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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 은혜의글

십계명, 주기도문, 사도신경, 새롭게 읽기! <오래된 새 길 : 김기석>

작성자좋은열매|작성시간26.06.06|조회수2 목록 댓글 0

 

온갖 좌표들이 방향을 잃은 시대에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하늘을 향한 가장 견고한 이정표

십계명 :

 

하나 됨을 위해 조율하는 시간주기도문 :

삶의 자리에서 몸으로 구현하는 기도

사도신경 :
‘믿습니다’라는 열 두 번의 고백

 

-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 20:3). 이 말씀은 답답한 우리 실상의 지평을 확대, 심화시킨다. 미로 속에 갇혀 있는 우리의 눈길이 먼 곳을 향하게 한다. 그런데 이 말씀은 우리에게 강력한 도전이 된다. 세상은 수많은 신들의 각축장이다. 범신론을 말하려는 것도, 단일신론을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포스트모던 세계의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포스트모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신이 된다. 물질적은 재화도, 섹스도, 인간도 사람들의 혼을 송두리째 사로잡는 신들이다.

- 이 명령은 우리를 괴롭힌다. 수생은 수난이라지 않던가? 산다는 것은 상처를 입는 것이고, 그래서 세상은 "나를 위로해달라"는 외침으로 가득 차 있는데, 우리의 상처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그 신들을 떠나라니, 이 얼마나 가혹한 요청인가? 물론 우리도 안다. 인간의 위대함은 자기의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욕망을 거역하는 보다 거룩한 것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능력에 있음을...

-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음성을 인간의 오만을 질타하는 하늘의 쇠북소리로 듣는다. 힘을 숭배하지 말라. 지식을 숭배하지 말라. 돈을 숭배하지 말라. 크다고 자랑하지 말라. 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지 말라. 스스로를 지키려고 안주의 집을 짓지 말라. 영원히 나오지 않는 집은 무덤뿐이다.

- 기도는 상호소통행위이다. 그러나 우리가 바치는 수많은 기도는 일방통행이다. 기도자는 송신자이자 수신자가 되어야 한다. 제 할 소리만 다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리는 무뢰한들처럼 기도의 무뢰한들이 왜 그리도 많은지? 침묵을 전제로 하지 않은 언어행위가 소음인 것처럼 하늘의 소리를 듣기 위해 여백이 없는 기도는 독백이기 쉽다.

- 왜 우리는 기도하는가? 현실의 가장자리에 살면서 그 중심에 닿는 길을 찾기 위해서다(헤셀). 우리는 중심이신 하나님 덕분에 살면서도, 중심에 이르는 길을 잃고 산다. 중심이 없기에 우리 삶은 늘 시끄럽고, 복잡하고, 뒤숭숭하다. 음이 엉망이 되어버린 기타처럼 우리 삶은 조화를 잃었고, 그래서 '안녕'하지 못하다. 기도하는 시간은 '나'를 조율하는 시간이다.

- '길' 되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그 '길'을 걷다가 마침내 그 '길'과 하나 되기를 원한다는 말이다. 그 궁극의 자리에서 주격과 목적격의 구분이 없다. 믿는 '나'가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 속에 녹아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길'이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길'로 인도하는 열두 대문을 열고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려는 것이다. 주여, 우리를 도우소서!

<오래된 새 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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