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산성전투
7년간의 임진대전쟁을 종식시킨 역사적인 전투를 꼽으라면
당연히 명량해전과 황석산성전투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명량해전에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황석산성전투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우리가 잘못된 역사를 배
워 온 결과이기에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대하소설 가운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은 <대망>이다.
대망을 쓴 작가는 관백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두 번씩이나
심병을 크게 앓았던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첫 번 째 심병은 정유년에 얻은 것으로 보름이상 앓아누웠다.
두 번 째는 1598년 초에 얻은 것으로 울산의 도산성 전투에
대한 중간보고를 받은 직 후였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도산성 전투는 55,000명의 조명연합군과 19,000명의 가토가
이끄는 왜군이 도산성에서 보름 정도 싸운 것으로 성안의
왜군들은 사람의 시체까지도 먹으면서 버티다가 남해안에
있던 왜군 구원병력 6만 명의 지원을 받아서 겨우 살아날 수
있었던 처절한 전투였다.
정유년에 왜군이 크게 패한 전투는 명량해전과 황석산성전투
밖에 없다. 남원성 전투와 전주성 전투는 왜군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난 전투였기 때문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심병으로 보름 간 앓아누울 정도라면
‘황석산성전투가 어떤 전투였기에?‘ 라는 의문이 당연히 든다.
우리가 역사책에서 배운 것은 27,000명의 왜군이 성을 단 하루만에
함락시키고 성을 지키던 조선백성 수백 명이 몰살당한 전투라고
배웠다. 과연 그랬을까? 1598년 여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황석산성전투의 실체는 무엇일까?
황석산성은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넘어가는 관문인 육십령 부근에 있는
것으로 천험의 요새다. 그런 지리적 특성과 의를 실천하는 7,000여
백성들의 마음이 합쳐져서 엄청난 전투를 치를 수 있었던 것이다.
황석산성전투는 1597년 8월 14일(음력)부터 18일까지 5일간
함양, 안음, 거창, 합천 등 인근 7개 군현의 백성 7,000명과 왜의
우군 73,000명이 참전하여 싸운 대규모 전투였다. 왜군은 이 전투로
무려 46,000명의 사상자를 내고서야 황석산성을 함락시킬 수 있었다.
조선의 정규군도 아닌 관아를 지키던 향군 500명과 6,500명의 백성
도합 7,000명의 백성군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싸운 결과 왜군에게
막대한 타격을 입혔고, 이에 왜군들은 시간을 벌기 위해서 직산까지
진출했지만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일제히 후퇴하였던 것이다.
이 전투를 이끈 3인의 지도자는 함군군수 조종도, 안음현감 곽준,
거창좌수 유명개 등이다. 비록 졌지만 사실상 승리한 전투였다.
영토를 잃은 민족은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역사를 잃은 민족은
다시 일어설 수 없다는 말이 있다. 2015년 10월 29일 황석산성전투
역사찾기 운동본부가 발족했다. 늦었지만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올해는 아름다운 화림동계곡이 있는 황석산성을 찾아서 역사의 숨결을
느껴보시는 건 어떨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6년 1월 5일 소설가 청너울 지선환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