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책속의 은혜의글

그리스도의 십자가(THE CROSS OF CHRIST) - 존 스토트(John R. W. Stott)

작성자좋은열매|작성시간26.06.20|조회수2 목록 댓글 0

그리스도의 십자가(THE CROSS OF CHRIST) - 존 스토트(John R. W. Stott)

 

십자가에 관한 가장 존경받고 권위 있는 저작!

IVP가 오랜 기간의 준비 끝에 야심차게 내놓는

IVP 모던 클래식스 1권「그리스도의 십자가」. 

 

출간 20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은 가장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인 십자가에 관한 가장 존경받고 권위 있는 복음주의 저서로 자리잡았다.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핵심인 십자가에 대해 다양한 신학적 입장과 역사적인 자료들의 조명을 통해 명쾌하게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영국 IVP가 창립 50주년을 맞아 존 스토트에게 특별히 위촉해 저술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저자의 이력이 절정에 오른 65세 때 쓰인 그의 대표작이자 현대의 고전이다. 저자 평생의 신학적 정확성, 목회적 지혜를 넘치도록 만날 수 있는 이 책은 출간 20주년을 맞아 저명한 복음주의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해설이 첨가되어 그 면모를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존 스토트의 탐구는 그 어느 누구도 감히 도달하기를 바랄 수 없을 만한 명확한 성경 해설과 정확한 신학적 분석이 특징이다. 그것은 지난 20년 간 그러했듯이, 현재도 십자가의 의미에 대한 모범적인 복음주의적 이해를 보여 주는 최고의, 가장 설득력 있는 글이다.”

- 알리스터 맥그래스, 해설 중에서

 

 - 우리 시대 가장 존경받는 성경 교사의 걸작.

- 십자가의 모든 측면과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의미 탐구.

- 기독교 신앙의 정수에 관한 고전적 연구.

- 십자가에 관한 성경적, 전통적 현대적 탐구.

- 20주년 판 기념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해설.

- 1987 “이터니티”(Eternity) 올해의 책 선정.

- 1988 미국 복음주의기독교출판협의회(ECPA) 골드메달 상 수상.

- 각 신학교에서 ‘십자가’ 주제 강의의 필독서 채택으로, 교파를 넘어선 활용.

 

“좋든 싫든 우리는 십자가와 연루되어 있다.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으므로 십자가는 우리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 것은 고사하고 우리의 자기 의를 차츰 파괴한다. 우리는 오직 머리를 조아리고 가슴을 찢음으로써 그 앞에 설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에 남아 있다가 주 예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고 받아 주신다는 말씀을 마음속에 들려주실 때, 그분의 사랑과 넘치는 감사에 사로잡혀서, 이 세상으로 나아가서 그분을 섬기는 삶을 살게 된다.”       - 서문 중에서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IVP 창립 50주년 기념 프로젝트로 선보인 이 책은 가장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주제인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관하여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매우 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복음적 신앙의 핵심에는 바로 십자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시고 우리가 죽어야 할 죽음을 대신 죽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사랑을 회복하게 하시고 그분의 가족으로 입양하셨다는 것을 믿는다.

 

이 책은 십자가가 모든 것을 변혁시킨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한다. 십자가는 우리로 하여금 새롭게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고, 자신에 대하여 새롭고 균형 잡힌 이해를 하게 해주며, 선교에 대한 자극, 원수를 향한 새로운 사랑, 고통의 난국을 직면할 수 있는 새로운 용기를 준다.

 

이 책을 통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깊이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 

 

성경은 악의 문제에 대해 -자연적 악이든 아니면 도덕적 악이든, 곧 고난의 형태로 오는 악이든 죄의 형태로 오는 악이든 - 완전한 해결책을 전혀 제공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즉시 말할 필요가 있다. 성경의 목적은 철학적이기보다는 실제적이다. 따라서 실제로 성경에는 각 장마다 죄와 고통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그 관심사는 그 기원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극복하도록 돕는 것이다.― p.431. 고난과 영광중에서

 

부루너가 말했듯이,'다른 모든 종교는-철학은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개입을 떠나서 죄의 문제를 다루며, 따라서 '값싼'결론에 도달한다. 그런 다른 종교들 속에서는 인간은. 중보자가 자기를 대신해서 형벌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 아는 최후의 모욕은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이 멍에를 지지 않아도 되며, 완전히 발가벗겨져지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발가벗은 채 서야만 하는 부끄러움을 모면할 수가 없다. 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처럼 자기를 가리려는 우리의 노력은 아무 소용이 없다. 자기를 합리화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무화과 잎사귀처럼 쓸 데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발가벗었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그 더러운 누더기를 입은 것을 보고, 그가 그의 의의 옷으로 우리에게 입혀 주시도록 해야 한다.― p.206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거룩한 제사장'으로써 어떤 영적 제사를 그분께 드리는가? 성경에는 여덟 가지가 언급되어 있다. 첫째로 우리는 우리 몸을 그 분을 섬기기 위한 산제사로 그 분께 드려야 한다. 이는 마치 물질적 제사를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영적 예배라고 불린다. 아마도 그것이 마음의 예배를 표현할 때에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때문인 듯하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찬양과 예배와 감사,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를 드린다. 우리의 세 번째 제사는 기도로서, 이는 향연과도 같이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한다.― p.328

 

■ 목차

 

십자가를 향하여

제 1장 십자가의 중심성

제 2장 그리스도는 왜 죽으셨는가?

제 3장 심층적 진리

 

십자가의 핵심

제 4장 사죄의 문제

제 5장 죄에 대해 만족시킴

제 6장 하나님의 자기희생

 

십자가의 성취

제 7장 죄인의 구원

제 8장 하나님의 계시

제 9장 악의 정복

 

십자가 아래 사는 삶

제 10장 경축하는 공동체

제 11장 자기 이해와 자기희생

제 12장 원수를 사랑하는 것

제 13장 고난과 영광

 

결론: 십자가의 편만한 영향력 

--------------

존 스토트(John R. W. Stott)

  

존스토트(John R. W. Stott)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설교가 이며 학자인 동시에 뛰어난 저술가이다. 그는 여러 해 동안 런던에 있는 All Souls Church의 교구 목사로 섬기면서 강력하고 혁신적인 목회 사역을 수행했다. 영국을 비롯한 범세계적인 복음주의 지도자로서 로잔 언약(1974)의 입안자 중 한사람으로 참여했고, 그 후로도 로잔 회의와 복음주의적 개신교와 가톨릭 간의 대화에 있어 적극적으로 활동해왔다. London Institute for Contemporary Christianity의 연구소장을 지내면서 특히 제3세계에서 광범위한 설교 사역을 감당했으며 계속해서 활발한 강연 및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존 스토트는 특유의 철저한 분석과 깊이 있는 신앙을 기반으로 탁월한 저서를 다수 발표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새, 우리들의 선생님」,「사도행전 강해」,「로마서 강해」,「데살로니가전후서 강해(복음. 종말. 교회)」,「산상수훈」,「기독교적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진정한 기독교 」(이상 한국 IVP),「기독교의 기본 진리」(생명의말씀사)가 대표적인 저서이다.

 

황영철

총신대를 졸업하고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본부 연합 총무와 자유 번역가로 활동했으며, 현재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저서로 <이 비밀이 크도다>, <구원의 윤리>가 있으며 역서로는 <그리스도인의 비전>,<교회>등 다수가 있다. 본서의 제 1-3부를 번역했다.

 

정옥배

외국어대학교 서반아어과를 졸업하고 IVP간사를 역임했으며 미국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와 풀러 신학교에서 수학했다. 역서로 <데이트와 사랑의 미학>,<진정한 기독교>,<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신명기 강해>,<사도행전 강해>,<로마서 강해>,<데살로니가전후서 강해>등 다수가 있다. 본서의 제 4부를 번역했다.

 

지상우

역자 지상우 목사는 전남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였고

광주 진흥고등학교 교사를 역임하였으며 총신대학교 신학연구원을 졸업하였다.  최근까지 목포에 계셨는데..지금은 어디에서 계시는지...청교도 작품을 많이 번역하셨고.로이드 존스 에배소서 번역 초판을 선물로 싸인과 함께 갖고 있다.

 

 

 

■ 추천의 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지닌 절대성과 그 영향력을 깊이 있게 다룬 수작이다.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 김선도 목사(광림교회)

 

십자가의 신학을 20세기의 대표적 복음주의자 존 스토트 목사가 가장 심도 있게 종합적으로 풀어 주고 있다. - 김상복 목사(할렐루야 교회)

 

'십자가의 도'에 대한 가장 명쾌한 답변을 한 책이다. 복음의 중심에 접근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필독을 권한다. - 하용조 목사(온누리 교회)

 

이 책은 가히 스토트의 걸작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이 가장 중요한 주제에 대해 다룬 그 어떠한 책도 본서만큼 그렇게 진실 되고도 훌륭하게 쓰여진 책은 없다. 당신의 옷을 팔아서라도 이 책을 사라! 지금 당장! - J. I. 패커 (Christianity Today 1987년 4월호)

-

“최근 출판된 복음주의 저서들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심오한 깊이를 담지한 책이다. 그 단순성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으며, 하나님이 우리의 죄, 우리의 반역, 우리의 끔찍한 악을 정복하시는 방식을 파악하는 면에서는 총체적이다.” | 데이비드 웰스 고든콘웰 신학교 교수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는 바울의 열정이, 십자가의 중심성에 관해 쓴 이 고전적인 책 면면에서 공명한다. 더구나, 스토트 박사는 섬기는 지도자로서 일평생 살아감으로 이 책에 쓰인 단어 하나하나를 실증해 주었다.” | 마이클 카드 CCM 가수 및 「땅에 쓰신 글씨」(IVP) 저자

 

“한 권의 신학 책이 여섯 가지 주요한 미덕들을 두루 갖춘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존 스토트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 일을 비할 데 없이 훌륭하게 해냈다. 이 책은 십자가에 대해 반드시 말해야 할 것을 말한다. 부드러우나 단호하게, 무엇을 말해선 안 되는지 경고한다. 또한 거듭해서 성경 본문에 근거하여 판단을 내린다. 논증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주요 부분은 언제나 주요 부분으로 남아 있도록 한다. 게다가 감탄할 정도로 명확하게 쓰였다. 사려 깊은 독자라면 누구나 진정한 찬사와 감사의 마음을 표하지 않을 수 없도록 구성되어 있다.” | D. A. 카슨 트리니티 신학교 교수

 

 

■ 본문 속으로

 

당신은 라파엘 전파의 지도자인 홀맨 헌트가 그린 "죽음의 그림자"라는 제목의 그림을 알고 있는가? 이 그림은 나사렛에 있는 목공소의 내부를 그리고 있다. 상반신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예수님이 목조 작업대 위에 톱을 올려놓고서 그 옆에 서 있다. 그분의 눈은 하늘을 향해 있으며, 그분의 얼굴에는 고통인지, 황홀함인지, 아니면 그 둘 다인지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이 나타나 있다. 그러면서 그분은 두 팔을 들어 머리 위로 쭉 뻗고 있다. 마침 그 때 저녁 햇빛이 열린 문으로 비쳐 들어와서 뒤편 벽에 십자가 모양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데, 그 곳에는 연장을 두는 선반이 벽에 걸려 있어서 마치 그분의 손이 못 박힌 십자가의 가로 지름 대처럼 보인다. 그리고 연장들은 그 무서운 망치와 못을 생각나게 한다.

 

왼편 전면에는 한 여인이 나무토막 사이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그녀가 손을 얹은 커다란 상자에는 동방 박사들이 주고 간 값진 선물들이 들어 있다. 고개를 돌리고 있어서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녀가 마리아임을 알 수 있다. 그녀는 벽에 드리운 자기 아들의 십자가 모양의 그림자를 보고서 깜짝 놀라고 있다(혹은 그렇게 보인다).

 

라파엘 전파는 보통 감상적이라고 평판이 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진지하고 심각한 미술가들이었으며, 홀맨 헌트 역시, 자신이 말한 바와 같이 평범한 주제들을 피상적으로 다루는 '당시의 보잘것없는 미술'에 대항하여 싸우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그는 1870-1873년을 성지에서 보내면서 자기 집 지붕 위에 앉아서 "죽음의 그림자"를 그렸다. 비록 그 생각이 역사적으로는 허구이지만, 신학적으로는 진실 된 것이다. 예수님의 소년 시절부터, 아니 그의 탄생 때부터 십자가는 그의 앞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의 죽음은 그의 사명의 중심이었다. 더욱이 교회는 항상 이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한 나그네가 런던의 성 바울 대성당을 방문했다고 상상해 보라. 비기독교 문화권에서 성장한 그는 기독교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라. 관심이 많으며 배우려는 열정이 있다.

플리트 가를 걷다가, 그는 균형 잡힌 건물의 장엄함에 깊은 감동을 받으면서, 크리스토퍼 워렌경이 1666년에 일어난 영국의 대화재 직후에 그렇게 훌륭한 건축물을 구상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경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그 건물을 눈여겨 관찰하노라면 그는 둥근 천장을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황금 십자가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그는 성당 안으로 들어가서, 둥근 지붕 아래 중심점에 선다. 건물의 크기와 모양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그는, 본당 회중석과 교회당 양쪽의 날개 모양으로 구성된 둥근 모형이 십자가 형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각각의 측면 예배당에 탁자처럼 보이는 것이 놓여 있고 그 위에는 눈에 잘 뜨이도록 십자가가 전시되어 있음을 주목한다. 그러고 나서 그는 크리스토퍼 워렌 경이나 넬슨 경 그리고 웰링턴 공작 같은 유명한 인물들의 무덤을 보려고 지하실로 내려간다. 그런데 그 각각의 무덤에도 십자가가 음각되어 있거나 양각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위층으로 돌아온 그는 이제 막 시작되는 예배에 참석해 보기로 작정한다. 그의 옆 자리에 앉아 있는 한 남자는 옷깃에 작은 십자가를 부착하고 있으며 다른 쪽 옆에 앉은 여인은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있다. 이제 그의 눈길은 동쪽 창문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에 머문다. 비록 그가 앉은 위치에서 그 형상을 자세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거기에 십자가가 있다는 사실만은 놓칠 수가 없다.

갑자기 회중이 일어선다. 행렬용 십자가를 든 사람이 앞장서고, 그 뒤를 따라 성가대와 성직자가 들어온다. 그들은 찬송을 부르고 있다. 그 방문객은 주보로 눈을 돌려서 가장 앞부분에 쓰여 있는 글을 읽는다.

 

죽으신 그분을 우리는 찬송하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분을.

사람들은 죄인의 소망을 비웃어도

십자가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버리네.

 

계속되는 절차 속에서 그는 자기가 성체성사 예배를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과 이 예배의 초점이 예수님의 죽음에 집중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떡과 포도주를 받으려고 영성체대로 나아갈 때, 성직자가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예배는 다음과 같은 찬송으로 끝나게 된다.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할 때에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 줄 알고 버리네.

 

죽으신 구주 밖에는

자랑을 말게 하소서.

보혈의 공로 입어서

교만한 맘을 버리네.

 

이제 회중은 다 흩어졌는데, 한 가족이 뒤에 남아 있다. 그들은 자기 아이에게 세례를 받게 하려는 것이다. 세례 반에 합류한 방문자는 성직자가 먼저 아이의 머리에 물을 붓고 이마에 십자가를 그리면서 "내가 너에게 십자가를 표시하노니, 이는 네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고백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함을 보여주기 위함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주목한다.

그 나그네는 깊은 인상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당황하여 성당을 떠난다. 십자가의 중심 성을 말과 상징으로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은 그에게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여러 가지 의문이 일어났다. 거기서 사용된 어떤 언어들은 다소 과장된 듯했다. 과연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향하여 '세상에 헛된 것으로 여기며'. 십자가로만 '자랑하고',그것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는가?' 기독교 신앙이 과연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라는 말로 정확하게 요약될 수 있는가? 그는 자신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이렇게 집중하는 것은 무슨 근거에서인가? 

----------------  

 "우리로 하여금 고난 받도록 허용하시는 하나님 자신이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고난 받으셨고, 오늘날에도 우리와 함께 우리를 위해서 계속해서 고난 받으신다……." 대학과 입학과 더불어 새롭게 시작된 나의 인생, 그 첫 걸음마를 배우며 먹게 된 어머니의 고단백 모유와 같은 말씀들……. 이것은 다름 아닌 존 스토트 목사님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란 책과의 만남이었다. 어릴 적부터 다니던 교회. 그러나 중고등부시절 나는 적잖이 방황했었고 무엇보다 신앙이라는 것 자체에 확신이 없었던 나였다. 그러다 대학진학 후 기독교 동아리 간사님의 추천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난 예전에 구원의 확신이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 그 구원이라는 단어의 의미조차 모호한 상태에 있었다. 그런 연유로 꼭 십자가의 죽음으로만 구원이 얻어지는가에 대한 지울 수 없는 의문에 아무런 해명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는가에 대한 명쾌한 답변이 질서정연하게 정리되어갔다. 죄의 삯은 사망이고, 때문에 아담 이래 죄인으로 태어난 나 & 사람들은 죽음 없이는 자신의 생명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죄인이요 죽을 자라는 것을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절망적인 사실 한가운데, 나 대신 죽음의 저당물이 되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서있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날 사랑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며 예수님이 스스로 선택하셔서 예수님 자신, 곧 하나님 자신이 십자가의 고통을 자원하여 감당하신 일대사건의 피고인이 바로 나 자신임을 깨닫게 되었을 때, 넘기는 책장마디마디가 늦여름 소나기처럼 내 머릿속을 때리고 또 때리는 것을 느꼈다. 아직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나 자신의 삶과의 연관성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책을 반드시 읽어보기를 적극 추천한다. 제임스 패커 목사님께서 '당신의 옷을 팔아서라도 이 책을 당장 사라!'고 했던 추천의 글은 결코 과찬이 아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와 묵상이 필요한 우리들에게는, 대를 이어 소장할 가치가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라 자신한다.

---------- 

십자가만이. 

존 스토트목사님의 글은 대할 때 마다 탁월함을 느낌이다. 참으로 이 시대에 이런 귀한 분을 보내신 하나님께 감사함을 품습니다. 이 책은 제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꼭 읽어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워낙 유명한 책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 책을 잡은 지 거의 두 달에 걸쳐 오늘에 다 읽었습니다. 좀 어렵습니다. 쉽게 눈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닌 듯합니다. 단어들과 어떤 곳에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문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 읽고 난 지금. 정말로 감사하다는 말뿐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그 사랑에 감사합니다.

전혀 구원받을 이유가 없는 자들에게 하나님 자신이 십자가의 고통을 겪으심을 통해 구원의 길을 보여주셨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자신이 말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이신 분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그 큰사랑을 알고 싶으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의 비밀알고 싶으세요. 그러면 이 책을 읽기 바랍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세상을 위해서 저를 위해서 당신은 십자가의 죽음을 감당하셨습니다. 왜입니까. 왜 입니까 .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감사하다는 표현으로 대신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아멘

------------- 

십자가의 중요성 

영국의 The Banner of Truth Trust 출판사에서 공신력 있는 목사님들에게 설문 조사를 했었다. 자신이 꼭 추천하고 싶은 책 5권을 선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가운데 많은 목사님들이 추천하신 책이 바로 존 스토트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제임스 패커는 이 책을 가리켜 당신의 옷을 팔아서라도 이 책을 사라고 권면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핵심인 십자가의 진리를 다양한 신학적 입장과 자료들의 조명을 통해 세밀하게 다루고 있다.

이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부에서는 왜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는가를 다루고 있다. 2부에서는 속죄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3부에서는 십자가의 성취를, 마지막 4부에서는 십자가 아래 사는 삶을 다루고 있다. 다시 말해서 신학적 이론뿐만 아니라 그 진리를 독자들에게 적용시켜 십자가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하여 우리는 존 스토트가 한명의 훌륭한 학자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는 이 책에서 놀라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신학을 명쾌하게 꿰뚫고 있다. 책의 지면마다 저자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새삼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얼마나 나에게 있어 귀한 것이며, 나는 정말 그 십자가의 사랑에 빚진 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신약 성경의 중심 주제가 바로 십자가인데, 이 책은 신약의 대 주제를 성경에 비추어 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1부에서 저자는 십자가에 대한 사전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도하는 듯 한 방식으로 십자가에 접근한다. 2부에서는 십자가에서 일어난 그 사건이 어떻게 준비되었고, 어떻게 진행되었으며, 누구에게 대하여 어떤 효과를 발휘하느냐 하는 것이 구약과 신약 전체의 가르침을 통하여 추적된다.

3부에서는 십자가에서 성취된 일을 표시하는 성경의 많은 이미지들이 해석되며, 그 이미지들이 표현하는 바, 십자가가 신자에게 끼치는 유익이 설명된다. 4부에서는 현실적 적용을 위한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으며, 십자가를 통한 자기부인과 자기희생, 섬김과 고난의 새로운 삶으로 깊은 도전을 받게 된다. 이 책은 십자가에 관한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걸작이다. 일독을 권한다.

 ------------------ 

1988년도판 이다. 지금은 온라인에서는 볼 수 없다. 정옥배의 번역이 빛이나는 작품이다.

 

 죤 스토트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읽고/// 이 한 규 우리는 신앙생활의 가장 훌륭한 지침서로서 성경을 꼽는다. 그러나 성경을 읽고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수많은 의문들이 생겨나며 여기에 적정한 해답을 찾기 위해 고심하게 된다. 더구나 신학코스를 거치지 아니한 대부분의 성도들은 신앙관이 확실하게 정립되고 정확한 신학적 지식을 소유한 전임사역자들의 시기적절한 체계적 전달을 통하여 부분적으로 해소가 되는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이 문제는 신앙의 이력에 따라 점차 해소가 될 문제겠지만 이러한 의문과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각자의 인생전체를 통하여 신비하고 심오한 영의 세계에서 눈을 뜨게 되는 것이며 나아가 신앙성장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지식이 충만한 시대이므로 궁금증은 지식으로 논리에 맞게 설명되어져야 하며, 이는 특히 성경을 통하여 배우는 크리스천들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어둡고 우울했던 중세시대와 이성이 지배하는 르네상스시대를 구분 짓는 종교개혁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던 루터 같은 신학자도 1507년에 사제서품을 받은 후에도 구원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나중에 성경에서 발견한 로마서 1장 17절 말씀에서 확신을 갖게 된 것을 보면 우리에게는 잘 설명된 성서주변의 양서는 구원에 관한 수많은 의문점들을 해소시키는데 있어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오묘한 영의 세계가 인간의 논리와 머리로 다 설명되지는 못하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것이 덮어놓고 믿으면 된다거나 궁금증에 대하여 적절히 이해시켜 주어야 할 사람들의 도피처가 되어서는 무책임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30년 이상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신학은 하지 못했지만 바른 신앙의 눈으로 성경을 들여다보고 성경을 통하여 의문점들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하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마음 밭이 옥토가 되기 위해서는 성경을 뒷받침하는 양서가 반드시 읽혀져야 하며 또한 장려되어야 한다. 본 독자는 신구약의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는 핵심사건인 십자가에 대해서만큼은 무엇인가 우리가 대충 알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심오한 깊은 진리가 있다고 믿고 있다. 죤 스토트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십자가사건의 가장 기본이 되는 두 가지의문점을 해소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서문에서는 "왜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으며""그리스도는 왜 죽어야만 했는가."를 언급하면서 십자가에 쌓인 신비와 하나님의 깊은 사랑의 경지를 가늠해볼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풀어 가고 있다. 제 1 부의 "십자가로 다가감"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십자가는 그저 상징적인 조형물로서의 십자가가 아니라 가장 잔인한 인간에 대한 형벌로써 예수님은 자신에게 임할 십자가 형벌을 알면 서도 자발적으로 선택함으로써 성경성취의 호기심에 한 발 다가가도록 풀어가고 있으며 어린양 예수는 구원 ,역사, 예배에 있어 오늘날에도 역시 무대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기술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죽게 된 이유로써 예수를 처형하기 위해 주변에 관련된 자들 가운데 예수를 놓고자 하였지만, 명예와 야망사이에서 양심의 소리를 비겁하게 타협함으로써 명예의 길을 외면한 실패인생인 빌라도를 정죄하면서 그와 똑같이 탈선된 우리 자신의 행동은 간과하기 쉽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종려주일에 요란하게 예수의 예루살렘입성을 환영하던 군중이 불과 닷새 만에 죽이라고 외친 것과, 질투라는 천박한 악덕과 권위손상 때문에 예수제거를 결정한 제사장들을 통하여, 메시아를 "위협적인 경쟁자"로 인식하며 제거를 원하고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된다. 섭리의 도구 또는 예정된 희생자로써 동정심을 가져다 주고 싶은 가룟 유다에 대하여는 그 배반이 미리 성경에 예언되었다고 해도 그 행위는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그 자신의 행위에 기인하기 때문에 이것이 유다의 죄를 사면해주지는 않는다고 함으로써 인간적인 동정과 행위를 통한 실천적인 죄를 구분하여 우리의 오해하기 쉬운 부분을 해소하고 있다. 결국 우리가 당시 헤롯, 이방인, 유다. 빌라도, 제사장등의 위치에 있었다면 우리 역시 그러한 행동을 했을(아니 실제 그렇게 했다고 함)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자발적으로","의도적으로"십자가로 나아갔다는 사실은 그의 죽음의 자발성은 설득력 있게 뒷받침한다. 더 나아가 예수의 십자가는 그 고통과 끔찍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예수께서 당하기 위해 오신 이유로, 일차적인 구성을 통해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로 인도하고자" "우리 죄를 위하여"죽으셨음을 차근차근 전개하면서, 죽음이 인간에게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니며 죄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 자연적 사건이 아닌 형벌로써의 사건으로 보고 여기에 저항하여 우리의 죽음을 죽으신 것으로 하여 우리 죄와 예수님의 죽으심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있다. 그리고 십자가의 심층을 살피기 위해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6시간동안의 다락방만찬제정과 겟세마네의 고뇌, 골고다사건을 재조명하고 십자가가 주는 교훈으로 그의 죽음의 중심성을 강조하면서 결국 십자가는 우리 자신에 관한 진리이며 하나님에 관한 진리임과 동시에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보여주는 것임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 맞추어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신 말씀의 의미 속에서 우리가 십자가 아래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언급하고 있다.

본론부분에서는 맨 처음으로 왜 하나님은 죄 용서함에 있어 "공연히"소동을 일으키며 심지어는 그 아들의 희생 없이는 사죄가 불가능하다고 선언하는가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하는데 그 대답은 죄짐이 얼마나 무겁고 하나님이 얼마나 엄위하신지 즉 "죄와 거룩"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고, 죄인들을 동정하시면서 동시에 그들의 죄에 대해서만큼은 타협하시기를 거부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을 깨닫게 하고 있다. 참으로 하나님의 권위와 사랑에 도전하여 우리 자신의 최고의 안녕을 거슬러 행하는 것 자체가 죄로써 우리 스스로 선과 악 사이에서 악을 선택한 도덕적 책임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아담 안에서"지은 원죄는 우리가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임감소가 된다는 것을 성경도 어느 정도는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책임이 아주 없어지지 않는다고 논리적으로 설명한 부분은 참으로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실책으로 죄를 범했으며, 그 때문에 거기에 상응하는 형벌을 받아야 하는데 원죄의 범인인 하와의 죄는 금단의 열매를 따먹었다는 불순종이기보다는 세상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일을 포기한 연약한 행위에 대한 책임으로 원죄를 보고 있다. 그래서 원죄를 지은 아담의 후예 중에서 대표적인 우리의 믿음의 선진들이라고 할 수 있는 모세, 이사야, 에스겔, 다니엘, 요한 등은 어떤 존재였는가? 그들은 죄인으로서 아무도 가까이 접근할 수 없는 거룩하고 높으신 하나님의 위엄 앞에서는 자신들이 아무런 가치 없는 존재임을 발견한 점이 공통점이었다. 실로 하나님과 우리사이의 거리를 나타내는 말로써 "높으심, 빛과 불, 토해내심"등의 단어에 대한 성찰과 "역사 속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죄의 필연적인 과정"으로써 우리는 우리 죄는 미워하시며 역겨워하시고, 그것에 의해 분노하시고 결코 타협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굳게 붙잡아야 하는 당위성은 죤스토트의 신학적인 깊이를 맛보게 한다.

이제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불타협의 본성은 우리를 사죄하시기 위하여 "어떤 종류의 만족함"의 필연적으로 필요하셨는데 "그의 이름에 합당하게""행하시는" 분으로서 스스로를 만족시키실 방법은 미세한 부분까지도 결코 자신의 완전성에서 어긋남이 없어야만 했다. 여기서부터 필자는 속죄와 관계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을 풀어간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하나의 사건 속에서 완전무결한 방식으로 자신의 거룩함과 사랑을 동시에 알려주신 사건"인 바 ,결국 죄때문에 주어야 할 우리 자신을 소진시키지 않으시면서 그의 거룩함을 표현하시며, 동시에 우리 죄를 묵과하지 않으시면서 그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하나님자신을 희생하셨다는 "대속"의 논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감나게 했다. 이어 "대속물" 즉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내준다."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하여 먼저 그는 구약의 제사의 상징인 희생의 개념을 설명하고 나아가 "유월절"과 "죄를 담당함"이라는 말의 심도 있는 성찰을 통하여 죽으실 수 없는 존재이신 하나님께서는 죽을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하여 인간의 모습을 가져야만 했는데 성부의 이러한 요구를 성자께서는 "자발적으로""택하신 십자가사건"이야말로 완전한 자기희생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이제 제 3 부에서는 죄에 대한 심각함과 그에 대한 만족으로 자기희생을 하신 하나님께서 "화목"과 "구속" "칭의" "화해"등을 주제로 어떻게 십자가를 성취하고 계신가를 다루고 있다. 먼저 "화목"부분에서는 화목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으로서 그것이 필요했던 이유는 죄가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기 때문이며 대속은 언제나 단호하게 값비싼 값을 치르는데 우리를 위해서는 속전으로 피 값이 지불되고 그로 인해 우리는 재산권이 그 분에게 넘어간 자로써 "주님의 것"이라고 논리정연하게 전개하고 있다. "칭의"는 "정죄"의 반대개념으로 하나님 앞에서 그의 아들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는 것인데 "그가 우리를 구속하셨다"는 사실은 중생은 성령의 일이며, 칭의는 성자의 일로써 나누어 볼 수 있는 바 이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화해"부분에서는 "화해"의 창시자는 하나님이시고 화해의 집행자는 이미 그 일을 완료하신 그리스도시며 우리는 화해의 사신으로서 그리스도에게 사람들이 오도록 호소하는 일이 맡겨졌음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의 계시"부분은 왜 악인들이 벌을 받지 않고 잘 되어 가는가에 대하여도 언급하는데 그 대답으로 구약에서는 그의 인내 속에서 죄인을 형벌하지 않으셨지만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을 십자가로 정죄하므로 하나님은 공개적으로 공의로써 형벌하고 계신다고 하면서 시편 73편을 근거로 악인의"결국"에 주목해야함을 설명하고 있다. 나아가 우리의 필요에도 부응하며 하나님자신의 본성도 만족시키고 더 나아가서는 십자가의 또 다른 성취인 악을 정복해버린 그렇게 값진 구원의 계획을 마련하신 것이야말로 깊고 부요한 하나님만의 위대한 지혜와 지식임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이제 부활은 확인되고 선언된 정복이었으며 우리는 재림시에 그 절정을 이룰 정복을 또한 기대하고 있지만 살아계신 구주가 없다면 죄로부터의 구원도 없다고 하면서 주의할 점은 마귀는 패배하였지만 아직 패배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다시 말해 마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힘이 파괴되어 여전히 큰 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힘 속에서 만 강하며 그의 무기로 무장 않으면 안 된다고 하여 우리가 취할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가 흔히 오류 속에 빠지기 쉬운 그리스도가 "사망을 폐하셨다"는 말이 곧 질병까지 폐한 것으로 봄으로써 몇몇 교단의 무분별한 행동과 비약적인 해석에는 신중해야 함을 깨우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나님께서는 기적적인 치료자가 될 수 있으며 예수의 생명이 계속 우리 속에 남아있음으로 죄인의 용서를 기대하듯이 병 치료의 역사가 일어나야할 것을 확신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말하고 있다. 제 4 부에서는 십자가아래서 담대함과 사랑. 기쁨이 특징인 새로운 관계가 맺어졌는바,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룩한 제사장들"로서 어떤 영적 제사를 드려야 하는가에 대하여 그 방안을 성경을 근거로 8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자칫 오해하기 쉬운 십자가의 예수님의 제사와 우리의 산제사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예수님이 드리신 희생제사는 첫 번째 종류로써 이는 우리 죄가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얻을 수 있는 단 1 회뿐인 이미 완성하셔버린 제사이며, 두 번째라 할 수 있는 우리의 제사는 예수그리스도에 의해 하나님과 화목된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를 입증하기 위해 드리는 찬양과 감사의 제사로써 성만찬은 그 대표적인 감사응답표현이라고 보고 있는데 이것은 매우 이해하기 쉬운 설명이다. 십자가아래서 우리는 누구이며 자신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십자가는 자신을 부인함과 동시에 자기를 긍정할 것을 요청하는데, 자기부인은 결국 십자가라는 것이 자기를 죽이기 위해 자기십자가를 지고 처형장으로 향하는 것처럼 자기 가고 싶은 길과 당연한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며, 역설처럼 들리는 양면성을 지니는 자기부인과 자기긍정과의 관계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대하여는 그리스도인의 가정생활은 자연적인 사랑이 특징이지만 십자가의 사랑으로 더욱 풍부해져야 하는 것을 예로 들면서 각 분야 걸쳐 섬김의 자세를 포괄적으로 언급함으로써 적절한 해답을 구하고 있다. 원수사랑에 대하여는 우리 편에서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화목의 일에 참여하기를 기대한다면, 그럼으로써 "정의가 무시"된다면, 십자가의 거룩한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희석시키는 것임을 알아야 함을 깨우치고 있다. 우리는 십자가를 값싸게 해서는 안 되며 진정한 기독교적인 사랑은 십자가의 고통을 나타내는 "거룩한 사랑"이어야만 한다고 하는데 는 참으로 잔잔한 감동이 온다.

실로 오늘의 가정과 교회는 물론 국가정의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태도는 십자가의 사랑의 진정한 깊이에 대하여 너무나 무지하고 분별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공의와 사랑이 동시에 표현된 고귀하고 거룩한 그 분의 사랑에 대하여 너무도 철없는 아이처럼 싸구려로 매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국가정의와 관련해서는 로마서 12장과 13장을 근거로 악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태도를 먼저 적나라하게 제시하면서 우리를 핍박하는 자와 원수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는데, 우선 악을 미워해야 하되, 되갚아서는 안 되며,또한 이겨야 하는 것이고 악은 반드시 처벌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처벌의 특권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몫임을 분별하고 있다. 여기서 윤리적 이원론을 통해 결국 그리스도인은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2가지의 역할을 구분해야 하며 언제나 교회에서나 국가에서나 공. 사적으로나 그리스도의 동일한 권위아래 있지만 이로 인해 역할들(가정. 일터. 사회)을 부여받으며 각 역할에 따라 서로 다른 행동의 타당성을 부여받게 되므로, 역할에 따라 악을 응징하는 행동은 하나님의 진노의 대행자로써의 행동이라고 하여 성경적인 국가관을 설득력 있게 다룸과 동시에 정죄와 관련된 고민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우리는 왜 하나님의 통치아래서 고난을 받으며, 믿는 자에게도 닥쳐오는 고난은 과연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하여 흔히들 성경은 시원한 대답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기 쉬운데, 저자는 성경은 완전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하여 그의 영광을 보이시며 또한 일하고 계심을 뜻하는 것 같다고 하여 조심스럽게 피력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고난과 우리의 고난과의 관계를 말하면서 그리스도의 고난은 참을성 있는 인내를 고무하는 것으로 고난을 통하여 성숙함을 배워야 할 것을 부연하고 있다. 나아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는 고난과 섬김, 수난과 선교가 함께 어울려 있어 이 고난을 통하여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고 열방이 축복을 받은 것처럼 열방에 빛을 가져오는 종의 사명이 당연히 교회에서도 이루어져야 하는데, 오늘날에는 섬김에서 고난이 차지하는 자리와 선교에서 수남이 차지하는 자리는 거의 가르쳐지고 있지 않음을 애석하게 말하면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워 영광에 이르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는 반드시 고난을 감내해야 함을 일깨우고 있다.

고난을 견딜만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영광의 소망이며 십자가 없이 왕관 없음은 자명하므로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이 값진 유일한 보상인 그리스도의 영광이 우리 안에서 완전히 재창조되도록 해야 하며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매달려야만 하는 합리적인 신앙의 기초를 제공한다. 여기서 저자는 "은혜" "평강" "영광"을 통하여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신학적인 시각을 조망하면서, 물리적으로는 맞지 않지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힌 사실을 율법을 통하여 확인하고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한 사실을 확신하면서 십자가전파가 복음전파의 핵심이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만이 가능한 것으로 보면서 글을 맺고 있다. 죤 스토트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매일 조금씩 4개월여에 걸쳐 읽으면서 왜 우리가 이러한 양서를 읽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발견했으며 이 독후감을 통하여 감히 일독을 권해 본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 

 

작년에 존 스토트 목사님께서 주일 예배 때 설교하신 적이 있는데, 금세기 최고의 대학자가 서신 강단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그분의 많은 저술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제일 훌륭한 책이라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내가 아는 분 중에 이 책을 통해 신앙의 길로 돌아선 분도 있다.

 

'십자가'는 기독교 신앙의 정수로 많은 책에서 이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가장 깊이 있게 접근하고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시 펜 루이스나 웥치만 니의 뛰어난 저서에서도 성경 신학적인 의미에서의 해설은 깊이 다루어지지 않는 반면에 이 책에서는 성경 본문을 충실히 다루며, 역사와 수많은 학자들의 저서를 검증하고 있으며, 다른 견해에 대해서도 체계적으로 변증하고 있다.

 

십자가의 중심성에 대해 상고하면서 주님의 죽으심의 의미, 사죄와 하나님의 자기희생, 그리고 십자가가 성취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으며, 적용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십자가 아래 사는 길을 보여 주고 있는데, '경축하는 공동체'라는 표현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전체적으로 논리적이고 학문적이어서 감정에 전달되는 은혜가 적을 듯이 보이지만, 십자가의 심층을 깊이 드려다 보는 사이 어느덧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끼게 된다. 십자가의 중심으로 얼마만큼 깊이 들어갈 수 있느냐가 영성의 표지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다 이해하지 못한 것이 오히려 하나의 비전, 희망을 만들어 준다. 평생토록 십자가를 묵상하며, 더 알아가고자 하는 소망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 (갈6:14)

책 첫 장에 씌어 있는 말씀이며, 내가 가장 사랑하게 된 말씀이기도 하다. 고난 주간을 맞이하여 더 깊이 묵상하고 싶은 말씀이다.

-----------

우리가 사는 시대는 특별하다. 역사 속에서 수차례 거듭된 종교 전쟁들을 등 뒤로 던져버리고 이제는 화해와 평화를 우리의 도달해야 하는 목표로 삼았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물론 여전히 세계 도처에는 종교적인 갈등이 있고 그것을 부추겨 정치적인 이익을 챙기는 부류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각각의 종교집단들이 서로를 적대시하던 전통적인 태도를 포기하고 상대 종교를 인정하고 경축하는 넉넉한 마음을 자랑으로 삼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때에 전통적인 방식을 따라서 기독교의 유일함을 강조하는 것은 확실히 세간으로부터의 지원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구시대적 태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세간의 지원을 얻기 위해서 달음질할 때, 기독교만의 독특함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따라오는 것도 역시 사실이다.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써의 복음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

생각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던질 수 있는 이런 질문들을 다루는 존 스토트의 논리는 의외로 단순하다. 수십 가지도 더 되는 방향으로부터 들어올 수 있는 다양한 질문들을 풀기 위해서 그가 십자가 하나만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꺼운 책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그는 정말로 십자가만을 붙들고 늘어진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십자가 하나만으로 모든 문제를 풀겠다고 하는 그의 의도를 생각한다면 그의 주장이 융통성 없이 자기 말만 하는 정신없는 종교인의 고집이라는 선입견을 갖게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빈틈없는 논리에 손을 들게 된다. 그리고 조용히 십자가 앞에 서서 그것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은혜에 감탄하게 된다. 이것이 이 책의 가치이고 제임스 패커가 그의 추천사에서 “겉옷을 팔아서라도 이 책을 지금 당장 사라”고 했던 이유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 책은 전체가 4부 13장(章)으로 되어있는데 그 속에는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모든 신학적인 주제들이 다 들어있다. 하지만 이 책은 보통 시중에 나도는 조직신학 서적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성경의 여러 가지 주제들을 감동 없이 나열한 책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십자가가 우리의 종교적인 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과 인격에서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찾기 위한 저자의 고민과 수고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존 스토트는 이미 과거부터 있어 왔던 많은 주장들을 인용한다. 그 중에는 저자의 주장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그가 그것을 숨기려고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런 반대들을 들춰내어서 소개하고, 다시 그것을 조리 있게 반박함으로 독자의 이성(理性)을 십자가 앞에 굴복시킨다. 그래서 이 책은 다분히 논쟁적이다.

저자는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왜 십자가인가?”에서부터 자신의 논쟁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 질문에 딸려 나오는 필연적인 또 하나의 질문인 “왜 예수님이 죽으셔야만 했는가?”의 문제를 추적하는데 그것은 우리에게 십자가가 어느 정도로 기독교의 중심에 있는가를 납득하게 해준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시대,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여전히 유일한 길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해준다.

개인적인 관점일 수 있겠지만 사도행전을 읽을 때마다 놀라움으로 발견하게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면서 내용으로 삼은 것이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단지 그것에 의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이 원리가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한가? 존 스토트를 따라가다 보면 대답은 당연히 <그렇다>이다. 다만 그 대답의 한 가운데에 있는 십자가가 오늘날 우리의 사회에서는 물론이고 교회에서 조차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유감일 뿐이다.

요즘 교회는 완전히 애물단지다. 그래서 교회는 필립 얀시의 표현처럼 사랑의 대상이면서도 고민스러운 존재이기도 하다. 그것은 교회가 교회이기를 포기하고 탈선의 길을 걷기 때문에 생긴 현상일 것이다. 그 덕분에 교회는 안팎으로부터 비판과 염려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회개와 갱신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사방에서 들린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런 때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그것은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지금도 십자가는 여전히 세상을 구원하는 유일한 복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이 책이 저술된 지 이미 20년이나 지나버렸지만 제임스 패커의 말처럼 이 책은 여전히 당장 사서 읽어야하는 중요한 책 중의 하나다.

------------

존 스토트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대하는 것은 말 그대로 기독교와 직면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십자가라는 하나의 대상을 이렇게 철저하게 분석한다는 것은 그의 탁월함과 치밀함이 이룬 하나의 개가라고 볼 수 있으며 말 그대로 십자가로 인해 하나님의 경륜이 분명하게 드러났다면 우리는 스토트의 저서를 통해서 왜 십자가인가? 또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 읽어왔던 모든 책들, 특히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 다른 모든 책들의 빛이 금방 무색하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십자가에 대해서는 단연 다른 어떤 책들보다 탁월하다는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있었다.

 

책을 대하게 되면 먼저 방대함에 놀라게 된다. 아니 십자가에 대해서 이렇게 많이 기록한단 말인가? 하지만 분량에 압도되어서는 안 된다. 스토트가 십자가가 기독교의 중심적인 이미지요 메시지라는 것을 읽기 시작하면서 독자는 스토트의 치밀한 구성과 전개, 그리고 설명에 몰입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치열한 학문적 탐구와 십자가에 대한 분명한 헌신을 책 전체에 걸쳐서 분명하게 드러내 주고 있는 작품은 반드시 한 번에 다 읽어야만 하는 그런 책은 아니다. 두고두고 한 장씩 읽어가도 좋은 책이 될 것이다. 요는 한꺼번에 읽던지 아니면 두고두고 읽던지 방법이야 무엇을 택하건 그리스도인으로서 또는 기독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만 할 책이라고 생각된다.

 

기독교 관련 서적들이 유례없이 많이 출판되고 또 많은 종류의 책들이 출간됨과 동시에 글의 무게가 현저하게 가벼워지고 있는 현실 가운데서 말 그대로 읽는 재미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한 시대를 정리하는 업적으로서 스토트의 저서는 손색이 없다.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저서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라고 여겨지는 작품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성경은 악의 문제에 대해 -자연적 악이든 아니면 도덕적 악이든, 곧 고난의 형태로 오는 악이든 죄의 형태로 오는 악이든 - 완전한 해결책을 전혀 제공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즉시 말할 필요가 있다. 성경의 목적은 철학적이기보다는 실제적이다. 따라서 실제로 성경에는 각 장마다 죄와 고통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그 관심사는 그 기원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극복하도록 돕는 것이다.

----------------

처음 이 책을 접한 곳은 선배의 방에서였다. 선배가 선물 받은 이 두꺼운 책은 나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시켰고 나로 하여금 이 책을 빌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존 스토트 지적인 그리스도인 이라면 누구나 존경하는 학자이면서도 신앙의 선배인 그가 인생의 말년에 가장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져 있다. 좀 두꺼워서 조금씩 짬을 내어 꾸준히 읽지 않으면 읽을 수 없는 책이기에 이 책을 다 읽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짜임새 있는 구성과 저인망식의 논제 접근이 읽는 이로 하여금 그 흐름을 끊기지 않게 하였다. 이 책을 읽다보면 석사 논문을 대하는 기분이 든다. 많은 정성과 시간 그리고 순수함이 묻어나오는 석사 논문처럼 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노장이 쓴 책과는 다르게 생동감과 확신이 그리고 희망이 넘쳐난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사건은 도서관에서 이 책을 조용히 읽다가 갑자가 쏟아버린 눈물에 당황한 적이 있었다.

 

이 책은 존 스토트의 고민과 그리고 많은 그리스도인의 고민이 담겨있는 책이다. 단순하게 존 스토트가 유명한 학자라서 이러한 책을 쓴것이 아니라 많은 시간동안 십자가를 향한 수많은 그리스도인의 고뇌와 기쁨을 존 스토트가 옮겨놓은 것이라 생각한다. 십자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묵상을 하고 싶다면 난 적극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그러면 당신은 존 스토트에 대해 놀라는 것이 아니라 마치 논문과 같은 책을 쓴 그의 글 솜씨에 당황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감사와 기쁨과 놀람을 만날 것이다. 가벼운 책 100권 보다 진실 된 책 1권이 더욱 값진 것 이다.

 

 

부루너가 말했듯이,"다른 모든 종교는-철학은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개입을 떠나서 죄의 문제를 다루며, 따라서 '값싼'결론에 도달한다. 그런 다른 종교들 속에서는 인간은. 중보자가 자기를 대신해서 형벌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 아는 최후의 모욕은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이 멍에를 지지 않아도 되며, 완전히 발가벗겨져지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발가벗은 채 서야만 하는 부끄러움을 모면할 수가 없다. 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처럼 자기를 가리려는 우리의 노력은 아무 소용이 없다. 자기를 합리화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무화과 잎사귀처럼 쓸 데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발가벗었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그 더러운 누더기를 입은 것을 보고, 그가 그의 의의 옷으로 우리에게 입혀 주시도록 해야 한다.

-------------- 

지상우 목사님(나의 은사이기도하다)이 번역하신 CLC의 그리스도의 십자가 개정판 표지

 

존 스토트의 비교할 수 없는 그리스도를 읽고 매력을 느낀 후 존 스토트의 저작들을 몇 권 구입하였다. 다소 권량이 많고 활자가 적어 부담감을 가지고 읽기 시작하였으나 그동안 정리된 신학이 없었던 나에게는 책장을 넘길수록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제1부 십자가를 향하여’에서는 십자가가 기독교를 상징하는 상징물이 되게 된 동기와 과정을 설명하였고 초기에 십자가는 가장 부끄러운 사형 형틀로 공포와 두려움의 상징으로 십자가를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부끄러움이었으나 점차 십자가를 떼어놓고는 속죄제물과 화목제물되신 예수님을 상상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부끄러운 십자가를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의 상징물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여러 가지 논거를 통해 증명하고 있다.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십자가가 저주의 형틀이라는 이유로 성도들에게 도외시되기보다는 십자가의 고행보다는 은혜의 메시지가 성도들의 입맛에 맞고 거부감이 적어 도외시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제2부 십자가의 핵심’에서는 인간이 자시 중심성 때문에 전 존재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창조주요 주님으로 인정하고 순종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거부함으로써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죄를 범하였고 마땅히 죄를 범한 인간은 자신의 존엄성에 걸맞는 죄에 대한 책임(죄책)을 가져야 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거룩성 때문에 인간의 죄에 대한 응분의 벌을 주셔야하나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이를 수행할 수 없는 충돌로부터 십자가의 필요성을 설명한다.

 속죄를 위해서는 전 인류의 죄를 충분히 보상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 지불이 필요하고 죄를 범한 본인이 죄의 대가를 치러야하며 이런 속죄가 하나님 자신의 거룩성을 조금도 훼손하지 않으면서 자신에게 충분한 만족이 되어야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죄인 된 인간자신이 제물이 되어서는 하나님의 거룩성을 만족할 만한 충분한 가치를 발휘하지 못한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예수님을 모든 천사들보다 먼저 창조된 첫 번째 피조물이라고 주장하나 이는 하나님의 거룩성을 한낱 천사의 가치로 하락시키는 불경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거룩성을 만족시킬 수 있는 존재는 바로 하나니 자신 밖에 없다. 그러나 결자해지를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이 직접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여기에 바로 성육신의 크고 비밀한 섭리가 들어있음을 저자는 보여준다.

 십자가는 이런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절묘한 해법이다. ‘제 3부 십자가의 성취’에서는 화목제물 되신 예수님의 은혜와 칭의를 통한 죄인들의 구원과 구원받은 자들이 어떻게 악을 정복하여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미 죄의 대가를 가장 값비싼 하나님 자신으로 치르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더 이상의 속죄제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속죄제물 되신 예수님만 믿으면 의롭다고 인정해주신다. 이것이 바로 거룩을 이긴 하나님의 사랑이다.

 반면에 사단은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영광을 받으심으로 완전히 패배하였다. 그렇지만 결정적이 승리의 날은 예수님의 재림시에 이루어진다. 그 동안까지는 우리는 마귀를 대적하고 십자가를 전하므로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강조한다.

 ‘제 4부 십자가 아래 사는 삶’을 통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이 보내주신 보혜사 성령을 통하여 구원받은 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설명한다. 그의 저서인 오늘날의 성령의 사역에서 성령 충만된 삶이라 공동체적 삶, 성령의 교통하심이 있는 삶과 이러한 삶 속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희생을 통하여 우리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이웃을 향하여 사랑을 나누어야 함을 역설한 것과 같이 십자가를 자랑하는 삶이란 자기를 부정하고(자기중심성을 버리고) 하나님 중심으로 축이 변해야 함을 가르쳐준다.

 이 책을 통하여 지금까지 이단들의 신학적 논쟁에서 회피하던 문제들이 말끔히 정리된 느낌이다. 또한 하나님의 거룩성과 걸 맞는 대가를 지불하고 대속하실 만큼 나를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반면에 죄를 철저히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거룩성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증가시켜 나에게 좀 더 죄에 대하여 민감하게 만들었으며 하나님께 조금 더 가까이 나아가는 기회가 되었다.    

 

https://m.blog.naver.com/csfields/60035319939?recommendTrackingCode=2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