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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 은혜의글

제1부: 믿음과 행함에 대한 논쟁 - 영원한 복음 - 예수 그리스도(최차순원장) 연재 제2부: 은혜로 얻는 구원 - 영원한 복

작성자좋은열매|작성시간26.06.07|조회수1 목록 댓글 0

제1부: 믿음과 행함에 대한 논쟁 - 영원한 복음 - 예수 그리스도 - 연재

 

구원이 율법을 행함으로냐 예수를 믿음으로냐 하는 문제는 아직도 잘 이해되지 못해 논쟁과 의문 가운데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야말로 우리의 구원문제를 다루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정통 재림신앙을 고수하는 보수적인 재림교인들은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신세대 교인들을 한심스럽게 바라보며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함으로 거듭나는 변화를 알지 못하는 율법주의 신앙은 자신도 무거운 짐을 지고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재림교인들을 바라보는 일반 개신교인들은 예수믿음만 주장하면서 율법은 십자가에서 폐하여 졌다고 말하며 율법(안식일)을 높이고 있는 재림 교회를 이단이라고 합니다. 재림교인들은 그때마다 예수께서 “내가 율법이나 선자자나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함이라”(마 5:17)는 말씀으로 율법의 불변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생명에서 분리된 인간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치 나무에서 가지가 잘라지면 더 이상 생명의 작용이 일어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율법은 이러한 상태에 있는 죄인들에게 순종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죄가 들어온 이후에 더하여진 율법은 죄인이 자신의 무가치한 상태를 깨닫고 십자가 앞으로 나아오도록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갈 3:19) 복음입니다. 죄인이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위하여 준비된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마음이 새 생명으로 살아납니다. 생각이 바뀌고 가치의 순위가 바뀝니다. 옛 사람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 새사람이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집니다. 사단이 다스리던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어 생명의 성령의 법이 마음을 다스리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복음이 주는 능력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은 이제는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마 4:4)게 됩니다. 바울은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엡 4:21~24)고 합니다. 지금은 늦은비의 때입니다. 그러나 거듭나고 자라나는 이른비를 받지 못하면 아무도 늦은비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율법과 복음이신 예수그리스도
예수그리스도는 영원 전부터 율법이셨고 복음이십니다. 예수께서 죄인을 위하여 피 흘려주신 십자가는 율법을 범한 죄인도 살리고 율법도 살리신 영원한 복음의 빛입니다. 성경은 율법의 영원성과 율법을 범한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과 그의 아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요 5:39)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이 없이는 율법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으며 율법이 없이는 복음을 바르게 설명할 수 없다. 율법은 구체화된 복음이며 복음은 율법을 펼쳐 놓은 것이다. 율법이 뿌리라면 복음은 나무의 향기나는 꽃과 열매이다. 이 둘은 각각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다.” (실물교훈 128) 구약과 신약은 하나의 복음이며 하나님 속에 감취어져 있는 ‘복음의 비밀’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영원한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죄의 저주 아래 있는 인류를 구원해 낼 수 있는 단 하나밖에 없는 생명줄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거짓 교사들은 이 하나의 복음을 둘로 분리시켜 놓았으므로 믿음과 행함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과 예언의 신을 보면 어떤 곳에는 믿음을 어떤 곳에는 행함을 더 많이 강조하는 것 같으나 이 둘은 똑같이 중요하며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된 하나의 복음입니다.

*자유롭게 하는 완전한 율법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요 17:3)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이론적인 지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알게 하심으로 아는 경험하는 지식입니다. 나의 죄로 인하여 자신의 생명을 주시는 십자가의 사랑을 진정으로 알면 그분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분을 사랑하면 나는 없어지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의 놀라운 사랑을 경험한 바울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 2:20)고 고백합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율법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사랑 안에서 율법과 선지자의 가르침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 사랑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마 22:35~40참조) 이것이 자유롭게 하는 새언약의 율법입니다. 사랑으로 하는 일은 힘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즐거운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1장 25절에는 “자유롭게 하는 완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고 합니다. 율법은 우리의 영원한 행복 즉 영생을 위하여 중보자가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면 순종의 열매를 낼 것입니다.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약 2:22)는 것입니다.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엡2:15)은 인간이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폐하여 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의 법이 행위를 하게 함으로 완전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여러 복음서에서 이러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나의 행위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그리스도가 없이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이기심으로 부패하여 진 것과 죄 뿐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들의 완전한 구원을 성취시키셨다.” (믿음과 행함 94) “오직 우리가 믿음 안에 거할 때에만 완전해 지고 사랑하는 자녀로 그분께 가납된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영혼은 자기 자신의 의를 포기한다. 그는 자기 자신이 불완전하고, 자신의 회개가 미흡하고, 자신의 가장 강한 믿음도 연약한데 불과하고, 자신의 값진 희생도 빈약하다는 것을 깨닫고 십자가의 발아래 겸손하게 엎드린다. ‘그대는 그분 안에서 안전하다’라는 기별을 듣는다. 더 이상 그는 자기 자신 안에서 가치 있는 어떤 것을 발견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믿음과 행함 107) 구원은 인간의 공로가 한 올도 섞이지 않은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므로 얻는 선물입니다.

“현대진리 곧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기별이다. 그 기별은 성결의 열매를 맺는 하나님의 신임장이 간직되어 있는 기별이다. 그들은 하늘의 손님이신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해 저희의 마음 문을 열지 않았으므로 큰 손실을 입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생활과 분리시켜서는 안 된다... 영원한 복락과 현재 그렇게 필요한 이 주제에 대해 성경적인 진리를 스스로 이해하고 있는 자는 100명 중에 한 명도 없다.” (RH 1889.9.3) 복음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면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우리가 알려고 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깊이 연구하면 오류의 쓰레기들은 다 쓸려 나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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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은혜로 얻는 구원 - 영원한 복음

 

*네 죄는 내가 다 책임졌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온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았느니라” (1:17)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혜는 범법한 죄인에게 네 죄는 내가 다 담당했으니 너는 죽지말고 영원히 살아라고 하는 영원한 복음입니다. 우리는 사복음서에서 예수께서 행하신 일을 통하여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죄의 결과로 인하여 고통당하고 있는 병자에게 네가 율법을 얼마나 잘 지켰느냐, 나를 믿느냐하고 묻지 않으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고쳐 주신 이후에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5:14)고 하시며 그 병은 죄로 인하여 온 것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3:17)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 담당시키지 않으시고 그 아들에게 담당시키셨다는 이 놀라운 은혜를 아는 것이 영생을 얻는 지식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53:4-6) 우리의 모든 죄, 즉 본성적인 죄, 행한 죄, 앞으로 지을 죄, 이 모든 죄를 다 세상의 구주되신 그분이 담당하셨습니다. 내가 지은 죄는 내가 책임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고 그 죄책감에 자살했습니다. 만약 가룟 유다가 자살하지 않고 살아서 자기의 죄를 지고 가시는 예수그리스도를 알았더라면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가 지은 죄로 인하여 낙망하고 좌절하고 죄책감에 짓눌려 영생을 포기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나의 죄를 나에게 묻지 않으시는 영원한 중보자이신 예수께로 나아 가십시오. 있는 모습 그대로 예수께로 가십시오. 본성적인 죄인은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없고,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인에게 예수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구원은 나의 의가 하나도 섞이지 않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간음한 현장에서 잡혀 온 여자

요한복음 81-11절에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께서 모세의 법을 범하고 있다는 구실로 고발하기 위한 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의 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하였나이다 선생은 어떻게 하겠나이까”(8:4-5) 모세의 율법은 십계명에서 나온 법이며, 간음죄는 일곱째 계명에 명시된 간음하지 말지니라에서 나온 법입니다. 어떻게 법을 세우신 분이 범법한 자를 처벌하지 않으시면서 법도 살리고 죄인도 살리실 수 있으셨을까요? 그것은 그 법을 세우신 분이 범법한 자의 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영원한 율법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공의와 자비가 공존하는 복음입니다. 이 사랑의 법은 영원한 법입니다.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니 어른으로부터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8:6-9) 모세의 율법을 들고 나와서 당당하게 죄인을 고발하던 이 사람들이 왜 다 나가버렸을까요? 예수께서 그들도 다 그 여자와 같은 죄가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8:10-11) ‘예수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에는 그 여자의 죄를 예수께서 담당하셨을 뿐 아니라, 앞으로는 죄를 짓지 않도록 이 법이 너를 보호해 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는 율법이셨고 복음이십니다.

 

그 이후 이 여자는 어떻게 변화 되었을까요? 절대로 옛날 생활로 돌아 갈 수 없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의 사랑이 그 여자의 온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여자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면 주님께 다 드린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입니다. 죄를 주님께 다 드렸기 때문에 이제는 죄의 종이 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담당 하셨다는 복음입니다. 이 여자가 구원 받은 은혜를 져버리지 않는 한 자기를 죽음에서 구해 주신 그 은혜가 그 여자를 죄로부터 지켜 주실 것입니다.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 5;17,18)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3)고 합니다. 이 여인의 이야기는 복음의 능력이 믿는 자에게 어떻게 역사하여 죄인을 죄의 시궁창으로부터 건져 내셔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주시는지 보여 주는 생생한 예라고 생각합니다. 이 여인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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