못했을까? 나는 예수님을 아니 성경을 아무 생각 없이 믿어 왔는가? 나는 정말 예수님을 알고 믿고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익숙함 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믿고 있었던 것인가?하는 자책도 들었다. 그러면서 이런 의문을 품은 저자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저자의 의문들은 감성적으로 단순히 ‘믿는다’에 머물고 있던 나에게 왜 믿는지, 무엇을 믿는지를 깊이 탐구하고 싶어지는 이성의 눈을 뜨게 했다. 이때부터 나는 신학이라는 학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신학을 공부하면서 이 책을 다시 접했을 때는 처음 읽었을 때와는 다르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단순히 흥미로운 변증서로 다가왔다면, 이제는 그 안에 담긴 역사적 자료와 논리적 구조, 그리고 신학적 질문들이 더 깊이, 더 자세히 보이며, 무슨 뜻인지도 예전보다 훨씬 많이 이해하면서 읽게 되었다. 이전에는 감정적으로 놀라워하며 읽었다면, 이번에는 한문장 한문장을 따라가면서 저자의 논증 방식을 생각하면서 읽게 되었다.


저자는 기록을 검토하며 목격자들의 증언을 조사하고, 그 증언을 검사하고, 그 기록상의 증거들을 찾으면서, 저자는 세계 고대 문학 중에서 신약 성경만큼이나 본문에 대한 증거를 풍부하게 확보한 책이 없음을 알게 된다. 필사본의 수와 기록 시기의 근접성, 그리고 서로 일치하는 증언들은 복음서가 단순한 종교적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기록으로서 상당한 신뢰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확증적 증거와 과학적 증거를 탐구하는 부분에서 저자는 매우 신중하고 논리적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하나의 퍼즐 조각을 맞추듯 차근차근 사실을 검토해 나가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각 장마다 ‘논리적 신중함‘이라는 퍼즐 조각들을 통해 저자가 하나의 큰 그림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끼졌다.

특히, 고고학적 발견들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역사적 신뢰도를 뒷받침하는 부분은 인상깊었다.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누가의 기록은 세밀성과 정확성 면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누가의 기록만 신뢰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책에서 증명하려고 하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 또한 실제 역사 속 사건이라는 사실에 더욱 무게를 실어준다. 이것을 통해 나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과 ’실제하는 것‘의 차이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우리가 모든 것을 의심할 필요는 없지만, 성경의 역사성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는 내용을 들을 때, 그 자체만으로 쉽게 흔들리거나 위축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때로 사람들은 학문적 권위나 새로운 주장이라는 이유만으로 기존의 신앙을 낡고 뒤처진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새로운 것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또한 일부 반론들은 충분한 검증 없이 이루어진 ‘섣부른 일반화’이거나, 단지 권위 있는 학자의 주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받아들여지는 ‘권위자 편향’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내가 믿고 있는 것이 틀린 것인가?” 혹은 “기독교는 학문적으로 뒤떨어진 것인가?”라는 성급한 의심 속으로 쉽게 들어갈 필요가 없다.

 

기독교 신앙은 사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예수님의 탄생과 십자가 사건 그리고 부활에 대한 논의는 단순한 믿음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역사 속에 일어난 사건이다. 복음서의 신뢰성과 증언의 일관성, 초대교회의 형성과 순교자들의 삶 등을 보며, 복음은 단지 전해 내려오는 종교적 전통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진리라는 사실임을 알게 된다. 여기서 한가지 언급하자면, 사실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는 것은 바로 자유주의자들의 신앙이다. 그들은 공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지만 기독교는 공상이 아니다. 사실의 토대보다 인간 중심의 사상과 추상적 관념에 치우친 신앙은 결국 복음의 본질을 흐리게 만든다. 이 책의 곳곳에서 진리를 흐리게 하고 복음을 왜곡하는 여러 사상과 미혹의 문제들이 등장한다.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경고로 다가온다. 우리는 미혹 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말씀과 바른 신학 위에 굳게 서 있어야 한다. 우리는 올바른 복음주의적 지성을 공부해야 한다. 자유주의 신학이나 그릇된 신학을 들었을 때 성령 하나님의 레이더에 빨간불이 들어 올 수 있도록 영적으로 건강한 건전지를 채워놓아야 한다. 결국 건강한 신앙은 뜨거운 열심과 더불어 바른 진리 위에 세워질 때 더욱 견고해진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깊이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의 두번째 파트인 ‘예수 분석’을 읽으면서, 특히 심리학적 증거를 다루는 부분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단순히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아는 데서 멈추지 않고,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성화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 부분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심리학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예수님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셨는지를 보면서 우리가 구체적으로 닮아가야 하는 부분인 성화의 모델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책 속에 묘사되는 예수님의 모습이 나에게 조용히 다가왔다. “그는 사랑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연민 때문에 일을 못하시는 분은 아니었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숭배했지만 결코 거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주 바쁜 가운데서도 생활의 균형을 유지하셨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언제나 알고 계셨습니다. 또한 모든 사람들, 당시에는 천하게만 여겨졌던 여자들과 아이들까지 진심으로 돌보셨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죄에 대해서 단순히 모른 체 하시지 않았고 그들을 용납하셨으며 사람들의 처지와 필요한 것들을 일일이 보살펴 주셨습니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마음속으로 고백했다. ‘나의 예수님은 이런 분이시다.’

또한 이 부분을 읽으며 오늘날 시대의 흐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정보화 시대는 끝났다. 정보화 시대를 넘어 이제는 감정과 영성을 강조하는 시대가 왔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영성에 사로잡혀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단순한 지식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와 내면의 평안, 치유와 의미를 갈망한다. 무신론자들조차도 영적 파워를 말하는 시대이고, 이제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더 영적인 것을 얘기하는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이기에 우리는 참된 영성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참된 영성은 무신론자들이 말하는 막연한 감정이나 신비주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다. 이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이며, 성령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예수님을 더욱 깊이 바라보고 닮아가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부활 연구를 다루는 부분에서 저자는 기절설을 비롯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기 위해 제기되어 온 여러 이론들을 하나씩 검토하며, 과연 부활이 역사적 사실로 설명될 수 있는지를 치밀하게 조사한다. 그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극심한 고통 속에서 살아남는 것이 의학적으로 가능한 일인지에 대해 전문가들의 견해와 역사적 자료들을 통해 분석한다. 이러한 분석 중에 고난을 감당하신 예수님의 원동력이 사랑이라는 말을 저자는 계속 떠올린다. 그리고 나 또한 그 사랑 앞에 오랫동안 머물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저자는 사라진 시체에 대한 여러 반론들을 분석하며 그것들이 왜 설득력을 잃는지를 설명한다. 이 끝에 그는 결국 이렇게 고백한다. “남아 있는 유일한 선택은 십자가에 못 박혔던 예수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믿는 것뿐이었다.” 이 부분을 읽은 순간 나는 감격의 만세를 외쳤다. 오랜 의심과 추적 끝에 결국 진리를 고백하게 되는 저자의 모습은 나에게 큰 울림이 되었고 저자가 자랑스러웠다.

특히 내 마음에 남은 부분은 저자가 말한 ‘경험적 검사’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는 단순히 지적인 분석만으로 끝나지 않고, “나는 그분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그 사실을 알아낼 수 있다는 경험적 검사”를 이야기한다. 증거가 어떤 특정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면, 그것을 따라서 경험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만이 가장 합리적인 행동이라는 것이다. 증거는 반드시 경험적 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저자는 21개월 동안의 영적 여정을 지나며 마지막 숙제 앞에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증거가 충분하다’가 아니라, ‘그 증거 앞에서 나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조사하며 발견한 수많은 사실들 앞에서, 나사렛 예수를 신뢰하는 것보다 무신론을 주장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믿음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요한복음 1장 12절의 말씀처럼 단순한 지적 동의를 넘어 예수님을 믿고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것은 단순한 사상의 변화가 아니었다. 그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 곧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 이 책의 마지막은 단지 한 무신론자의 회심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이 증거 앞에서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그리고 그 질문은 지금도 조용히 내 마음을 흔들고 있다.


「예수는 역사다」 이 책은 나에게 단순한 변증서가 아니었다. 이 책은 내가 왜 예수를 믿는지, 그리고 어떤 믿음 위에 서 있는지를 다시 점검하게 만든 책이었다. 처음에는 한 무신론자의 의심과 질문으로 시작되었지만, 결국 그 끝에는 오히려 더욱 선명한 복음의 진리 위에 서 있게 되었다. 이 책을 마무리 하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차례 구성을 살펴보았다. 단순한 정보 나열이 아니었다. 저자의 치밀한 ‘놀리적 의도’에 의해 설계된 하나의 계단처럼 보였다. 저자는 복음서의 신뢰성, 예수의 존재, 십자가 사건, 부활의 증거를 단계적으로 쌓아가면서 진리 앞에 도달하였다. 마치 한걸음씩 계단을 오르면서 어느 순간 부활의 문 앞에 도달한 느낌이었다.

또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한 사람의 달란트와 인생의 여정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용하시는지를 깊이 묵상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단지 목회자나 신학자만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한 기자의 전문성과 그가 살아온 삶의 역사까지도 복음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셨다. 의심 많던 무신론자의 집요한 질문조차 결국 복음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준다.

나는 오늘도 고백한다. 역사 속에 오셨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시고, 지금도 살아계셔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고.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2)”


[출처] 블레싱데이를 보내며, Lee Strobel의 「예수는 역사다」를 읽고|작성자 beautiful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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