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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 은혜의글

고통보다 깊은(Face a la Souffrance) - 폴 투르니에(Paul Tournier)

작성자좋은열매|작성시간26.06.20|조회수1 목록 댓글 0

20세기 기독교가 가장 사랑한 상담자, 폴 투르니에의 마지막 작품!

고통은 일상성의 껍질을 부수고 창조적인 삶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고통에 관한 책은 무수히 많다. 그런데 이 책은 고통을 특별히 창조성과 연관시킨다. 저자는 고통 자체가 축복이며 은혜라고 말하는 입장이기보다는, 고통에 대한 용기 있는 반응이 창조적 에너지를 낳는다고 말한다. 좋은 날씨를 진정으로 누리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나쁜 날씨가 계속되어야 하듯이 고통과 창조성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즉 고통이 있다고 반드시 성숙하거나 창조성을 획득하는 것은 아니지만, 창조적인 삶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고통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상실과 시련으로 인해 오히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삶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폴 투르니에 만큼 섬세하고 치밀하며 인격적으로 묘사한 저자는 찾기 힘들 것이다.

 

 -창조적 고통에 대한 탁월한 통찰!

고/통/은/  일상성의 껍질을 부수고 창/조/적/인/ 삶/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고통은 그 자체로 결코 이로운 것이 아니며, 늘 싸워야 하는 대상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시련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격적 존재의 문제, 곧 인생과 그 변화에 대한 개인적 태도의 문제다. 긍정적, 적극적, 창조적으로 반응하여 인격을 성장시킬 것인가 아니면 부정적으로 반응하여 발전을 저해할 것인가? 어떤 반응은 역사 가운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고, 어떤 반응은 실패한 삶으로 끝날 것이다. -본문 중에서

 

" 시련은 창조성의 기회가 되기 전에는 모두 슬픔이요 고뇌요 손상이다. 그러나 슬픔이 크면 클수록 슬픔에 생산하는 창조적 에너지도 커진다."

 

 당신이 마음을 열고 이 책을 일어내려 간다면, 왜 투르니에게 '20세기 기독교가 가장 사랑한 상담자'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읽는 지 20년이 넘었지만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이 밀려오고, 큰 위로와 격려를 받는다.

-'추천의 글'중에서 · 정동섭, 「어는 상담심리학자의 고백 」(IVP)의 저자 

 

"고통은 그 자체로는 결코 이로운 것이 아니며, 늘 싸워야 하는 대상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시련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격적 존재의 문제, 곧 인생과 그 변화에 대한 개인적 태도의 문제다.…긍정적, 적극적, 창조적으로 반응하여 인격을 성장시킬 것인가 아니면 부정적으로 반응하여 발전을 저해할 것인가?…어떤 반응은 역사 가운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고, 어떤 반응은 실패한 삶으로 끝날 것이다.” --- 본문 인용

 

■ 본문 속으로

고통은 그 자체로는 결코 이로운 것이 아니며, 늘 싸워야 하는 대상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시련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격적 존재의 문제, 곧 인생과 그 변화에 대한 개인적 태도의 문제다. … 긍정적, 적극적, 창조적으로 반응하여 인격을 성장시킬 것인가 아니면 부정적으로 반응하여 발전을 저해할 것인가? … 어떤 반응은 역사 가운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고, 어떤 반응은 실패한 삶으로 끝날 것이다.

"시련은 창조성의 기회가 되기 전에는 모두 슬픔이요 고뇌요 손상이다... 그러나 슬픔이 크면 클수록 슬픔이 생산하는 창조적 에너지도 커진다. "

 

시련 앞의 인간

...의사인 내가 환자를 진료하면서 깊이 감동받은 그것을 우리는 세계적 차원에서 동일하게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분명히 살펴보았듯이, 고통은 그 자체로는 결코 이로운 것이 아니며, 늘 싸워야 하는 대상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시련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격적 존재의 문제, 곧 인생과 그 변화에 대한 개인적 태도의 문제다. 아프거나 심한 시련을 당한 사람이 내게 속사정을 털어놓았다고 하자. 그는 이 가혹한 재난 앞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개인적으로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긍정적, 적극적, 창조적으로 반응하여 인격을 성장시킬 것인가 아니면 부정적으로 반응하여 발전을 저해할 것인가? 앞서 고아 사례에서 살펴보았다시피, 어떤 반응은 역사 가운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고, 어떤 반응은 실패한 삶으로 끝날 것이다. 한편 적절한 시기에 적절히 주어진 도움은 한 사람의 인생행로 전체를 좌우할 수 있다.

 

그것은 체스 게임과 같아서 한 번 수를 잘못 둔 것이 판 전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눈덩이 효과'(Snowball effect)는 더 적절한 비유일 것이다. 용감하게 행동하면 새로운 힘과 희망이 솟아나고 다음번에 더 쉽게 승리하게 된다. 반면에 좌절하게 되면, 한 번 좌절할 때마다 계속 더 움츠러들게 된다. 그것은 분수령(分水嶺)과 같다. 우리는 분수령이 산봉우리에 있다고 생각 하지만 평원에 있을 수도 있다. 스위스 평원에는 '세상의 한가운데'(Middle of the World)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곳이 있다. 그 곳에 비 두 방울이 나란히 떨어지면 한 방울은 라인 강을 거쳐 북해로, 다른 한 방울은 론 강을 거쳐 지중해로 흘러간다고 한다.

 

내 환자들은 종종 터널 비유를 든다. 터널은 앞으로 가든지 뒤로 가든지 해야 빠져나올 수 있다. 에이날 박사는 시련에게 처한 어느 예술가에 대해 쓰면서 "시련을 창조적으로 변화시키든지 아니면 그냥 무너져 버리든지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괴테와, 그가 극심한 사랑의 고통을 겪으면서 썼던 걸작이 생각난다.

물론 삶의 매순간이 도전이지만, 갑자기 도전이 거세지고 급박해지는 시기, 즉 인생에서 가장 커다란 시련의 순간이 있다. 수년 간 나는 네덜란드 동료 더 몰 반 오털루(De Mall van Otterloo)박사가 스트라스부르에서 조직한 인류학 연구 그룹에서 활동했다. 폴 리쾨르와 나는 특별히 '한계 상황에 빠진 인간'에 대해 함께 책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하지만 리쾨르가 다른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소르본느 대학교로 떠나는 바람에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큰 시련기에 직면한 인간의 반응이 갖는 결정적인 중요성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이러한 반응은 결코 그를 이전 모습으로 돌려놓지 않을 것이다. 이 때 그가 용기를 선택하도록 돕는 사람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강력한 의술 시스템은 오히려 그를 수동적 대상(object)으로 만들어, 그가 치료 과정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게 하는 경향이 있다. 그는 의술로 병이 낫기만을 기다리며, 병이 다 나아야 다시 스스로에게 책임을 지는 존재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의사는, 치료 행위를 하고 환자에게 자신감을 준다면 자기 임무를 완수한 것이라고 너무 쉽게 믿어 버린다. (p. 73-75)

 

- 폴 투르니에의 마지막 작품으로 일생의 연구와 경험이 잘 정리된 작품

- 고통에 대한 신학적 접근이라기보다는 임상적, 체험적 접근

- 연륜 있는 선배로서 동료 의사들에게 환자들과의 인격적 관계를 독려하는 편지와 같은 글

- 정서적으로 고통에 대해 공감적이면서, 논리적 근거가 충분한 글

- 환자와의 인격적 관계에 관심 있는 의사

- 상담/내면 치유에 관심 있는 목회자 및 상담 관련자

- 그 외 고통과 상실감을 겪고 있는 이들

 

■ 목차

 

추천의 글

 

서문: 고아에 관한 수수께끼

제 1 장 창조성으로 이어지는 상실

제 2 장 위장된 축복?

제 3 장 승리인가, 패배인가?

제 4 장 상실과 좌절

제 5 장 난관으로 지연되는 수용

제 6 장 분노

제 7 장 용기

제 8 장 정보 이론에서 말하는 잡음

제 9 장 일상성과 창조성

 

인용도서 

 

폴 투르니에(Paul Tournier) 

 

폴 투르니에 (Paul Tournier, 1899-1986)는 스위스의 내과의사이자 정신의학자로서 기술적인 의학만이 존재하던 시기에 의사와 환자가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는 '인격 의학'을 주창했으며, 현대 심리학과 기독교를 통합시키는 데 크게 공헌했다. 그의 심오하고도 실제적인 사상은 저서와 강연을 통해 세계 각지의 사람들을 변화시켰다. 특히 20세기 후반에 가장 영향력 있는 필자로 꼽히는 그의 저서들은 18개 국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다.

 

저서로는 「현대인의 피로와 휴식」(나침반사 역간), 「인생의 사계절」(종로 서적 역간),「강자와 약자」,「서로를 이해하기 위하여」,「여성, 그대의 사명은」,「모험으로 사는 인생」,「비밀」,「고독」(IVP 역간) 등이 있고, 「인간 장소의 심리학」(보이스사),「귀를 핥으시는 하나님」(불꽃),「선물의 의미」(컨콜디아사) 등이 국내에 소개되었다. 미국의 게리 콜린스 박사가 폴 투르니에의 생애와 사상을 총망라하여 그의 심리학, 신학, 방법론, 통찰력을 집대성하여 「폴 투르니에의 기독교 심리학」(IVP)을 출간한 바 있다.

 

 

오수미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를 졸업하고 IVP편집부에서 근무했다. 번역서로는 세렌디피티 성경공부 시리즈 「자아상」과 「스트레스 탈출」(엠마오), 「현대 사상과 문학의 이해」(예영커뮤니케이션)등이 있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은 지 20년이 넘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내게는 몇 권의 양서를 소개해 주어 삶의 방햐아을 바꿔 준 웨슬리 웬트워스(Wesley Wentworth)라는 미국인 친구가 있는데, 나는 이 책을 1983년 성탄절에 그에게서 선물로 받았다.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이 밀려오고, 큰 위로와 격려를 받는다. 투르니에는 실제 고아로, 나는 심리적 고아로 성장했다. 우리는 많은 축복을 박탈당했고 수많은 좌절을 경험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 안에서 닥쳐오는 역경에 창조적으로 반응할 수 있었다. 다른 많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투르니에를 내가 동일시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나의 은사인 게리 콜린스(Gary Collins)박사는 「폴 투르니에의 기독교 심리학」(한국 IVP역간)에서, 투르니에의 가장 큰 공헌은 심리학과 성경적 기독교의 통합, 인격적 관계의 중요성을 상기시켜 준 것, 삶을 위한 실제적인 지침을 제시한 것이라고 요약한 바 있다. 여러분은 이 책을 읽으며 이를 확인하게 될 것이고, 말년까지 계속된 그의 지적 호기심과 독서량, 넓은 교제권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저자가 서거한지 20년이 가까워 오는 해에 투르니에의 마지막 작품인 「고통보다 깊은」이 우리말로 출간되어 그의 심오한 지혜를 여러분과 나누게 된 것을 기뻐해 마지않는다. 특별히 프랑스어 원본에서 정확한 번역으로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은 오수미 씨에게 독자를 대신해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내과 의사와 상담자로서의 그의 생애와 사역은 '인격 의학'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바, 20여 권이 넘는 투르니에의 수많은 저서는 19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지금도 전 세계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신이 마음을 열고 이 책을 읽어내려 간다면, 왜 투르니에게 "20세기 기독교가 가장 사랑한 상담자"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관심사와 직업적인 배경이 무엇이건 간에, 읽은 내용을 당신의 삶에 적용시키는 가운데 영적 진보와 성숙의 기쁨을 맛보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정동섭 교수(Ph. D.) |가족관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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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보다 깊은 - 고통에 대한 창조적 반응과 온전한 성숙

Creative Suffering

폴 투르니에 지음/ 오수미 옮김/ 신국 변형 양장 256면/ 9,000원

 

최고의 화가가 남긴 마지막 그림 한 점, 천재 음악가의 매혹적인 선율, 수백만 부가 팔려나간 소설…. 때로 우리에게 무한한 감동을 선사하는 위대한 예술 작품들이란 실은 아주 사소하고 단순한 진리를 품고 있을 때가 많다.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화려한 수사나 강변이 아니라, 너무나 평범하고 단순해서 여염집 아낙의 입에서라도 흘러나올 수 있는 그런 말들일 때가 많은 것이다. 이 책 역시 평범하고 단순한, 그래서 오히려 잊고 있을 때가 많은 진리 하나를 침착하고도 집요한 변증을 통해 보여 준다. 여기서 내게 중요한 것은 투르니에가 증거하는 그 진리의 단순성이 아니다. 투르니에의 주장대로라면 나는, 내 삶을 한층 업그레이드하고 그렇게도 소원하는 인격의 성숙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숱하게 널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 몰라라 해 왔다는 것이다.

 

어쩌면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이야기라며 공감할 수 있는 ‘고통’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그렇다고 과거에 고통 받았거나 현재 고통 받고 있는 독자들에게 위로나 격려라는 단순한 처방을 제시하지 않는다. 일시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도 모를 처방 대신 저자는 고통의 의미를 입체적으로 탐색하며 규명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고통을 바라보는 객관적 시각을 선사해 준다. 말하자면 고통에 대한 근본적 항체를 기를 수 있도록 원기를 회복시켜 주는 보약 같은 책이라고 할까.

투르니에가 내린 결론은 우리 인생을 변화시키는 것은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고통에 반응하는 우리 태도라는 것이다. 고통 그 자체는 창조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고통 없이는 창조적인 사람이 되기 어렵다. 모든 상실과 고통은 창조성을 캐내기 위한 특별한 기회다. 이 특별한 기회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고통과 상실을 받아들이는 개인적인 용기가 필요하다. 삶에서 경험하는 불행한 일들 가운데는 그 어느 것보다 가혹해서 받아들이기가 더욱 어려운 일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고통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은 다른 사람의 재촉에 의해 가능하지도 않다. 그것은 완만한 내면의 변화에 의해 가능한 것이며, 투르니에는 결론적으로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고통을 받아들이도록 요구하실 수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 삶의 시련을 겪을 때 그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돕는 도구는 권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투르니에는 한 가지 주의할 점을 짚고 넘어간다. 고통이 인격의 성숙을 위한 특별한 기회라면 고통은 과연 행운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사람의 유익을 위해 고통을 주신 것인가? 이는 고통 속에 있는 우리가 쉽게 오해하고 지나치게 예민할 정도로 반응할 수 있는 문제일 것이다. 투르니에는 여기서 관계와 원인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상실과 창조성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긴 하지만 그것이 결코 인과 관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이 성숙하고 발전하고 더욱 창조적으로 변했다면, 그것은 상실 자체 때문이 아니라, 시련 앞에서 적극적으로 반응했기 때문이며 올바르게 싸우고 도덕적으로 극복했기 때문이다. 창조적 위인들의 과거사에서 대부분 큰 시련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거꾸로 모든 시련 뒤에 창조적 회복이 이어진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인생사에서 “더 이상은 못 참겠어!”, “이대로는 안 돼!”라는 절규를 이끌어내는 고통의 이유들 역시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 투르니에의 주장대로라면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다시 말해 그리스도를 더욱 닮아갈 수 있는 기회 역시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널려 있는 셈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구하며 그 사랑에서 힘을 얻어 그 기회를 완전한 내 것으로 만드느냐 마느냐는, 완전히 나에게 달려 있다. ‘고통’은 행운이든, 기쁨이든, 대박이든, 우리가 뭐라 이름 짓든 간에 우리 인생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다른 수많은 기회들 중의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고통에 대해 터무니없이 슬퍼할 필요가 없을 것이며, 그래서 오히려 특별한 고통을 ‘하나님의 사랑에 힘입어’ 쿨(cool)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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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이 창조성과 성숙이 되는 연금술 

 

개인적으로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은 고통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는 나 자신 때문이었다. 나 자신이 질병이라는 고통이라는 것 속에 있기에 이 책의 의미는 남다르게 다가 왔다.

고통 속에 담겨진 뜻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고통은 어떻게 다루어져야 할까

 

그리고 고통은 어떻게 승화 될 수 있는지 등등의 문제들이 나를 옥죄여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제들에 대해서 많은 기독교 서적을 읽어본 결과 고통에 대해 찬양의 입장 혹은 거의 위로 투의 둘 중에 하나의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왜 그런지? 나에겐 여전히 의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명쾌하게 풀어주는 책들은 없었다. 다만 견디라는 식의 어투든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고통은 감사하게 받아 들어야 한다든지의 결과적인 입장에서만 책이 쓰여져 있기 때문이었다.  암묵적 윽박을 지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참아~ 혹은 '힘내~. 라는 이상의 메시지를 찾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고통을 통해 빚어내진 결과적인 산물보다 나에겐 그것을 고통을 통해 빚어내어가는 과정이 현실적로 필요했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친절하게 이야기 해주고 있었다. 그 고통이라는 문제 속에만 파묻혀 있는 것이 아닌 그 것을 가지고 난 좀 더 큰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이 책은 내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한 정말 좋은 안내서였다. 읽으면서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폴 투르니에의 전 인생을 관통하는 시선과 그에 관련된 전문가적 지식 또한 그 자신의 경험까지 그의 많은 생의 선물들로 빚어낸 그의 작품이었다. 고통보다 깊은 무언가 라는 질문에는 그것이 바로 창조성이라는 이라는 것으로 우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창조성 모습은 이 책속은 많은 실례들이 나열되어있었다. 그 실례들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이었고 그 창조성으로 연결되는 고통의 연금술 과정을 그는 차근차근 이야기 해 나갔다. 창조성은 상실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온다. 하지만 반드시 유념해야할 점은 이 상실자체가 창조성과 필연적인 인과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상실이 있으면 반드시 창조성이 온다는 건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잘못된 상식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상실은 창조성을 잉태할 수 있을까? 그건 바로 상실에 반응하는 본인의 반응이다. 그렇기에 고통이라는 것이 와도 어떤 사람은 오히려 더 큰 상실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에 빨려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상실과 고통에 올바르게 싸우며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은 창조성이라는 성장의 열매가 맺는 것이라는 것이다.  고통과 창조성에는 관계가 있다. 그 관계는 인과 관계가 아니라 연속의 관계이다. -p65-

 

그 상실에 반응하는 우리들이 기억해야할 것들이 있다. 그것은 사랑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사랑이 없는 상실 은 바로 퇴보를 의미한다. 상실과 시련 은은 우리들에게 변화를 요구한다. 그 변화가 좋은 방향이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그 도전에 우리는 움직여야한다. 바로 어떤 삶의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이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창조성이 되기도 하고 퇴보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 삶의 방향성이 믿음이라면 그 창조성은 진정한 인격적인 성장과 삶의 의미와 목표를 발견하는 놀라움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고통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이라는 '악' 속에서 난 진정으로 당신의 선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생각 했다.

고통과 즉시 보이는 선이 아닌 '이루어짐' 속에서 난 하나님의 깊은 경륜을 조금 보는 듯했다. 우리들을 가장 온전케 하시며 당신을 닮을 사람이 되길 원하시는 당신의 한없는 사랑과만지심 그리고 신실함까지 나에겐 이 책속에서 말하는 것이든 단순한 저자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았다. 이 책의 이야기들 속에서 진리가 우리는 진정 자유케 함을 느꼈다. 이 책의 많은 유익들을 많은 고통을 격고 있는 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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