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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여행] .산신의 생기인 신비의 화구 산굼부리 ...........82

작성자유랑자1|작성시간22.12.16|조회수62 목록 댓글 0

#[제주시 여행] .산신의 생기인 신비의 화구 산굼부리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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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여행] .산신의 생기인 신비의 화구 산굼부리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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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아침을 열어 젖히던 어느 날 세월은 어느새 여름을 내려놓고 가을의 문턱에서 또 한 번의 맑고 푸른 고원

의 숨결을 한가득 머금고 있는 곳을 향해 유랑자는 발걸음을 옮긴다. 바람도 구름도 쉬어가는 곳, 세계유일의 평

지분화구 산굼부리’란 修辭(수사)로 안내문의 문구를 장식한 화산의 분화구를 나는 또 다시 보러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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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겨울. 봄. 여름에 들러보는 완성의 마지막 퍼즐을 맞추어보는 산굼부리, 한곳을 보려면 적어도 계절마다 들

러 보아야만 비로소 그 숲의 전체를 다 볼 수 있다는 여행 마니아들만 즐길 줄 아는 완성도 높은 퍼포먼스 같은 운

치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을 거라는 기대 석인 마음가짐으로,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 263호로 지정된 산굼

부리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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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6월 18일 천연기념물 제 263호로 지정 되었다,

*산굼부리는 360여개 이르는 한라산 기생화산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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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주차장에 들어서려면 유랑자를 반기는 것은 방사탑이다, 이 돌탑은 구멍이 많은 현무암을 이용해 원뿔이나

사다리꼴 등의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속에는 잡석 채움을 하고 겉은 현무암을 거칠게 다듬어 허튼층쌓기를 해 놓

았다. 현지에서는 답(탑: 塔), 거북, 가마귀, 하르방, 걱대 등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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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탑의 유래를 지명이나 구전을 토대로 유추해보면 제주도 자연마을에는 거의 대부분 돌탑과 거북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형이 험하고 척박한 토지에서 살아가는 제주도민의 절박한 마음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도

싶다. 그도 그럴 것이 탑이 세워지는 위치는 풍수지리상으로 보아 마을의 허한 곳이나 불길한 일이 일어 날것만

같은 곳에 방사탑을 쌓아 화를 막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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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鳳門(영봉문)?현무암으로 치장한 산굼부리의 英鳳門(영봉문)을 두드린다, 英(꽃부리 영, 창깃털 영), 鳳(봉새

봉), 門(문 문),이를테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억새꽃 피는 곳에 봉황이 드나드는 문이라는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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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서 액을 비롯한 궂은 것들이 마을에 들어 올 만하다고 생각되는 길목에다가 쌓아 침입하는 煞(살)과 不

淨(부정)을 막아줘 마을이 평온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테면 개인의 마음이나 마을의

수호신 같은 믿음이라고나 할까……. 이것이 제주도 특유의 土俗信仰(토속신앙)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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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사탑을 세움으로써 마을의 人命(인명), 가축, 재산 등을 지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돌탑의 축

조는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닌 마을 공동체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며, 여기에 소요되는 모든 경비나 인력, 기술

등은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부담하고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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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0년을 산다는 팽나무를 지나 언덕길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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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돌탑의 크기는 높이가 2∼3m, 탑 밑 부분의 너비가 3∼4m 정도 되는 것이 많으나 일정치 않으며, 마을마다

형태가 조금씩 달리 나타나 규격이나 형식에 크게 얽매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1995년 8월 26일 제주도 일원

에 분포하는 방사탑 17기가 제주도 민속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던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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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유랑자는 성인 6.000원 12.000원을 지불하고 입장권 2장을 끊었다. 매표소를 돌아서면 마치 오래된 옛 古城

(고성)의 문 같은 고상하게도 생긴 英鳳門(영봉문) 이란 글이 새겨진 둥근 아치형태의 돌문이 기다리고 있다. 英

鳳門(영봉문)? 무순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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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현무암으로 치장한 산굼부리의 英鳳門(영봉문)을 두드린다, 英(꽃부리 영, 창깃털 영), 鳳(봉새 봉), 門

(문 문),이를테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억새꽃 피는 곳에 봉황이 드나드는 문이라는 뜻일까? 유랑자는 영봉문에 대

한 뜻을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해 본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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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봉문을 지나면 먼저 머릿속 하얀 창에 그려지는 장면은 몇 년 전 가을에 보았던 장관을 이룬 은빛물결 출렁

이는 마법의 세상 억새 꽃밭이 그려진다,  그렇다 은빛 억새는 바라보는 이들에게 벅찬 감동을 선사한다. 파란하

늘 두둥실 떠있는 흰 구름과, 사그락 사그락 낙엽 밟는 소리와 은빛물결 출렁이는 억새꽃 정원의 아름다운 분위

기에 흠뻑 빠져드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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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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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하늘거리는 억새 춤사위는 이미 오래전에 보았다. 하늘은 찌푸려있다. 비는 올 듯 말듯 우산을 챙겨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할 정도로 하늘은 유랑자를 시험에 들게 하려한다,  유랑자는 1.000년을 산다는 팽나무를 지나

언덕길을 오른다. 이곳에서 분화구로 오르는 길이 네 갈래로 나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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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밭 길과 돌길 하늘계단 길 구상나무 숲길이 제 각각의 특색으로 안내하는데 유랑자는 그냥 평평한 억새밭 뜨

락 길로 들어섰다. 아~바람은 푸르디푸른 억새풀을 흔들고 다시 바람은 파도를 타고 유랑자의 마음도 흔든다. 하

늘 아래 존재하는 건 하늘거리는 억새풀과 스치가는 바람 뿐, 유랑자도 덩달아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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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탑을 쌓은 이유는 개인이나 마을에  침입하는 煞(살)과 不淨(부정)을 막아줘 마을이 평온을 되찾을 수 있다

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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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에서 불어오는 높하늬바람은 왼지 유랑자의 마음을 묶어두지 않는다. 오늘따라 시원하게 불어주는 바람에

춤추는 억새들의 군무는 정자 앞 녹색 바다에 일렁이는 파도와도 같다. 본시 억새는 초가을 연붉은 억새꽃들이

피고 며칠 후면 다시 흰색으로 변신을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전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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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억새는 제주도 서귀포에서부터 함경북도 두만강까지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생하는 여러해살이 식물이다. 산

등성이나 산자락 또는 밭두둑 같은 곳에 무더기로 자라다가 가을이 되면 은색으로 하얗게 꽃이 피는 것이 억새다.

우리나라에서 억새라는 말이 처음 보이는 문헌은 아마도 정철의 將進酒辭(장진주사)가 아닌가 싶다. 정철은 억새

를 '어욱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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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욱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 속에 가기 곧 하면 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소소리 바람 불 제 뉘 한 잔 먹자 할꼬.

죽어서 쓸쓸히 억새풀 우거진 곳에 가서 묻히고 나면 누가 술을 권하겠는가?

그러니 살아생전에 한 잔 더 받으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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將進酒辭(장진주사)란 말하자면 송강 정철의 권주가다, 참~ 悠悠自適(유유자적)한 風流(풍류)가요, 花鳥風月(조

풍월)을 즐길 줄 아는 진정 浪漫(낭만)적인 남자다.이  유랑자가 정철을 좋아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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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잠시 억새와 갈대에 대해서 전해지는 설화가 있어 소개해 본다.

다정한 친구 사이인 억새와 달뿌리풀과 갈대가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서 길을 떠났다. 긴 팔로 춤을 추며 가다 보

니 어느덧 산마루에 도달하게 되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갈대와 달뿌리풀은 서있기가 힘들었지만 잎이 뿌리

쪽에 나있는 억새는 견딜 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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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시원하고 경치가 좋네, 사방이 한눈에 보이는 것이 참 좋아, 난 여기서 살래’ 억새의 말에 갈대와 달뿌리풀은

‘난 추워서 산 위는 싫어, 더 낮은 곳으로 갈래’ 하고 억새와 헤어져서 산 아래로 내려갔다. 이들은 내려가다가 개

울을 만났다. 마침 둥실 떠오른 달이 물에 비치는 모습에 반한 달뿌리풀이 말했다. ‘난 여기가 좋아, 여기서 달그

림자를 보면서 살 거야.’ 달뿌리풀은 그곳에 뿌리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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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가 개울가를 둘러보니 둘이 살기엔 너무 좁았다. 그래서 달뿌리풀과 작별하고 더 아래쪽으로 걸어갔는데 앞

이 그만 바다로 막혀버렸다. 갈대는 더 이상 갈 수가 없어서 바다가 보이는 강가에 자리를 잡고 살게 되었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강가나 물가에 사는 게 갈대이고 산에 사는 게 억새다. 물론 꽃도 확연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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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다시 걷는다.  지금은 황금물결 억새가 탈색의 경지를 넘어서서 허옇게 사위어 가기전 푸른 억새풀밭길

이다. 억새풀밭은 곳곳이 기념사진을 남기려는 발자국에 뭉개지고 쓰러진 상처들로 패여 있다. 사진만큼 아름다

운 추억이 남는 장소에서 이 넓은 억새풀밭의 배경은 로맨틱한 풍경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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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굼부리는 화산분화구여서 큰 오름으로 상상했던 등산로는 억새풀 끝남과 동시에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분화

구를 보게 된다. 화산석 바위군락지로 예상했던 무지가 단숨에 깨지는 푸른 생물의 둥근 성지 울울창창한 상록수

림과 침엽수, 활엽수림이 공존하는 생물지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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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연풍연가에서 인상 깊은 장소로 등장하는 산굼부리는 천연기념물로 둘레가 2km가 넘는 화구산굼부리

안을 둘러보는 장동건(태희)과 고소영(영서)이 걷는 장면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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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둘레 2,067m, 안둘레 756m, 높이 100146m의 원추형 절벽을 이루는 화구는 바닥넓이만도 약 8,000평이

나 된다화구 주위의 지면은 높이 400m인 평지이고 화구 남쪽에 높이가 최고 438m인 언덕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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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육지에서나 통하는 말이다. 수억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둥근 원형그대로 오늘

까지 푸른 나무들과 저 분화구에 깃댄 무수한 생명들의 모태 역할을 하는 산굼부리는, 한마디로 경이로운 자연속

의 풍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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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큰 폭발이 있었으면 저렇게 큰 분화구로 패였을까 실제로도 한라산 백록담보다 더 넓고 더 깊다고 한다.

깊이가 140m 넓이가 650m 로 둥근 원형의 둘레가 2km가 된다고 하는데 정상 삼분의 일 정도만 개방했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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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굼부리 밑바닥에는 틈이 많아서 물이 모두 스며들기 때문에 이 화구 안에는 식물의 생태계가 특이하게 분포되

어 있다분화구의 내부높이에 따라 온대와 난대지역이 형성되어 있고 태양이 비치는 일사량과 일조시간에 따라

다양한 분포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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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꽃(갈대 와 억새꽃 구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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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굼부리는 국가문화재답게 문화해설사가 동행하며 자세한 안내를 해 준다는데 유랑자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그

냥 걸었다, 정상에는 분화구 아래를 자세히 볼 수 있는 전망대에 망원경까지 설치되어있다. 정상을 지키는 분께

주워들은 이야기로는 과거 그 아래 분화구에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실제로도 붉은 속살이 바닥에 넓게 드러나

보여 농사를 짓는 밭으로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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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더 이어가 보자면 100년 전에 가난한 농부네 6가구가 가족과 함께 이 분화구 안으로 겨울 추위를 피해

들어갔다고 한다. 바람과 추위를 막아주는 최적의 휴식처에서 그들 가족은 농사를 지었다 비가 많이 내리는 제주

지만 화산암의 특성상 물은 금방 스며들고 농사도 잘 되었지만 사방이 막힌 여름철 습기와 더위에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다시 분화구 밖으로 나와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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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꽃:~ 억새를 갈대와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꽃의 색깔이 흰색에 가까우면 억새키가 큰 편이고 꽃

의 색깔이 갈색에 가까우면 갈대로 구분한다그리고 가운데 잎맥에 하얀 선이 두드러지면 억새로 보는 것이 타

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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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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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꽃:~억새와 비슷한 종으로는 물억새가는잎억새흰억새 등이 있다물억새는 억새와는 달리 습지에서 무

리지어 살며잔 이삭에 까끄라기가 없는 것이 억새와 구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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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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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심은 대나무가 지금도 여전히 화구아래의 모든 땅을 장악해서 이 대나무를 제거하기 위해 헬기에 소형포크

레인을 달아서 내려 보내 뿌리를 파냈다고 한다. 한 달 내내 작업을 해서 저렇게 파 헤쳐진 속살이 밭처럼 보인다

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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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화구를 뒤로하고 정상으로 오르면 백록담의 상징인 사슴 한 마리가 멋진 뿔을 뽐내며 漢鹿址(한록지)라고 이름

붙인 돌탑위에서 한라산을 응시하며 우뚝 서있다. 그리고 정상아래 몇 기의 무덤조차 고요한 슬픔으로 아름다운

정경이 되는 이곳에 전설이 없으면 섭섭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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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굼부리의 신화와 전설을 소개하고 산굼부리의 이야기는 끝맺음을 한다,

*옛날 옛적에 하늘나라 옥황상제님께서는 많은 시녀들과 견우성과 직녀성처럼 훌륭한 별들도 거느리고 있었는

데 한감은 그들 별들 중에 하나였다, 옥황상제님은 딸 중에서도 특히 말잣딸(세째공주)은 착할 뿐만 아니라 총명

해서 상제님의 사랑을 독차지 하다시피 하여 자라고 있었다, 한편 한감은 별들의 세계에서도 영특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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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하루는 상제님의 생일 잔칫날이 되었다. 많은 손님이 초대되어 오갔는데, ‘한감’도 그 자리에 초대되었

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한감’과 말잣딸‘은 서로 눈이 맞더니 사랑의 불이 붙기 시작하였다.

‘한감’과 ‘말잣딸’은 사람들이 눈을 피해서 서로 만나고 속삭이고 떨어지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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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이 바로 연풍연가의 촬영지였는데 산굼부리의 왕따 나무라고도 하는 이 나무는 제주도에서 스몰웨딩을 즐

기는 분들이 자주 찾는 포토 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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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이의 사랑의 소문은 어느새 세상에 퍼지게 되었다.

소문은 드디어 상제님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상제님께서는 크게 노하시며, 하인을 불러 ‘한감’과 ‘말잣딸’을 당장 잡아 오라고 명하였다.

상제님 앞에 끌려온 ‘한감’과 ‘말잣딸’은 엎드리어 사실을 아뢰고 용서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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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께서는 “부모의 허락 없이 남녀가 사랑한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고 하며 귀양살이를 명하였다.

‘한감’과 ‘말잣딸’은 할 수 없이 경치 좋은 세상을 찾아 떠나기로 하였다.

이들은 그 길로 구름길 바람길을 따라 천둥과 벼락을 치며 이 세상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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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록담의 상징인 사슴 한 마리가 멋진 뿔을 뽐내며 漢鹿址(한록지)라고 이름 붙인 돌탑위에서 한라산을 응시하

며 우뚝 서있다. 漢鹿地(한록지)는 후세에도 사냥을 나가거나산행을 나설 때 제를 올렸던 곳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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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굼부리는 신화와 전설 또한 많이 전해지는 곳이다산굼부리란 산신의 주둥이’ 또는 산신이 생기다’ 라는 뜻

이 있는 말로 여기는 옥황상제의 셋째공주와 한별이라는 별 과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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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굼부리 정상부에는 옥황상제의 신하 중 하나인 한감이 옥황상제의 막내딸과 사랑을 하게 되었으나 허락되지

않은 사랑으로 인해 지상으로 쫓겨 내려와 이곳 산굼부리의 산신이 되었다는 설화가 적혀있는 사슴동상 漢鹿址

(한록지)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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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감과 말잣딸은 지상에 내려와 어디로 좌정 할까를 점치다가 산굼부리에 살기로 하였다. 이때부터 이들의 부부

살림은 시작 되었다,   ‘한감’은 사냥을 하고 ‘말잣딸’은 나무 열매를 따 먹으며 살았다. 한라산에는 온갖 짐승도 많

았으나, 나무 열매도 풍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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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 사슴, 오소리, 멧돼지, 꿩과 보리수나무 열매, 산딸기, 산바나나, 다래, 머루, 시러미들과 그 밖의 열매들은

이들의 주식이었다. 이렇듯 '한감'과 '말잣딸'의 식성은 동물성식품과 식물성식품으로 그 식생활이 각기 구분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그 식성이 다름에서 서로 갈등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결국 이들은 이 식성이 다름에서 서

로 살림을 분사하지 않으며 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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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고약한 냄새를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으니, 우리 이제 헤어져 삽시다."'말잣딸'의 제안이었다. '한감'도 더 이상

억지를 부릴 수가 없어, 결국 동의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말잣딸'은 인가를 찾아 내려오다가 지금의 제주시 남문

밖 천년 팽나무 아래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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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경치 좋고 좌정할 만하다'고 판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신앙민들에 현몽시켜 단골을 두게 되었다. 신

앙민들은 제물을 차려와 명과 복을 비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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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나무 힐링 길이 조성되어 있는데 구상나무의 주성분이 피톤치드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가 원

산지인데 크리스마스트리용으로 외국에 팔아버려 지금은 역수입해 온다는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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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나무 솔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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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곳을 각시당 이라고 불리우고 있으며 옥황상제님의 말잣딸 아기가 귀양와 좌정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한편 한감은 삼굼부리에 살면서 산의 짐승들을 돌보며 살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마을 사냥꾼들은 사냥할 때 이곳

에서 산신제를 지내면 그날 사냥에 큰 성과를 올릴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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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이곳에서 산신에 대한 제사를 올린 다음 산행을 해야 무사했다고 전한다. 오늘날 이곳에서 사람들이 큰

소리를 지르던지 부정한 짓을 하게 되면 안개가 삽시에 덮이고 지척을 분간할 수 없게 됨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여기 산신이 노해서 부리는 조화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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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굼부리 에서 한가하게   노니는 고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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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엔 노루와 오소리 등의 포유류를 비롯해서 조류파충류 등 야생동물들의 서식처로도 유명하다.

*굼부리란 화산체의 분화구를 가리키는 제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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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는 360여 개의 기생화산이 분포되어 있지만 이곳 산굼부리를 제외한 다른 화산은 모두 대접을 엎어놓

은 듯 한 분화구의 형태이고산굼부리 분화구만은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용암이나 화산재의 분출 없이 폭발이 일

어나 그곳에 있던 암석을 날려 그 구멍만이 남게 된 것이다이러한 화산을 마르(Maar)라고 부르는데 한국에는

하나밖에 없는 세계적으로도 아주 희귀한 화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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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이어보기

https://cafe.daum.net/b2345/9toB/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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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관광은 홈페이지: https://www.visitjeju.ne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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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산굼부리www.sangumb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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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제주시 조천읍 비자림로 768 

 (지번)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3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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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전화:064-783-9900

*하절기(3~10월)

매일 09:00 ~ 18:40

매일 입장시간 ~ 18:00 ((매표마감 18:00))

*동절기(11~2월)

매일 09:00 ~ 17:40

매일 입장시간 ~ 17:00 ((매표마감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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