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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군 여행]. 봉화 여행의 序幕(서막) 야옹정............1

작성자유랑자1|작성시간21.06.30|조회수189 목록 댓글 2

[봉화군 여행]. 봉화 여행의 序幕(서막) 야옹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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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어렵게 여수 여행은 끝 맺음을 했습니다.  지금 부터는 봉화군 여행의 시작입니다. 1번은 몇년전 영주

여행시 들렀던 곳인데 ....유랑자 성격상 한번 들른곳은 다시는 안가는 성격탓에  오래전에 썼던 여행기로 대신

하고 봉화여행의 1번 문을 열어 봅니다.

이 글은 몇년전 글이기에 이해 하시고 봐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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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판서 고택에서 봉화쪽 두월리는 가다보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가 봉화군과 영주시의 경계지점이

다.좌측길을 선택하면 바로 봉화군이요.우측길을 선택하면 영주 이산면 두월리 가는 길이다.

이곳 삼거리에서 좌측을 바라보면 멀리 개울 건너에 고택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유랑자는 그 고택을

보고 가기위해 잠시 영주땅을 벗어나 봉화땅으로 들어가 보기로 하고 핸들을 꺽어 작은다리를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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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다리 건너듯 건너다 바라본 구천리 하늘은 맑았고 마을은 숲사이에 낮게 내려 앉아 있었다.

유랑자는 고택을 바라보고 직진 하여 고택앞에 다가서 고색창연한 고택의 환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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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정의 전경( 관리가 넘 미흡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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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야옹정이 어떠한 정자인가 싶어 앞에 있는 소개글을 보았더니 1985년8월5일 경북 문화재자료 153

호로 지정받은 정자로 되어 있었다. 조선 선비의 곧은 절개가 묻어있는 이 건물은 야옹 전응방(1491∼

1554)선생이 조선 선조때 건립 하였으며 도덕과 학문을 강의하고 토론하던 곳이 었다고 한다.

비록 여느 정자처럼 주변의 경관이 화려함은 없었으나 옛 선비의 기개와 정신이 묻어나는것 같은 분위

기를 자아내고 있는 건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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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정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기와집으로 우측에 온돌방을 마련하고 좌측의 4칸은 우물마루

를 두었다. 그런데 한가지 관심이 가는 대목은 이 '야옹정'(野翁亭)이란 현판은 퇴계 이황선생의 친필

이라고 하니 야옹 선생의 당시 위상을 알수있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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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을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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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선생은 중종때 진사에 급제 하였으나 조부인 휴계 전희철이 조선 단종때 왕위 찬탈의 추함을 몸소

겪었었는데 이를보고 조부는 자손들에게는 더러운 정치판의 추악함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하여 유언을

남겼는데 그 유언이 관직에 뜻을 버리고 살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조선 선비의 자존심이 아니었나 싶다. 부러지지 않은 모습은 부드러움의 철학으로 세상의 바람

에 흔들려도 절대로 꺽이지는 말아야함은 당시 조선 선비들의 곧은 신념으로 삼았던 것이다.

 

하여 야옹 선생은 산수 좋은 이곳을 찾아 맑은 냇가 뒷면에 터를 마련하고 야옹정(野翁亭)을 건립하여

도덕과 학문을 강론하며 퇴계 이황과 교유하며 매년 영월 단종의 묘를 찾아가 도포자락에 흙을 담아 릉

위에 올리고 읍배하여 그의 충성심을 보여 주었으며 높은 학덕은 사림에서도 높이 추앙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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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정' 퇴계 이황 성생의 친필 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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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야옹 선생께서는 조부의 유훈을 받아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이곳에서 기거 하였다고 하니 그의 신

념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래서 그럴까 아니면 생각 차이일까.사당앞에 서보니 야

옹선생의 절개가 새삼스럽게 느껴지는것만 같아 더 관심이 간다.

 

원래가 청치판이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대개는 더럽고 추악한 사람들이 모여 하는 짓들이

라고 생각하는 유랑자지만 말이다. 유랑자는 굳건한 야옹정 뒤를 한바퀴 돌아 본다.

선비의 자세가 무엇인지 오늘날에도 반듯하게 가르쳐 주는듯한 야옹정.뒤태까지도 선비의 자존심이 보

이는것만 같다. 의리와 절개는 말로 아닌 몸으로 실천하였다 하니 더욱 야옹정이 드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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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정에 걸린 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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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세워 골짜기 들어와 야인의 삶을 살았던 야옹 선생은 정자앞에 저월당(貯月塘)이란 못을 팠다고

하는데 지금 앞에있는 연못이 그 모습인지 알길은 없지만 자연을 벗삼은 심정을 헤아려 보고 싶기는 하

다. 세월이 흘러 주변의 풍경은 변한다 하여도 선생의 깊고 곧은 뜻은 오늘날 까지도 여전히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으니 사람의 삶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 것인지 이 순간만큼은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암튼 오늘날 우리의 후손들에게 현재 우리들의 삶의 모습은 어떻게 전해질까?

유랑자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면서야옹정을 빠져나와 다시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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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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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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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작지붕의 위세가 야옹 선생 만금이나 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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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상운면 구천리 348

경북 봉화군 상운면 귀내창팔길 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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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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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가을구름 | 작성시간 21.08.13 멀리 저희 시댁 종택까지 다녀 오셨군요. 유랑자 님 글 읽으며 봉화 여행하겠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유랑자1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8.13 감사 합니다.
    시간이 되시면 저의 여행기와
    함께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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