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열심 : 존 파이퍼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God's Passion for His Glory)
- 존 파이퍼(JOHN PIPER) & 조나단 에드워즈
21세기 미국 복음주의 거장 존 파이퍼가
미국 최고의 영적 거인 조나단 에드워즈에게
30년간 영적 멘토링을 통해서 배운 이야기 공개!
현재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지도자 존 파이어를 형성한 영적 멘토는 바로 18세기 영적 거인 조나단 에드워즈였다. 존 파이어는 자신의 지난 30년간의 삶과 목회와 신학이 조나단 에드워즈의 생애와 신학을 통해서 어떻게 영향을 받게 되었는지를 이 책의 제 1권에서 감동적으로 말해준다.
이 책의 제 2권에는 존 파이어의 사상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조나단 에드워즈의 명저「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의 원문과 존 파이어의 상세한 해설적 각주가 담겨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이 책은 성경과 이성의 추리를 통해 하나님의 최고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임을 분명하게 밝힌 교회사 최고의 걸작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는 말의 의미를 명쾌하게 밝혀 주는 교회사 최고의 명저!
존 파이퍼
존 파이퍼(John Piper)는 미국 미니애폴리스의 베들레헴교회의 목사이자 탁월한 영성작가이기도 하다. 자신의 비좁은 경험세계만을 손쉽게 파고들면서 독자들의 마음에 얄팍한 위로를 남발하는 일부 영성작가들과는 궤를 달리하며, 타협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에 대한 열정을 간직한 하나님의 사람이다. 복음에서 떠나기를 호리는 현대 문화의 유혹을 직시하면서 어떻게 하면 현대인들을 하나님의 영광에 무릎 꿇게 하고,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께로 회심케 할 것인가에 집중하는 말씀사역과 저술사역을 하고 있다.
휘튼 칼리지(Wheaton College)와 풀러 신학교(Fuller Theological Seminary)를 거쳐 뮤니히 대학(University of Munich)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베델 대학(Bethel College)에서 6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노엘 파이퍼와 결혼하여 다섯 자녀를 두었다.
그는 베스트셀러가 된 여러 저서들을 집필했는데, 대표작으로 고전으로 평가받는 「하나님을 사모함」(Desiring God), ECPA(미국 복음주의출판협의회) 금메달 수상작으로서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한 연구서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God`s Passion for His Glory) 등이 있다.
'기독교 희락주의자'라는 그의 별명답게 「하나님의 기쁨」 (은성), 「여호와를 기뻐하라 」(생명의 말씀사), 「지상에서 가장 큰 기쁨」 (좋은씨앗) 등 기쁨에 관한 탁월한 저서들이 번역되어 있으며 그 외에도 「묵상 1, 2, 3, 4 」(좋은씨앗), 「금식기도」 (생명의 말씀사), 「하나님의 방법대로 설교하십니까」(엠마오) 등의 번역서가 있다.
이 외에 잘 알려진 「열방을 향해 가라」(좋은씨앗)는 선교를 주제로 한 탁월한 책이다. 신학자와 목회자의 경험을 두루 가지고 신앙의 한 부분에 편중되지 않고 여러 부분에 균형되고 깊이 있는 관심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그의 진정한 장처일 것이다.
조나단 에드워즈
(1703-1758)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상가요, 철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지성은 너무나 심오하고 강하여 아직도 해마다 그의 업적에 관한 논평과 저술이 간행되고 있다. 그러나 죠나단 에드워즈는 그러한 사상가 및 철학자로서의 명성보다 영어권 세계에서 가장 지적이고도 영적인 신학자요 대부흥사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생애의 가장 큰 목적은 그리스도를 통해 철저하게 하나님을 알고 찬미하는 일이었다.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으로 하여금 그러한 삶을 살도록 각성시키는 일에 전력하였다.
죠나단 에드워즈가 메사추세츠 노샘프턴에서 목회를 시작했을 때 마침 뉴잉글랜드 전역은 처음의 청교도 정신으로부터 차츰 이완되어 영적으로 쇠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한 시대적 흐름에 저항하면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신앙회복과 거짓 종교, 즉 이단의 궤멸을 주창하며 영적 대각성 운동을 펼쳐 나갔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뜨거운 마음을 인정하시어 역사적 대부흥의 길을 여셨다.
그러나 인간적 안목으로는 아무리 보아도 그의 일생은 비극으로 끝이 났다. 즉, 노샘프턴 주민들에 의해 그는 사역지에서 쫓겨나야만 했고, 프리스톤 신학교의 총장직을 맡은 지 불과 두 달만에 열병으로 인해 삶을 마감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55세의 나이로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신학적 업적과 대부흥을 주도했던 뜨거운 설교들은 2백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꺼지지 않는 불길로 남아 있다.
탁월한 신학적 이해력과 각성에 대한 직접적 체험론으로 인해 저술에 있어서 일정한 제한을 두었지만, 그는 부흥신학의 제 일인자로 인정받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백금산
고려대를 나와 총신대신대원(M. Div.)과 총신대학원(Th. M.)에서 공부했다. 미전도종족 선교와 대학가 복음화의 꿈을 가지고 서울 신촌에서 예수가족교회를 개척하여 섬기고 있으며, 한국교회의 진정한 부흥과 개혁을 갈망하여 도서출판 부흥과 개혁사를 시작했다. 또한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의 바른 목회와 깊이 있는 목회를 돕기 위해 '평공목(평생공부하는 목회자모임)'을 인도하고 있다.
저서로는 「성경, 이렇게 읽읍시다」「신앙전기를 읽으면 하나님의 일하심이 보인다」「조나단 에드워즈처럼 살 수는 없을까?」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리처드 백스터의 회심」「캠퍼스를 태운 하나님의 부흥을 말한다」등이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명저「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과
존 파이퍼의 탁월한 해설과 백금산 목사의 정확한 번역이 만나서 이루어낸 우리 시대의 새로운 고전을 만나보십시오.
■ 목차
역자 머리말
저자 서문
감사의 글
제1권 존파이퍼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
1장 왜「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이라는 옛 고전을 발간해야 하는가
개인적이며 공적인 중요성
1 조나단 에드워즈의 책이 주는 공적인 중요성
2 조나단 에드워즈 책의 발간이 주는 개인적 의미
2장 조다단 에드워즈의 생애와 사상
비현대적인 복음주의자로부터 배운다
3장 하나님과 사랑에 빠진 지성인 조나단 에드워즈
조나단 에드워즈와 나의 영적 성숙 과정
4장 조나단 에드 워즈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과 문화 변혁
조나단 에드워즈의 사회 윤리관
제 2권 조나단 에드워즈의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
조나단 에드워즈의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을 읽는 방법 안내
이 책에서 사용된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판본에 대한 안내
서론: 용어 설명
1부 하나님의 천지 창조 목적에 대한 이성적 고찰
1장 이성이 말하는 것에 대한 일반적 관찰
2장 이성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것
3장 하나님은 자신을 천지창조의 최고, 최종 목적을 제시하심
4장 하나님이 자신을 창조의 최종 목적으로 삼으시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에 대한 몇 가지 반론에 답함
반대 1 에드워즈의 견해는 하나님이 자신의 완전함을 위해서 피조물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반대 2 하나님은 이기심을 가지고 모든 것을 하시는가?
반대 3 하나님이 사람들의 찬양과 박수를 받기 위해서 사역을 하신다는 것은 천박한 것이 아닌가?
반대 4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행하시기 때문에 피조물들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의무는 별로 없다
2부 하나님의 천지 창조 목적에 대한 성경적 고찰
1장 성경은 하나님 자신이 천지창조의 최종 목적이라고 말한다
2장 이 문제에 대한 바른 논증 방법에 관하여 성경에서 발견한 몇가지 요점을 제시함
3장 하나님의 영광이 창조의 최종 목적임을 보여주는 성경 본문
4장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천지를 창조했음을 보여 주는 성경 본문
5장 피조물에게 선을 나누어 주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최종 목적임을 보여 주는 성경 본문
6장 하나님의 사역의 목적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이름이 의미하는 것
7장 천지창조의 최종 목적은 하나이며 그 하나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보여줌
현재 미국에서 가장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지도자 존 파이퍼를 형성한 영적 멘토는 바로 18세기 영적 거인 조나단 에드워즈였다. 존 파이퍼는 자신의 지난 30년간의 삶과 목회와 신학이 조나단 에드워즈의 생애와 신학을 통해서 어떻게 영향을 받게 되었는지를 이 책의 제1권에서 감동적으로 말해 준다.
존 파이퍼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
이 책은 조나단 에드워즈가 쓴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이라는
논문에 시작을 두고 있습니다. 에드워즈를 영적스승으로 모시고 있다는
존 파이퍼는 오랜 시간동안 조나단 에드워즈와 또한 그의 저작들을 살피고
고찰하며 얻은 결과들을 토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래서 정확히 말하자면 이 책은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의 해설집 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 합니다.
저처럼 신학적으로 무지한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좋은 글이라고 해도
까만 것을 글씨요 흰 것은 종이 밖에 더 되겠습니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읽다가 지쳐버릴 사람들을 위해 존 파이퍼는 해설을 달아주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에드워즈의 걸작을 잘 이해할 수 있을지 인도를 해주는 셈이죠.
존 파이퍼는 친절하게도 문단마다 번호를 달아주고 제목을 달아주어서
이해하기가 수월하게 도와주고 있습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순수 존 파이퍼의 글이라고 할 수 있는 1권은 조금 쉽게 소화해낼수 있어서 많은 은혜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2권 그러니까 본래의 글로 넘어가서였는데요.
철학적사고와는 너무도 동떨어져 살아오던 저는 용어의 이해조차 어려울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자...
이 마음 하나 가지고 끝까지 달렸죠
100%는 커녕 50%도 다 소화해내지 못한 감이 있긴 합니다.
특히, 조나단 에드워즈의 방대한 양의 성경 각주는 그거 찾느라 한참을 성경을
뒤적거리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을 읽어가면서 스스로 많은 것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진리에 대해 일정한 수준 이상만큼 눈을 뜨고 있지 못하다면 아무리 놀라운 신적인 체험을 하더라도 결코 그것이 나의 삶에 영향력을 십분 발휘하기가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성경이나 여러 신앙.신학서적을 대하는 눈을 조금 바꿔주었다는 것입니다.
가장 큰 수확은 이 세상의 창조되어진 목적에 대해서 어느 정도 고찰하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존 파이퍼가 인용한 소요리 문답 1문답의 답을 다시 풀어놓은 글을 올리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함을 통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이 최고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최고로 즐거워 할 때이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불후의 명작 <하나님의 천지 창조 목적>은 왜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는가? 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는가? 라는 물음에 대해 2000년 교회사를 통틀어 가장 감동적이고 가장 깊이 있는 성경적, 이성적 답변이다. 하나님은 무엇인가 부족하기 때문에 부족을 채우기 위해서 피조물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자신의 충만한 영광을 피조물에게 나누어주기 위해서 피조물을 창조하셨다. 즉 하나님은 자신의 충만한 지식과 사랑과 기쁨을 우리 인간에게 나누어주기 위해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의 최고 목적, 최종 목적은 바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의 최고 목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과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서로 다른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은 인간의 최고 행복인 동시에 하나님께 최고로 영광을 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최고로 많이 알 때, 최고로 영광을 받으신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할 때, 최고로 영광을 받으신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최고로 기뻐할 때, 최고로 영광을 받으신다.
18세기 미국 최고의 영적 거인 조나단 에드워즈의 이러한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에 대한 설명은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의 복음주의 지도자 존 파이퍼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존 파이퍼는 인생의 페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주는 이 책을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소개해주기를 열망한다. 그래서 에드워즈의 명저에 대한 상세한 각주와 탁월한 소제목 붙이기를 통해서 현대 독자들의 에드워즈 읽기를 도와주고 있다. 또한 존 파이퍼는 에드워즈의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 분량과 비슷한 정도로 에드워즈가 누구이며, 에드워즈가 왜 오늘날 교회에 꼭 필요한 인물인가를 소개한다.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에드워즈를 만났으며, 지난 30년 동안 자신의 영적 멘토 에드워즈를 통해 자신의 삶과 신앙과 신학과 목회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존 파이퍼는 에드워즈의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에 나타난 생각을 한마디로 ‘기독교 기쁨주의 또는 기독교 행복주의'(Christian Hedonism)라는 말로 현대화시켰다. 기독교 기쁨주의의 핵심은 ’우리가 하나님을 최고로 기뻐할 때 하나님은 최고로 영광을 받으신다‘ 것이다. 또한 이것은 저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의 제1 문항 “인생의 최고 목적이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 “하나님의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라는 답변에 대한 존 파이퍼식의 해석인 셈이다. 존 파이퍼의 이러한 기독교 기쁨주의의 원천이 바로 조나단 에드워즈의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이다.
에드워즈의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가장 탁월한 성경적, 철학적 분석이기 때문에 내용이 심오하다. 또한 에드워즈의 18세기 문체로 되어 있어 영어 읽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그래서 내용이 좋기는 하지만 그동안 영어권 사람들에게도 쉽기 접근하기 어려운 책이었다. 그러나 존 파이퍼의 친절한 해설을 달아 출가된 원서는 1999년 미국복음주의 출판협회(ECPA)의 금메달상을 받을 정도로 객관적인 우수성을 인정받은바 있다. 또한 이번 존 파이퍼의 뛰어난 해설과 더불어 백금산 목사의 정확하고 믿을만한 번역으로 이번 조나단 에드워즈의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 한국 번역판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우리 시대의 큰 행복가운데 하나다. 특히 이번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은 2003년 조나단 에드워즈의 300주년 탄생 기념작 제1탄으로서 앞으로 예일대 결정판 조나단 에드워즈 전집 26권을 한국교회에 소개함으로 한국교회에 조나단 에드워즈 연구의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어주고자 하는 부흥과개혁사의 야심작으로서 조나단 에드워즈 이해의 입문서 역할을 하고 있다. 독자들은 이 한 권의 책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새로운 신앙의 여정을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 현대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불확실성이라는 점이다. 급변하는 정보와 총체적인 사회변화 속에 희생되는 건, 개인의 실존 뿐.. 사회는 발전하지만 개인은 병들어 간다. 세상이 주는 감각적 자극과 가치체계의 희생물로 하루하루를 무의미한 쾌락과 재미속에서 시간을 죽여가는 존재들 속에 나타나는 결과는 고통과 허무뿐이다. 익숙해진 실용적, 쾌락적, 감각적 황금만능주의적 삶! 그 누구가 강요하지 않아도 그렇게 이끌려 가는 사람들.. 종교적 욕구를 만족시키고자 이방신을 좇아 우상을 좇아 혼합된 종교를 찾아다니는 인생들.. 이 책은 인생의 무의미함속에서 허무감과 좌절감을 느끼는 청년들과 헛된 망상속에서 잘못된 시간의 투자로 인생을 낭비하는 4-50대 장년들에게 강력한 빛을 던져주는 책이다. 나의 사랑하는 딸을 보듬어 주며 딸이 아플때 온몸으로 감싸안고 눈물흘리는 나의 부성애가 단지 동물적인 것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너무도 비참하다. 그 숭고하고 고귀한 사랑은 하나님으로 부터 온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을 배우고 싶은 사람은 이책을 읽어라! 천천히 읽어라! 되씹으며 읽어라! 시대는 변해도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신할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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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가볍고, 실용적인 것들을 추구하는 현대인에게, 특히 현대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에게 충격과 큰 도전, 그리고 성경의 맥을 뚫는 듯한 깊이를 선사해 주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먼저 존 파이퍼라는 미국에 영향력있는 신약학자이면서도, 목회자이다. 이 책은 크게 두권으로 되어 있다.
1권은 그가 자신의 신학과 사상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조나단 에드워드라는 한 사람을 소개하였고, 2권은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면서, 깊이있는 신학적 통찰력을 제시해주었던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이라는 조나단 에드워드의 책을 제시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조나단 에드워드의 삶과 글을 통한 도전과 논리의 탁월함 뿐만 아니라 피상적으로 또는 막연하게 알고 있던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영광스러운 주제임을 확연히 알게 되었다. 존 파이퍼는 현대 복음주의의 약점이 ‘가벼움’에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삶에 바로 관련이 없거나 유익이 없으면 관심이 없는 실용주의적 사고와 생각하기 싫어하는 현대인들의 특징이 복음주의에도 바로 스며들었음을 말한다. 뿌리가 없으며, 교리나 성경의 지식과 깊이있는 사상이 전수되지 못함을 안타까워 하며 깊이를 회복하고, 바른 신앙의 계대에 대한 우려를 높이 표현하고 있다. 1권에는 존 파이퍼가 직접 자신의 목소리로 조나단 에드워드를 소개한다. 그의 전기를 소개하면서 자신이 영향받은 것과 배운 점들을 소개한다. 나는 백금산 목사님의 ‘조나단 에드워드처럼 살수 없을 까’라는 책을 읽으면서 3년 전쯤에 많은 도전과 나도 함께 그와 비슷한 결심문을 만들어 보면서 나의 삶에 더한 열정을 점화한 적이 있었다.
지금 이 책을 읽으면서도 에드워드의 삶을 통해 그의 ‘삶의 집중력’을 배울 수 있었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부분, 하나님앞에 가장 섬길 부분이 무엇인가를 발견해서 최선의 삶으로 드린 점은 참 위대해 보였다. 또한 자신의 전인격(지,정,의)을 주님 앞에 드리는 신앙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가 지적인 성경연구의 깊이와, 감성이 많이 필요한 기도와 부흥에의 연구, 그리고 삶의 전체에 특별히 의지를 드려서 결심하고 하나님 앞에 집중하고, 자신의 삶을 점검하고 나아간 점은 참 본받을 만 하다. 그래서 그는 영적 멘토를 가질 것을 또한 직간접적으로 도전한다. 자신이 어깨를 딪고 일어설만한 단단한, 그리고 깊이있는 영적 멘토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나에게도 몇분의 멘토로 여기는 분들이 있는 데, 그들의 삶과 사상을 통해 더 깊은 것을 받으며, 내 삶에 적용할 것을 함께 꿈꾸게 되었다. 2권에는 조나단 에드워드의 철학적, 성경적 탁월함과 깊이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존 파이퍼는 어려워서 독자들이 따라오지 못할까봐 곳곳에 각주를 달며 설명해 놓았다.
이런 깊이있는 책을 친절한 안내자가 함께 오르도록 도와주니 어려운 등반과 같은 독서여정이라도 올라갈 만 하였다. 에드워드는 먼저는 이성적인 고찰을 한다. 왜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목적인가를 설명하고, 성경으로 증명하기 전에 우리의 이성과 철학적 논증으로도 최고요, 최종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이다. 이 부분은 내가 철학적 훈련이 덜 되서 그런지 좀 어렵게 느껴졌다. 성경을 통한 고찰을 통해서 성경에 수많은 예증들, 최고요 최종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임을 나타내 주고 있다. 하나님이 영광이 부족해서 피조물을 통해서 받으시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너무나 넘쳐서 그 영광을 나누길 원하신다는 것이다. 더욱 확연히 알게 된 하나님의 영광에 관한 지식은 4가지 cycle(순환)같이 존재하는 데, 첫째는 하나님의 내적 탁월하심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탁월하신 성품들(무한하신 사랑, 전지, 전능, 공의로우심...)은 그 안에서 완전하시지만 그 풍성하심을 나누시길 원하시기에 외적 발산, 발현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두 번째인데 하나님은 그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 영광의 풍성하심을 알고 교제할 수 있는 인격적 존재인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다. 세 번째는 그 창조된 인격적 존재인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의 내적, 외적 탁월하심을 알게 되고, 맛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곧 일반계시와 특별계시에 의해 알고, 맛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네 번째는 그 영광을 맛본 존재는 다시 그 영광을 창조주 하나님께 돌려드린다. 이것은 찬양, 감사, 기도, 헌신 등을 통해 기꺼이, 자발적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드린다. 그로인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분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고 그 하나님을 알고, 맛보는 것으로 인해 그분으로 인해 나의 기뻐함과 즐거워함이 커지며, 그로인해 하나님은 최고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이 cycle(순환)은 성경을 보는 나의 관점, 즉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 어떠한 한가지 성품, 사역이 가장 우선되다고 말하는 자체가 무의미해 진 것이다. 한가지가 성품이나 사역자체로 좁게 정의되는 하나님이 아니라, 무한히 풍성하신 하나님,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바라보게되어 나의 비전과 시각이 따라서 커진 느낌이다. 좀 어렵게 느껴지며 읽는 데 쉽게 넘어가지는 않지만 나를 생각하게 하고,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묵상해 봄으로 내 인생에 사명에 대한 관점도 그로인해 더 풍성해 진 것 같다. 그분의 영광을 ‘더욱더 풍성하게 나누는 것’또한 내게는 하나님 주신 사명이요, 이 책을 읽게 하신 목적이 아닐 까 생각해 본다. 윤광희님 서평
***
이 책은 두권의 책으로 된 한권의 책이다. 존 파이퍼가 조나단 에드워즈를 만나게 된 것과 그를 통해 자신의 신학과 삶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과 조나단 에드워즈의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이 같이 실린 책이다. 존 파이퍼는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의 내용이 어렵기 때문에 그가 직접 각주를 달아가며 자세히 설명해주기도 한다.
성경의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창조기사를 보게된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창조주를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세상을 창조하셨는가? 만약 세상을 창조하시지 않았다면 그의 능력은 그저 썩히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창조주가 피조물을 의지하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얘기도 나올 것이다. 그렇기에 천지창조를 쉽게 말할 수 없는 의문점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어려운 난제를 그저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려움을 풀기 위해 우리의 사고를 활용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기에 이 책을 추천하는 바이다.
하나님의 모든 사역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에서 비롯되었다고 에드워즈는 말하고 있다. 그러면 하나님은 굉장이 이기적인 분이될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기쁨은 우리 인간과 별개의 것이 아님을 말한다. 그분의 기쁨이 우리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피조세계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하였을때 실제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다. 이 부분은 굉장히 중요하다.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의지하는 약간은 불완전한 존재가 아닌가라고 도전해오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드워즈는 그렇지 않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도 하나님이 그것을 아시게 하시고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이기에 하나님은 피조물에게 의지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에드워즈는 깊은 사고를 한 인물이다. 비록 그의 글이 난해하고 굉장히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과연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신자라면 이 책은 당신에게 엄청난 도움을 줄 책이 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 될 것이며, 하나님 중심의 사고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하기에 일독, 아니 삼독,사독,오독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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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파이퍼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
& 조나단 에드워즈의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존 파이퍼(John Piper)| 백금산 역 | 부흥과개혁사
필자가 처음으로 존 파이퍼의 글을 접한 것은 그의 ‘열방을 향해 가라.”라는 선교에 대한 책이었다. 그는 선교는 하나님의 영광을 즐거워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는 것이라는 것이라고 하였다. 헌신, 자기 희생과 같은 드리기 싫은 것을 인상 쓰며 억지로 하나님께 가져 다 바치는 것이 선교인 줄 알았던 시기에 그의 이러한 생각은 너무나 새로운 것이었다. 선교가 자기 희생이 아니라, 즐거움이라니 말이다.
조나단 에드워즈와 존 파이퍼
기독교 기쁨주의 혹은 쾌락주의로 널리 알려진 목회자요, 신학자인 존 파이퍼는 그의 많은 저서들에서 에드워즈에게 큰 빚을 졌다고 한다. 도대체 에드워즈의 어떠한 점이 그에게 그렇게 큰 영향을 준 것일까? 이러한 물음에 대한 해답은 ‘에드워즈의 천지창조의 목적’에 드러나 있다. 그는 이 논문에서 인간이 하나님을 무한히 즐거워하며 기뻐할 때, 하나님은 무한히 영광을 받으신다 주장을 통해 모든 부수적인 인생의 목적들 가운데, 궁극적인 목적은 오직 단 하나, 하나님의 영광뿐임을 논증하고 있다. 그의 이성적이며 철학적인 논증은 대단히 치밀하며 창세 전에 숨겨진 비밀을 밝혀내는 기쁨을 나에게 안겨 주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는 것
많은 크리스챤들이 자신의 신앙을 고백할 때,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 드립니다.”라고 한다. 물론 이것은 그들의 순수한 마음이라 믿는다. 그러나, 대분의 이러한 경우에 있어서, 그들은 마치 자신의 공로가 하나님의 영광을 증폭시킬 수 있으므로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할 수 있다는 인간적인 생각일 때가 많은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인간을 만드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흘러 넘치는 영광과 은혜로 무에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만드심으로 자신의 영광과 존귀로 우리를 관 씌우시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계셨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신 목적에 대한 해답
“도대체, 하나님은 인간을 왜 만드신 것일까?”에 대한 자신만의 고민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져보았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여기에 100% 완벽한 답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드워즈는 이 책에서 이성적인 최대한의 역량으로, 또한 결국 성경의 예리한 관점으로 하나님의 천지 창조의 목적을 밝히고 있다. 즉, 하나님은 자신을 천지창조의 최고, 최종 목적으로 제시하셨다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흘러 넘치는 기쁨에 의하여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에 대한 4가지 반론과 여기에 대한 에드워즈의 답변은 우리에게 베일에 싸인 의문들을 명쾌하게 해결해 주며,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 겸허한 마음을 가지게 한다. 이러한 반론은 늘 나에게도 구름같이 뿌연 상태로 가리워진 부분이어서 여기에 제시하고자 한다. 반론은 아래와 같다.
반론1) 하나님이 자신의 완전함을 위해서 피조물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반론2) 하나님은 이기심을 가지고 모든 것을 하시는가?
반론3) 하나님이 사람들의 찬양과 박수를 받기 위해서 사역을 하신다는 것은 천박한 것이 아닌가?
반론4)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행하시기 때문에 피조물들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의무는 별로 없다.
이 반론들에 대한 에드워즈의 성경적인 해답은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인본주의적인 성경관에 묶여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비천한 피조물로써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와 지식을 가지게 해 주리라 확신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영광’의 의미
이 영광을 에드워즈는 4가지의 단계로 말한다. 비유적으로 들자면, 월드컵 축구에서 태극 전사들이 가진 축구를 탁월하게 하는 기술은 그들의 탁월한 축구의 능력임으로 이것은 그들에게 영광이 된다. 또한, 그들의 이러한 능력이 다른 나라들과의 축구 경기에서 드러날 때, 그들의 능력이 운동장에 모인 사람들과 TV를 시청하는 사람들에게 드러날 때, 이것은 그들에게 영광이 된다. 또한, 경기장에 모인 사람들과 시청자들이 이 광경을 보고 태극 전사들의 내적인 탁월함의 발산을 목격함으로 축구 선수들의 탁월한 능력에 대한 지식을 가지게 될 때, 이것이 그들에게 영광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 한! 민! 국!”하며 축구 선수들을 향하여 큰 함성과 노래와 응원으로 그들을 노래하며 격려할 때, 축구 선수들에게 영광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비유는 하나님에게 동일하게 적용 될 수 있다. 하나님의 내적인 탁월함은 그 분의 창조의 능력, 영원하심, 거룩하심 이므로 이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이러한 탁월한 능력이 외부로 비추어지고 빛날 때, 이것은 그의 영광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의 전달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은혜를 의미한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본 사람들은 그에 대한 탁월한 지식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게 된다. 이것이 영광의 본질이다.
하나님의 영광의 충만함이 하나님께 가장 큰 영광이 된다
하나님께 도대체 무엇으로 영광을 돌릴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우리 모든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숙제와도 같은 것이다. 사회의 대단한 영향력 있는 위치에 올라, 권력과 명예를 얻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인가? 부동산과 재테크로 물질을 많이 소유하고, 헌금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인가? 하나님의 교회에서 사역을 많이 하면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인가? 왜곡되고 일그러진 하나님에 대한 관점이 늘 문제다. 이러한 부수적인 것들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것은 최종적인 인생들의 목적, 즉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고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며, 이러한 동기를 가지고 행하지 않는 모든 것들은 인간적인 것들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영광을 경험하고 있는가?
나는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으로 즐거워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즐거워하며 기뻐하며 그 지식이 가장 고귀한 것이므로, 날마다 그 분을 만나기 위해 지성소로 나아가고 있는가? 오늘도 분주한 지하철과 연구실에서, 그리고 나의 삶의 중심부에서 세상의 중심부에서 하나님에 의해서 지음 받아, 하나님의 사랑으로 감동되어, 오직 그 분을 향한 사랑의 노래로 무한히 즐거워 하고 있는가? 일독을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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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되고 유일하게 선포되어야 할 진리, 하나님의 영광!
이 책은 지금까지 제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읽기 힘든 책 중의 하나였습니다. 책을 읽는 가운데 몇 번이나 포기하려 했는지 모릅니다. 당최 이해가 가야 말이지요. 이것을 읽기 전 선행해서 읽으면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찾아볼까? 좀 더 후에 읽는 것이 나을까? 하는 생각들이 수없이 들었지만 그냥 계속 읽어나갔습니다.
물론 책의 내용이 무척 형이상학적이어서 어려운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정말 어렵게 느낀 것은 글 자체보다도 행간에 숨어있는 의미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이 주제에 대해 거의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혹 생각해 본 적이 있다하더라도 너무나 얄팍했었기 때문에, 이 책의 깊이는 제 모든 지식과 경험을 정말 우습게 초월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멘토, 특히 독서멘토가 얼마나 필요한지 뼈져리게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한 번이라도 더 들어본 것이 나중에 이해하는 데에 그나마 좀 더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읽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좀 더 정확한 이유는 1권에서 존 파이퍼가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에서 인용한 그의 생각 때문에 계속 읽고자 하는 열망이 생겼습니다.
초보단계를 넘어선 수준의 독서는 본질적으로 우리편에서 질문을 던지고, 능력이 미치는 데까지 대답을 하는 노력입니다. … 이것이 능숙한 독자와 능숙하지 못한 독자 사이의 차이점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능숙하지 못한 독자는 질문을 던지지 않기 때문에 대답도 얻지 못합니다. -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
만일 어떤 책이 쉽고 당신의 모든 언어 습관과 사고방식에 아주 잘 일치한다면, 당신은 아마 그 책을 읽음으로써 많이 성장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재미있을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의 이해력을 넓혀 주지는 못합니다. 당신의 이해력을 신장시켜 줄 수 있는 책은 어려운 책입니다. 갈퀴로 긁는 것은 쉽지만 얻을 수 있는 것은 낙엽뿐입니다. 땅을 파는 것은 어렵지만 다이아몬드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 - p.46~47
지성은 사용되지 않으면 근육처럼 위축될 수 있다. …… 그리고 이것은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다. 왜냐하면 지성의 위축은 도덕적 질병이라고 하는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아주 바쁘게 지내던 많은 사람들이 은퇴 이후 그렇게 빨리 죽는다는 사실에 대한 다른 설명은 없는 듯이 보인다. …… 텔레비전, 라디오, 그리고 매일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오락과 정보의 원천들은 ……인위적인 것들이다. 이런 것들은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우리가 반응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우리의 지성이 능동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를 계속하게 하는 그러한 외부 자극의 능력은 제한되어 있다. 우리가 그러한 것에 익숙해지게 되면, 우리는 계속적으로 그러한 것들이 점점 더 많이 필요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러한 것들은 아주 적은 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된다. -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
어쨌든 16일에 걸쳐서 겨우 읽어낸 이 책에 대한 제 마음을 부끄럽지만 나누길 원합니다.
현대 기독교의 특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암울하게도 우리는 이것에 대해 거의 부정적인 현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와 진리의 가벼움. 실존, 실용, 영지, 인본주의가 대세인 분별없는 신학 및 신앙. 공의와 거룩의 부재. 따스하고 정 많고 우리들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자비하시기만한 아버지상의 하나님….
저자 존 파이퍼는 이것이 현대 기독교가 진리의 힘찬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세상으로부터 갖은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는 그리스도인의 현주소라고 지적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영광의 무게’를 회복하는 것만이 유일하고도 가장 성경적인 대안이라고 주장합니다.
프란시스 쉐퍼는 창세전부터 영원으로 존재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는 두 가지의 큰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과 ‘의사소통’이라고 보았습니다. 이것을 조나단 에드워즈와 존 파이퍼는 동일하게 ‘지식’과 ‘사랑’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삼위 안에서의 사랑과 의사소통의 발현은 곧 사랑과 지식인 것이지요. 에드워즈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해한 바대로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영광은 곧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의미합니다.
무한하시고, 지존하시며, 사랑과 지식과 모든 좋은, 모든 최고, 궁극, 최선, 최상의 하나님께서 하나님 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가장 기뻐할 때, 우리가 그분을 최고로 추구할 때, 우리가 그분만을 위하여 존재할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 되심이 가장 찬란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것을 원하시며, 우리 인간은 그것을 알고, 소유하고 누릴 때 가장 행복해질 수 있고, 우리의 바로 그러한 행복은 하나님의 기쁨, 행복, 영광과 결코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것입니다(모든 피조물의 한 가지 목적은 하나님의 외적 영광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내적 영광이다. 지금까지 말해온 것만 가지고도 성경에서 하나님 사역의 최종 목적이라고 말해지는 것들이 처음보기에는 구별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모든 것이 하나님의 내적 영광 혹은 하나님의 외적 영광이라는 한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은 영광을 추구하시는 것으로써, 피조물의 선을 추구하시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을 최고로 여기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 272번).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입니다.
시편 23장 6절에 나오는 전통적인 번역 ‘따르리니(follow)’는 히브리어 라다프(radaph) 즉 ‘추구하다, 추적하다’의 일관된 의미를 빠뜨리고 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마치 우리가 인도자고, 그들이 충성스런 신하인 것처럼 우리를 따른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 구절의 의미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마치 우리가 끊임없이 전능한 도움을 구하고 있는 자처럼 우리를 추적한다는 것이다. 대니얼 풀러는 이 구절의 의미를 잘 파악하고 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매일 하나님의 백성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추적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이 고린도전서 10장 24절의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는 이타적인 사랑의 모델이시다. 그러나 이렇게 피조물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 11:36)이라는 성경의 내용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아는 복,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매일 그들을 추적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에 의해서 즐거움이 되는 복은 성도들의 마음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하나님께 찬양하게 만든다.”(Unity of the Bible, p.136)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 p.54 각주 50번
1권에서는 어떻게 해서 에드워즈가 존 파이퍼의 영적멘토가 되었으며, 그로 인하여 자신이 걷게 된 신앙의 여정과 우리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어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왜 이 시대에 에드워즈가 발견되고 회복되어야 하는지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주제가 왜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것인지에 대한 파이퍼의 간곡한 외침이 들리는 듯 합니다.
2권은 에드워즈의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 원문이 실려 있는데, 친절하게도 파이퍼가 각주와 소제목을 많이 달아주어 글의 흐름과 내용을 분명히 알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 책은 지금까지 만나 본 책 중에 가장 신본주의적이고, 가장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게 하는 책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주어진 것은 모두 우리를 사랑하셔서라고, 그것이 가장 숭고하고, 아름답고, 벅찬, 궁극적인 이유라고 알고 있지만, 조나단 에드워즈나 프란시스 쉐퍼나 마틴 로이드 존스나 존 파이퍼는, 무엇보다 성경은 거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현대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무척 좋아하고, 그분의 진노하지 않으심과 끝없는 위로와 평안과 자비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만을 좋아하는데, 그것이 그분의 최고, 최상이라고만 알고 있는데, 에드워즈는 이것들이 결코 최상의, 최종의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 특별히 지적이고 도덕적인 인간을 창조하셔서 자신을 알리시고,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모든 목적이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에드워즈는 역설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거룩하고 흠없는 모든 선한 것들을 드러내심으로 영광을 보이시며, 우리의 모든 ‘하나님을 기뻐함과 사랑함으로’ 영광을 받으십니다.
물론 하나님은 홀로 자존자이시며, 무한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무엇이 부족하신 분, 무엇이 필요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그분께 영광을 돌릴 때나, 우리가 그분께 죄를 지을 때나 하나님께는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 놀라운 사실은 바로 그토록 미미한 우리들의 작은 찬송소리와 신음소리에 하나님께서 귀기울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실 때 영광받으시는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바로 우리들을 사랑하시고, 우리들에게 자신의 선한 것들을 나누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 안에서 하나님을 기뻐하고, 사랑함을 통해 영광받으시는 것입니다.
2권 1부에서 에드워즈는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다’라는 진리에 대해서 이성적 관점으로 자신의 주장을 피력합니다. 기독교 진리가 비이성적, 비도덕적이 아니라, 가장 참되고, 유일하게 참됨을 변증한 것이죠. 이 부분이 무척 어렵습니다. 평소에 능동적인 생각하기가 체화되어 있지 않은 부분은 넘어가도 괜찮습니다. 존 파이퍼도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나 서론만큼은 꼭 읽어보는 것이 좋으며, 파이퍼가 말한 것처럼 2부의 3, 4장 또한 되도록 읽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2권 2부에서는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다’라는 진리에 대해서 성경적 관점으로 자신의 주장을 피력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것,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최고 정점으로 발산된 십자가 등 이 모든 것이 단 하나의 최종, 궁극적, 최고, 최상의 목적,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을 성경 전체를 통해 증거합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도 숨이 멎도록 벅차오르는 감격을 받은, 전율케 된 선언, 진리가 여기 있습니다. 그것은 영광의 하나님께서 무한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는 그분의 지식과 그분의 사랑과 선과 의와 거룩과 영광과 기쁨도 결코 만족함이 있을 수 없고 채워질 수 없고 무한히(영원히) 증가할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무한한 하나님을 영원토록 더욱더 기뻐함]
6 천국은 계속적으로 점점 더 크게 하나님을 기뻐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끊임없이 더욱더 많이 발견해 가는 곳일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하나님처럼 무한하지 않으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체험하는 면에서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은 결코 완벽할 수 없으며, 영원히 더욱 친밀하고 더욱 강도 높게 증가해 할 것입니다. 천국의 완전함은 정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보아야 할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기 계시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계속적인 기쁨의 증가가 있을 것이며, 하나님에 대해 증가해 가는 기쁨의 끝은 결코 오지 않을 것입니다.
에드워즈는 이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성도들을 영원한 복으로 영화롭게 하신다는 것은 아무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영원하기 때문에 무한히 가치 있는 유익을 수여해 주심으로써 하나님 자신의 무한한 은혜 혹은 선하심을 만족시키려는 목표를 가지고 계신다. 그러나 이제 이 무한히 가치 있는 유익이 실제로 수여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 285번) 더구나 에드워즈는 우리가 영원히 증가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이 영원한 기간 동안 그리고 무한한 기간을 통해서 점점 더 높아지는 것으로 보고 계신다면, 그리고 그것이 지속적으로 감소되지 않고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것이라면 비록 그러한 높이가 이미 도달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결코 오지 안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무한히 높은 것이라고 간주하실 것이다.”(<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 279번) 에드워즈의 이러한 언급을 우리는 에베소서 2장 7절을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이 말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남김없이 다 나타내 주시는 것은 무한한 세대가 필요할 것이라는 것이며,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하기 때문에 이 은혜를 남김없이 다 주실 수 있는 때는 결단코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 p.58-59 6번글
여러분, 상상이 가십니까? 하나님을 영원토록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무한히 증가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것들이 다 무한하기 때문에 우리의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은 끝없이 자라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시간이 지나갈수록 그것은 더욱 커지고, 더욱 아름다워지고, 더욱 분명해지고, 더욱 위대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것을 계속 보거나, 먹거나, 그것을 계속 누리게 되면 이내 쉬이 지쳐버리는 성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좀 더 더 나은 것, 좀 더 강한 것, 좀 더 아름다운 것, 좀 더 위대한 것을 끊임없이 찾는 성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전 3:11)는 의미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우리에게 그 어떠한 것도 우리를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끝없는 하나님의 영광의 발산으로 우리를 완전하게 계속해서 채워가십니다.
이런 에드워즈의 영향을 깊이 받은 저자는 죽음도 유익하다고 말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며 다음과 같이 내용을 잇습니다.
14 죽음 안에서 하나님을 찬미하는 길은 죽음이 유익한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바울은 그의 간절한 소원이 “살든지 죽든지 자신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도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존귀히 되는지를 이렇게 덧붙입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 1:21). 죽음이 유익한 것이라고 여겨질 때, 그리스도께서는 위대한 분으로 보여집니다. 이유는 명백합니다. 죽음이 우리에게서 빼앗아 가는 모든 것보다도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를 더욱 즐거워할 때 그리스도의 영광이 찬미됩니다. 죽음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더욱 가까이 가게 하기 때문에 우리가 죽음을 유익한 것으로 여긴다면 우리는 이 세상이 우리에게 제공해 줄 수 있는 모든 것보다 그리스도를 더욱 귀중하게 여긴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저자는 선교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복음전도 임무는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이 그들의 당면필요를 채워 주는 것이라고 설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 복음 안에 있는 영혼을 만족시켜 주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음을 설득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 p.62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의 1/10에도 못 미치는 것들입니다. 이책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합니다. 우리가 진정 바라야 할 것, 성경 전체의 흐름이 무엇을 향하여 진행되고 있는지를 저자와 에드워즈는 똑똑히 보게 해줍니다. 피조물들의 고대하는 바가 하나님의 영광임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마땅히 또 유일하게 추구하고 기뻐해야 할 것이 바로 하나님이며,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됨을 보여줍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를 읽으십시오. 신본주의적, 성경적 복음을 회복하고 선포하십시오.
우리가 회복하고 유일하게 선포해야 할 진리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한재술 님의 서평
우리는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영화롭게 하기 위해 지음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리할 때에 우리는 가장 행복하며, 그것을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으로 삼아주십니다.
하나님이시여, 하나님 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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