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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완주 여행] 만죽 서익의 세심정..........68

작성자유랑자1|작성시간21.04.25|조회수357 목록 댓글 0

[전주/완주 여행]  만죽 서익의 세심정..........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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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만죽 서익의 세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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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정을 찾아가는길에 우연히 마주첬던 고산향교향교에서 150m여쯤 떨진 만경강변에 세심정이 자리하고 있다.

차량을 이용한 사람이리면 고산향교 주차장에다가 주차를 하고 잠시 걷는게 좋다고산향교를 바라보고 우측 충효

관 뒤로 돌아 나가면 선비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대나무밭 사이에 세심정(洗心亭)이란 정자가 자리잡고 있음을 볼 수

있다유랑자는 잠시 세심정에 오르기전 정자를 감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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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정(洗心亭)이란 뜻은 정자 밑으로 흐르는 물로 마음을 씻는다하여 세심정이라 불리고 있다강가 언덕위에 대

아저수지를 거쳐 흐르는 만경강 고산천이 보이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어 정자 주변의 풍경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경이 되어주는 울창한 나무와 흐르는 강물이 정자를 한층 더 멋스럽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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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정(洗心亭)이란 뜻은 정자 밑으로 흐르는 물로 마음을 씻는다하여 세심정이라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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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정(洗心亭)은 그 정자(亭子)중의 소슬한 한 채이다이 소슬한 정자를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미지가 그려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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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세심정 부근에는 만경강 수생식물의 보고로 다양한 수생식물들이 분포되어 있음도 볼 수 있다유랑자는 잠시

감상을 끝내고 세심정에 올라본다.  푸른 대나무의 호위를 받으며 기품있게 앉아있는 정자의 고즈넉함이 세상시름

을 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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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다 보이는 강가의 아늑함 까지 곁들여져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고 있는 세심정의 기개가 길손과 같은 까막눈의

무식의 눈에도 기품이 서려 보이니 누구라도 그저 잠시 들러 걸음만 옮긴다 해도 좋을 것 같다무성히 자란 녹색의

대나무밭에 바람이 불어와 대나무들이 한들한들 흔들리며 내는 사각사각 소리는 겨울의 전경이다고요한 마음의

세계에 빠져 안온해지는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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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익은 고산(高山)의 산수에 매료되어 만 그루의 대나무를 심고 호를 만죽(萬竹)이라 부르고 세심정(洗心亭)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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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자에서 내려다 보이는 강의 흐름은 적요하고 소박하다채 100정도의 강의 유역이라면 그다지 큰 강이

라고는 할 수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제평야의 젖줄임은 확연하다소소한 서정의 형용들은 바로 이 땅의 얼굴

이며 마음이기도 하다인류의 문명이 강을 모태로 해서 형성되었듯이 이 강물 또한 이 지역 사람들의 삶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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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亭子또한 선인들이 창조하던 다양한 문화의 산물이요또한 그 강에는 끝없는 이야기들을 담은 정자들이 전

설과 학문과 예술과 역사의 이야기를 담고있다세심정(洗心亭)은 그 정자(亭子)중의 소슬한 한 채이다이 소슬한

정자를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미지가 그려졌을까그래서 드디어는 풍광 좋은 산녘에 자리를 잡았을까가히 짐

작이 되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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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정은 동쪽 멀리 운장산에서 솟아오르는 아침햇살과 보름날 떠오르는 만월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내고 있어

고산 8경중 하나로 불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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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정에서 만경강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면 세심보가 보인다강에 설치한 보는 물길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졌다세심보에 모인 강물의 일부는 제방 바깥쪽으로 연결된 수로를 따라 고산면 소재지를 통과해 흐르도록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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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군에서 만경강 생태 환경 개선 사업을 시행하면서 2005년 6월에 고산향교 충효관 동쪽에 다시 중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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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한 그루대나무밭철따라 잊지 않고 꽃을 피우는 잡목의 숲강물과 산 그림자의 조화들.... 유랑자는 찬 마

루에 앉아 대나무 그림자에 6줄 거문고를 튕겨본다이렇듯 정자는 수많은 이야기와 노래를 함께 한다오늘의 시대

에서 그 정자들이 담고 있는 이야기들은 버릴 수 없는 교훈과 덕목으로 우리와 동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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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익(徐益)은 의주목사로 있을 때에는 정여립(鄭汝立)으로부터 탄핵을 받은 이이와 정철을 변호하는 소를 올렸다가

파직되기도 하였다그리고 벼슬과 지인들을 뒤로하고 낙향하였다그리고 사인봉 기암이 선경이고 시야가 아득히

아름다운 산언덕에 정자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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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익은 충남 은진 갈산서원(葛山書院)에 배향되었다가 1867(고종 4)에 행림서원(杏林書院)에 옮겨 배향이 되었다저서로

[만죽헌집(萬竹軒集)] 1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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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익은 고산(高山)의 산수에 매료되어 만 그루의 대나무를 심고 호를 만죽(萬竹)이라 부르고 세심정(洗心亭)을 세

웠다항상 마음을 청정하게 씻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지금도 세심정은 대나무로 둘러싸여 있다기록을 보면

사인봉(舍人峰기슭의 동쪽에는 세심대(洗心臺)가 있는데 서익이 일찍이 이곳에 정자(亭子)를 짓고 만죽정(萬竹亭)

으로 편액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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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군 고산면 세심정(洗心亭), 학문과 문장에 능하여 최경창박순(朴淳), 정철(鄭澈등과 교류했던 조선 중

기의 문인 만죽헌(萬竹軒서익(徐益 1542 중종 371587 선조 20)의 소요처로 사인봉(舍人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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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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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봉은 비봉산 한 줄기가 동쪽으로 고산 비봉(飛鳳양면의 경계를 지나서 화산면 서남단에 이르러서 다시 남쪽

으로 꺾여서 아치와 백현을 지나서 이 봉우리가 되었으며 높이는 121m이다이조중엽에 사인(舍人서익(徐益)

이곳에 살았기에 사인봉이라 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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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붕괴되자 후손들이 유허비(遺墟碑)를 세웠고 비문은 양재(陽齋권순명(權純命)이 찬()하였다그 후 완주군

에서 만경강 생태 환경 개선 사업을 시행하면서 2005년 6월에 고산향교 충효관 동쪽 언덕위에 다시 중건하였다

사진에는 정자에서 바라보면 물 가운데 바위에 세심정이라 새겨져 있다고 하였는데 바위는 지난 장마에 떠내려 갔

지 흔적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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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익의 본관은 부여(扶餘), 자는 군수(君受), 호는 만죽(萬竹)만죽헌(萬竹軒)이다. 1554(명종 9) 13세 때 향시(

)에 장원하고, 1564년 생원시에 합격하였다1569(선조 2)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병조·이조좌랑교리사인

(舍人)을 역임하고외직으로 서천군수·안동부사·의주목사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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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문장과 도덕그리고 기절(氣節)이 뛰어나 이이(李珥정철(鄭澈)등과 지우(志友)로 인정받았다.  그는 1568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북평사(北評事)가 되었고예조 · 병조의 원외랑을 거쳐 사간원정언대동도(大同道)

찰방을 거쳐 1582년에 종성부사(鍾城府使)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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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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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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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1583년 방어사(防禦使)의 종사관을 지낸 문신이자 문장에 뛰어나 이이송익필이달최립백광훈이산해,

하응림 등과 함께 팔문장계로 불렸던 고죽(孤竹최경창(崔慶昌, 1539 ~ 1583)등이 그와 시주를 나누며 교류 하였

다고 한다또 그는 서예가로 이름이 높았는데 <서화산필첩(徐華山筆帖)>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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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글과 글씨는 잘 썼는지 모르나만죽(萬竹서익(徐益)은 부패한 관료에 속한 사람이었다청탁을 일삼다 2

번이나 이순신과 부딪힌 경력도 있다.  그는 충남 은진 갈산서원(葛山書院)에 배향되었다가 1867(고종 4)에 행림

서원(杏林書院)에 옮겨 배향이 되었저서로 [만죽헌집(萬竹軒集)] 1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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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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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이어보기

https://cafe.daum.net/b2345/LKz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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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향교에서 100여m(강쪽으로)

전북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 5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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