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 (Why I Am a Christian)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 - 존 스토트
우리가 그리스도를 찾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먼저 우리를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삶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과 진정한 자유를 주고자 우리게 오셨습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인간의 되고, 삶의 정체성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 나.는.왜.그.리.스.도.인.이.되.었.는.가
전 생애에 걸친 하나의 질문, 위대한 해답!
탁월한 복음주의 지도자 존 스토트가 자신의 회심기를 들려준다.
진리의 본질과 인생의 혼란이 맞닿은 곳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다.
수년 전 어느 고독한 소년이 하나님을 찾고자 작고 어두운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훗날 그 소년은 마침내 그리스도께 자신의 삶을 내어 드리게 되었다. 그것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결정이었다. 그는 그리스도가 아니었다면 자신이 헛되고 버림받은 인생들의 쓰레기더미 위에 놓여 있었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이제 그의 인생은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을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는 데 쓰임 받고, 우리를 살리고자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신 그분을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돕고 있다.
"제 긴 생애를 돌아보면서, 저는 무엇이 저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했는지 종종 묻곤 했습니다. 이미 말한 것처럼 그것은 제 부모님의 양육이나 저 자신의 독립적인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내 문을 두드리며 문 밖에 서 있는 자신의 존재로 관심을 돌리게 하신 그리스도 그분이셨습니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 선택이었던 그리스도와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설명한다. 그가 그리스도를 믿은 것은, 그분이 자신을 발견하셨기 때문이고, 기독교 신앙이 진리이기 때문이며, 인간성의 중심에 있는 역설에 대한 해답과 진정한 자유가 오직 그리스도 안에만 있기 때문이다. 본서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신비한 존재에 감정적으로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묻어 버리기 쉬운 인간성과 삶의 문제들에 대해 정직하게 질문하고 냉철하게 탐구하는 저자를 통해, 우리는 진정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곤란과 삶의 역설을 뚫고 들어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해답을 발견하며 감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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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의하는 자와 추구하는 자들이 가진 질문에 해답을 제시한다.
- 저자 특유의 유창하고 명료한 문체로 복음을 설명한다.
- 저자 개인이 많은 종교적 질문이나 회의들과 씨름했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 복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에게 더 설득력 있게 대화하며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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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를 갓 알게 된 초신자
- 그리스도인 저학년 대학생
- 복음을 설득력 있게 전하고자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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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긴 생애를 돌아보면서, 저는 무엇이 저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했는지 종종 묻곤 했습니다. 이미 말한 것처럼 그것은 제 부모님의 양육이나 저 자신의 독립적인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내 문을 두드리며 문 밖에 서 있는 자신의 존재로 관심을 돌리게 하신 그리스도 그분이셨습니다. 그 분은 두 가지 방식을 사용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듯 한 기분을 통해서였습니다. 저는 결코 무신론자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존재를 믿었습니다. 모든 현상 이면에, 그리고 모든 현상을 초월하는 곳에 궁극적 실재인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가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다니던 학교의작고 컴컴한 예배당에 들러 종교 서적을 읽고 기도를 낭송하고는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셨고, 냉담했습니다. 하나님을 둘러싼 듯 한 안개를 저는 뚫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스도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은 두 번째 방법은 저의 패배감을 통해서였습니다. 저는 청년기의 강렬한 이상중의에 사로잡혀 제가 바라는 제 미래상으로 영웅적인 그림을 그려두었습니다. 즉 친절히 하고, 이타적이고, 공공을 위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똑같이 분명한 그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심술궂고, 자기중심적이고,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두 그림은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상은 높았으나, 의지는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문 앞에 선 낯선 사람은 그 소외감과 패배감을 통해 계속해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장의 서두에서 제가 언급한 그 설교자가 제 딜레마에 빛을 비춰 줄 때까지 말입니다. 그 설교자는 제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가 소외되어 있던 저를 하나님과 화해시키기 위해 죽으셨고, 제 패배를 승리로 바꾸기 위해 죽음ㄴ에서 부활했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제 주관적인 필요와 그리스도의 객관적인 공급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밀접하게 일치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두드림은 더 커지고 더 집요해졌습니다. 제가 문을 연 것일까요, 아니면 그 분이 여셨을까요?
물론 제가 열었지만, 그분의 끈질긴 두드림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였고, 심지어는 불가피하기까지 했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당신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식적으로 찾건 그렇지 않건, 하나님은 분명 우리를 찾고 계신다고 그의 비유에서 확실하게 말씀하십니다. ┃ 본문 중에서 32-33면 |
■ 목차
서문
1. 천국의 사냥개
프랜시스 톰슨 | 디소의 사울 | 어거스틴 | 말콤 머거리지 | C. S. 루이스
2. 예수님의 주장
성취 | 친밀성 | 권위
3. 그리스도의 십자가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기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
악의 세력을 정복하기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
4. 역설적인 인간성
영광 | 수치 | 역설
5. 자유에 이르는 길
…로부터의 자유 |…을 위한 자유
6. 열망의 실현
인간은 초월성을 추구합니다 | 인간은 의미를 추구합니다 | 인간은 공동체를 추구합니다
7. 가장 위대한 초대
두 가지 주장 | 두가지 초대 | 결론 : 참석 여부를 알려 주십시오(RSVP)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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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복음주의 지도자 존 스토트가 자신의 회심기를 들려준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 선택이었던 그리스도와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설명한다. 그가 그리스도를 믿은 것은, 그분이 자신을 발견하셨기 때문이고, 기독교 신앙이 진리이기 때문이며, 인간성의 중심에 있는 역설에 대한 해답과 진정한 자유가 오직 그리스도 안에만 있기 때문이다.
본서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신비한 존재에 감정적으로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묻어 버리기 쉬운 인간성과 삶의 문제들에 대해 정직하게 질문하고 냉철하게 탐구하는 저자를 통해, 우리는 진정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곤란과 삶의 역경을 뚫고 들어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해답을 발견하며 감사하게 될 것이다.
현대의 많은 그리스도인 작가들이 신비한 영성 체험 증거를 통해 기독교 신앙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존 스토트는 명료하고 설득력 있게 자신의 신앙의 신학적 기초를 전달해 준다. 이 책은 좀 더 합리적이고 지적인 방식으로 신앙의 문제에 접근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이 읽어야 할 책이며, 나아가 신앙에 대해 회의하는 친구에게도 반드시 권해주어야 할 책이다. ┃ Publishers Weekly |
존 스토트
존 스토트(John R. W. Stott)는 현대 기독교 지성을 대표하는 복음주의 자이자 신약학자요 저술가. 20세기 최고의 설교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1921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했다. 케임브리지 리들리 홀에서 목회 수련을 받았으며, 어릴 적부터 다녔던 영국 런던의 올 소울즈 교회(All Souls Church) 교구 목사로 30여 년 간 섬기면서 강력하고 혁신적인 목회 사역을 수행했다. 영국을 비롯한 범세계적인 복음주의권의 지도자로서 로잔 언약(1974) 입안자로 참여했고, 그 후로도 로잔 운동에 적극 활동해 왔다. 런던 현대 기독교 연구소(London Institute for Contemporary Christianity) 소장을 지내면서 특히 제3세계에서 광범위한 설교 사역을 감당했으며, 계속해서 활발한 강연 및 저술 활동을 펼쳐 왔다.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문서․ 교육․ 목회 사역을 펴 나가는 랭햄 파트너십 인터내셔널(Langham Partnership International) 설립자 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빌리 그레이엄은 그를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존경하는 성직자”라고 칭했고, 존 폴락은 “사실상 전 세계 복음주의의 신학적 리더”라고 썼다. 2005년 “타임”(Time)지는 그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한 바 있다.
지금까지 성경적 정확성과 깊이 있는 지성을 기반으로 여러 탁월한 저서를 썼는데, 대표적인 저서로 「비교할 수 없는 그리스도」,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현대 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 「사도행전 강해」, 「로마서 강해」(이상 IVP), 「기독교의 기본 진리」(생명의말씀사) 등이 있다
양혜원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였으며, 1994년부터 영어 통역과 번역 일을 하고 있다. 라브리 협동 간사. 역서로는 <인간의 종말>(존 화이트헤드 저), <영화 보는 즐거움, 읽는 기쁨>(알렌 맥도날드 저), <복음의 다리 놓기>(제람 바즈 저), <아가서 강해>(제람 바즈 저, 출간 예정), (클라이드 S. 킬비 저, 출간 예정)이 있고, 저서로는 <그리스도인의 상식>이 있다.
누구나 이 질문에 진지하고도 성실하게 답해야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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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년 전 대학부에서 회장으로 섬기고 있던 때에, 난 나의 아집과 교만, 기독교의 부조리로 인해 지적자살을 하려고 했었다. 내 자신을 볼 때나, 사람들을 볼 때 도대체 기독교가 진리라는 증거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교회에 나가는 것은 고사하고 모든 경건활동을 말 그대로 집어치운 채, 그렇게 한참을 방황하는 가운데 하루는 목사님께서 나를 찾아오셨다. 함께 식사를 하기 시작했는데, 서로 내내 아무 말도 없었다. 식사 후에 목사님께서 먼저 말문을 여셨다. ‘무엇이 문제냐?’ 난 철없는 꼬마아이가 부모에게 일러바치듯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난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말씀의 능력이 없는) ‘교회(나와 우리)’가 싫었고, 부조리한 우리의 모습이 싫어서 견딜 수가 없었었다. 세상에 주와 같은 이가 없다고 말하는, 그런 그분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우리들의 입술의 고백과 삶은 어떻게 이다지도 더럽고, 연약함이라는 방패로 정당화시킬 수 있는지. 그리스도인이라면 한 번 쯤은 나와 같은 질문을 던져 보지 않았을까? 사랑하라고 말하면서 수많은 교단으로 나뉘어져 있고, 섬기고 베풀라고 하면서 우리는 더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한다. 대학생 시절 주위의 친구들도 모두 이러한 기독교인의 모습 때문에 교회를 멀리 했다.
이러한 울부짖음에 대해 교회는 늘 똑같은 변명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라고 말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들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바리새인, 율법주의자들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눈과 귀가 없어 보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는, 하나님의 마음에 못을 쉼 없이 박는 대적자들!
그러나! 목사님은 더 많이 용서함을 받은 자가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다는 말씀(눅 7장)을 기억하게 해주셨다. 나의 가장 큰 문제는 나의 믿음이 지적인 부분에서만 자라고 있었다는 것, 내 전인격적인 부분이 복음의 참된 의미-선하신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진실로 사랑하신다는 단순하고도 강력한 진리-를 경험하여 알지 못했다는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난 나와 함께 울어주시는 목사님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을 전해주시는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점점 부끄러워졌다.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고 싶었고, 먼저 내 자신이 변화되었으면(내 자신만 변화하면 된다!) 하는 바람이 커졌다.
그런데 내 마음속에서 그 순간 문제가 생겨버렸다. 사람들에게 큰 소리 치고 교회를 떠난 지난 내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워서 이제 다시 교회가기가 두려워져버린 것이었다. 힘을 내겠다고, 하나님의 은혜를 삶으로 경험하며 살겠다고 회개하고 다짐했던 마음들이 부끄러움에 사라져버리려는 그 때에 목사님께 말씀드렸다. “목사님, 근데요, 교회?돌아가긴 돌아갈 텐데요, 너무 창피하네요…….” 이런 내게 목사님께서 내 골수와 심장을 쪼개시는 말씀을 하셨다. “창피하다고? 너 아직 덜 깨졌구나…….” 콰과광! 내 영혼 깊은 곳에 태산이 무너지는 듯 한 충격을 감지했다.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래, 이게 복음이야, 바로 나와 같은 죄인들을 위해 주님께서 오신 거지. 그래 힘을 내자. 용서를 구하고, 다시 시작하는 거야.’라고 생각했고, 이제는 내 자신이 깨달음을 통해 조금 더 성숙했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바로 방금 전에 했었는데……. 내가 하나님 앞에서 깨어졌다고 생각했던 것 자체가 우둔함이었다는 사실에 당장에는 내 말이 의미하는 바는 그게 아니라면서 변명을 했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얼마나 울었던지…….
나는 (저자도 그랬겠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렇겠지만) ‘그 날’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인격적으로 내 전인을 처음 만지셨던 날, 나의 진정 나됨이 무엇인지 ‘똑똑히’ 보게 하셨던 그 날, 내가 얼마나 많이 용서를 받아야 하는지 가늠하기도 어려움을 깨닫게 하신 그 날, 하나님을 대면하면서도 여전히 변명하고, 감추려고 하는 아집과 우둔함과 교만이 벌거벗겨진 그 날을 말이다. 그 날 나는 ‘복음의 참된 의미’를 나의 죄인 됨 안에서 처음 (아주 미약하나마) 맛보게 되었다. 그분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나를 사랑하신다. 그분은 나를 쫓으시고, 나를 변화시키신다. 그분은 내가 빛에 드러나길 원하신다. 나의 모든 것을 고쳐주시려 하신다.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시키기 위해 다듬고 계신다. 이 모두가 다 ‘현재형’이다.
맞다. 저자의 표현을 빌려 표현하자면,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이유는 궁극적으로 나의 부모님이나 목사님의 영향도 아니고, 그리스도에 대한 내 자신의 결단 때문인 것도 아니다. 바로 ‘천국의 사냥개’ 때문이다. 즉, 내가 원하는 길로 가고자 도망할 때조차도 끈질기게 나를 쫓아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 때문인 것이다. 이제 나는 안다. 천국의 사냥개이신 그분이 은혜롭게도 나를 추적하지 않으셨다면, 오늘날 나는 헛되고 버림받은 인생들의 쓰레기더미 위에 놓여 있었을 것이란 것을…….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책의 제목을 보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제목과는 달리, 책의 내용은 그 중심을 잘 지키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 50과 우리의 반응 50이 만나서 100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100과 우리의 반응 100이 만나서 100이 되었다는 얘기이다.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라는 문장이 꼭 아니더라도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스스로에게 이런 종류의 질문들을 던져 봤을 것이다. 교회에 회의가 들 때,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것 같을 때, 세상에 과연 정의가 존재하는 지에 대해 의구심이 들 때, 저런 사람도 교회에 오나 싶을 때, 나 같은 사람도 사랑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 그리고 그 때 우리는 선택을 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또는 그리스도인으로 남아있기로 말이다.
그렇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 책을 읽는 동안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4장의 망대건축이야기와 두 나라 임금의 전쟁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우리는 계산해본다. 그분을 쫓아 이 길을 걸어가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우리에게 좋은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 우리는 계산을 한다, 해야 한다,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했다.
각자의 고백들을 절대적 일반화시킬 수야 없겠지만, 우리 모두는 비슷하고도 각자의 고유한 이유들로 지금 이 길에 서 있다. 저자 또한 다음과 같이 보편적인 동시에 지극히 개인적인 여섯 가지 이유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말한다. 첫째, 하나님께서 먼저 자신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둘째, 이것이 단순히 좋기 때문이 아니라 진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셋째,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사랑하신 그분의 은혜 때문에. 넷째, 오직 기독교만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기 때문에. 다섯째,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 자유에 이르는 길이 되시며, 마지막 여섯째, 오직 주님만이 우리를 만족시켜 주시기 때문에. 이상의 여섯 가지 이유들로 존 스토트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책을 덮고 나서 나도 좀 더 명확한 이유들로 설명하고 싶다는 갈망이 생겼다. 그것은 정말 갈망이었다. 나는 내가 ‘믿는’ 하나님, 나를 ‘믿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당당하게, 의미 있게 외치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나의 경우도 『순전한 기독교』를 통해서 지적으로 완전히 그분께 항복했으며, 그분께서 내게 허락해주신 귀한 사람들로 그분의 사랑과 인격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찾아와 주시지 않았다면 난 결코 그 분을 하나님 아버지, 주권자, 창조주,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분에게만 있는 절대적인 선, 그분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진정한 고통의 의미, 그분께서 다스리시는 온 세상, 그분의 섭리가 배어있는 모든 자연, 그분 안에서만 발견되어지는 모든 존재의 의미……. 나의 지성과 경험과 느낌으로는 가늠할 수조차 없는 수많은 ‘절대적’ 이유들로 나는 그분에 ‘의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분의 ‘지독한’ 사랑에 감사를 드린다. 이 책을 통해 나는 ‘그리스도인’의 의미에 대해서 더욱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고,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에, 아니 그보다 나를 지금도 쫓고 계시는(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에 대해 더 진실하게 반응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이 질문에 진지하고도 성실하게 답해야만 할 것이다.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 우리는 여기서 시작한다. 이건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근본적이고 역동적인 질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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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사냥개와 그의 모나리자
이 책이 쓰여지도록 동기를 부여한 사람은 20세기 최고의 지성인 중의 하나인 버트란드 러셀이다. 그의 책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는 20세기의 위대한 기독교 지성인 중 한 사람인 존 스토트에게 충분한 자극이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존 스토트의 명성을 알고 있었고 그의 저서에 친숙해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이 나왔을 때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존 스토트가 러셀의 철학과 논리에 도전장을 내밀고 반박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도 책에 그런 의도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은 철저히 논증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감동적이거나 감정에 호소하지도 않는다. 어떻게 보면 저자의 철저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체험과 논리를 펼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이다. 만약에 기독교를 옹호하거나 강요하는 책이라면 '우리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만 하는가?' 또는 '왜 기독교가 진리인가?' 정도의 제목이 되었을 것이다.
이 책은 신비와 논리와 감정이 결합되어 있다. 한쪽으로 치우쳐있지 않고 균형을 잡고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혹은 세상이라는 곳이 바로 그런 것 같다. 늘 설명할 수 없는 신비만으로 가득하지는 않지만 분명 우리가 설명하고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일들은 존재한다. 그리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논리적으로 판단하면 모든 일이 잘 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 가장 멀다고 어느 책에 쓰여 있지 않았던가? 우리는 이성만으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다. 이성적으로 절대 할 수 없는 것도 감정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분명 감정은 철저히 배제될 수 없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다.
`사실, 어떤 이는 이 책이 C. S. 루이스나 프란시스 쉐퍼가 쓴 변증적이고 논리적인 글과 다르다고 해서 배척할 지도 모르겠다. 또는 그다지 감동적인 이야기가 없다는 이유로 밀어내 버릴 지도 모른다. 아니면,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별 흥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이 책의 가치이다. 논리만으로도 감정만으로도 신비만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세상이고 인간이다. 어떤 한 가지 면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은 복합적인 설명을 시도한다.
이 책의 시작은 신비이다. '천국의 사냥개'라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소제목으로 시작한다. 웬 뜬금없는 개이야기? 천국의 사냥개라는 표현은 존 스토트가 프란시스 톰슨의 시를 인용한 것이다. 그리고 천국의 사냥개는 하나님을 비유한 말이다. 사실 이 부분만으로 이 책은 끝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바로 그 천국의 사냥개로 인해서 존 스토트는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책의 뒷부분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인간, 자유에 대한 질문과 진지한 대답이 기술되어 있다.
물론 이것은 기독교인의 시각으로서 가능한 판단과 대답이지만 저자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리고 그 최선의 결과는 바로 천국의 사냥개 덕분에 가능했다고 이야기한다. 아마도 독자들이 1장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그 이후는 편견이고 오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천국의 사냥개에게 사로잡히는 것이 사람과 인생과 세상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과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면 굳이 그것을 배제할 이유는 없다. 별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성능 좋은 망원경이 발명되면 그것을 사용할 것이다. 그것이 별을 이해하고 알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인생과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렌즈가 있다면 굳이 사용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자는 그것이 좋은 렌즈임을 충분히 증명해 보이고 있다.
아마 이 책을 읽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볼 것 같다.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라는 이 질문 말이다. 이 책이 그 대답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대답은 아마 개인마다 모두 다들 것이다. 정해진 답은 없다. 천국의 사냥개. 나는 이 존재의 끈질기고 포기하지 않는 추적보다도 이 존재가 목표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천국의 사냥개가 추적하고 있는 것은 정말 한심한 무리이다. 쫓고 있는 천국의 사냥개에게 끊임없이 돌을 던지고 덫을 놓는 무리들이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약간은 덜 떨어진 무리들, 무식하고 이기적인 무리들이다. 이 무리들을 위해서 천국의 사냥개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하면서까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교회는 덜 떨어진 짓들을 자행한다. 그리고 물론 그 안에 어린 아이같이 우왕좌왕하는 내가 있다. 나는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 내 내면 가장 깊은 곳에서 심한 떨림이 있다. 그것은 나에 대한 절대적인 절망감으로 인해 스스로를 폐기해버리고자 하는 나의 쓸쓸한 마음을 온 몸으로 감싸 안은 그의 상처 때문이다. 보통 많은 사람들이 교회 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못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 반대이다. 나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부족하고 때로는 악한 모습으로 인해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 나 또한 완벽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나의 부족함을 인하여 나를 버리는 분이라면 나는 그를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완벽한 사람만 골랐다면 나는 결코 그 무리 안에 끼지 못했을 것이다. 교회는 미완성 공동체라는 것. 나는 그것으로 인해 희망을 갖고 용기를 얻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미완성 작품이지만 아무도 그 작품이 가치 없다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미완성 작품이다. 나도 그 가운데 있는 사람으로 부족함을 느끼지만 부끄럽지는 않다.
아마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나처럼 그리스도인이 된 또 다른 이유를 이 책에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기독교인이지만 러셀의 책을 읽었다. 내가 러셀의 책을 읽은 이유는 기독교를 거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비기독교인 들을 이해하고 싶어서였다. 아마, 러셀의 책은 기독교를 거부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합리적인 근거를 제공해줄 것이다. 물론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할 말이 좀 있었지만……. 내가 러셀의 책을 읽은 것처럼 많은 비기독교인 들도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물론, 할 말도 많고 이해 안 되는 부분도 인정하기 싫은 부분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이 책을 읽는 비기독교인 중 몇몇은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자신을 뒤쫓고 있는 '천국의 사냥개'의 발자국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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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던져봐야 할 질문.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책 제목만 가지고 볼 땐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본다. 꼭 인간의 어떤 행위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어떤 전제가 있는가. 저럼 보이기 때문이다. 절망가운데 있는 죄인이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선택을 하여 구원에 이를 수 있지 않냐 라는 질문을 충분히 받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존 스토트 목사는 자신이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에 대한 첫 대답은 그분의 끈질긴 두드림 때문에 자신의 문을 열어 그분을 구세주로 받아들였다는 거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것만으로 충분하리라 본다. 그럼 내가 당신에게 묻겠다. 당신은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죠? 이 질문에 답변할 수 없다면 지금껏 중요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보지 못한 것이다. 솔직히 나에게도 그러한 질문을 던진 사람은 없다. 내 스스로도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그거야 뭐 자연스러운 거니까. 하나님이 나를 부르셔서 그분을 영접하기로 했죠. 어쩔 수가 없었어요. 전 그저 그분께 끌려간 것뿐이니까요. 정말 모호한 답변이다. 그러나 존 스토트 목사는 막연하게 이 책을 써 내려가지 않는다. 처음엔 우리 모두의 공통점인 그 분의 끈질긴 두드림으로 인해 불가피하기까지 하여 자신의 문을 열었다고 하지만 그 후론 진지한 사고로 인하여 얻어진 답을 제시한다. 당신은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만한 가치가 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존 스토트에겐 여섯 가지의 이유가 있었다. 그로선 그리스도인이 될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예수님이 진리임을 확신했으며 인간의 본성을 그의 날카로운 이성으로 그것을 잘 파악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초월성을 추구한다. 그리고 의미를 추구하며 사랑을 갈망한다. 이러한 것들은 오직 그리스도만이 해결책임을 제시한다. 그분의 끈질긴 두드림으로 잠깐 문을 열었지만 들어오시기도 전에 그가 문을 닫아버렸다면 그 분은 그의 마음에 들어오시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분은 인격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 분이 들어오셔서 주인이 되도록 자신을 내드렸다. 사고의 능력으로 충분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다. 물론 누구나 그것을 글로 표현하거나 논리정연한 말솜씨로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젠 그거에 대한 자신의 답변을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당신은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죠?' 이젠 분명히 제시할 논리를 갖길 바란다. 이 책이 당신의 사고에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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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 질문하였을 때 각자마다 사정과 형편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나에게도 전통적인 유교집안에서 태어나 성인이 되어서까지 지방을 써서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존 스토트는 모태 신앙이었기 때문에 나와 같은 신안에 대한 굴곡이 심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존 스토트가 그리스도인이 된 이유나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이유나 특별한 차이점은 없는 것 같다.
존 스토트가 그리스도인이 된 첫 번째 이유는 존 스토트가 주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주님이 먼저 찾아오셨기 때문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고백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하여 주님의 특별한 사랑에 푹 빠져 살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강구하시고자 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접근하신다. 이를 존 스토트는 천국의 사냥개로 묘사하였다. 이러한 끈질긴 하나님의 사랑은 다메섹 도상에서의 사울과 어거스틴, 말콤 머거리지, C. S. 루이스와 스토트 자신뿐만 아니라 나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두 번째 이유는 예수님 자신의 자증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위대한 선각자나 성인들이 왔다 갔다. 그럼에도 그들은 단지 스토트와 나에게 스승으로써 밖에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들은 결코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육신이시다. 이는 구약 성경에서 성육신에 대하여 계시하고 있고 이 계시의 성취를 예수님의 모든 생애와 말씀이 이를 증거하고 있다.
성육신에 대한 부정적 시각으로 단지 예수님을 다른 성인들과 동일한 선상으로 비하시키는 자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주장하는 그 주장이 미친 사람의 행동이거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거나 둘 중에 하나 일 수밖에 없음에도 예수님을 미친 사람으로도 생각지 않으면서 하나님으로도 생각지 않는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비밀이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도안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셨다. 그 죽음은 모든 인간의 죄를 위한 대속의 죽음이다. 이 죽음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겪어야 할 지옥의 황폐함을 경험하셨다. 주님의 십자가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모든 악을 이기신 승리의 죽음이셨다.
이 죽음이 없었다면 나에게 예수님은 좋은 가르침을 남기고 간 한 스승에 불과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의 죄에 대한 모든 형벌을 대신 받으심으로 나에게 임할 형벌을 면죄해 주셨다. 이 십자가 비밀은 더 이상 나를 불신앙에서 저주가운데서 방황하도록 놔두지 않았다.
네 번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정체성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기 중심서이라는 악을 가지고 있다. 이 악은 점점 자신을 더럽혀 아무리 선을 행한다고 할지라도 결국은 그 영광을 자신의 것으로 돌리고자 한다.
하나님은 이 자기 중심성을 싫어하신다. 주님은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선물로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본질을 하나님 중심성으로 옮겨 주신다.
내 자신의 노력을 통하여 나의 죄성을 씻기 위하여 무던히 노력할 때는 좌절과 죄책감만이 나를 괴롭혔다. 성령께 맡겼을 때 승리에 대한 영광만 주님께 돌려지는 기적이 나에게 일어났다.
다섯 째 이유는 죄로부터의 자유함이 찾아왔다.
죄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형벌을 동반한다. 이 세상에서의 법률 위반도 죄책감을 일으키나 남이 알지 못하는 도덕적인 죄악도 심한 죄책을 낳는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는 이러한 죄책을 면제하여 주셨다. 또한 나를 주님께 드렸을 때(내가 주님이 것이 되었을 때) 모든 자기중심성과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여섯 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만이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완전한 충만 이십니다. 주님 안에 있을 때만이 그분의 충만으로 나를 채워주신다.
궁극적으로 소유하게 될 에덴은 인간이 수천 년 동안 부단히 소망하고 강구하는 유토피아다. 그리스도인이건 그렇지 않건 이것은 모든 인류의 소망일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소망이 현실로 가까이 있다. 오직 주님만이 이 소망을 현실로 주실 수 있는 분임을 믿는다. 이러한 믿음과 사실이 존 스토트와 나를 그리스도인이 되게 만들었음을 이 책을 통하여 다시 한 번 확인하며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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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과 논리가 조합된 기독교 소개서
이 책이 얇다고 해서 존 스토트가 성의 없이 쓴 책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존 스토트의 모든 책은 그의 혼신의 노력이 담긴 책이다. 이 책도 역시 마찬가지다.
존 스토트 자신이 어떠한 지성적인 고민을 거쳐서 기독교인이 되게 되었는지를 진솔하게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자서전적인 내용만으로 이 책을 채우지 않았다. 이 책이 주관적인 진술로 가득 차는데 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존 스토트는 논리적이고도 신학적인 변증을 그의 자서전적 이야기와 버무려서 내어놓는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구원사역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주장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를 조목조목 설명해준다. 그러고 나서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인간의 '자유'를 성취할 수 있다고 결론적으로 말한 후에, 이 결론을 이루기 위한 최종적인 결론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여야 함을 역설한다.
이 책은 얕고 부실한 논리에 근거한 기독교 변증과 소개에 고개를 흔드는 지성인들과 대학생들에게 기독교의 지적 정합성과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 수준의 책이다. 얇지만 존 스토트의 진솔한 고백과 명쾌한 논리가 만나서 이룩한 최고의 기독교 입문서 혹은 전도용 책자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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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서적을 꽤 많이 보는 사람들에게 제목을 이상하게 적어서 괜한 나쁜 이미지를 줄지도 모르겠지만 실은 이 책을 계속 보다가 2/3 쯤에서 접게 되었다. 한국인의 자극적인 취향(아니면 나의 취향일지도…….)때문인지 몰라도 책이 너무 단조로운 느낌이었다. 재미있느냐 재미없느냐는 전철에서 보다가 자느냐 아니냐로 거의 판가름을 짓는데 한 번도 이기질 못했다. 물론 나의 독서 취향에 안 맞는다는 의미다. 책 내용은 내가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 조금씩 설득해 가는 과정을 챕터별로 설명했다. 책이 얇아서 내용도 그냥 그럴 줄 알았는데 깊이 있는 책인 것 같은 느낌은 든다. 나는 아무래도 국내 서적 타입인가보다. C. S 루이스 책은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 책은 루이스다운 변증법은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 그런 것을 기대하고 보아서 그런지 약간은 실망한. 그런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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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지성을 만나면 믿음 앞에서 많은 것을 내려놓게 된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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