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스라엘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출하여 막막한 광야로 나오게 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이 숙곳에서 떠나 에담광야에 장막을 치자 낮에는 구름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셨다.
이스라엘백성들의 광야생활의 모든 여정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되어졌다고 볼수 있다.
그들은 앞으로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지나는데 정해진 노정도 없고 전에 밟아보지 못한 루트를 따라 가야하는데 모래사막을 걷고 거친 들판을 횡단할 때 그 길을 찾는다는 것은 아주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이스라엘백성 앞에 있게 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까지 가는데 이정표역할을 하게 하셨을 것이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상징이 아니라 실제현상으로 우리는 믿고 있다.
그렇다면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어떻게 나타났을까?
구름기둥은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라 특별하며 초자연적이고 기적적인 현상인데 기둥형태를 띠었다고 볼 수 있다.
하늘을 향하여 위로 솟구쳐 있고 아랫부분은 넓게 퍼져서 이스라엘캠프를 덮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광야는 뜨거운 햇빛으로부터 막아주는 그늘이 없기 때문에 구름기둥은 타는듯한 태양열과 모래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를 식혀주는 역할을 했다고 보여진다.
광야는 낮에는 모든 사물이 보이기 때문에 그래도 낫다고 볼 수 있지만 밤에는 불빛하나 없는 칠흑같은 사막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모닥불을 피운다든지 호롱불을 피울 수 있지만 250만에서 300만이 넘을 수 있는 많은 무리들이 밤을 밝힌다는 것은 땔감을 구한다든지 기름을 구하는데 있어서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밤에는 불기둥을 배치하셨는데 아마도 이스라엘진영의 위에 높이 하늘로 솟은 기둥모양으로 대낮같은 광채는 아니어도 달빛보다 밝은 은은히 밤을 밝히며 광야의 추운 밤을 온기로 채워주는 공중화로와도 같았을 것이다.
불기둥의 모양이 어떤지 정확하게 알수는 없지만 신비로운 빛으로 온기로 이스라엘백성들의 진영을 감싸주었을 것이다.
어차피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하나님의 신비롭고 경이로운 역사였기 때문이 이성적으로 판단해서는 안되고 초자연적인 현상이며 마치 북극의 밤에 피어오르는 오로라같은 진기한 현상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그런데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이스라엘백성들이 머물러 있을 때에는 성막을 덮고 그 위로 하늘을 향해 올라가 있었다고 보여진다(민9:15-16)
애굽군대의 접근을 막아준 구름기둥과 이스라엘백성의 앞을 밝힌 불기둥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로 나간 후 애굽왕 바로는 정신을 차리고 이스라엘백성들을 다시 잡아오기 위해 군대를 출동시켰다.
특수선발된 정예병거600승과 모든 전차를 다 동원하여 광야로 나간 이스라엘백성들을 좇았는데 홍해앞에 머물러 있는 그들을 따라잡게 되었다.
이 떄 멀리서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전차의 바퀴소리와 말발굽소리를 요란하게 내면서 달려오는 애굽의 전차부대를 보고 이스라엘백성들은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이 때 놀랍운 활약을 보여준 것이 바로 구름기둥이었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백성 앞에서 진행하던 구름기둥이 여호와의 사자와 함께 이스라엘진영의 후미에 와서 애굽군대들과의 사이에서 방해공작을 펴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낮이었던 것같은데 밤처럼 짙은 구름과 흑암이 애굽군대앞을 가리어 접근하지 못하게 했고 그 사이에 밤이 되어서 반대로 이스라엘백성쪽에는 광명하다고 했는데 불기둥이 이스라엘진영의 앞부분을 밝히고 있었던 것이다.
접전이 낮에 시작되어 밤이 맞도록 애굽군대와 이스라엘무리들이 대치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밤이 맞도록 바람을 불어서 홍해를 가르시고 새벽에 이스라엘백성들이 홍해를 건너는 중에 애굽군대들이 갈라진 홍해로 진격해왔다.
그런데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홍해가운데 두셔서 애굽군대들을 혼미하게 만들어 정신이 없게 하신 후에 이스라엘백성들이 완전히 다 건넌 후에 물이 합쳐져서 애굽모든 군대들이 수장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광야에서 베푸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놀라운 활약이 홍해도하에서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영적으로 볼 때 애굽의 장망성 즉 세상이고 이스라엘백성들은 그리스도인들이다
애굽에서 나오는 것은 죄악된 세상에서 벗어나 예수믿는 것이고 광야생활은 지상교회생활이다.
가나안땅은 이스라엘백성들이 가야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원한 천국을 상징한다.
애굽에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떠나라고 하신 분이 여호와시듯이 우리에게 죄악의 세상에서 나오라고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광야의 길을 인도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바로 우리의 주 예수그리스도이시다.
죽음의 강인 홍해를 건널때 하나님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애굽군대를 멸하시고 이스라엘백성을 구원하셨듯이 죽음을 생명으로 마귀의 사망권세를 끊으시고 영원히 하님의 백성으로 우리를 이끄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낮의 해가 상치않도록 밤의 달이 해치않도록이라는 시편121편의 말씀은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에게 주신 구름기둥과 불기둥일뿐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이시기도 하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의 권세를 물리치고 사망을 이길 뿐 아니라 예수이름으로 생명을 얻고 구원의 여정을 지나 천국에 이르는 것이다.
광야길의 인도자 구름기둥
모세는 시내광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모세 스스로는 이스라엘백성들을 인도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내주신 구름기둥으로 거칠고 가본적이 없는 광야길을 가게 된 것이다.
구름기둥이 서면 이스라엘백성들도 서고 불기둥이 움직이면 이스라엘백성들도 움직이게 되었다.
구름기둥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는 알수가 없지만 아마도 모세는 특별한 방법으로 구름기둥이 움직이는 징조를 미리 알았을 것이다
왜냐면 이스라엘백성들이 이동할 때 장막을 거두어서 짐을 꾸려야 하고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십계명과 제사법과 도덕법을 주셨지만 그것은 삶의 코어(내면 중심)이지 삶의 방향은 아니다.
어디로 가야할 지 목적을 향해 전진하는 역할은 하나님이 주신 구름기둥이다.
예수님은 우리믿음의 중심이시기도 하지만 방향성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할 지 어디서 멈춰야 할지 어디를 가지 말아야 할지를 보여주는 신앙의 방향성을 우리는 예수님의 지상삶을 통해 볼 수 있다
예수님이 그냥 멀리계신 하늘의 하나님으로만 계셨다면 우리가 가야할 방향을 누가 가르쳐 주실까?
하나님은 말씀은 우리의 마음속에 간직하지만 예수님의 삶의 향방를 좇아 우리는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이스라엘백성들이 구름기둥이 가는대로 머무르는 곳에 그 타이임과 방향을 정했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의 삶을 나침반으로 삼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구름기둥의 노정이 지도처럼 만들어지지 않아서 모세와 이스라엘백성들은 그 때 그 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움직여야 했다.
이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신앙의 지도가 이미 정해져 있지 않다.
그리고 신앙생활하는 타이밍과 지역이 각각 다르다
예수님은 우리 각각의 구름기둥이 되셔서 우리의 각각 다른 신앙의 여정을 인도하실 것이다.
이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이다.
이 시대에는 성령의 인도하심은 갑이라는 사람과 을이라는 사람에게 시간과 장소를 달리 역사하신다.
성령의 삶자체는 동일하지만 성령이 각 사람에게 역사하시는 시간과 장소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성령은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공동체안에서 역사하시고 각각 개인의 삶의 특별한 코스로 인도하신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각각 구름기둥 즉 예수님을 따라가는 방식이다.
여호와의 말씀과 함께 움직이는 구름기둥
출33장에 보면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서 여호와와 말씀을 나눌 때 구름기둥이 내려 회막문에 서있었다.
구름기둥이 회막을 덮을 때 여호와는 친구와 대화를 나누듯이 모세와 이야기를 나누셨다고 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이스라엘백성에게 현현하신 여호와였던 것이다.
후에 여호와는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현현하셨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매우 친근하고 가깝게 느끼는 하나님이셨고 멀리계신 여호와가 아니라 곁에 가까이 함께 동행하시는 여호와로 느끼게 했던 것이다.
우리가 곁에 계신 하나님 동행하시고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예수님이 우리곁에 오신 것이다.
그래서 세상의 악과 마귀의 권세에서 우리의 그늘 즉 피난처가 되어주시고 어두운 죄악의 세상에서 밝히 삶의 여정을 비추시는 빛이시며 거룩한 온기가 되어 주셨던 것이다.
그런데 출40:34에는 모세가 성막세우기를 마쳤을 때 구름이 그 위에 머무르며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함으로 모세가 성막안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구름기둥은 모세에게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여호와에게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인도하기도 했지만 여호와의 영광과 하나가 되었을 때 모세는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성막에 접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인생들과 함께 대화도 하셨고 음식도 나누셨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예수님에게 임했을 때 어느 누구도 감히 예수님에게 말을 걸수도 함부로 가까이 할수도 없었다.
이것이 바로 구름기둥의 비밀이다.
구름기둥은 여호와의 현현 ( 顯現 )이며 예수님도 역시 여호와 하나님의 현현이기 때문이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여호와의 성막위에 덮일 때 여호와의 영광이 드러났다.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들을 이동하게 하실 때는 성막위에 있는 구름기둥이 움직였고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들 멈추게 하실 때에는 역시 성막위에 있는 구름기둥이 멈추어 섰던 것이다.
구름기둥은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과 함께 가고 함께 움직인다.
우리주 예수님은 자의적으로 행하시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을 따라 움직이시고 행하셨다.
요 4: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미리암이 모세의 결혼에 대해 시비를 걸었을 때 여호와께서 구름기둥가운데 강림하셔서 모세와 아론 미리암을 장막문앞으로 불러내시고 심판하셨다.
구름기둥이 장막문앞에서 떠나갔을 때 미리암에게 문둥병이 돋기 시작했다.
고라자손이 모세를 반역했을 때 여호와의 영광이 온 이스라엘 회중에게 나타나셔서 모든 회중을 멸하시겠다고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물론 이 때 모세는 납짝엎드려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고 모세의 간구대로 여호와 하나님은 고라와 다단 아비람의 장막안에 있는 자들을 멸하셨는데 땅이 갈라져서 그들을 다 삼켜버렸다.
여호와의 말씀에는 은혜스러운 말씀이 많지만 그러나 심판의 말씀도 있다.
여기서 여호와의 영광이 회중위에 임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아마도 구름기둥이 회중을 감싸며 어둡고 음울함으로 기후가 변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미리암을 심판하실 때 처럼 구름기둥으로 여호와의 영광을 발하셔서 모세를 대적하는 무리들을 심판하셨던 것이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피난처와 위로와 격려 그리고 은혜를 의미하지만 여호와를 대적하고 모세를 반역하는 악한 자들에게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때때로 불과 심판의 기둥으로 임한다.
우리 주님은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자비 긍휼과 은혜의 주님이시지만 예수님을 대적하고 성령을 모욕하는 자들에게는 심판과 저주 맹령한 징계로 행하신다.
우리는 예수님을 지상교회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여기지만 혹시 누구라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불의를 좇아갈 때에는 심판과 두려움 흑암과 불로 임하셔서 정죄하실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광야같은 지상교회에서 목사의 말이나 전통적인 유전이나 선배들의 믿음의 길을 필요에 따라 가야하겠지만 그러나 우리의 진정한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예수그리스도의 향방이다.
주님이 걸으신 길 주님이 멈추신 자리 주님이 향하신 목적지를 따라 우리는 경유하며 마지막 주님이 계신 그곳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출처] 27.구름기둥과 불기둥-그리스도의 영광과 길|작성자 Jesusaidt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