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완주 여행] 만죽 서익의 세심정..........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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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만죽 서익의 세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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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정을 찾아가는길에 우연히 마주첬던 고산향교, 향교에서 150m여쯤 떨진 만경강변에 세심정이 자리하고 있다.
차량을 이용한 사람이리면 고산향교 주차장에다가 주차를 하고 잠시 걷는게 좋다. 고산향교를 바라보고 우측 충효
관 뒤로 돌아 나가면 선비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대나무밭 사이에 세심정(洗心亭)이란 정자가 자리잡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유랑자는 잠시 세심정에 오르기전 정자를 감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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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정(洗心亭)이란 뜻은 정자 밑으로 흐르는 물로 마음을 씻는다, 하여 세심정이라 불리고 있다. 강가 언덕위에 대
아저수지를 거쳐 흐르는 만경강 고산천이 보이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어 정자 주변의 풍경이 아름답기 그지없다.배
경이 되어주는 울창한 나무와 흐르는 강물이 정자를 한층 더 멋스럽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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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정(洗心亭)이란 뜻은 정자 밑으로 흐르는 물로 마음을 씻는다, 하여 세심정이라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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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정(洗心亭)은 그 정자(亭子)중의 소슬한 한 채이다. 이 소슬한 정자를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미지가 그려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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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세심정 부근에는 만경강 수생식물의 보고로 다양한 수생식물들이 분포되어 있음도 볼 수 있다. 유랑자는 잠시
감상을 끝내고 세심정에 올라본다. 푸른 대나무의 호위를 받으며 기품있게 앉아있는 정자의 고즈넉함이 세상시름
을 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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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다 보이는 강가의 아늑함 까지 곁들여져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고 있는 세심정의 기개가 길손과 같은 까막눈의
무식의 눈에도 기품이 서려 보이니 누구라도 그저 잠시 들러 걸음만 옮긴다 해도 좋을 것 같다, 무성히 자란 녹색의
대나무밭에 바람이 불어와 대나무들이 한들한들 흔들리며 내는 사각사각 소리는 겨울의 전경이다. 고요한 마음의
세계에 빠져 안온해지는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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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익은 고산(高山)의 산수에 매료되어 만 그루의 대나무를 심고 호를 만죽(萬竹)이라 부르고 세심정(洗心亭)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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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자에서 내려다 보이는 강의 흐름은 적요하고 소박하다. 채 100㎞정도의 강의 유역이라면 그다지 큰 강이
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제평야의 젖줄임은 확연하다. 소소한 서정의 형용들은 바로 이 땅의 얼굴
이며 마음이기도 하다. 인류의 문명이 강을 모태로 해서 형성되었듯이 이 강물 또한 이 지역 사람들의 삶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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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亭子) 또한 선인들이 창조하던 다양한 문화의 산물이요. 또한 그 강에는 끝없는 이야기들을 담은 정자들이 전
설과 학문과 예술과 역사의 이야기를 담고있다. 세심정(洗心亭)은 그 정자(亭子)중의 소슬한 한 채이다. 이 소슬한
정자를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미지가 그려졌을까. 그래서 드디어는 풍광 좋은 산녘에 자리를 잡았을까. 가히 짐
작이 되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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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정은 동쪽 멀리 운장산에서 솟아오르는 아침햇살과 보름날 떠오르는 만월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내고 있어
고산 8경중 하나로 불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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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정에서 만경강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면 세심보가 보인다. 강에 설치한 보는 물길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졌다. 세심보에 모인 강물의 일부는 제방 바깥쪽으로 연결된 수로를 따라 고산면 소재지를 통과해 흐르도록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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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군에서 만경강 생태 환경 개선 사업을 시행하면서 2005년 6월에 고산향교 충효관 동쪽에 다시 중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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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한 그루, 대나무밭, 철따라 잊지 않고 꽃을 피우는 잡목의 숲, 강물과 산 그림자의 조화들.... 유랑자는 찬 마
루에 앉아 대나무 그림자에 6줄 거문고를 튕겨본다. 이렇듯 정자는 수많은 이야기와 노래를 함께 한다. 오늘의 시대
에서 그 정자들이 담고 있는 이야기들은 버릴 수 없는 교훈과 덕목으로 우리와 동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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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익(徐益)은 의주목사로 있을 때에는 정여립(鄭汝立)으로부터 탄핵을 받은 이이와 정철을 변호하는 소를 올렸다가
파직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벼슬과 지인들을 뒤로하고 낙향하였다. 그리고 사인봉 기암이 선경이고 시야가 아득히
아름다운 산언덕에 정자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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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익은 충남 은진 갈산서원(葛山書院)에 배향되었다가 1867년(고종 4)에 행림서원(杏林書院)에 옮겨 배향이 되었다. 저서로
[만죽헌집(萬竹軒集)] 1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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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익은 고산(高山)의 산수에 매료되어 만 그루의 대나무를 심고 호를 만죽(萬竹)이라 부르고 세심정(洗心亭)을 세
웠다. 항상 마음을 청정하게 씻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금도 세심정은 대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기록을 보면
사인봉(舍人峰) 기슭의 동쪽에는 세심대(洗心臺)가 있는데 서익이 일찍이 이곳에 정자(亭子)를 짓고 만죽정(萬竹亭)
으로 편액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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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군 고산면 세심정(洗心亭), 학문과 문장에 능하여 최경창, 박순(朴淳), 정철(鄭澈) 등과 교류했던 조선 중
기의 문인 만죽헌(萬竹軒) 서익(徐益 1542 중종 37∼1587 선조 20)의 소요처로 사인봉(舍人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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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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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봉은 비봉산 한 줄기가 동쪽으로 고산 비봉(飛鳳) 양면의 경계를 지나서 화산면 서남단에 이르러서 다시 남쪽
으로 꺾여서 아치와 백현을 지나서 이 봉우리가 되었으며 높이는 121m이다. 이조중엽에 사인(舍人) 서익(徐益)이
이곳에 살았기에 사인봉이라 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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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붕괴되자 후손들이 유허비(遺墟碑)를 세웠고 비문은 양재(陽齋) 권순명(權純命)이 찬(撰)하였다. 그 후 완주군
에서 만경강 생태 환경 개선 사업을 시행하면서 2005년 6월에 고산향교 충효관 동쪽 언덕위에 다시 중건하였다. 옛
사진에는 정자에서 바라보면 물 가운데 바위에 세심정이라 새겨져 있다고 하였는데 바위는 지난 장마에 떠내려 갔
는지 흔적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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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익의 본관은 부여(扶餘), 자는 군수(君受), 호는 만죽(萬竹)ㆍ만죽헌(萬竹軒)이다. 1554년(명종 9) 13세 때 향시(鄕
試)에 장원하고, 1564년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569년(선조 2)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병조·이조좌랑, 교리, 사인
(舍人)을 역임하고, 외직으로 서천군수·안동부사·의주목사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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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문장과 도덕, 그리고 기절(氣節)이 뛰어나 이이(李珥)·정철(鄭澈)등과 지우(志友)로 인정받았다. 그는 1568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북평사(北評事)가 되었고, 예조 · 병조의 원외랑을 거쳐 사간원정언, 대동도(大同道)
찰방을 거쳐 1582년에 종성부사(鍾城府使)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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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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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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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1583년 방어사(防禦使)의 종사관을 지낸 문신이자 문장에 뛰어나 이이, 송익필, 이달, 최립, 백광훈, 이산해,
하응림 등과 함께 팔문장계로 불렸던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 1539 ~ 1583)등이 그와 시주를 나누며 교류 하였
다고 한다. 또 그는 서예가로 이름이 높았는데 <서화산필첩(徐華山筆帖)>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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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글과 글씨는 잘 썼는지 모르나, 만죽(萬竹) 서익(徐益)은 부패한 관료에 속한 사람이었다. 청탁을 일삼다 2
번이나 이순신과 부딪힌 경력도 있다. 그는 충남 은진 갈산서원(葛山書院)에 배향되었다가 1867년(고종 4)에 행림
서원(杏林書院)에 옮겨 배향이 되었다. 저서로 [만죽헌집(萬竹軒集)] 1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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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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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afe.daum.net/b2345/LKz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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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향교에서 100여m(강쪽으로)
전북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 5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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