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정용채 가옥(華城 鄭用采 家屋)
중요민속자료 제124호
위치 : 경기 화성시 서신면 궁평리 109
건립시대:조선시대
나즈막한 산세를 잘 이용하여 자리한 가옥. 39번국도 비봉에서 제부도 방향의 306번 지방도로 우회전하여 사강에서 궁평리 방향의 309번 지방도로 좌회전하여 끝까지 가면 왼쪽으로 궁평2리 마을길이 나온다.
마을 입구의 초가 뒤에 있는 가옥이 정용채가옥이다.
사강에서 제부도 방향으로 가다가 삼거리 ( 제부도, 궁평리 방향)에서 궁평리 표지판을 따라 가면 된다. 이곳은 한옥을 연구하시는 분과, 풍수리지 연구회에서도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동쪽으로는 서해 바다를 보며 나즈막한 동산의 산세를 잘 이용하여 남북으로 길게 자리하고 있으며 정문을 정북향으로 하고 있다. 가옥 배치는 세군데로 나뉘어 있으며 각 각의 문으로 경계를 지었다. 대문채를 너머 사랑마당, 중문을 너머 안마당, 그리고 맨 뒤에는 우물이 있는 뒷마당이 있다. 긴 성채 같은 벽은 동향으로 앞에 멀리 바닷가가 시원스레 보인다.
당당하게 서있는 솟을 대문
솟을대문에 적힌 기록에는 고종 24년(1887)에 문을 세웠다고 적혀 있으나, 안채와 사랑채는 이 문보다 약 50년 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대문은 정면으로 내지않고 북쪽측면으로 내어 언뜻보면 집이 커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50칸이 넘는 큰 규모이다.
길다란 행랑채는 안채와 사랑채의 앞을 가로막아 안마당과 사랑마당을 형성하고 있다. 대문채는 여기에 연결이 되어 있다. 안사람들의 아늑한 생활공간이었던 뒷뜰은 우물과 장독대를 두어 안살림의 옥외공간으로 활용하였다. 주위에 심은 감나무와 소나무는 뒷산으로 이어져 자연에 파묻힌 아름다운 공간구성을 만들고 있다. 전체적으로 평면형태가 "月"字形을 나타내고 있으며 전형적인 양반가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사랑마당이며, 마당의 왼쪽으로 길게 줄행랑채가 뻗어있고 오른쪽으로 사랑채가 자리한다. 사랑채 맞은편의 마당끝에는 안채로 통하는 중대문이 있다. 중대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ㄷ자형의 안채는 앞이 개방된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부엌·안방·찻방이 있고, 오른쪽에 부엌·건넌방·마루를 배치하였다. 특이한 것은 사랑채의 안사랑방 뒤에 있는 골방이 뒷마루를 통하여 안채의 대청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두번째 공간 중문 너머에 있는 안마당. 사방이 막혀있어서 답답한 구조같은 느낌이들지만 햇살이 가득할 만큼 환하다.
제일 뒤에 위치한 우물이 있는 뒷마당 남쪽으로 공간이 트여있어 밖에서 보는 답답함의 우려와는 달리 전혀 막힘이 없다. 안사람들의 아늑한 생활공간이었던 뒷뜰은 우물과 장독대를 두어 안살림의 옥외공간으로 활용하였다. 주위에 심은 감나무와 소나무는 뒷산으로 이어져 자연에 파묻힌 아름다운 공간구성을 만들고 있다.
전체적인 집 구조는 "月" 字形을 이루고 있으나 안에는 그리 답답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 출입문 쪽은 막히고 뒤쪽이 트여있다.) 대문은 정면으로 내지않고 북쪽으로 내어 언뜻보면 집이 커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50칸이 넘는 큰 규모이다.
지붕의 왼쪽은 사랑마당이며 가운데가 안채, 그리고 제일 오른쪽 트인곳이 뒤뜰이다. 멀리 위쪽으로는 서해 바다가 보인다.
경기도의 쌍부엌집이라고 말하는 정용채 가옥은 안채의 부엌이 두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