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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 은혜의글

하박국, 고통을 노래하다. 저자 : 김기현

작성자좋은열매|작성시간26.06.06|조회수0 목록 댓글 0

 

 

 

 

내게 책 중의 책은 성경이요, 성경 중의 성경은 하박국서다.

주전 6세기 예언자의 글이 도무지 이해할 길 없는 현실을 해석하고 극복하게 해 주었다.

나는 읽고 또 읽었다. 그리하여 삶이 불공평하다고 툭하면 욕하고 투덜거리던 나는

하박국처럼 고통을 노래하게 되었다.

내가 하박국이었고, 하박국이 나였다. 하박국이 나를 살렸다.

<하박국, 고통을 노래하다> 중에서

고난의 뜻을 알아가는 여정에 들어선 자로서의 대답은, 고난은 신비라는 것이다. 고난은 지성으로 궁구해야 할 문제라기보다 살아내야 할 신비다. 이를테면 의미의 문제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현실과 하나님의 자비를 조화시키기에는 인간의 지성이 심히 허약하다. 숱한 '신정론'이 일말의 진리를 담고 있지만, 포괄적인 틀을 제시하지 못한다. 오히려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난의 소리마저 들린다. 어느 학자는 "신정론의 악"이라는 말도 서슴치 않는다. 자세한 것은 7장과 17장에서 다룰 것이지만, 분명히 고난은 앎과 이해 너머에 있다.

- 고통은 문제 이전에 온몸으로 경축해야 할 신비의 영역에 속한다. "우리는, 비록 모든 가능한 과학적 물음들이 대답된다 하더라도 우리 삶의 문제들은 여전히 조금도 건드려지지 않은 채로 있다고 느낀다."는 루트비히 비트켄슈타인의 말에 흔쾌히 동의한다. 왜 고난이 존재하는가에 관한 모든 논리적 물음들이 해결된다고 해서 고난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는데 이론적 탐구의 결과를 자꾸 들이미는 것은 고통을 가중시킬 뿐이다. '고통의 문제'가 아니라 '고통의 의미'를 다루는 것이 현실적이고 성경적이다. 고난은 '해결'이 아니라 '해소'되어야 한다.

- 고난 자체가 원칙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그것이 고난을 묻는 자에게 주어진 대답이다. 그것은 그 자신이 대답이 되는 것이다. 고등학생 아들과 목사 아빠인 내가 신앙에 관한 숱한 의문을 편지로 교환한 적이 있다. 놀랍게도 아들의 첫 질문은 고난에 관한 것이었다. 왜 그리고 언제 고난을 이기게 될 것이냐는 물음에 "우리 자신이 고난의 대답이 되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 우리의 고난에 관한 답이 예수 그리스도시라면, 우리의 물음에 대한 답은 나 자신일 것이다. 하박국도 끝내 자신의 물음에 대한 답이 되었다. 그럼 지금부터 고통과 신앙, 나와 주님의 이야기를 하박국서를 중심으로,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 볼까 한다.

<하박국, 고통을 노래하다>, '여는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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