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수레의 어원 ◑
우리나라 전래풍습 중에 "고수레"라는 말이 있어요
민간신앙에서 산이나 들에서 음식을 먹거나 이바지가 왔을 때
또는 무당이 굿을 할 때,
먼저 자연신에게 예를 갖추어 바치는 의미로
음식물을 조금 떼어 특정 장소 주변에 놓거나 던지면서 행운을 비는 말이지요
그러나 고수레의 유래를 설명하는 이야기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먼저 숙종때의 규원사화(揆園史話)에 의하면 옛날 사람들에게 불을 얻는 방법과 함께
농사 짓고 수확하는 법을 가르치는 고시(高失)씨가 있었는데
후대에 들에서 농사짓고 나물캐던 사람들이 고시씨의 은혜를 잊지 못하여
밥을 먹을 때 '고시네'라고 했던 것에서 유래하였다는 설명이 있는데
이로부터 '고시네'가 '고시레', '고수레'로 변형되었다는 설이 있어요
그리고 또 다른 설은 곡식의 신(神)인 고씨(高氏)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로
음식을 먹기전에 먼저 곡식을 담당하는 고씨에게 예를 차린다는 데서
'고씨례'(高氏禮)라 하였으며 이것이 고수레가 되었다는 설이지요
이외에도, 고씨네라는 여인이 죽어 들판에 묻혔는데 새참을 먹던 사람들이
"고씨네도 먹어라."고 하면서 음식을 떼어주었더니 풍년이 들게 되었고
이후 사람들이 음식을 먹을 때마다 "고씨네"라고 하였던 것이 고수레가 되었다는 설명도 있어요
그러나 옛날 김제평야에서 있었던 일로 고씨성을 가진 대 부호에 관한 이야기인데
의미있는 시사점을 주고 있어요
옛날 김제평야에 고(高)씨성을 가진 대 부호가 살았어요
직접거느린 하인들도 많았지만 전답의 대부분은 소작농에게 주었지요
소작농들은 내 땅이 아니었지만 내 땅처럼 애지중지 하며 농사를 지었어요
한번 소작농이 되면 10년 20년 대를 이어 농사를 지을수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리고 모든 소작농들은 반타작이 불문율 이었지만
고씨성을 가진 부호는 그러하지 않았어요
보통때는 4/6제로 하였다가 가뭄이 들거나 흉년이 들면 3/7제로 바꾸어 주었지요
이렇듯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늘 배려해 주고 아껴 주다보니
사람들은 고을 원님보다도 고씨 노인을 더 존경하게 되었어요
이 노인에게는 장성한 세 아들이 있었지요
그런데 하나같이 아버님의 재산만 믿고 방탕한 생활을 하였어요
고씨 노인은 삼형제를 불러놓고 질타도 하고 훈육도 하였지만
삼형제는 아랑곳 하지않고 노름과 주색잡기에 빠져 가산탕진에 여념이 없었지요
결국 그 많은 재산도 남의 손에 넘어가고 가세는 기울기 시작 했어요
그러자 고씨노인은 자식 모두를 모아놓고 유언을 남겼어요
"내가 죽거든 나를 선산에 묻지말고 바로 집앞 문전옥답에 내 무덤을 쓰거라"
고씨 노인은 궁여지책으로 아무리 불효막심한 놈들이라 하드라도
'자기 부모 묘소가 있는 땅은 팔어먹지 않겠지'하는 기대속에서 그런 유언을 남겼던 것이었어요
얼마후 고씨노인은 죽움을 맞았고 노인의 유언대로 문전옥답에 노인의 묘를 쓰게 되었지요
그러나 주색잡기에 빠져버린 자식늠들은 부친의 깊은 뜻도 모르고
얼마후 문전옥답 마져도 헐값에 탕진하고 말았어요
그러다 보니 해마다 고씨노인의 기일이 와도 누구하나 찾아주는 이가 없었지요
그러자 평소에 고씨노인에게서 은혜를 입은 소작농들이 논밭에서 일을 할때면
제사밥도 못 얻어 먹는 불쌍한 고씨노인에게 밥 한 숟갈이라도 먼저 드려야 한다며
"고씨네" 하며 음식을 드렸어요
그것이 변음화 하여 "고수레"가 되었다는 이야기지요
강원도, 경상남도 지방에서는 '고시레'
평안북도에서는 '쒜'
제주도에서는 '걸명'
강화도지역에서는 '퇴기시레' 라고 하는데
충청도와 경기도에서는 고수레, 고시레, 고시례,꼬수레등 여러 발음으로 쓰이고 있어요
아무튼 고수레라는 말에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나눔의 미학이 있고
은혜를 잊지않는 결초보은이 있으며
주색에 빠져 패륜을 일삼으면 패가망신을 당한다는
평범한 진리가 숨어 있어요
그러나 크게 생각하면
"고수레"라는 말은
희망과 풍년을 기원하는 농심의 표상(表象)이었는지도 몰라요
-* 언제나 변함없는 녹림처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