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완주 여행] 태조 어진을 모셨던 위봉사..........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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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봉사 전경사진:https://blog.naver.com/art1795/222009022629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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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줄산 위봉사(崷崒山 威鳳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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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태종 어진을 모셨던 위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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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학교에서 나온 유랑자는 고개를 넘어 위봉사를 찾는다. 위봉사는 백제 무왕 5년(604)에 서암대사가 지었다는
설과 신라말에 최용각이라는 사람이 말을 타고 산천을 누비다 고산에 이르러 남쪽을 바라보니 절 터에 세 마리의
봉황이 에워싸고 있는 형국을 발견하고 가람을 조성하고 위봉사((圍鳳寺)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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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절을 처음 지었다는 최용각은 신라말에 완주에 이주 해온 경주최씨 후손으로 묘소와 재실이 위봉사에서 가까운
대아리에 있는 것을 보면 대략 짐작이 간다. 그러고 보면 경주 최씨 원찰로 창건한 것이다. 그리고 3마리 봉황은 3
명의 최용각 아들이 모두 출세하여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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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봉사 일주문 좌측에 세워진 경구비 내용이다.
對上以敬(대상이경) 윗사람을 대함에 공경으로써
對下以慈(대하이자) 아랫사람을 대함에 자비로써
對人以和(대인이화) 사람을 대함에 온화함으로써
對事以眞(대사이진) 일을 대함에 진실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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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문(四天王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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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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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우리나라 경우 롯데그룹의 원찰은 울주군에 있는 문수사이다. 광릉내 봉선사는 세조를 추모하는 절이다, 승
가사는 고려왕실, 경국사 수국사 봉국사 봉녕사는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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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고려말 보조국사 지눌이 송광사 옆을 지나다가 나무오리 3마리를 날려 보내 그 중 1마리가 내려 앉은 곳에 위
봉사를 창건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그런데 실질 적으로 풍수지리상 위봉산성의 형상은 산세가 굽이 굽이 꿈틀거
리고 험준한 것이 용이 또아리를 틀고 봉황이 날아오르는 형세를 갖추어 위봉(威鳳)이라 하였다는 설이 풍수가들
의 입으로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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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서루(鳳棲樓) 주련
掌上明珠一顆寒(장상명주일과한) 손바닥 위 밝고 맑은 구슬 하나
自然隨色辨來端(자연수색변래단) 저절로 빛깔따라 드러나도다
幾回提起親分付(기회제기친분부) 몇차례나 친히 가르쳐 주었건만
暗室兒孫向外看(암실아손향외간) 어둠속의 아해들은 밖에서만 찾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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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봉사는 1359년(고려 공민왕 8년)공민왕의 스승인 나옹화상이 위봉사를 대가람으로 중건하기도 하였다. 나옹혜근
선사는 우리에게 유명한 게송을 남긴 스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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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혜요(靑山兮要) 나옹선사 시
靑山兮要 我以無語 (청산혜요 아이무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 我以無垢 (창공혜요 아이무구)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愛而無惜兮 (료무애이 무석혜) 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 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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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절집에 관련한 설화들을 보면 뜬구름 잡는듯한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대목들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
든 종교들이 똑같은 이야기이지만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한같이 죽은 사람을 살렸다는 이야기부터 축지법으
로 하룻밤사이에 천리는 갔다는등, 기도 하나에 바다가 갈라지고, 목각이 날아 다닌다는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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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마음을 현혹(眩惑)하는 온갖 감언이설(甘言利說)로 말장난을 하는 경우들이다. 말도 안되는 근거들을 들
이대면서 가져다가 붙이면 전설이 되고 설화가 되는 것이 종교관련 이야기들인것 같다. 암튼 종교에 관한 무실론자
입장에서 어느 종교를 배척할 수는 없지만 세상 이치라는게 그렇다는 것이다. 그들만의 세상에서 먹고사는 방법중
하나일테 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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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봉사의 상진 500년 된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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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466년 선석대사(善釋大師) 석잠대사(釋岑大師) 중수를 논의한 끝에 여래해 돈을 모아 60년 만에 극락전을 중
수 하였으며. 고려시대 위봉사(圍鳳寺) 조선시대 위봉사(威鳳寺)로 바뀌었다. 그러나 위봉사는 나옹화상의 발원에
도 소용없이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으로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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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5년(숙종 원년)에는 전란에 대비하여 위봉사를 중심으로 위봉산성이 축조되고 전주 경기전에 모신 태조 이성계
영정과 위패의 어진을 보호할 목적으로 행궁(行宮)이 건립되었다. 이후 위봉사는 산성과 행궁을 수호하는 임무를
맡게 되면서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사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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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전(觀音殿) (요사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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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명전(普光明殿),보물제 608호
조선시대의 불전.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건물. 보물 제608호. 정면 3칸 모두 井자살 창호를 달았다. 왼쪽 측벽에는
외짝 밖여닫이와 광창을 달았으며, 오른쪽은 벽체로 마감하고, 뒷면 어간(御間 : 중심 간)은 두 짝 문짝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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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보광명전에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셨는데 6. 25동란등 혼란한 시기에 불상이 다른 사찰로 이전 되었고 지금은 목조 석가
삼존상이 봉안되어 있다.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 보현보살이 협시불로 나란히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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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894년 동학농민군이 전주부성에 입성하자 경기전에 봉안된 태조어전과 위패를 위봉산성 행궁으로 이안하기
로 하였으나 행궁이 퇴폐(頹廢무너져 쇠락하여) 부득이 모실 수 없어서 위봉사 대웅전에 임시로 모시게 되었다 그
후 위봉사는 전주 경기전 속사(屬寺)로 삼았으며 위봉산성 밖에 산내 암자인 태조암도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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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봉사 보광명전(寶光明殿)은 1835년 대웅전을 개축하면서 편액을 걸었으며 1977년 보물 608호로 지정받아 조선시
대 목조불전건축 문화재로 평가 받았다. 보광명전의 후불 벽리면 벽화에 그려진 백의 관세음보살 입상(白衣 觀世音
菩薩 立像)은 문화재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위봉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7 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
이며 지금은 전북을 대표하는 비구니선원으로 위상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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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명전(普光明殿) 내부엔 비로자나 법신불이 주불이다. 법신은 우리들의 참 마음 불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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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전(羅漢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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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를 주불로 하여 좌우에 석가모니의 제자 가운데 아라한과를 얻은 성자들을 봉안한다. 500나한상을 모신 오백나한전
과 16나한상을 모신 응진전으로 구분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백나한이 중생에게 복을 주고 소원을 성취해 준다고 믿어 많은 나
한전이 생기게 되었다. 경상북도 영천군 거조암 영산전의 500나한상과 청도군 운문사의 오백나한전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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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봉사에 들어가는 과정은 추줄산 위봉사(崷崒山 威鳳寺)라는 현판이 걸린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문(四天王門)을
지나면, ‘봉황이 깃든 누각’이라는 봉서루(鳳棲樓)다. 봉서루는 아래 정면에서 보면 2층 건물이지만 대웅전 쪽에서
보면 단층 건물만 보이며 지장전을 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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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사찰의 경우 누각의 중앙으로 계단길을 내어 절로 오르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위봉사도 그런 구조이다. 경사
가 진 산중에 절을 짓는 경우 경사지를 극복하고 자연스런 단을 형성하는 방법이 된다. 원래 누각은 산중 스님들의
회합 장소 등으로 사용되었는데 근래엔 그런 필요성이 사라지니 2층을 법당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다수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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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각(種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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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신도들이 망자의 재를 지내는 경우가 많고 또 절의 큰 재정적 수입원이 되니 재를 올리는 지장전을 이같이
넓은 곳에 설치하는 것도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봉서루를 지나면 사찰의 중심건물인 보물 제608
호인 보광명전(普光明殿)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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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봉사 보광명전은 건축 수법으로 보아 17세기경에 지은 건물로 추정하며 ‘보광명전(普光明殿)’이라 적힌 현판은 조
선 순조 28년(1828)에 쓴 것이라고 한다. 보광명전은 화엄경에 나오는 것으로 비로자나 법신불이 주불이다. 법신은
우리들의 참 마음 불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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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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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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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된 소나무가 전체 절의 중심을 잡고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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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자나불을 모시는 전각을 원래는 대적광전인데 세분하면 비로전 대광보전 대광명전 보광명전 적광전 화엄전 협
시불로는 노사나불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석가모니불/ 문수보살 보현보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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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보광명전에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셨는데 6. 25동란등 혼란한 시기에 불상이 다른 사찰로 이전 되었고 지금
은 목조 석가삼존상이 봉안되어 있다.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 보현보살이 협시불로 나란히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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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전(地裝殿)주련
地藏大聖威神力(지장대성위신력) 지장보살님의 위의한 신력은
恒河沙劫說難盡(항하사겁설난진) 수만겁을 설명한들 끝이 있으랴.
見聞瞻禮一念間(견문첨례일념간) 보고 듣고 예배하는 잠깐 사이에
利益人天無量事(이익인천무량사) 인간과 세상에 이익된 일 끝이 없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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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전(地藏殿),명부전(冥府殿),시왕전(十王殿)이라고 일컫는다. 염라대왕등 10왕을 모신 전각인데 주존은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모신다. 이 세상이 아닌 어두운 세계인 명부 세계(冥府世界)의 왕인 염라대왕을 모신 곳이라 하여 명부전이라 하며, 또한 염라대왕
한 분만 아니라 지옥에 있어서 죄의 경중(輕重)을 정하는 열 분의 왕(十王)을 모신 곳이라 하여 시왕전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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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위봉사 뒷 산 이름은 추졸산(崷崒山)이다. 가파를 ‘추’, 험난할 ‘줄’이다 추졸산은 524 m로 그리 높은 편
은 아니지만 산세가 험준하여 위봉폭포가 위에서 아래로 장엄하게 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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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세상이 좋아져서도로가 뻥뻥 뚫여서 차량의 왕래가 용이 하지만 그 옛날에는 첩첩 산중의 오지중 오지여
서 접근하기가 어려운 절이었다고 한다. 유랑자는 이제 오늘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위봉사를 떠나 또 다시 발길을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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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afe.daum.net/b2345/9toB/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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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군 소양면 위봉길 53
전북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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