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시 여행] 광한루원의 완월정 과 영주각.야경.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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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광한루(廣寒樓)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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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남원관광에 있어서의 변죽만 울렸다면 지금부터는 남원의 얼굴격인 남원 광한루(南原 廣
寒樓:보물 제281호)를 세세하게 탐색해 보기로 하자. 내 고향. 남원 고을을 두고 옛 선인들이 하는 말
이있다. 남원은 천부지지 옥야백리(天府之地 沃野百里)의 고장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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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인즉슨~남원은 병풍처럼 둘러싸인 험준한 고개가 외적을 막아주어 천부(天府)라 이르고 섬진강
상류 요천은 수량이 풍부해 백리(百里) 평야의 풍년을 기약하니 옥야(沃野)라 불렀다. 역사속의 남원
고을은 백제 온조왕(백제의 제1대 왕이며 백제를 건국한 인물로 고구려 시조인 동명성왕 주몽의 둘째
아들)때 이미 고룡(古龍)군으로 불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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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미루어 보아 삼국이 정립되는 시기부터 이미 큰 고을로 자리잡고 있었으며, 통일신라시대에
는 5소경중 하나인 남원경(南原京)이 설치되어 당시 백제권 영토의 남방 중심지 였음을 알 수 있다.
민족의 비극인 임진왜란과 정유재란등 국난이 닥칠때에는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의병이 분연히 일어
나는 충절의 모습을 보여 주어 충절의 고장하면 모두 남원을 손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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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한 사랑의 언약을 위하여 어떠한 협박에도 굴복하지 않은 성춘향의 정절과 더불어 이몽룡 역시
사랑의 언약을 지키기 위하여 양반의 신분으로 과거에 급제한 뒤에도 춘향과 만남을 위하여 노력한
일은 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 세계적인 문학 발상지로 자리잡게 된지도 이미 오래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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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허부(淸虛府): 광한루원의 정문이며 청허부라고 쓰인 현판이 걸렸다. 청허부란 옥황상제가 사는 나라 옥경의
정문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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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한 효성은 심청전을 소설로만 읽지 않고 판소리 심청가로 발전시키었으니 이 역시 다른고장에서
는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남원(南原)은 예로부터 수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남원(南原) 이라
는 도시 이름을 1300여 년간 일관되게 같은 이름으로 사용하며 지켜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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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은 충, 효, 예, 열의 정신 과 정절의 고장답게 판소리의 성지 와 한국 고전문학의 자원을 잘 간직
하면서 그야말로 맛과 소리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사랑의 테마도시(1999년 사랑의 도시로 선포)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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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의 남원 광한루는 갠적으로 몇 번을 다녀 온지도 모를만큼 수 없이 다녔온 것 같다. 물론 광한
루에 대해서 남들 보다는 많이 알고 있다라고 자부(自負) 하고는 있지만 그러나 이 광한루에 대해서
제대로 여행기를 써 놓은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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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이번참에 남원 과 광한루에 대한 공부도 할겸해서 작심하고 돌아 볼 심산으로 유랑자는 입장료
3.000원을 지불하고 광한루원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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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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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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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한루는 유랑자가 어렸을때나 50여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이나 빚바랜 흑백의 화폭처럼 큰 변
화없이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빠르게 변해만 가는 요즘 세태속에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
각과 변함이 없다는 조금은 아쉬움같은 마음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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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변함없이 그자리에 그대로 있는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개발이라는 명분에 밀려 파 혜처지고
변형되고, 부서지고 하여 고전적인 옛 모습을 잃어 버린다면 그것만큼 흉한게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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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월정(玩月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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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장마비는 추적추적 내리다 말다를 반복하고 유랑자는 그 보슬비와 인파 속으로 묻어 들어간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광한루원(廣寒樓苑)은 우리나라 4대 누각의 하나인 광한루와 더불어 하늘의
옥황상제가 살던 궁전 [광한청허부]를 지상에 건설한 인간이 신선이 되고픈 이상향으로 월궁의 광한
청허부와 같다하여 얻어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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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두고서 시인묵객들은 궁궐에는 경회루(慶會樓)가 있고, 지방에는 광한루(廣寒樓)와 더불어 평양
의 부벽루(浮碧樓), 진주 촉석루(矗石樓), 밀양 영남루(嶺南樓)와 더불어 우리나라 4대 누각이라 불려
지는데 그 중 으뜸은 광한루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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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월정(玩月亭): 정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누원을 압도하는 웅장한 정자가 눈길을 끈다. 못(연지)을 파고 요천의 물을
끌어다 채우고 수중 누각을 세웠다. 앞에 가리는 게 없어 시원하다. 그래서인지 해마다 춘향제가 열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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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모양 인공수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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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유랑자는 북한 평양시 대동강변에 있는 부벽루를 빼 놓고는 다 가 보았다. 그것도 한.두번씩이
아니라 제법 여런번 정도...물론 갈때마다 새롭다. 모든 것은 계절별로 최소 4번 이상은 가보았을 때
비로소 그곳에 대한 절경과 풍광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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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면에서 이곳 광한루 역시 여러(10정도)번 정도는 와서 보았으니 이젠 광한루가 어떻다고 이야
기 할수 있는 것이다. 각설하고 이 건물들을 보면 한양의 경회루는 궁궐의 건물로 왕실에서 지은 건
물(1867년:임진왜란때 불탐)인 만큼 역사 또한 150여년밖에 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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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서 왕실의 것인만큼 아무나 사용할수 없는 그들만의 것이다, 그러나 시인 묵객 이라면 누구나
다 사용이 가능한 지방의 누각 중 평양의 부벽루는 애석하게도 아직은 가볼 수 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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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월정(玩月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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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각의 이름은 옛날 남원성 남문의 문루 ‘완월루(翫月樓)’에서 따온 것이다. 동학농민동기(1894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남원성의 남문인 완월루가 지금의 스탠다드차터드은행 네거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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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월정(玩月亭)이다. 날아갈 듯 멋진 모습의 수중 정자이다. 환상의 세계인 월궁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달을 보면서
꿈꿀 수 있도록, 그래서 완월정은 달이 뜨는 방향인 동쪽을 향하여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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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촉석루는 안타깝게도 6ㆍ25 때 불에 타 지금의 건물은 1960년 5월경 복원한 것으로 복원 역사가
짧으며, 밀양의 영남루 역시 1844년에 지어 복원 역사가 채 200년이 안되 길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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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광한루는 1419년에 지어 1597년 정유재란 때 불탔으나 1626년에 복원한 건물로 근 400여년이
흘렀으니 복원 역사 면에서도 단연 으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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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한루원은 경복궁 경회루의 지원 과 전남 담양군에 있는 양산보가 조성한 소쇄원 과 함께 한국의 정
원을 대표할 만큼 우수하며 독특한 조경양식이 탄생하는 모체가 되고 있다는 자부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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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월정(玩月亭):완월정의 이름은 남원성의 ¹사대문중 남문의 문루 이름인 완월루에서 완월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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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월정: 옛날 옥황상제가 계신 옥경에는 광한전이 있으며, 그 아래 오작교와 은하수가 굽이치고 아름다운 선녀들이 계관의
절경 속에서 즐겼다는 전설이 있다. 이 전설에 따라 광한루는 천상의 광한전을 재현한 것이며, 이 완월정은 지상인이 월
궁을 즐기기 위해 전통 조선식 누각을 세워 광한루원의 절경을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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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전의 놀이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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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정원의 사상적, 역사적 배경은 자연적 사고방식 즉, 신선사상과 음양오행사상, 풍수지리사상 또
는 수심양성의 도로 표현되는 송, 죽, 국, 매의 사절 과 유교의 선비사상이다. 그중에서도 신선사상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신선정원의 양식은 생성시기인 조선시대의 제도적인 원인에 기인하
여 유교문화가 지방으로 분산되면서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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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우리 조상들은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정원 조성에 세심한 배
려를 하여 신선이 사는 이상향을 이 땅에 건립하고자 하였으며, 이러한 생각은 분합문을 달아 열어놓
고 지내어 건물이 탁 트이게 처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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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각(瀛洲閣)은 봉래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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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각(瀛洲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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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누원 앞에 호수는 은하를 상징하도록 하여 하늘의 옥황상제가 사는 곳처럼 꾸며서 월궁의 광한
청허부와 같다고 한 광한루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광한루원을 살펴보면 정원은 인공적인 멋을 가
리지 않고 토양 구릉을 자연 그대로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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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문드문 자연석 고인돌을 구릉에 그대로 놓아 작은 언덕 공간처럼 하고, 정원수도 전지를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자라도록 하여 흡사 숲속에 있는 착각이 들게 한다. 이러한 연유로 건축기술 과 사회상,
생활, 이상향 등 당시의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명승지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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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각(瀛洲閣)에 걸려있는 한시 몇수를 남원문화원 김현식 사무국장님의 조언을 구해 올려본다. 혹여 광한루
영주각에 오르는 길이 있으면 참고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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樓生六百有餘年(루생육백유여년)광한루가 생긴지 육백여년이 되었는데
重創隋時尙屹然(중창수시상흘연)중건을 수시로 하여 지금까지도 우뚝하네.
此地長臨閒日月(차지장임한일월)이곳에는 한가로운 세월이 언제나 임하였고
別天終古好山川(별천종고호산천)별천지에는 아름다운 산천이 예로부터 있었네.
鄕襲良風眞樂土(향습량풍진낙토)지방에 좋은 유풍 이어오니 참으로 낙토이고
人能淳俗卽神仙(인능순속즉신선)사람들은 순박한 풍속 잘 지키니 바로 신선이로세.
外來文化嗟多變(외래문화차다변)외래문화에 아! 우리 것 많이 변했는데
感彼南原故事傳(감피남원고사전)저 남원 고을에는 고사가 전해오는 것 감격하네.
昌寧 成百曉 창녕 성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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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祝南原廣寒樓六百周年紀念(남원광한루600년을 축하하며)~
憶昔三韓定鼎年(억석삼한정정년)옛날 옛적 삼한시대에 이미 정한 남원골
南州雄府更依然(남주웅부경의연)남쪽 땅의 웅대한 고을로 더욱 의연하네.
西呑德果蛟龍嶽(서탄덕과교룡악)서쪽으로 덕과를 삼켜 교룡봉이 우뚝 솟고
東接扶桑蓼水川(동접부상요수천)동쪽으로 해돋이 요천수를 접하였네.
堪輿芥蒼無垠界(감여개창무은계)하늘 땅, 어슴푸레 끝이 닿는데 없고
風流香案盡神仙(풍류향안진신선)향기로운 풍류의 자리에 모두가 신선일세.
山下第一廣寒殿(산하제일광한전)산하 제일 광한전은
天作靈區萬歲傳(천작령구만세전)하느님이 지은 신령 곳으로 오래세월 전하리라.
樸堂 朴金奎 박당 박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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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광한루원 모습은 루원 근처 시장이 불타고 옮긴 것을 비롯하여 수차례 확장 사업을 하면서 차
례로 근처의 부지를 매입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광한루원은 근세 전기에 조영된 대표적인 정원
으로 꼽히고 있는데 한국의 독특한 조경양식이 탄생하는데 모체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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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광한루원은 정원을 대표할 수 있을 만큼 질적으로도 우수하고 통시대적 문학사에 나타난 정원양
식을 표현하고 있어 전통예술을 계승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문화재적
가
치가 높다고 평가하고 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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創建斯樓六百年(창건사루육백년)이 누대를 창건한지 육백년에
依稀景觀思悠然(의희경관사유연)의희한 경관에 의사가 유연하네.
三山曾歷多煙月(삼산증력다연월)삼신산은 일찍이 많은 연월 겪었고
河水近因大蓼川(하수근인대요천)은하수는 가까이 큰 요천 연했네.
祕境遠移淸淨府(비경원이청정부)신비로운 경내는 청허부를 옮겨왔고
鵲橋幾渡往來仙(작교기도왕래선)오작교는 얼마나 많은 오고가는 신선이 건넸던고.
誰將玄妙邯鄲夢(수장현묘감단몽)어느 누가 현호한 한단 몸을 가져다가
別有風流此世傳(별류풍류차세전)별개의 풍류를 이 세상에 전했는고.
咸陽 朴聖琪 謹韻 함양 박성기 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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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각(瀛洲閣)
영주각은 광한루와 더불어 루원내 신선사상 배경의 정원으로 가꾸기 위해 축조된 상징적 루각으로서
[용성지]의 루정편에 보면 "전라감사 정철이 요천에서 흘러들어온 물이 루앞을 좁다랗게 흐르고 있어
개울을 넓혀서 평호로 하고 은하수를 상징케 했으며 주위를 석축으로 하고 호중에 세개의 섬을 만들
어 하나에는 녹죽을 심고 하나에는 백일홍을 심었으며 다른 하나에는 정자를 세우고 호중에 연꽃을
가득 심었다"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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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헌에 따르면 영주각은 1582년(선조 15년)에 관찰사 정철이 주도한 광한루 확장 공사시 건립된 것
으로 보이며 현재의 영주각은 정조 18년(1794)에 부사 이만길이 재건한 것이라 한다. 그 후 1963년부
터 경내가 확장 정화되면서 65년도에 제 36회 춘향제를 준비하면서 단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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方丈在西蓬島東 (방장재서봉도동)방장산은 서쪽에, 봉래섬은 동쪽에 있으며
瀛洲孤閣水之中 (영주고각수지중)한 영주각은 물 가운데 있다네.
登臨忽有蒼茫意 (등림홀유창망의)올라 다다름에 갑자기 아득한 뜻이 있는데
何處簫聲寄遠風 (하처소성기원풍)어디선가 퉁소소리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 타고 들려오는구나.
辛未夏 (신미하) :~春岡 鄭碩謨 (춘강 정석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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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 10.91평 겹처마 팔작지붕의 루각으로 [영주각]이란 현액과 영주각에서
바라본 광한루원의 풍경을 노래한 4개의 편액이 걸려 있다. 영주각은 단층누각 형태로 기단부는 화
강석 장대석을 정밀가공하지 않고 설치했으나 부분적으로 자연미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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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하부의 석주는 화강석으로 일정하지 않은 방형으로 가공해서 초석받침위에 세웠고 초석위로 장
귀틀과 동귀틀을 끼워 우물마루를 설치하였고 초석위에 홈을 파서 귀틀장선을 끼웠다. 상층 우물마
루에는 누간을 두지 않고 기둥에 홈을 파서 연모중방을 끼우고 머름을 낮게 설치하였으며 후면에 목
조계단 5단을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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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각(瀛洲閣)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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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각(瀛洲閣)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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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 위에는 주두를 얹고 기둥머리부터 양서를 하나 내고 위에 쇠서를 구성하여 이익공의 형태를 만
들었으며 창방과 주심도리 사이에는 화반을 끼웠고 주심도리와 주두에는 첨자를 끼웠다. 가구는 5량
으로 대들보를 외진 기둥 주두위에 얹고 보위에 동자주를 세워 종량을 받치며 종량위에는 판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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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은 연등천정으로 연목과 부연이 있는 겹처마이고 건물 네귀의 추녀에는 활주를 받쳤고 기둥머리
이하에는 석간주 가칠하였고 상부는 모로 단청으로 마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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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월정(玩月亭)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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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허부(淸虛府):의 야경: 광한루원의 정문이고 청허부라고 쓰인 현판이 걸렸다. 청허부란 옥황상제가 사는 나라
옥경의 정문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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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한루는 20시~21시까지는 무료 개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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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www.namwon.go.kr/tour/index.do?menuCd=DOM_0000010010070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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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전북 남원시 천거동 187-31
전북 남원시 요천로 1447
(지번)천거동 78
*운영시간 안내 : 063-625-4861 대표번호
하절기:04월~10월 / 오후 6시 이후는 무료입장
매일 08:00 ~ 20:00
동절기:11월~03월 / 오후 6시 이후는 무료입장
매일 08:00 ~ 20:00
(참고: 18시 이후는 무료입장, 야경사진 찍을수 있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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