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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로읽는 역사

스크랩- 고레스, 다리오 그리고 아닥사스다와 아하수에로 왕의 연대기

작성자좋은열매|작성시간26.06.14|조회수5 목록 댓글 0

성전 건축과 관계된 왕들

예루살렘 성전이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파괴된 이후, 재건되기까지 몇 명이나 되는 이방 땅의 왕들이 지나갔을까?

4. 그때에 그 땅의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고 건축하는 일에서 그들을 괴롭게 하며

5.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전 생애 동안과 페르시아 왕 다리오가 통치할 때까지 조언자들을 고용하여 그들을 대적하게 하고 그들의 목적을 좌절시키려 하였으며

6. 아하수에로의 통치 때에 곧 그가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이 유다와 예루살렘 거주민들을 고소하는 글을 그에게 보내었더라.

7. 또 아닥사스다 시대에 비슬람과 미드르닷과 다브엘과 그들의 동료들 가운데 남은 자들이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에게 글을 올렸으니 이 편지의 글은 시리아 말로 기록되고 또 시리아 말로 번역되었더라.

Ezra chapt. 4

 

연대별 사건들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은 야훼 하나님의 뜻이지만, 그 뜻은 평안하고 평화를 느낄 수 있는 그런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현지인들이 예루살렘 재건을 방해 하는데.

↪ 먼저 고레스 왕이 재건을 허락함

↪ 고레스 왕 때 재건을 방해함

↪ 다리오 왕 때에도 재건을 방해함

↪ 아하수에로 왕 때에는 유대인을 고소함

↪ 아닥사스다 시대에 비슬람, 미드르닷, 다브엘 등 무리들이 방해하는 글을 씀

이처럼 간략하게 정리해 본 사건이지만, 실제는 어마어마한 세계사적 역사가 예루살렘 성전과 그 도성에 집중되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오늘은 예루살렘 지역을 중심으로 세계사적 시대의 흐름을 함께 나눠보면서, 성경 속에 등장하는 여러 왕들을 좀더 상세한 설명과 함께 정확한 연대를 알아보길 바라는 차원에서 나눔을 갖고자 한다.


고레스 왕 (BC 600~530)

cyrus king

BC 551 바빌론를 멸망시키고 페르시아 왕이 된 고레스. 그는 메대 사람 다리오라 불렸다.

그 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죽임을 당하였고

'메대 사람 다리오'

나라를 얻었는데

그 때에 다리오는

육십이 세였더라

단5:30~31

고레스 왕은 느부갓네살의 아들 바빌론의 왕 벨사살단5:1, 11절을 죽이고 나라를 얻는다. 그의 이야기는 다니엘서 11장/이사야서 45장에도 나온다.

내가 또 메대 사람 다리오 원년에 일어나

그를 도와서 그를 강하게 한 일이 있었느니라  단11:1

고레스 시대의 등장 인물; 총독 세스바살

세스바살(Sheshbatstsar; שֵׁשְׁבַּצַּר): a prince of Judah

세스바살은 과연 누구일까? 고레스는 세스바살을 얼마나 총애하였기에 그를 총독으로 임명하기까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라는 야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을까? 진정한 순종을 표방했기에, 그 일을 진행하기로 택함받은 실무자 세스바살 또한 우리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자가 아닐까 싶다.

14. 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있던 그 성전에서 취한 [하나님]의 집의 금 기구와 은 기구들 곧 그가 바빌론의 전에 가져다 둔 것들을 고레스 왕이 바빌론의 전에서 취하여 자기가 세운 총독세스바살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에게 건네주고

15. 그에게 이르되, 이 기구들을 가지고 가서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그것들을 두고 [하나님]의 집을 그것의 처소에 건축하라, 하매

16. 이에 그 세스바살이 이르러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집의 기초를 놓았고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그 집을 건축하여 왔으나 아직도 그것을 완성하지 못하였다, 하였사오니

Ezra chapt. 5

BibleHub의 자료에 의하면, 세스바살(Sheshbazzar)은 페르시아식 이름인데 이것을 히브리식으로 바꿔 말하면 그의 이름은 이 된다

                                                               스룹바벨

Sheshbazzar is

Zerubbabel's Persian name

https://biblehub.com/hebrew/8339.htm

 즉 고레스 왕에게서 직접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을 하명받은 이는 스룹바벨이었다.

스룹바벨은 총독으로서 부임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스룹바벨은 유다 지파로서 왕자의 신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성전 재건 공표와 진행과정

1. 고레스 칙령바사 왕 고레스가 이같이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2 Chronicle 36:23

고레스의 칙령을 받아 스룹바벨은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성전 재건을 시작한다. 하지만 방해가 생겨서 재건이 중도에 멈추게 된다.

2. 아닥사스다의 칙령

아닥사스다는 고레스의 아들로서 캄비세스 2세를 가리킨다.

예루살렘 재건을 반대하는 무리들로서 사마리아에 거주하던 자들이다. 그럼 반대하는 무리들은 언제부터 사마리아에 거주했을까?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중략)...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하니

Ezra 4:2

기원전 722년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 사마리아(에즈라 4:10)에 비유대인들을 정착시킨 아시리아 귀족. 그는 (에즈라 4:2)의 에사르하돈과 같을 수도 있고, 기원전 7세기 아시리아의 왕이었던 그의 아들 아슈르바니팔일 수도 있다.

 

BC 722년부터 사마리아에 살아오던 이들로서 이들은 자신들의 평화가 (예루살렘 재건으로 인하여) 깨어질 것이라 두려워한 나머지 이와같은 방해공작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들의 방해공작은 어느 때까지 이루어졌을까?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으며

Ezra 4:5

그런데 재미있는 부분은 이들의 지난 날 행보가 무척 재미있어 보인다. 그 이유는 아하수에로 왕과 연관된 일이 있기 때문이다.

아하수에로가 왕이 되자, 그 적들이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을 고발하는 편지를 썼습니다.

Ezra 4:6 쉬운성경

이때의 아하수에로 왕은 고레스 이전 시대의 왕일까? 아니면 이후의 왕일까? 잠시만 살펴보기로 하자.

이들은 유프라테스 강의 서쪽에 위치해 있는 사마리아라는 지역에 거하는 이들로서 자신들에게 통치권을 가진 이에게 자신들의 우려와 염려를 호소한다.

즉 예루살렘에 유대인들이 거하게 되면서 부터 자신들의 안위와 평화가 파괴될 것을 염려한 것이지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와 전혀 상관없는 지역에 거하고 있는데 두려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아하수에로 왕으로서 유프라테스 강의 서쪽에 위치한 예루살렘과 사마리아 땅까지 다스리던 시대를 찾아본다면 스4:6절의 내용을 시대적으로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 생각한다.

김명현 교수의 자료에 의하면, BC 574년 메대 지역을 다스리던 아스티아게스 왕고레스의 외할아버지을 아하수에로 왕이라고 말하고 있다. 당시 아스티아게스 왕의 영토를 확인해 보자.

Map of ancient Babylonia and of the kingdoms of Lydia and Medea circa 550 BC.

BC 550년 당시 Media메대의 영토는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을 포함하고 있지 않았다. 해당 지역은 바빌론의 느부갓네살이 통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느부갓네살이 7년간 미친 상태로 있었기에 해당 기간 동안 메대의 왕이었던 아스티아게스가 메대는 물론 바빌론의 영토까지 대리로 통치하였다는 주장이 있다. 대리 통치할 수 있는 근거로는 느부갓네살 왕의 아내가 메대 왕 아스티아게스의 딸 아미티스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권력의 측면에서 보자면, 아스티아게스는 자신의 외손주인 고레스가 자신의 왕좌를 차지할 거라는 예언 때문에 고레스를 단호하게 죽이려 들었다. 권력 앞에서는 아버지와 아들, 내지는 딸 등의 혈연이 통하지 않는다는 게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런데 대리 통치를 했다 할지라도 과연 얼마나 강력한 대리 통치를 펼칠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든다.

그 이유는 또 다른 아하수에로 왕이 성경 속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는 'Hero of Kings'라 칭하는 Xerxes크세르크세스라 불린 자다. 그의 강함은 자신의 아버지 다리오 1세Darius I보다 더 강했던 것으로 간주된다. 마라톤 전쟁에서 패한 다리오 1세의 복수를 다짐하여 더욱 강력해진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전쟁을 이끈 크세르크세스재위기간 BC 485~465는 다리오 1세와 고레스 왕의 딸 아토스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다. BC 485년 다리오 1세가 죽자 그 뒤를 이어 왕으로 즉위한다. 그 후 아버지 다리오 1세의 유화책보다 더 강경한 정책으로 제국을 다스렸다고 알려지는데, 특히 바빌로니아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할 당시 신전을 파괴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바빌로니아 왕의 상징으로 간주되는 황금 신상까지 파괴했는데 전해지는 이유는 그가 바빌론의 왕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스스로 거부한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칭호를 "페르시아와 메대의 왕"으로만 표현하는 것으로 자신의 정통성을 세웠다고 한다.

그런 크세르크세스의 영토는 어떠했을까?

크세르크세스 시대의 영토를 보여주는 지도다. 페르시아의 왕이라 불리던 크세르크세스의 영토는 이처럼 사마리아는 물론 예루살렘까지 분명하게 다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마리아에 정착하여 살고 있던 이민족들이 예루살렘을 재건하려는 유대인들의 행동에 심히 두려워하는 것은 어찌보면 매우 당연한 일 아닐까?

이제 이 일은 아하수에로 시대에 있던 일이니

(이 아하수에로는

인도에서부터 이디오피아에 이르기까지

백스물일곱 지방을 통치한 자더라.)

Ester 1:1 흠정역

여기에서 우리는 확신할 수 있겠다. 에스더의 남편이자 강력한 페르시아의 왕이었던 아하수에로 왕은 다름아닌

Xerxes

크세르크세스

라는 것을. 그런 의미에서 에스라 4:6절에 기록된 '또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에 그들이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을 고발하니라'는 내용은 어쩌면 '하만의 음모'를 이야기하는 것 아닐까 싶다. 물론 이는 후에 다시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차치하기로 하자.

메대와 바빌론 제국(좌) Vs. 페르시아 제국(우)의 영토 차이

바탕에는 동일한 크기의 지도를 펼쳐 놓은 상황에서,

좌측에는 메대/바빌론 제국이 표기된 지도를,

그리고 우측에는 페르시아 제국이 표기된 지도를 overlap 시킨 지도임.

 

메대와 바빌론 제국 Vs.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 비교

첨부파일

메대 바빌론 그리고 페르시아 제국의 지도.pp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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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아닥사스다 왕캄비세스 2세에게 예루살렘 재건의 반대와 그에 대한 필연성을 강조한 사건을 살펴보자.

 

7. 또 아닥사스다 시대에 비슬람과 미드르닷과 다브엘과 그들의 동료들 가운데 남은 자들이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에게 글을 올렸으니 이 편지의 글은 시리아 말로 기록되고 또 시리아 말로 번역되었더라.

8. 장관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 예루살렘을 치려고 아닥사스다 왕에게 이런 식의 편지를 썼으니

Ezra chapt. 4

솔직히 아닥사스다 왕캄비세스 2세에게 편지를 쓴 이들의 속셈은 '예루살렘 재건을 막겠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을 제거하려는 의도로 귀결된다. 하지만 그들이 거짓을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세계 최강의 권력자에게 어찌 거짓말을 할 수 있겠는가? 다만 좋은 모습을 쏙 빼버리고 오로지 나쁜 모습만 부각시켜서 이를 본 왕으로 하여금 유대인은 악한 존재다는 사실로 바라보게 하고자 했다.

12.왕에게 아뢰나이다 당신에게서 우리에게로 올라온 유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하는데 이미 그 기초를 수축하고 성곽을 건축하오니

15.왕은 조상들의 사기를 살펴보시면 그 사기에서 이 성읍은 패역한 성읍이라 예로부터 그 중에서 항상 반역하는 일을 행하여 왕들과 각 도에 손해가 된 것을 보시고 아실지라 이 성읍이 무너짐도 이 때문이니이다

16.이제 감히 왕에게 아뢰오니 이 성읍이 중건되어 성곽이 준공되면 이로 말미암아 왕의 강 건너편 영지가 없어지리이다 하였더라

Ezra chapt. 4

사마리아에 거하던 이들의 서신을 받아 본 아닥사스다 왕캄비세스 2세은 자료를 살펴본다. 그리고 단호한 결단을 내린다.

18. 너희가 올린 글을 내 앞에서 낭독시키고

19. 명령하여 살펴보니 과연 이 성읍이 예로부터 왕들을 거역하며 그 중에서 항상 패역하고 반역하는 일을 행하였으며

20. 옛적에는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큰 군왕들이 있어서 강 건너편 모든 땅이 그들에게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다 바쳤도다

23.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 초본이 ...(중략)... 그 공사를 그치게 하니

24. 이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성전 공사가 바사 왕 다리오 제이년까지 중단되니라

Ezra chapt. 4

이로써 예루살렘을 재건하고자 했던 스룹바벨의 시도는 중단되고 만다.

 

학개와 스가랴의 예언 그리고 예루살렘 공사의 재건

그러나 앞서 고레스 왕의 선포대하 36:23한 내용을 보면, 야훼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에거 명령한 것이 바로 예루살렘 성전 재건이었다. 따라서 예루살렘 재건은 누구도 멈추게 할 수 없다. 그렇기에 학개서와 스가랴서는 예루살렘 공사의 재건을 예언하게 된다.

<성전을 지을 때가 되었다>

1 다리오 왕 이 년 여섯째 달 초하루에 예언자 학개가 여호와의 말씀을 스알디엘의 아들이며 유다 총독인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이며 대제사장인 여호수아에게 전했습니다.

2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백성이 ‘아직 여호와의 성전을 지을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3 예언자 학개가 여호와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학개1장.쉬운성경

선지자들 곧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에게

예언하였더니

...(중략)...

예루살렘에 있던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하매

Ezra 5:1~2

이때 제국의 왕은 바뀌게 된다. 스4:24의 '바사 왕 다리오 제2년까지 중단'되었다는 글을 보면, 중단된 햇수는 상당히 여러 날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캄비세스 2세의 재위 기간BC 530~522이 그리 길지 못하지만, 그 이후의 다리오 1세Darius I, Xerxes의 아버지의 재위 2년까지 공사는 중단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을 통해 예루살렘 공사는 재건되었고, 이때도 마찬가지로 공사를 중단시키려는 무리들은 다리오 1세에게 서신을 보내어 공사 중단을 요청한다.

다리오 1세, 예루살렘 공사의 재건을 명령하다.

Darius I는 Xerxes의 아버지다.
6.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관인 유브라데 강 건너편 아바삭 사람이 다리오 왕에게 올린 글의 초본은 이러하니라

16. 이에 이 세스바살(스룹바벨)이 이르러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 지대를 놓았고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건축하여 오나 아직도 마치지 못하였다 하였사오니

17. 이제 왕께서 좋게 여기시거든 바벨론에서 왕의 보물전각에서 조사하사 과연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이 성전을 예루살렘에 다시 건축하라 하셨는지 보시고 왕은 이 일에 대하여 왕의 기쁘신 뜻을 우리에게 보이소서 하였더라

Ezra chapt. 5

예루살렘 재건을 반대하는 무리들 역시 '역사적 근거'를 염두에 두고서 자신들의 계략을 진행한다. 바벨론 왕의 메시지 등을 보관하는 창고를 조사해 달라고 간청하고 있는 모습에서 잘 알 수 있다. 다리오 1세는 그들의 간청에 따라 바빌론의 창고를 살펴보았다.

1.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를 내려 문서창고 곧 바벨론의 보물을 쌓아둔 보물전각에서 조사하게 하여

2. 메대도 악메다 궁성에서 한 두루마리를 찾았으니 거기에 기록하였으되

3. 고레스 왕 원년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대하여 이르노니

Ezra chapt. 6

보물전각에서 고레스 왕의 칙령을 발견하게 된 다리오 1세는 예루살렘 성전 공사의 재건을 명령한다.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은 그렇게 시작하여 마침내 완공된다.

15. 다리오 왕 제육년 아달월 삼일에 성전 일을 끝내니라

Ezra chapt. 6

스룹바벨 성전이 완공되던 그 해는 BC 516년이다.

하지만 예루살렘 도성의 재건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성전의 재건에 대해서만 완공된 것이기 때문이다.

성전 재건 직후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그는 에스라Ezra다. 성전이 재건되고 나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야훼 하나님의 Torah를 전해주기 위해 예루살렘지역으로 귀환하게 되는데, 그때는 다리오 1세가 죽고 그 이후의 왕이 재위하던 시기가 된다.

2차 포로 귀환과 에스라

아닥사스다 1세의 재위 기간(BC464~424)에 이루어진 일들이다.

1. 이런 일이 있은 뒤, 몇 십 년이 지났습니다.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가 다스리던 때에 에스라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에스라는 스라야의 아들이고, 스라야는 아사랴의 아들이며, 아사랴는 힐기야의 아들입니다.

8.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왔을 때는 아닥사스다 왕 칠 년 되던 해의 다섯째 달이었습니다.

Ezra chapt. 7 쉬운성경

즉 다리오 1세의 재위 기간 내였던 BC 516년에 성전이 완공되었고 다리오 1세는 BC485년에 죽었다. 그 뒤를 계승한 왕은 크세르크세스Xerxes다. 그런데 에스가 6장은 다리오 1세를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7장에서는 아닥사스다 왕이 거론된다. 이때 등장하는 아닥사스다 왕Artaxerxes I은 크세르크세스의 아들로서 '롱기마스'(Longimanus)라고 불리기도 했다. 따라서 에스라 6장과 7장 사이에는 (쉬운 성경 표현처럼) 수 십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소한 크세르크세스의 20년에 해당하는 재위 기간BC 485~465이 기록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크세르크세스 왕과 왕비 에스더

크세르크세스 왕이 비중있게 다뤄지는 이유는 그가 에스더 왕비의 남편이자 페르시아의 왕인 아하수에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하수에로 왕의 뒤를 잇는 후계자인 아닥사스다 1세는 그의 아들이다.

아하수에로와 아닥사스다 1세 간의 혈연관계를 되짚어 보자면, 그 사이에 에스더 왕비가 있음을 인지할 수 있다.

이러한 관계는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까?

그 부분은 아래 링크된 사실을 통해 대신 설명될 수 있기를 바란다.

 

아하수에로 왕과 아닥사스다 1세 왕의 연대표

아가페 쉬운성경에 다음과 같은 연대표가 있다. 에스라서를 읽는 중에 보게 되었는데, 에스더 황후의 남편...

yimychan.blog.me

아닥사스다 1세와 느헤미야

아하수에로 왕의 아들이자 에스더 왕비의 아들이 되는 아닥사스다 1세는 어머니 에스더에게서 야훼 하나님의 Torah를 배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기에 아닥사스다 1세는 야훼 하나님의 절기 가운데 하나에 해당하는 유월절닛산월의 절기을 지켰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1.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니산월에 왕 앞에 포도주가 있기로 내가 그 포도주를 왕에게 드렸는데

6. 그 때에 왕후도 왕 곁에 앉아 있었더라

Nehemiah chapt. 2

느헤미야의 원대한 포부를 듣자마자 단숨에 승락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지 느헤미야를 총애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닥사스다 1세는 자신의 어머니 에스더 왕비를 통해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과 도성의 재건이 갖는 영적 의미를 충분히 설명들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마치 디모데의 신앙을 그의 어머니가 전해주었던 것처럼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Act16:1b

이로써 성전 재건과 동시에 느헤미야는 3차 포로귀환을 이끌어 내게 되어 결국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을 완공지으면서 예루살렘 도성의 재건을 이룩하게 된다.

BC 444년 성벽 재건

아닥사스다 재위 20년 기슬르 월9째 달에 예루살렘의 소식을 전해 듣게 된 느헤미야(느1:1)가 아닥사스다 왕 앞에서 예루살렘 도성의 재건을 설명(느2장)하는 때는 아닥사스다 재위 20년 닛산 월4째 달이다. 시간이 거꾸로 진행한 것은 아니다. 다만 느헤미야서는 7번째 달에 해당하는 티슈리 월을 새해 첫날로 기록하였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에스라서는 4번째 달에 해당하는 닛산 월을 새해 첫날로 기록하였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출발하게 된 시기는 (에스라서의 기준으로 보자면) 아닥사스다 재위 21년에 3차 포로귀환BC444년을 이룩하게 된다.

그리고 그토록 고대했던 성벽재건을 52일 만에 이룩한다.

느헤미야서 7장은 성벽재건을 완성한 이후에 기뻐하면서 귀환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계수하는 장면이다. 이때 에스더 왕비의 삼촌으로 번역되어 있는 모르드개가 소개된다. 모르드개는 예루살렘 도성으로 귀환한 것이다.

6.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갔던 자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에 돌아와 각기 자기들의 성읍에 이른 자들 곧

7.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아사랴와 라아먀와 나하마니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베렛과 비그왜와 느훔과 바아나와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

Nehemiah chapt. 7

이로써 바빌론 포로였던 유대인들은 특별한 변화없이 페르시아의 포로가 될 수 있었고, 에스더 왕비는 포로로 잡혀왔다고 여기기 보다는 포로생활 중에 태어난 세대라 여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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