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의 향기가 물씬 풍기(風氣)는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 전(傳)합니다.
어느 길모퉁이에 과일 행상(行商)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손을 다쳐서 직장(職場)을 그만 둘 수밖에 없게 된 사람이 하는 행상입니다.
먹고살 일이 막막(寞寞)하였기에 손수레 과일 행상이라도 해보겠다고 시작했지만, 괜히 부끄럽고 불편하며 손님과 제대로 흥정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한 손님이 다가와 “이 사과 얼마에요?”하고 묻었습니다. “예. 천원에 두 개입니다.”
그랬더니 삼천 원을 먼저 내고 사과를 고르는데, 글쎄 작고 상처(傷處)가 난 사과만 여섯 개를 골라서 사서 가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후에 다시 온 그 손님이 또 흠이 있는 사과만 골라서 사서 가니까, 모르는 척 돈은 받았지만 께름칙한 생각이 들며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그 손님이 세 번째로 사과를 사러 왔던 날에 행상이 먼저 말했습니다. “손님, 이왕이면 좋은 거로 좀 골라가세요.”
그랬더니 그 손님은 그저 웃는 얼굴로 여전히 작고, 시든 못생긴 사과만 골라 담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야 성한 사과 하나라도 더 파시지요. 저도 어렵게 사는데 댁도 더 어려워보여요. 힘내세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이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손수레 장수는 숨을 쉴 수가 없게 되면서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배려의 향기인가요?
배려(配慮)의 향기(香氣)를 내는 다섯 가지 마음이 있습니다.
1. 첫째, 배려에는 따뜻한 마음이 필요(必要)합니다.
누군가 힘을 보태주어서 큰 도움이 됐더라도, 그 사람이 냉랭한 태도로 나를 깔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그건 배려가 아닙니다.
배려를 받았다기 보다는 자신이 일을 잘못 해서 민폐(民弊)를 끼치는 바람에 화(火)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상대방이 내 행동을 배려로 받아들이게 하려면, 거기에 ‘따뜻함’이 있어야 합니다.
2. 둘째, 말로 하는 소통(疏通)에 너무 집착(執着)하지 않는 것입니다.
배려와 관련된 고민을 살펴보면,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에 집착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상대방에게 건네는 말이 배려의 질(質)을 결정(決定)한다고 믿는 듯합니다.
또한 대화(對話)를 재미있게 이끌어나가는 것이 배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배려의 질은 말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마음가짐,
그리고 그 마음이 담긴 모든 커뮤니케이션과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까지 포함해서 결정하는 것입니다.
3. 셋째,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전달(傳達)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침묵(沈黙)이 흐르면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고민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침묵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침묵도 시간을 공유(共有)하는 한 형태(形態)이기 때문에 결코 문제(問題)가 될 게 없습니다. 내가 먼저 괜찮다고 생각하며 침묵을 즐기면
상대방도 마음을 놓기 마련입니다. 조용히 함께 있기만 해도 유대감(紐帶感)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지요.
4. 넷째, 때로는 거절(拒絶)도 좋은 배려입니다.
우리 주변(周邊)에는 거절하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개중에는 무조건(無條件) 승낙(承諾)해야만
배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요. 물론 여유(餘裕)가 있을 때는 남의 부탁(付託)을 들어주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여건상 도와주기 힘들 때나 도저히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는 거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없을 때는 거절하는 것도 유대를 중시(重視)하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5. 다섯째, 지나친 배려도 소극적(消極的)인 배려도 좋지 않습니다.
지나친 배려란 상대방의 영역(領域)을 침범(侵犯)하는 배려를 말합니다. 상대방의 영역에 함부로 뛰어 들어가,
상대방이 압박감(壓迫感)과 고통(苦痛)을 느끼는데도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을 말하지요.
자신이 생각하는 상대방과 실제 상대방이 다르다는 사실에 둔감(鈍感)한 것입니다. 이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한 것입니다.
지나친 배려나 소극적인 배려가 좋지 않은 것은 그 자체가 상대방을 지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다섯 가지 마음만 잘 지켜도 배려의 향기가 물씬 풍길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원(願)은 큰 데에 두고, 공(功)은 작은 데부터 쌓으며, 대우(待遇)에는 괘념(掛念)치 말고 공덕(功德) 짓기에 힘쓰면 큰 공과 큰 대우가 저절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는 공정한지라 쌓은 공이 무공(無功)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우리 이 배려의 향기로 큰 공과 큰 대우를 누리면 얼마나 좋을까요?<덕산 김덕권 著>
- 좋은 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