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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시 여행] 남원 마지막 여행지 산동면 유학자 김화의 재간당(在澗堂)과 가을..........108

작성자유랑자1|작성시간21.03.13|조회수339 목록 댓글 0

[남원시 여행]   남원 마지막 여행지 산동면 유학자 김화의 재간당(在澗堂)과 가을..........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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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산동면 재강당(在澗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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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유랑자가 남원 여행을 하기 위해 8월부터 10월까지 서울과 남원을 오가며 4차례에 걸처 방문,

합 15여일동안 남원의 곳곳을 누비면서 제법 많은곳(90여곳)을 둘러 보았다남원!, 그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로 잡은곳은 산동면 목동리 재간당(在澗堂)이다전북 남원시 산동면(山東面)은 시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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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은 운봉읍과 인월아영면서쪽은 보절면남쪽은 남원시와 이백면북쪽은 장수군과 접해 있다.

산동면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흐르는 요천을 사이에 두고동쪽으로는 백두대간의 고남산과 북서쪽으

로 천황산연화산낙산의 연맥이 뻗어 있고남서쪽으로도 시루봉말봉매봉의 연맥이 뻗어내려 그

사이의 요천 유역에 위치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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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산동면(山東面)은 천황산[동쪽[]에 위치한 데서 산동면 지명이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대는 산군들이 둘러쌓여 있어 수려한 계간(溪澗)이 많아 선비들의 은거처로 많이 찾는 지역이었다

동면 목동리 나뭇골 북쪽에 있는 재간당(在澗堂)도 그중에 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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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의 그윽한 풍류적 삶을 이 시에 나타내고 있다. 

水 舂 巖 (수용암)

在澗堂 金澕 (재간당 김화)扶安人朝鮮中期 儒學者

林下捿遲鬢已殘(임하서지빈이잔)산중에 살다보니 벌써 귀밑털이 흰데

百年誰復厭貧寒(백년수부염빈한)한평생 물린 가난을 누가 되돌릴 것인가

移根長筍成脩竹(이근장순성수죽)대나무 뿌리 옮겨 심으니 대숲을 이루고

引澗通池作激湍(인간통지작격단)연못을 만들어 물을 대니 소용돌이 물결이 인다.

野老開筵魚入餐(야노개연어입찬)촌노는 대자리 깔아 물고기 찬을 들이고

山童餉客蕨登盤(산동향객궐등반)동자는 손님 소반에 고사리를 올린다.

聊專一壑安蝸室(요전일학안와실)산골에 오직 작은집 하나면 족한데

不用千金買馬鞍(불용천금매마안)천금짜리 말 안장이 무순 소용이겠는가.

-龍城誌(용성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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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유랑자는 이 재간당을 찾기위해 무려 1시간 이상을 차를 몰고 산동면 목동리 일대를 헤매다가 우

연찮게 겨우 찾았다시골인지라 딱히 누구에게 물어볼 사람도 없고 또한 인근에 사는 어르신들 마져

도 재간당이란 이름을 잘 몰랐으며 온라인상 올라온 재강당이란 주소지는 어뚱한 야산에 안내를 하고

있으니 이아니 답답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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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를 이리저리 헤매다가 겨우 발견한 재간당!,  좁은 골목길을 들어가 재간당 앞에 차를 세우고 차

에서 내렸다마을어귀 한곳에 자리잡은 정자는 작지만 아름다운 주변의 기암 절경속에 그 우아함을

간직한채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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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면 목동마을은 천황봉 줄기가 뻗어내려 큰 연화산과 싸리봉 사이에서 발원하여 내려오는 계곡을

풍곡이라 하고 풍곡의 물줄기를 따라 내려오면 부안김씨의 집성촌 목동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재간

당은 이 정자의 주인인 김화(金澕.1571 선조 4~1645 인조 23)의 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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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부안이며 문정공 김구(金坵)의 후손으로 충경공 김익복(金益福)의 아들이다. 조선 중기 목동

에서 태어나 이괄의 난에 창의하여 의병을 이끌고 여산까지 올라가다 난이 진압되었다는 소식을 듣

고 되돌아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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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야담의 저자 유몽인이 관직에서 물러나 고흥의 옛집에 머물고 있다는 말에 광해군은 그를 남원

부사로 임명하였다유몽인이 임지인 남원에 도달하자마자 먼저 찾은 사람이 바로 재간당 김화이다.

김화와 유몽인 그리고 여러 지인들이 함께한 가운데 술잔을 기울이며 밤새 이야기꽃을 피우다 그대

로 정자에서 잠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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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곡의 맑은 물이 흘러내려 빼어난 풍치를 자랑하는 정자 주변은 재간당 김화의 장구지소(杖屨之所)

라 할 수 있다특히 바위에 새긴 세이암(洗耳岩)은 세상의 어지럽고 혼탁함을 닦고자 했던 재간당의

신념을 반영한 것이라 할 것이다이 외에도 하마대(河馬䑓), 수용정(水舂亭), 추모대(追慕坮등의 글

씨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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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수용정 각자가 있는 층층석대 사이에서 흘러나온 석수가 두 홈 정도 고일 샘을 만들고 얕은 물

길도 내었다작은 표주박으로 한두 번 뜨면 바닥이 드러날 정도의 샘을 보면서 물이 찰 때까지의 기

다림과 과하지 않음을 추구하는 재간당의 면모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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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인(扶安人진사 김화(金澕)가 두류산 서쪽 기슭에 있어서너 겹으로 둘러쳐진 구름 낀 봉우리

를 누대 난간에서 마주 바라볼 수 있어 재간당(在澗堂)을 지어 유유적 삶을 누렸다고 적고있어 관련

정보와 일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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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조선 시대 학자이자 문인으로 외교관으로도 이름을 떨친 어우당(於于堂유몽인(柳夢寅 1559

명종 14 ~1623 인조 1)이 1611(광해군3) 용성(龍城), 남원부사로 부임해 지내며 두류산 일대를 유

람하기 위해 오르며 이곳에 들려 재간당기(在澗堂記)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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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에서 "재간당(在澗堂)이 두류산(頭流山) 서쪽 기슭에 있으니 진사 김화가 살고 있는데, 그는 처사

(處士)이다승평 부사 유순지(柳詢之 졸암(拙庵유영순(柳永詢 1552~1630)의 자)는 처사의 외속(

)인데선영이 그 기슭에 있어 성묘를 마치고는 나를 재간당(在澗堂)으로 초대하여 주연을 베풀었

그리고 시로 그 감회를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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尋春仙府作遨頭(심춘선부작오두)수령 되어 신선 고장으로 봄을 찾아오니

前此淸遊覺謬悠(전차청유각류유맑은 유람 허망한 것임을 알았네

水石共開詩酒會(수석공개시주회)산수에서 함께 시 짓고 술 마실 것이니

休言法掾事卑陬(휴언법연사비추)법부 관리가 시골 수령 맡았다 하지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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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유몽인은 기에서 동쪽으로는 두류산의 여러 봉우리를 마주하고 있어 짙푸른 빛깔이 창에 가득하

앞으로는 절벽이 펼쳐져 있는데샘물이 이곳에 이르러 아래로 떨어져 흰 물결을 날리면서 천둥

소리를 내니 곧 수용암(水舂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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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술상이 진설되고 풍악소리 울려 퍼지는데술자리가 무르익자 유순지가 술잔을 잡고 김 처사에

게 권하며 재간〉 시의 첫 번째 장을 노래하기를,

考槃(고반) -오두막집에 은거함.

考槃在澗(고반재간)산골 개울물에 오두막 지으니

碩人之寬(석인지관)어진 은자의 너그러운 마음이네.

獨寐寤言(독매오언)혼자서 자나 깨나 하는 말

永矢弗諼(영시불훤)이 생활 못 잊겠다 언제나 다짐하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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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나(우몽인)는 이어서 술을 권하며 두 번째 장을 노래하기를,

考槃在阿(고반재아)울퉁 불퉁 언덕에 오두막 지으니

碩人之薖(석인지과)어진 은자의 크나큰 마음이네.

獨寐寤歌(독매오가)혼자서 자나 깨나 하는 노래

永矢弗過(영시불과)이 자리 못 떠나겠다 언제나 생각하네.

하였다.

 

노래가 끝나고 마지막 장이 남아 가기(歌妓향옥(香玉)에게 시켰다그러자 술잔을 올리며

노래하기를,

考槃在陸(고반재육)높다란 평지에 오두막 지으니,

碩人之軸(석인지축)어진 은자의 여유로운 마음 한가롭네.

獨寐寤宿(독매오숙)혼자서 자나 깨나 그대로 누워,

永矢弗告(영시불고)이 즐거움 말 않겠다 언제나 다짐하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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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가 끝나자 각기 취한 몸으로 두류산에 들어가 노닐었으니, 그 내용은 두류록(頭流錄)에 기재되

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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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墨抽身恣討幽(주묵추신자토유문서더미 빠져나와 마음껏 승경 찾으니 

客懷憀慄當三秋(객회료률당삼추한가을 맞이하여 나그네 마음 싸늘하구나

黃庭誤讀不須悔(황정오독불소회) (황정경잘못 읽은 일 후회할 것 없으니

謫下猶來方丈遊(적하유래방장유하계로 귀양 와서도 방장산을 유람하네

狂折村梅傍水開(광절촌매방수개물가에 핀 시골 매화 미친 듯이 꺾었으니

莫嗔雙屐破靑苔(막진쌍극파청태나막신으로 푸른 이끼 짓밟는다 꾸짖지 말게

他日羸驂驚欲倒(타일리참경욕도훗날 여윈 말 타고 오면 놀라 넘어지리니

桃花流水鏡中來(도화류수경중래거울 같은 물결에 복숭아꽃 흘러오리라

次在澗堂韻(차재간당운) / 頭流錄(두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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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간당은 두류산 서쪽 기슭에 있어, 서너 겹으로 둘러쳐진 구름 낀 봉우리를 누대 난간에서 마주 바라

볼 수 있었다일대는 연화산의 풍곡을 타고 흘러내리는 계곡 물은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수려한 경관

을 이룬다바위에 부딪히며 갈라져 내리는 물은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청량한 소리를 낸다.

어우몽이 이를 놓치지 않고 그다운 운치를 이렇게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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桃花流水鏡中來(도화류수경중래)거울 같은 물결에 복숭아꽃 흘러오는데

春雨濛濛潤碧苔(춘우몽몽윤벽태)봄비가 부슬부슬 내려 푸른 이끼 적시네

別有高歌山石裂(별유고가산석렬)산과 바위 가를 듯한 높은 노래 있으니

燭花須對磵花開(촉화수대화간개)등불 켜고 섬돌에 핀 꽃을 마주하네

三疊體倒前韻 頭流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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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에 앉고 보면 소나무 그늘을 머금고 떨어지는 폭포 소리에 선경의 분위기가 그윽하다. 그러한 분

위기를 그들은 즐기고 또 즐겼던 것으로 시문들에 오롯이 녹아있다.  기암절벽의 천년 이끼와 은은한

맑은 물소리가 은둔자의 마음을 담고 있는 것 같다온몸에 한기를 느낄 정도의 서늘한 물소리에 속세

를 잊는 무아의 분위기에 휩싸이게 한다.

그래서 바위벽에 '귀를 싯는다'는 세이암(洗耳岩이라고 각인이 지금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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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朝鮮)의 역사상 8명의 문장가(文章家고담(孤潭이순인(李純仁 1533 중종 28 1592 선조 25)

이 어느날 정읍 내장산(內莊山)에 서 구례 연곡사(燕谷寺)에 가는 길에 들려 세이암에서 마음을 씻으

며 시를 읊었다때가 가을이었다.

洗耳巖(세이암세이암-李純仁

落日照行逕(낙일조행경지는 해 비춰 걷는 좁은 길

寒泉隔葉聞(한천격엽문차가운 샘물소리 잎 너머 들려오네

秋山共一色(추산공일색가을 산 온통 빛깔 하나로

何處覓孤雲(하처멱고운어디서 찾나 외로운 구름을 찾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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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동안 고절을 지키며 후생들을 가르친 학자 후창(後滄) 김택술(金澤述 1884 고종21~ 1954)이 지

리산 주변을 유람하고 두류산유록을 남겼다. 그는 1904년 4월 3 일에 이곳 세이암(洗耳巖)에 이르렀다.  

고운(孤雲)이 놀던 곳으로 수석(水石)이 매우 기이하며 이름을 써놓은 것이 많았다고 하며 그 감회를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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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人洗得耳根餘(고인세득이근여) 고인(高人)은 귀를 씻었는데,

俗子名心洗未除(속자명심세미제) 세속 사람 명리를 추구하는 마음 씻어도 없어지지 않네.

云是孤雲遊賞地(운시고운유상지) 고운이 노닐던 곳이라 하는 곳,

刻題石面紛紛如(각제석면분분여) 돌에 새긴 이름들 어지럽기만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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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서예가였던 전남 구례 출신인 고당(顧堂) 김규태(金奎泰 1902 ~ 1966)도 세이

(洗耳)하고 싶어 이곳에 들리고는 '산에 들어간 긴 속세인연 끊자는 일/귀를 씻음도 부질없는 일이었네.

入山便絶塵(입산편절진)/ 洗耳徒勞耳(세이도로세)'라고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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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있는 것 만으로도 귀를 씻을 필요가 없을 만큼 온통 초 자연적이라는 의미다. 대나무 죽순은

자라면 저절로 대숲을 이루고, 물을 모아 이룬 연못물은 바람이 불면 자연 물결을 만드는 곳, 자연을

얻는 부자는 행복하기만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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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국(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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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국(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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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들 내 가난을 바꾸겠는가? 번잡하게 사는 부자보다 생복한 간한 삶을 택했던 우리네 은거처사

들이 유랑자는 마냥 부럽기만 할 뿐이다. 암튼 부안김씨가 산동면 목동에 세거 한 뒤 대대로 많은 인

제를 배출하였고 산동방, 목동방 뿐만 아니라 주변 향촌사회의 교육을 이끌어왔던 요계서원(蓼溪書院)

은 현재 폐철되었고 옛터는 그 흔적마저도 사라지고 잊혀져가고 있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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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시절이 겨울을 준비할 시기이긴 하지만 시간이 있거들랑 목동마을 재간당 정자에 올라 옛 선현

을 떠올려보고 풍곡의 맑은 물에 요즘 토착왜놈들의 막말로 더럽혀진 귀를 씻어 보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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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사골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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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사골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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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여행을 끝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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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유랑자는 남원 여행을 하기 위해 4차례에 걸처 남원을 방문합 15여일동안 남원의 23개 (1,

15, 7)의 지역등곳곳을 누비면서 되도록이면 많은곳(90여곳)을 둘러 보았다물론 아직도 아쉬

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러나 이것으로 남원여행을 끝 마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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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남원을 그냥 퇴락해 가는 지방의 작은 중소도시로만 알았던 유랑자는 남원시가 이렇게 역사

와 전통을 자랑하는 천년고도(1300)의 도시임을 미처 몰랐던 것이 조금은 부끄러웠다본시 남원

(南原京)은 천부지지 옥야백리(天府之地 沃野百里)의 고장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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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사골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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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사골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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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사골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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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남원은 인()을 소중히 여기는 충(), (), (), (), 를 다하는 문향(文鄕)의 고장이요,

청백리(淸白吏)의 고장임을 알았다열의 정신 과 정절의 고장답게 판소리의 성지 와 한국 고전문학의

자원을 잘 간직 하면서 그야말로 맛과 소리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풍요(豊饒)의 고장임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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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추어탕의 원조(元祖)가 운봉(황산전투이었음을 알았고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가장 많은 의병을

양산해낸 고장이 전라도 였으며 그 중에서도 남원 지방의 의병이 가장 많았다는 것도 이번 여행을 통

해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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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사골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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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계곡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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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계곡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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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전국에서 안동에 이어 남원이 두번째로 정려각이 많은 효(孝)와 열녀(烈女), 열부(烈婦)의 고장

임을 직접 눈으로 확인도 했다, 이번 남원 여행은 유랑자에게 너무나 유익한 여행 이었으며 천년고도

다운 남원시가 앞으로도 천년을 넘어 더 나아가 오천년의 역사 더 나아가 1만년의 역사를 다시 이어

나가는 1만년의 도시로 거듭나길 간절히 바라면서 이 유랑자가 남원시와 남원 시민들의 무궁한 발전

을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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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참고로 이번 남원 여행에서 많은 도움을 주신 남원문화원 김현식 사무국장님을 비롯해서.기타 남원시

청의 직원분들, 그리고 용담사 정암 주지스님분들께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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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유랑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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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계곡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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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계곡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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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이어보기

https://cafe.daum.net/b2345/LKz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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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시 산동면 목동리 418-3

*재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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