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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여행] 행원리 일몰의 명소 오저여 전망대 와 광해군 ...........59

작성자유랑자1|작성시간22.08.20|조회수142 목록 댓글 0

#[제주시 여행] 행원리 일몰의 명소 오저여 전망대 와 광해군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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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여행] 행원리 일몰의 명소 오저여 전망대 와 광해군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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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내일 우도를 들어가기 위해 성산항 숙소를 향해 달려 나가는 중이다. 가는 도중에 이것저것 즐기면서

가야만 하는 코스다, 어차피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유명한 곳 보다는 길거리의 소소한 볼거리들이 제법

잔재미가 쏠쏠 하다는 것 또한 유랑자는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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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유랑자의 발길이 어디를 향하든 지간에 반듯한 고속도로보다는 한적한 시골길을 택해 소박한 여행을 즐

기는 편이다. 어차피 급할 것도 없고 누구랑 만날 약속 같은 것도 없다. 유랑자는 이렇게 느림의 미학을 즐기면

서 슬로우 슬로우 돌아 나가다 보면 세계자연유산마을로 지정된 7개의 마을 중 한 곳으로 알려진 구좌읍 행원

리 육상 광어 양식단지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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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원리 광어 양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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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어 양식장이라고? 허긴 과거와는 달리 요즘엔 육상에서 광어를 많이 기르는 편이다. 왼지 신기도 하고 …….

난 좌측 도로가에 마련된 주장에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린다. 도로를 건너 광어 양식장으로 다가가 본다.

양식장에서 흐르는 물길을 우렁차고 좀 거센 편이다. 또한 광어양식장에서 바닷가로 흘러 내려가는 물길 주변

을 잘 조성해 두어 그만의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있는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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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장 에서부터 물이 흐르는 하천 바닥에는 물과 함께 빠져나온 광어들이 보이기도 하며 양식장에서 흘러나

오는 물의 영양분 때문인지 많은 새들도 쉬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양식장을 관리를 하는 외국인들이 보이고 안

으로는 접근 금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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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이제 발길을 돌려 정자가 있는 바닷가로 나간다. 사람들 틈에 끼어 간곳은 “오저여” 라는 쉼터이자 일

몰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나름 핫 플레이스이자 일몰 포토 존이다. 지금은 낚시를 할 수 없는 곳이지만 과거엔

천혜의 낚시터로 이름 높은 곳으로 제법 유명한 곳이다. 최근에는 양식장에서 탈출한 씨알 좋은 광어들이 잡혀

올라오기도 한다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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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을 조금만 걸으면 곶 끝자락에 벤치와 정자가 조성되어 있어 해안도로 드라이브 중 가볍게 쉬어가기 좋은

장소이기도 하지만 일몰이 아름답기로도 유명한 곳, ‘오저여‘다. 그러나 오늘은 비도 오기도 하지만 시간상으로

도 일몰은 볼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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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 오름에서 흘러온 용암이 만든 행원리의 해안선은 특정 부분이 튀어나온 수많은 '여'를 형성하며 매우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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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취빛 바다가 아름다운 제주의 보물 같이 숨어있는 일몰 명소. 유랑자는 바닷가로 나가 본다. 날씨는 비가 오

락가락해도 오저여 만큼은 평화롭고도 호젓하다.  그러나 맑은 날엔 해맞이부터 해넘이까지 아름답다는 ‘오저

여‘는 들어서는 입구부터 운치 있는 정자와 함께 어우러진 주변 풍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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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바다의 또 다른 매력을 가진 오저여! 푸른 바다 위의 풍차와 아름다운 비취빛 바다. 그리고 현무암들이 자

연이란 화폭의 남은 여백들을 자연 스럽게 메우고 있다.  사실 이곳은 아무나 오는 곳이 아니고 여행 마니아들

과 아는 사람만 주로 들리는 숨은 일몰 명소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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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비기나무는 단엽만형(單葉蔓荊)·만형자나무· 풍나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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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관광지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 여유를 가지고 느림의 미학을 즐기면서 해

안의 경치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힐링의 시작이다, 더불어서 제주여행에 있어서 추억을 듬뿍 담아낼

수 있는 엣지있는 곳이자 한 폭의 서정적인 풍경화를 보는 듯, 시골스러우면서도 소박한 그 아름다움에 서서히

빠져 들게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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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정자에 앉아 주변 풍경을 감상 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바다와 하얀 풍력 발전기가 조화를 이루고,

물위에 돛단배처럼 떠 있는 듯한 정자가 그렇고, 현무암들의 群集(군집)이 그렇다, 물 허벅을 짊어진 할망이 목

마른 이에게 물 한 모금 내밀 것만 같고, 돌 해녀 할망의 조각이 금방 이라도 털고 일어나 오렌지색 테왁과 망

사리를 둘러메고 바닷속으로 물질을 나갈것만 같은 모습의 할망 동상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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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작은 풀 하나에 기댄 문주란 꽃이 향기를 내뿜고, 한방에서 한약 재료로 쓰이는 소박한 순비기나무 꽃

도 소박하지만 나름 어여쁘다. 양식장에서 흘러 들어온 광어가 비취빛 물에서 유영하며 노는 모습도 신비 스럽다.

정자에 앉아 무심코 바다 멍을 때리다가 서쪽 하늘에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에 취해 몽환적인 세계로 빠져드는

그 모습 또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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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두가 한 프레임에 담아낼 수 없는 각각의 프레임에 담을 수 있는 '오저여'에서만 누릴수 있는 풍경들이다.

알겠지만, 제주도에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명소들 중 60%이상이 간조시간을 맞춰야 볼 수 있는 풍경을 가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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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제주 여행은 가기 전에 보고 싶은 관광지는 미리 체크하여 물때시간을 확인하고 가는 게 좋다. 인스타

에서 본 그 풍경만을 기대하고 갔는데 바닷물만 넘실거리고 있다면 그 또한 허탈하고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

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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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행원리 인근은 제주도에서 가장 척박한 동네로 별다른 관광자원이 없고 정식 올레코스도 아니기 때문에

제주에선 외지인들의 발길이 가장 뜸한 곳이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그대로 맞는 곳이라 이 동네 돌담은

유난히 높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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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최근에는 이쪽 바다에 해상풍력발전 단지가 들어섰다. 망망대해에 꽂아놓은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모

습은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또 다른 풍광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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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광어 낚시 포인트로 알려져 있던데 지금 현재는 낚시는 불가한 곳으로 청량한 물색을 구경하고 간혹

광어를 볼 수 있는 곳으로 가볍게 방문할만한 곳으로 추천!, "어째 광어 한마리 드실랍니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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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구좌읍 행원리는 역사가 살이 있는 마을중 하나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제주도 내 세계 자연유산마

을로 지정된 7개의 마을(선흘1리, 선흘2리, 덕천리, 월정리, 김녕리, 행원리, 성산리)중 한 곳이자. 국내 최대 규

모의 풍력발전단지로도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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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거문 오름에서 흘러나온 용암이 닿은 곳으로 특별한 자연의 모습을볼 수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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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양식 단지에 흘러 나온 광어들이라는데 월정 해수욕장과 가까우니 지나가면서 가볍게 들릴만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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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가 더 있다. 이 행원리는 조선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왕이었던 사람이 제주도까지 유배를 당해 

려 들어온 첫 기착지 이기도하다. ~때는 병자호란(인조 14년 병자년 음력 12월 8일부터 정축년 음력 1월 30일

까지)이 끝나고 불과 얼마 지나지 않은 1637년(인조 15) 5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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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반정으로 왕위에서 물러난 광해왕(군)는 강화도와 교동도에서 15년 이상의 세월을 보낸 뒤에 자기가 죽을

자리인지도 모르고 제주도로 보내 진 것이다. 광해군을 실은 배는 교동도의 포구에서 제주로 그렇게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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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비기나무는 바닷가에서 짠물을 뒤집어쓰고도 잘 자란다. 동으로는 구룡포에서 남해안을 거쳐 서해안을 누

비고 백령도 콩돌 해안까지 우리나라 남서부와 제주도를 포함한 섬 지방의 바닷가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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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비기나무는 통기성이 좋은 자갈밭이나 모래사장에서 흔히 자란다. 모래 위를 기어 다니면서 터전을 넓혀 방

석을 깔아놓듯이 펼쳐나가므로 덩굴나무처럼 보인다. 바닷바람에 모래가 날리는 것을 막아줄 지표고정 식물로

가장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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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가 배를 타는 동안 광해군에게 어디로 간다는 행선지를 알려 주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의 선실을 장막으로

사방을 다 가려서 밖을 내다 볼 수도 없도록 했다. 인조는 쌀쌀한 바다 날씨에 먼 곳을 가는 광해군에게 솜옷

한 벌을 보내주어 약간의 성의 표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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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광해군을 실은 배는 1637년 6월 6일 지금의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포구인 '어등포'에 입항하였다. 그는

해안에 도착해서야 제주라는 사실을 듣고 깜짝 놀랐으며 마중 나온 제주목사의 비난 섞인 말에 그만 눈물을 흘

렸다고 한다.  당시 제주와 다른 지방을 잇는 해상 주요 관문은 화북포구나 조천포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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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비기나무는 예부터 약으로도 그 쓰임이 널리 알려져 있다. [동의보감]에 보면 “풍으로 머리가 아프며 골속

이 울리는 것, 눈물이 나는 것을 낫게 하며 눈을 밝게 하고 이빨을 튼튼히 하며, 수염과 머리털을 잘 자라게 한

다. 습비(濕痺)로 살이 오그라드는 것을 낫게 하며, 촌충과 회충을 없앤다. 술에 축여서 찌고 햇빛에 말린 다음

짓찧어서 쓴다”라고 했다. 그 외에도 “열매를 가을에 채취하여 햇볕에 말린 다음 베개에 넣어두면 두통에 효과

가 있다”고도 한다. 잎과 가지에는 향기가 있어서 목욕탕 물에 넣어 향료로 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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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들이 물속에서 숨을 참고 있다가 물 위로 올라오면서 내는 숨소리를 ‘숨비소리’, 혹은 ‘숨비기 소리’라고

한다. 순비기라는 나무 이름은 여기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순비기나무는 해녀들의 만성두통 치료제로 애용

되었고, 또 그녀들의 숨비소리까지 들어주는 나무로 더 큰 사랑을 받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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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광해는 주요 관문보다 최소 18㎞나 더 멀리 떨어진 동쪽인 어등포(향원리)로 들어왔다.  어쩌면 광해가

주도로 유배온 사실을 민초들이 모르게 하기위해 몰래 들어 온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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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에서 하루를 보낸 해는 제주 내륙으로 들어와 처소에 안치되었다. 광해군을 교동에서 제주까지 압송해온

호송 수행원 조직의 모가 상당했던 규모로 보아 광해군이 아직 중요 감시 대상인의 존재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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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선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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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 생활이라지만 거의 형무소와 같은 유폐 생활이었다. 광해군은 집 밖으로의 외출은 물론 방 밖으로의 외출

도 제한을 받았다. 그가 있던 집에는 감시 포졸만 30명이 넘었다고 한다. 하루 세 교대한다고 보더라도 열 명의

포졸이 광해군에게서 항상 감시의 눈을 떼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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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0년 후임으로 이시방 목사가 부임하면서 이전 목사와 다르게 광해에 대해 애정을 많이 썼다고 알려져 있다.

광해군에게는 천만 다행일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광해군은 유폐 생활 19년, 제주에 온 지 4년 만인 1641년

(인조 19) 7월 1일에 67세로 눈을 감았다. 이시방 목사는 제주 삼읍 수령에게 이 사실을 전해 모이게 하고 제주

출신 교생이 집사를 맡아 그해 음력 7월 4일 입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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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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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실록엔 제주목사 이시방이 자물쇠를 부수고 문을 열고 들어가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렀다'고 나와 있다.

그외 광해의 임종에 대해서도 알려진 것은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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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죽기 전 평소 이시방 목사에게 자기가 죽으면 어렸을 때 헤어진 엄마 공빈 김 씨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을 뿐이다. 공빈 김 씨는 선조의 후궁으로 임해군과광해군을 낳고 광해군이 아직 어렸을 때인 25살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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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제주에서는 삼복더위를 잠시 식혀주는 비가 음력 7월 1일이면 내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날

은 광해가 1641년(인조 19년) 제주에서 유배 중 숨을 거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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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시신이 상할 것을 염려한 제주목사 이시방은 조정에 장계를 올리고 지시가 있기 전 즉시 상복을 입고 상

을 치뤘다. 인조는 예조 참의를 보내서 예를 표하고 그 해 9월 그의 시신을 한양으로 운구해서 매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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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광해의 생존했던 딸에게 물질적인 특전을 베풀고 광해군의 외손들이 묘를 돌보도록 하였다. 그것이 그

가 광해군에게 표했던 마지막이자 최대의 호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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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가 제주 유배때 읊었다는 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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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불고 비 내려 섬머리 스쳐가니

장기는 음산하게 높은 다락 감싸 도네

창해의 성난 파도 어스름에 들려 오니

벽산의 수심은 맑은 가을을 물들이네

귀심은 왕손초를 볼 적 마다 괴로울지니

귀양살이 꿈속에서 서울을 보고 놀랐네

고국의 존망 소식도 알 길이 없어

연파의 강물 위 외로운 배에서 쉬어나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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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조선조 당시 유배 거리는 죄인의 거주지로부터 유배지까지 2천리(785.4㎞), 2천500리(981.1㎞), 3천

리(1천178㎞) 3등급으로 나눠 적용됐다. 죄를 무겁게 물수록 유배지의 거리가 멀었다. 조선 시대 전국적으로

유배지가 400여 곳에 달했는데 이 중 가장 먼 곳이 제주도였다. 참고로 조선 시대 500년 동안 제주로 유배 온

이는 260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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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자연유산마을 행원리 인근에 자리한 김녕리와 월정리, 한동리 와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역시 빌레지대가

유난히 넓게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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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광해군 묘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산59에 초라하게 묻혀있다. *참고로 광해군묘와 어머니 공

빈 김씨의 이야기는 유랑자 여행기 남양주편 48.49편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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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 하고, 암튼 제주 여행에 있어서 자연환경을 비롯해 역사, 문화, 자원

등 풍부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행원리를 함께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오늘 유랑자가 포스팅한 곳 어디

고 궁금한 사람들은 내비게이션에 ‘행원육상양식단지’ 내지는 ‘오저여’를 치고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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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이어보기

https://cafe.daum.net/b2345/9toB/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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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관광 홈페이지: https://www.visitjeju.ne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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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기

주소: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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