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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그림자

작성자노란은행잎/이천|작성시간23.05.05|조회수391 목록 댓글 5

♡너무나 감동적인 이야기♡

칼 그림자         

13살 어린 새신랑(新郞)이 장가가서 신부(新婦) 집에서 첫날밤을 보내게 되었다. 왁자지껄하던 손님들도 모두 떠나고 신방(新房)에 신랑(新郞)과 신부(新婦)만 남았는데...

다섯살 위 신부(新婦)가 따라주는 합환주(合歡酒)를 마시고 어린 신랑은 촛불을 껐다. 신부(新婦)의 옷고름을 풀어주어야 할 새신랑은 돌아앉아 우두커니 창(窓)만 바라보고 있었다. 

보름달 빛이 교교(皎皎)히 창(窓)을 하얗게 물들인 고요한 삼경(三更)에 신부(新婦)의 침 삼키는 소리가 적막(寂寞)을 깨뜨렸다. 바로 그때 ‘서걱서걱’ 창밖에서 음산(陰散)한 소리가 나더니 달빛 머금은 창에 칼 그림자가 스치고 지나갔다.

어린 새신랑은 온몸에 소름이 돋고 아래위 이빨은 딱딱 부딪쳤다. 할머니한테 들었던 옛날 얘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첫날밤에 나이 든 신부(新婦)의 간부(間夫)인 중놈이 다락에서 튀어나와 어린 신랑을 칼로 찔러 죽여 뒷간에 빠뜨렸다는 얘기! 

“시, 시, 신부는 빠, 빠, 빨리 부, 부, 불을 켜시오.”

신부가 불을 켜자 어린 신랑은 사시나무 떨듯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신부(新婦) 집은 발칵 뒤집혔다. 꿀물을 타온다, 우황(牛黃) 청심환(淸心丸)을 가지고 온다, 부산을 떠는데 새신랑(新郞)은 자기가 데리고 온 하인(下人) 억쇠를 불렀다. 행랑방(行廊房)에서 신부집 청지기(傔人,傔從)와 함께 자던 억쇠가 불려왔다.

어느덧 동이 트자, 새신랑은 억쇠가 고삐 잡은 당나귀를 타고 한걸음에 30里 밖 자기 집으로 가버렸다. 새신랑은 두번 다시 신부 집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춘하추동(春夏秋冬)이 스무번이나 바뀌며 세월(歲月)은 속절없이 흘렀다. 

그때 그 새신랑은 급제(及第)를 해서 벼슬길에 올랐고 새장가를 가서 아들 딸에 손주까지 두고 옛일은 까마득히 망각(忘却)의 강(江)에 흘러보냈다.

어느 가을날, 친구(親舊)의 초청(招請)을 받아 그 집에서 푸짐한 술상(床)을 받았다. 송이산적 (松栮散炙)에 잘 익은 청주(淸酒)가 나왔다. 두 사람은 당시(唐詩)를 읊으며 주거니받거니 술잔이 오갔다. 

그날도 휘영청 달이 밝아 창호(窓戶)가 하얗게 달빛에 물들었는데 그때 ‘서걱서걱’ 20年 前 첫날밤 신방에서 들었던 그 소리, 그리고 창호지에 어른거리는 칼 그림자! 그는 들고 있던 청주(淸酒) 잔을 떨어뜨리며 “저 소리, 저 그림자!” 하고 벌벌 떨었다. 친구(親舊)가 껄껄 웃으며 “이 사람아. 저 소리는 대나무잎 스치는 소리고 저것은 대나무잎 그림자야.”

그는 얼어붙었다. 세상(世上)에 이럴 수가! 
“맞아 바로 저 소리, 저 그림자였어... 그때 신방(新房) 밖에도 대나무가 있었지.” 

그는 실성(失性)한 사람처럼 친구(親舊)집을 나와 하인(下人)을 앞세워 밤새도록 나귀를 타고 삼경(三更)녘에야 20年 前 처가(妻家)에 다다랐다. 새신부(?)는 뒤뜰 별당(別堂)채에서 그때 까지 잠 못 들고 희미한 호롱불 아래서 물레를 돌리고 있었다. 그는 문을 열고 “부인~!!!” 하고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새신부는 물레만 돌리며
“세월(歲月)이 많이도 흘렀습니다.” 

그는 땅을 치며 회한(悔恨)의 눈물을 쏟았지만 세월(歲月)을 엮어 물레만 돌리는 새 신부(新婦)의 주름살은 펼 수가 없었다. 선비는 물레를 돌리고 있는 부인(婦人)의 손을 잡고 한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時間)이 흘렀을까? 고요한 적막(寂寞)을 깨고 부인(婦人)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서방님 어찌된 영문(令文)인지 연유(緣由)나 말씀을 좀 해 주시지요. 나는 소박(疏薄)맞은 女人으로 죄인(罪人)아닌 罪人으로 20年을 영문(令文)도 모르는 체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더 이상 눈물도 말라버린 선비는 "부인(婦人), 정말 미안하오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소."

그 때, 첫날 밤의 일을 소상(昭詳)히 이야기를 하고 용서(容恕)를 구하였다. 새벽닭이 울고 먼동이 떠오를 즈음에, 이윽고 부인(婦人)은 말문을 열었다.
"낭군님은 이미 새부인(婦人)과 자식(子息)들이 있으니 이를 어찌하겠습니까? 어서 본가(本家)로 돌아가십시요. 저는 이제 죽어도 여한(餘恨)이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선비는 부인(婦人)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하였다.
"부인(婦人)! 조금만 기다려주시오. 이제 내가 당신의 기나긴 세월(歲月)을 보상(補償)하리다."

선비는 뜬눈으로 밤새고 그길로 하인(下人)을 불러 본가(本家)로 돌아와 아내에게 20年前의 첫날 밤 이야기를 소상(昭詳)히 말하였다. 선비의 말을 끝까지 들은 부인(婦人)은 인자(仁慈)한 미소(微笑)를 머금고 말을 이었다.
"서방(書房)님, 당장 모시고 오세요. 정실(正室) 부인(婦人)이 20年前에 있었으니 저는 앞으로 첩(妾)으로 살겠습니다. 그러나 자식(子息)들은 본처(本妻)의 자식(子息)으로 올려주십시오."

그말에 하염없는 눈물만 흘리는 선비... 이윽고 말을 이었다.
"부인(婦人), 내가 그리 하리다. 그러나 부인(婦人)의 그 고운 심성(心性)을 죽을 때까지 절대(絶對) 잊지 않겠소이다."

선비는 다음날 날이 밝자 하인(下人)들을 불러 꽃장식으로 된 가마와 꽃신과 비단옷을 가득 실어 본처(本妻)를 하루빨리 모셔오도록 명(命)하였다.

며칠 뒤 이윽고 꽃가마와 부인(婦人)이 도착(到着) 하자 선비의 아내가 비단길을 만들어놓고 정중히 큰 절을 올리고 안방으로 모시고는 자식(子息)들을 불러 놓고 "앞으로 여기에 계시는 분이 이제부터 너의 어머님이시니 큰 절을 올려라"고 하니 자식(子息)들은 그간에 어머님으로 부터 자초지종(自初至終) 얘기를 들은 지라 큰절을 올리며  "어머님 이제부터 저희들이 어머님을 정성(精誠)껏 모시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 이후 어진 아내의 내조(內助)와 착한 자식(子息)들의 과거급제(科擧及第)로 자손대대(子孫代代)로 행복(幸福)하게 잘 살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ㅡ 펌글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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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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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노란은행잎/이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5.05 다단편 소설 한편입니다
  • 작성자이쁜예삐 | 작성시간 23.05.05 감동의글에 마음이 뭉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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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노가니 | 작성시간 23.05.05 아직 얼라를 장가를 보냈으니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 작성자해바라기 (경기) | 작성시간 23.05.06 재밌게 읽었습니다
    소설?속 주인공들
    다들 멋진분들이네요 ^^
  • 작성자구름정원 ( 고양 ) | 작성시간 23.05.30 서글픈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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