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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과 게시판

[문예이론] 리얼리즘에 대한 이해

작성자mathmania|작성시간07.07.01|조회수1,051 목록 댓글 0

리얼리즘에 대한 이해

 


들어가며
진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상, 낭만, 허구보다는 사실에 바탕을 둔 최고의 진실의 아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 한사람이 바로 내가 아닌가 싶다. 내가 이 주제를 선택하게 된 계기도 나의 주제에 대한 진실성과 더불어 주제에 관한 자료의 사실성을 간추려보고자 한 의도에서이다. 현대의 사람들은 이런저런 불분명한 이야깃거리보다 딱 부러진 명확한 사실을 원하고 들으려고 한다. 사소한 일에도 정확한 순위를 매기는가 하면, 연예인들의 사생활에 대해서, 내 주위 사람의 인간성에 대해서, 진실을 알려고 몸부림을 친다. 우리는 그래서 정확한 보도가 방송되는 뉴스를 보는가하면 아침마다 사건의 결과에 대해 알기 위해 신문을 본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관심가지는 사회, 정치, 경제에 관하여 분명한 사실을 이해하게된다. 이는 우리가 우리의 사상, 감정, 의식, 삶의 역사를 말과 글로 표현한 문학에서도 마찬가지다, 문학이란 말 자체는 광범위하고 뚜렷한 말로 의미를 정의하기가 어렵다. 내가 하고자 하는 주제를 알려면 문예사조에서의 책을 뒤적이고 또 그 책에서의 자료에 관한 좁은 주제를 정해야 한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본고에서는 사실주의에 관한 이해를 도모하고자 한다. 즉 리얼리즘(realism)에 대하여, 리얼리즘에도 비판적 리얼리즘, 사회주의 리얼리즘 등, 종류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가 고등학교 시절에 많이 읽었던 소설 채만식의 『태평천하』나 염상섭의 『탁류』, 『보바리 부인』 등의 경향의 중심이 되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란 말 자체의 의미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주의는 생산 수단의 사유를 배제하고, 모든 사람이 능력에 따라 일하고 노동의 질과 양에 따라 이익을 분배한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보다는 사회를 우선 시하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의미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의미에 기초하여 사회주의란 경향은 우리 문학의 일부를 차지한다. 여기에서 사회주의는 리얼리즘의 한 경향이다. 리얼리즘에 대한 단순한 정의를 가지고서 나는 이 주제에 대한 자료를 찾아나간다.

 

흔히 사실주의라 하면 문학적 용어인 자연주의와 비슷하다. 의미를 밝혀보진 않았지만 누구나 자연주의를 사실주의라 말할 수 있다. 사실주의란 현실과 사물의 그대로의 진실이라고 말한다. 내가 하고자하는 문예사조가 바로 이러한 것이다. 이상이 아닌 허구가 아닌 사실 그 자체의 문학에 대해 나는 알고 싶었던 것이다.

1. 리얼리즘의 정의
사실주의라는 용어는 19C의 언어적 산물이다. 1821년에 제안되어 그 세기의 중엽에 사용되게 된 용어인 것이다. 또한 그것은 샹쁠뢰리가 1857년에 출간한 책의 제목이었으며, 1856-1857년에 나타난 한 특별한 정기간행물의 제목이기도 했는데, 이는 모두 그 새 운동을 옹호하려는 시도였었다. 이상주의나 낭만주의에 상대되는 사실주의로, 작가의 감상, 종상, 환산에 의한 이상화를 배척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를 묘사하여 사물의 본질이나 의미를 포착하려는 문예사조나 철학사상을 말한다. 사실주의는 현실과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그려낸다. 문학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를 정의할 때 사실상 같은 뜻으로 쓰이는 리얼리즘과 자연주의는 별반 차이가 없다. 근대의 사회적 현실의 객관적 묘사로서 리얼리즘을 규정할 때 객관적이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리얼리즘론의 중요한 흐름의 하나가 되었던 것은 루카치의 이론이다.

 

리얼리즘이 19세기에만 한정될 수 있는 문학현상이 아니라 문학의 한 양식으로 역사성을 초월하면서 어느 시기에도 가능하다는 주장이 어느 정도 근거가 있으며 문학작품의 내용을 현실이라고 말할 때 그 현실의 내용은 무엇이며 그리고 문학작품 속에 반영된 현실은 그것이 작가의 의도적인 행위에 의하여 작품 속에 형상화되는 순간부터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리얼리즘론과 연관되어 제기될 수 있는 문제들이 이 밖에도 많겠지만 우리가 리얼리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까닭은 이와 같은 문제들을 하나씩 검토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리얼리즘이란 무엇인가? 확정적인 하나의 대답이 가능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 물음에  어떤 개념적인 정의를 내리는 것보다 왜 리얼리즘이 우리 시대에 문제시되어야 하는 가라는 물음이 리얼리즘에 대한 이해 뿐 아니라 그 역사적인 중요성을 파악하는 데 더 본질적인 것처럼 보인다. 리얼리즘이란 전통적인 특징을 짓는데 초월적인 가치를 거부하고 있다. 리얼리즘은  현실적인 것이 이상적인 것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낭만주의 세계관과 일치하지만 경험적 현실을 피할 수 없는 현실로써 인정하고 이 현실에서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고자 한다.


문학사를 정의할 때 그것은 문학과 과학을 구별할 수 없게 되며 객관적 현실의 충실한 재현은 이론적으로 문학의 사회적인 참여를 배제할 수 없게 하지 때문이다. 문학사를 통해보면 당대의 사회적 현실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며 말하여지는 문학작품 속에는 사회현실을 비판하면서 개혁하고자 하는 공리적인 목적이 묵시적으로나마 항상 암시되고 있다. 리얼리즘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의 반영으로 규정할 때 리얼리즘의 이론적인 모순은 바로 이와 같은 점에 있는 것이다.


리얼리즘이란 문학은 사실적이며 또한 이상주의적이다. 사실적인 문학이란 문학작품이 그 시대적 사회적 역사적 현상 가운데 본질적인 요소들을 재현한다는 뜻이다. 리얼리즘문학은 그것이 체험을 주된 자료로 현실을 반영한다는 강조하는 달타이류의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것은 현실세계를 여러 측면의 연관관계에서 보지 않고 분리된 바쁜 경험주의를 거부한다. 그러나 리얼리즘문학은 이성적 사유가 감성적 인식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과학적 지식을 창조할 수 있다며 인간의 생득적 감성적 경험으로 이루어지며 경험 이전의 오성이란 백지나 암살처럼 없는 것과 같다고 하는 경험론도 옳다고 보지 않는다. 리얼리즘이란 용어에 대한 개념 규정은 그것이 매우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은 까다로운 문제가 되어 왔다.

 

‘리얼리즘’이란 원래 철학이나 신학의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었던 용어로써,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개별적이고 특수한 사물들 너머에 영원히 변하지 않는 어떤 보편적 실재가 존재한다는 플라톤적 사고로부터 유래한 실재론과 관련이 있었다. 이것은 19세기 중엽에 프랑스의 사실주의자들이 낭만주의를 거부하면서 등장할 때 객관적 재현의 대상으로 삼게되는 ‘리얼리티’와는 완전히 전도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이러한 전도가 바로 ‘무엇을 리얼리티로 생각할 것인가’라는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게 리얼리즘이란 우리가 앞에서도 정리했듯이 실재론이다. 사실주의는 개념자체가 불분명하다. 우리가 믿는 사실이 남들에게 미신이나 이해할 수 없는 의미처럼 생각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내가 믿고 내가 사실이라고 판단한 것들이 남들을 배제한 나만의 사실이 될 수 있다. 리얼리즘의 뜻은 우리가 사고하고 있는 자신의 의지이다.


2. 사회주의 리얼리즘

①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관한 내용 정리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20세기를 이끄는 주요 인식론의 하나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처음 문학의 문예사조로 등장함에 따라 외국문학 등 한국문학에 많은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회주의가 공산주의의 사상으로 채택됨에 따라 다소 쇠퇴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의미 있는 문학, 사상이 되었다. 체험에 기반한, 현실의 생활형태에 기반한 리얼리즘이 가장 활발하고 치열하게 논의됐던 때는 1930년대다. 1932년 옛 소련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공식 창작방법으로 선포되고 1930년대 후반 여러 좌파 예술가들 사이에서 리얼리즘의 정체에 대한 논쟁이 뜨겁게 전개되면서 리얼리즘은 시대정신을 담보한 당대 최고의 미학으로 우뚝 섰다. 이때 논쟁을 이끈 대표적인 논객이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게오르크 루카치(1885∼1971년)와 시인이자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년)다. 사회주의 정신과 진보적 입장을 담보하고 발자크 등 19세기 위대한 리얼리스트들의 성취와 전통을 잇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루카치는 당시 문명의 위협이 부르주아 사회가 아니라 파시즘으로부터 왔다고 보고 부르주아 사회의 진보적·긍정적 유산인 비판적 리얼리즘 전통을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근본 토대로 확립하려 했다. 이에 따라 그는 프롤레타리아 계급 중심의 배타적인 미학이론과 19세기 리얼리즘 전통을 파괴하는 “퇴폐적인” 전위예술을 모두 거부했다.


브레히트는 루카치의 이런 입장을 형식주의라고 비난했다. 19세기 리얼리즘의 형식을 20세기에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결국 리얼리스트가 되지 말라는 얘기와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당대의 리얼리즘 형식은 당대의 현실과 이에 대한 예술가들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체험에서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런 까닭에 루카치가 현대 전위예술의 혐의를 두고 각하해 버린 다큐멘터리 기법과 몽타주 기법 등을 브레히트는 오히려 당대의 리얼리티를 반영하는 바람직한 리얼리즘 형식으로 적극 옹호했다. 이처럼 루카치가 부르주아적 진보성의 ‘단절 없는 계승’을 강조하며 19세기 리얼리즘 형식을 강력히 옹호했다면, “지속이라는 개념을 그리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브레히트는 민중성과 계급성을 중시하며 예술 형식의 자율성·개방성을 요구했다. 재미있는 것은, 주지하듯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계급성은 강조하면서도 형식은 19세기 풍의 리얼리즘 양태로 고착화했다는 사실이다. 브레히트도 아니고 루카치도 아닌 그것에 대해, 루카치는 나중에 “비 사실주의적일 뿐 아니라 국유화한 자연주의”라고 혹평했다.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처럼 단순히 전형성을 창조하고 닮게 그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그것은 실제 리얼리티를 잡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기계문명의 여러 환경들―네온사인, 공장, 건설현장, 쇼윈도 등의 이미지와 빠른 속도감 등을 잘 추출해 작품화하는 것이 중요했고, 그것은 옛 리얼리즘 형식으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비록 ‘사실적인 묘사’ 자체는 사라졌지만 ‘사실성’은 더 생생히 부각돼 있다. 실제 현실에 대한 인간의 느낌과 부합한다는 것이다. 이 시대의 인간상 역시 원기둥이나 원뿔 등 기계문명의 이미지를 닮을 수밖에 없었다.


루카치가 ‘총체성’의 개념을 들고 이 단순 소박한 리얼리티의 문제를 반박할 테지만, 1850년대를 기점으로 한 프랑스 사실주의에 대해서 논하자면 그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개념은 잠시 유보시키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우선, 야콥슨의 견해를 축약시킨 김욱동의 논의를 빌어 리얼리즘에 대한 몇 가지 유형을 살펴보기로 하자. 가장 일반적인 의미로서 첫 번째 유형은 ‘삶의 모습이 문학 작품 속에 재현되어 있는 상태를 지칭하는 편리한 표현’으로, 이 경우 리얼리즘이란 용어는 어느 특정한 시대, 특정한 장소에 관계없이 거의 모든 유파의 문학을 포함하기 마련이다. 삶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모방하거나 재현시키고자 하는 예술적 경향은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늘 존재해 왔던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문학 용어로서 별다른 의미를 주지 못한다. 두 번째 유형의 리얼리즘은 서구 문학사에 나타난 특정한 문학사조로서의 리얼리즘이다. 이것은 낭만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형성되어 19세기 초엽에서 말엽에 걸쳐 약 1세기동안, 특히 19세기 중엽에 발자크, 스탕달, 엘리어트, 디킨스, 트웨인 등의 작가들에 의해서 꽃피워진 문학 전통을 일컫는다. 첫 번째 유형의 리얼리즘이 존재론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면, 이것은 방법론적 측면과 인식론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유형의 리얼리즘은 두 번째 유형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형태로서 작가의 이념적인 태도나 입장이 두드러지게 드러나 있는 경우를 말한다. 문학의 사회적, 정치적 기능을 강조하는 이른바 ‘비판적 리얼리즘’이나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여기에 해당하며, 목적론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아마도, 우리의 80년대 노동문학과 같이 현재에도 영향력을 발하고 있는 전통으로서의 리얼리즘은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까다로움을 피우지 말고 리얼리즘이란 ‘당대 사회 현실의 객관적 묘사’라 하자. 이 기술을 역사적 맥락 속에 넣고 낭만주의에 대한 반론의 무기로, 또 포괄 의 이론이자 배제의 이론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환상적인 것, 동화적인 것, 우의적인 것, 상징적인 것, 고도로 양식화된 것, 전혀 추상적이고 장식적인 것을 거부한다. 그것은 우리가 어떠한 신화도 동화도 꿈의 세계도 원치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또한 있을 성싶지 않은 것, 단순한 우연, 극히 예외적인 사건의 배제를 은연중에 뜻한다. 지역과 개인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현실이란 당시 19세기 과학의 질서 정연한 세계, 원인과 결과의 연쇄로 파악된 세계, 설사 개인이 사사로이 종교적 믿음을 갖고 있다손 치더라도 기적과 초월이 배제된 세계로 파악된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현실’이란 말은 또한 포괄의 용어이다. 추악한 것, 구역질나는 것이 예술의 정당한 주제가 된다.

 

성과 죽어가는 것도 이제 예술 속으로 수용된다. 당대의 사회적 현실을 묘사하거나 재현시키고자 하는 리얼리즘은 온갖 낭만적인 것의 배제, 당대 현실과 관련된 소재, 삶의 일상적 경험(대체로 서사시나 비극의 주인공들, 상류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아닌, 하층민들의 일상),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일과 노동 등 삶의 어두운 면까지도 적나라하게 다루면서 객관성을 담보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뉴턴 물리학과 유클리드 기하학으로 대표되는 당대의 자연과학적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정확한 관찰과 과학적 엄밀성에 기초한, 전대와는 매우 다른 형식의 기술 양식을 낳게 한다.

 

본고에서 말하고자 하는 리얼리즘은 하나의 문예사조로서 낭만주의에 대항하여 객관적 현실의 재현을 목표로 삼고 있는 일련의 경향을 말하며, 기법상 정확한 관찰과 철저한 자료수집 등을 바탕으로 현실의 세부까지도 상세하게 묘사함으로써 당대의 현실을 ‘거울처럼 비추고자’하며 가능한 한 작가의 주관이나 개인적 편견을 배제한 ‘비개성’과 ‘몰개성’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리얼리즘의 한 종류이다. 별반 리얼리즘의 개념과 다를 바 없지만 여기서 사회주의 란 말은 그 의미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사회주의란 말은 우리가 정확히 알고 있다. 사유재산에 따른 분배 그리고 너무나 현실적인 문학 ,건축 시 정확한 관찰과 묘사, 등등 우리는 이렇게 사회주의를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리얼리즘을 설명할 시 분명 그 의미가 불분명하다고는 했지만 리얼리즘의 한 종류의 사회주의리얼리즘을 이해하는데는 다른 어떤 리얼리즘과 혼동이 안될 의미를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②사회주의 리얼리즘에 관한 작품 정리
19세기 프랑스소설에 특히 현저한 경향으로 스탕달의 『적과 흙』, 발자크의 『인간희극』을 시점으로 전해진다. 영국에서는 디킨스·하디, 미국에서는 스타인 백, 러시아에서는 고골리 ,투르게네프,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를 거처 러시아혁명이후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1919년 김동인, 주요한, 전영택, 염상섭, 채만식, 김환 등이 동인지 창조를 통해 춘원 이광수 계몽문학을 거부하고 사실주의 문학운동을 전개하였다. 바로 그러한 소설들의 경향이 되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 이다. 우리는 여기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작품이 될수 있는 외국문학의 대표저서 플루베르의 『보봐리부인』과 한국문학에서는 염상섭의 『삼대』,그리고 현대문학중 사실주의의 대표문학,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공』 등을 사회주의 관점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보봐리 부인(Madame Bovary)
『보봐리 부인』은 당대 사회 현실의 객관적 묘사라는 정의에서 출발하고 있다. 하우저를 다시 인용하자면, “플로베르는 작품을 씀으로써 낭만주의에서 벗어난다….” 이 말은 보바리 부인을 읽으면서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다고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김현이 『마담 보바리』에서 나오는 세 가지 이미지를 분석하면서 밝혔듯이 엠마는 검은 눈을 갖고 있으며, 석양을 좋아하고, 몽상을 즐기며, 창백한 얼굴색에 옛날 의상을 즐기며, 박명한 여자를 좋아하며 그 자신이 그렇게 된다는 의미에서 ‘낭만주의적 미인’이다. 

 

엠마가 음독자살을 하기 전까지의 많은 담론들이 (약사 오메, 잡화상 뢰뢰, ‘난봉꾼’ 로돌프, 그녀의 시어머니, 다른 많은 하인들에 의해서 구현되는 사실적 문체와 더불어) 의도적이든 아니든 낭만주의적 문체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특히 그녀의 정부와의 대화 속에서 반복된다. 남발하는 감탄조의 문체적 특징, 전혀 없지는 않은 작가의 직접적 논평 등 일반적으로 사실주의를 해설하면서 거론되는 것과는 많이 다른 요소들이 작품 전반에 깔려 있다.

 

아마도 그녀의 비극적 운명의 근원이 되는 것으로서 수도원에서 읽었던 낭만주의적 책들과 거기서부터 비롯되었던 귀족 생활과 열정적인 사랑, 전념과 관련된 열망과 몽상 등이 그대로 낭만주의적 가치관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 자신은 이렇듯 더할 나위 없는 낭만주의적 세계관을 갖고 있는 인물이지만, 플로베르는 그 자신이 경멸하고 극복하고자 했던 낭만주의의 허황함을 소설이 진행됨에 따라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 그녀의 운명을 통해서 드러내고 있다. 엠마는 그녀 자신의 의지로 인해 그녀 자신을 계속적으로 배반하고, 『보바리 부인』 작품 자체가 또한 낭만주의를 계속적으로 배반한다. 뢰뢰의 사채 조작과 그녀 자신의 무지와 현실적 무능으로 인해 경제적 파국에 치닫게 되는 작품의 결말부에 이르게 되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으로서의 자본주의, 쁘띠 부르주아의 속물 성만이 남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비현실적인 낭만주의적 세계에 속해있었고, 결코 그 속에서 나오려 하지 않았던 엠마와 작품 전반에 걸쳐 시종일관 어리둥절해 하고만 있는 우유부단하고 여린 성격의 샤를르는 비참하게 몰락한다. 지금부터는 내용에 나타나는 문체의 다양성에 대하여 알아보자 대본으로 읽어서 뚜렷하게 감별할 수는 없었지만 세르지오 시가다의 논의를 빌면, 마담 보바리는 온갖 문체들의 얽힘 혹은 아라베스크로서, 플로베르는 이 여러 가지 문체들을 개발하고, 혼합하고, 패러디 하는 가운데 그 문체들이 상호 반응하도록 하고 있다. 특정적인 병렬적 교차기법은 그 구조적 대비와 함께 문체적 대립으로도 나타난다. 현실의 문체(허풍스러운 정치적 문체, 군중을 사로잡는 정치적 문체, 속악한 수사, 다듬어지지 않은 은유, 현실의 실증적인 금전적 척도들)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낭만적 문체(수사학적으로 상투적이긴 하지만 유장함을 띠고 있는 문체)가 있다. 한쪽은 부르주아적 공리주의와 실증주의에 기댄 허구적인 정치적 발언들이며, 한쪽은 로돌프가 그저 엠마를 유혹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허구적인 애정의 발언들이다. 이 두 담화 모두 "공허한, 아무런 가치도 없는 관념적 세계의 거품일 뿐"이다. 플로베르는 여기서도 역시 낭만주의와 부르주아적 현실에 대한 환멸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독특한 점들은 정황 묘사에 있어서 서술 주체는 빠져 있고, 객체들의 대화나 행동을 통해서만 그것을 드러내는 기법이다. 책 본문에서 엠마와 신부와의 대화에서는 엠마는 불륜에 대한 자신의 욕망과 환멸,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끌려 들어가는 레옹에의 사랑에 대해 고해하려는 듯 보이지만 대화는 번번히 주변의 방해로 인해 단절되고, 계속 헛돌다가, 끝내는 아무런 말도 나누지 못하고 헤어지고 만다. 비슷한 것으로 성당에서의 레옹과 엠마의 만남(작가는 성당지기의 더없이 장황한 기념물에 대한 해설을 그대로 장황하게 옮겨놓음으로써 레옹과 엠마의 대화를 막고 안절부절못하는 레옹의 심리를 독자가 동시에 체험하게 만든다.),  시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전해듣는 오메와 엠마의 방해받는 대화 등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227쪽에서 228쪽에까지 걸쳐있는 샤를르와 엠마의 동상이몽은 그러한 구성의 미학을 더욱 잘 드러내 준다. 침대에 나란히 누워 샤를르는 딸을 생각하며 현실적인 미래의 청사진을 흐뭇하게 그리지만 엠마는 그 곁에서 로돌프와 도망하여 살고 있을 모습을 생생하게 몽상하고 있다. 이러한 대비는 무대 속의 인물들을 직접 대립시키고 그들 스스로 정황을 진행시켜 나가도록 함으로써 작가가 직접 개입하지 않고도 현실성을 담보해내는(정밀한 객관적 묘사보다도 오히려 더 효과적으로) 장치가 되고 있다.


다음으로 『보봐리 부인』의 주관적 리얼리즘에 관하여 알아보자. 로베르의 작품을 거론할 때, ‘주관적 리얼리즘’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작가의 퍼스펙티브를 배제하고 작중 인물의 퍼스펙티브를 통해 사물을 묘사하는 것으로, 엄밀히 객관적인 모든 비유를 배제한 묘사들과 약간은 주관적인 요소가 포함된 묘사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숨어야 하고, 인물의 심리 묘사는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러한 주관적 묘사는 빛을 발한다. 그것은 어느 정도 심리상태를 반영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인물의 시점에서 그려짐으로써 작가가 개입할 소지를 줄이고 있다.


첫 번째 것은 용빌로 이사와서 처음 등장하는 용빌의 모습이다. 이것은 완전히 주관이 배제되어 있어 마치 어떤 지도를 보면서 그대로 말로 풀어 써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두 번째의 묘사는 엠마의 시점에서 그려진 것인데, 승마 도중에 로돌프에게 몸을 맡기고 나서 엠마가 느끼는 행복감으로 인해 ‘눈이 부셨다’, ‘무언가 달콤하고 기분 좋은 것’과 같은 주관적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반영되고 있다. 객관적 상관 물 역시 이러한 ‘주관적 리얼리즘’의 특징적 요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인물의 심리를 직접 서술하기보다는 그 심리가 연상시키는 다른 사물에 대한 묘사로 대체시킴으로써 역시 작가는 뒤로 빠질 수 있고, 독자 역시 ‘말하기’보다는 ‘보여주기’에서 더 큰 감흥을 얻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 외의 것들에 대하여 살펴보자.


플로베르는 현실에서의 소외가 역으로 현실에 대한 객관적 시선을 담보해내고 훌륭한 작가를 탄생시킨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어떤 면에서는 ‘몽상에 빠져 패가망신케  한 어리석은 요부’로 혹평할 수도 있는 엠마가 그러나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작품 속에 묘사된 그녀의 아름다움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우리 모두가 모종의 ‘보바리즘’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녀의 몽상과 환멸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한다. 그녀가 보여주었던, 지금으로서는 진부할 수밖에 없는 갖은 애정 표현의 수사들과, 열망을 담고 있던 검은색 눈망울과, 어리둥절하고 여린 ‘바보 같기만 한’ 샤를르와, 더없이 약삭빠른 뢰뢰와, 훌륭한 체 하지만 어딘지 오만하고 비열한 구석이 있는 듯한 오메와, 지금의 난봉꾼들과 별 다를 바 없는 로돌프 등이 그려낸 세계 속에서 많은 것들이 몰락을 맞았고, 더없이 비극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냉정한 문체를 유지했던 플로베르로 인해 나는 지금 머리가 혼란스럽다. 그것은 예를 들자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화를 내야할지’ 모르는 복잡한 심리 상태인 것이다.

 

플로베르는 자신의 작품이 리얼리즘으로 분류되는 것을 계속적으로 거부하였다. 그는 아마도 일체의 ‘유파’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던 듯 하고, 오히려 ‘예술지상주의’에 가까울 정도로 작품의 미적인 측면을 중시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발자크나 스탕달과 같은 여타의 프랑스 리얼리스트들과는 조금은 다른 의미로서 그를 위치시킨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발자크 소설의 토대가 되었던 사실주의적 작업 태도를 극단화시켜 ‘외과 의사의 미세한 칼놀림과 같은 과학적 방법’을 도입하고 있다. 거기에는 발자크의 소설에서 보이던 극적인 상황과 그 상황에 맞서는 주인공의 운명적 대결 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파편화된 일상의 삶만이 편재할 뿐이다. 사실 자체가 무거운 짓누름이 되어버리는 폐쇄된 삶의 공간, 바로 이것이 그의 소설세계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그의 작품들은 졸라가 의식적으로 표방했던 자연주의 계열로 분류되기도 한다.


보봐리 부인을 자세히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책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면서 이러한 형식이 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소설에 들어가는 지를 알게 되었다. 작가 플루베르가 분명 자신의 소설을 리얼리즘으로 구분되는 것을 거부 했을지는 모르나 내가 여러 자료를 찾아본 결과 『보봐리 부인』은 문장 하나 하나를 검토해보면 현실적인 의미가 담긴 사실주의의 문학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조세회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한국 리얼리즘 문학의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 십여년에 걸쳐 우리가 경험해온 급격한 산업화의 소용돌이와  그 충격으로 파생된 여러 가지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부조리 가운데서, 산업노동 현실에 직면하고 있는 낮은 계층의 사람들의 생활조건이 어떠한가를 예리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70년대의 사회변화에 따라 난장이 일가를 중심으로 한 낮은 계층의 공장 노동자들이 체험하고 있는 삶의 전형적인 상황을 분석하는 가운데, 이러한 상황이 내포하고 있는 인간적, 사회적인 의미를 깊이 통찰하고 있다. 이 작가는 현실을 경제적 계층간의 필연적 갈등으로 보고, 비극을 사회의 착취, 말하자면 사회 특권계층의 착취와 동일시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성장과 더불어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산업화, 도시화 그리고 유동계층의 형성이 전반적으로 사회구조의 변동을 가져오면서 계층간의 갈등과 소회현상을 뒤따르게 하는 것은 산업화 이후의 서구 사회에만 적용되는 현상이 아니다. 이와 같은 상황은 하나의 피할 수 없는 과정으로 실감되어지는 우리 역사 자체의 총체적 순간이며, 이 충격적 상황을 조세희는 하나의 전형적인 순간으로 인식하고 있다. 난장이의 아이들이 일하는 ‘은강 그룹’이라는 이름의 재벌에 속한 몇몇의 공장에서 공장 노동자들이 어떠한 고난을 받고 있으며, 온갖 악조건 속에서 노동자로서의 의식이 어떻게 성장되어가고 있는가를 보여줌에 있어서 이 작가는 엄격히 객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우리가 조세희를 두고 ‘객관적’이라는 말을 할 때도 그가 산업화의 핵심적인 국면인 산업노동 현실을 진단하는 데 있어서 그가 속한 계층의 이해와 이데올로기를 초월하고 있다는 뜻에서이다. 이 작가는 그가 대학 출신의 지적인 노동자라는 점에서 ‘은강 그룹’의 현장노동자들과 같은 계층에 속하지 않는다. 산업노동 현장을 충실하게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은 “햄릿을 읽고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지만…. 이웃집에서 받고 있는 인간적 절망에 대해서 눈물짓는 능력은 마비 당하고, 또 상실 당한” 교육받은 사람들의 지적인 편견과 보수적인 세계관을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대 사회현실의 객관적 묘사로서 리얼리즘이 정의될 때 ‘객관적’이라는 것이 주관적 의식이나 비전이 없는 평면적. 기계적인 뜻과 동일시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했다. 용어를 다소 수정된 의미로서 채용한다면 모든 문학작품은 ‘의도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세희의 소설은 작가의 의도적인 행위에 의해서 리얼리즘 문학세계의 폭을 한껏 넓혀주고 있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도 플롯의 이중구성을 통해 경험의 이중의식을 펼쳐 보여주고 있다. 그 하나가 사회특권계층인 가진 자에 의하여 학대받는 힘없는 노동자들의 고통이라면 다른 하나는 그것과 대조적으로 충만 되어 있으리라는 믿고 있는 황금색의  별세계인 달나라에 대한 동경이다. 현실에서 실현될 수 없기에 이 동경은 주인공들이 찾고자 하는 절대적 가치가 되고 있다. 소설의 근본적인 구조는 문제적인 주인공이 절대적인 가치가 발견될 수 없는 현실에서 절대적인 가치를 찾다. 조세희의 주인공들은 그 동경을 꿈으로만 간직한 채 현실의 원리에 패배하는 인간들이다. 이중 플롯을 통해 이 작가가 제시해 주고 있는 이중의식은 작가로서 그의 윤리가 어떤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사회의 모순과 불평등에 의해서 희생당하고 있는 낮은 계층의 노동자들이 항거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은 폭력일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해주고 있지만, 폭력에 의해서 사회를 개조할 수 있다는 것을 절대적인 당위로 인정하고 있지는 않다. 이 작가는 집단적인 주인공들을 등장시킴으로써 계층간의 갈등과 대립을 한 개인의 운명을 초월하는 집단적 인간의 운명으로 부각시키고 있지만, 이 작가는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결코 폭력만이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계층간의 갈등과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궁극적으로 사랑이라는 것을 암시하면서, 이 논리는 어쩌면 그의 뚜렷한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의 빈곤을 의미할 수 있지만, 인간을 총체적으로 인식하고자하는 폭넓은 비전으로 나온 결과이다.


리얼리즘은 경험적 인식의 대상으로 인정한다고 말하였다. 현실의 본질이 모순이라는 것이 리얼리즘의 명제라면, 이 모순의 극복이 리얼리즘의 기본 정신이다. 리얼리즘 문학에 있어서 현실의 충실한 묘사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묘사는 작가가 독자로 하여금 행동할 의지를 불러일으키게 해주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현실의 본질을 구체화하는 이미지에다 작가는 현실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의 상상적인 비전을 가해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리얼리즘은 현실과 가능의 변증법에 기초하고 있다. 문학은 현실의 반영이며, 작가가 사회구조의 모순을 날카롭게 통찰하여 앞으로의 사회발전의 방향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충실하게 현실을 반영한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안락사 일상 속의 잠자온 우리에게 격렬한 감동을 준다. 그는 왜소하고 병신스런 모습을 통해 광포한 산업시대에 접어든 우리사회의 허구와 병리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할 꿈과 자유에의 열망을 보여준다. 우리는 여기서 타락한 세계에서 타락한 방법으로 추구하는 책정성의 가치를 발전한다. 이 가치야말로 추악한 현실에 도전하는 상상력의 힘이며 조세희 문자에 대한 우리의 감동과 고찰은 이로부터 시작된다. 도의 고통에의 아름다음이 우리의 이웃의 삶과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상상력의 전율적인 대결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조세희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난장이의 일가로 대변되는 가난한 소외계층과 공장 근로자들이다. 작가는 비상하게 날카로운 생각을 이들의 삶의 조건과 현실의 심부를 해부한다. 여기에 충격적 효과로 활용되는 과거와 현재의 중첩환상적 분위기의 조성 시점의 빈번한 이동 등의 난해한 테크닉에도 불구하고 비오 리얼리즘의 몽타주수법을 상기시키면서 동시에 신선하고 서정적인 아름다움까지 보여준다. 조세희의 일련의 작품들은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 문학에 새로운 비약을 마련하여 준다.
 

삼대
한국의 장편소설 작가들은 각자 자기들의 작품들을 통하여 과연 어떤 정치 사회적 상징으로서의 이야기 구성 내지 리얼리즘적 성과에 도달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그런 시각으로 삼대를 잠깐 살펴보자. 우리는 『삼대』에서 상징적 만족감을 추구하는 형식으로 되어 가는 기본단위를 알 수 있다. 이 작품의 구성인물은 네 사람이다. 조부 조의관, 부친 상훈, 아들 덕기 그리고 그의 친구 ‘마르크스 보이’, 김병화가 그들이다.

 

조의관은 서울 중인계층집안의 장으로서 3.1운동 이전 인물답게 개인적 생존문제와 봉건적 권위 의식만을 고집하는 전통적 가치관의 소유자이다. 상훈은 신교육을 받은 지식인으로 봉건적 가치관을 거부하고 한때 기독교 사회사업활동에도 참여한 바 있으나 결국 현실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하지 못한 채 퇴폐적인 생활에 빠져버린, 3.1운동 직후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젊은 일본 유학생인 덕기는 현실 타협적인 부르주아 지식인으로 조부와 부친의 생각과 생활태도에 공감은 않지만 그들에 대해서 포용적이고 사회주의자 병화의 냉소적인 태도를 탐탁해하지 않으면서도 그의 입장에 동정하는 한편 유산자로서의 자기 처지는 끝까지 유지하고자 하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병화는 목사인 아버지와 신앙문제로 불화를 빚고 가출한 급진 사회주의자로 많은 시련을 겪은 다음 끝으로 평범한 생활인으로의 복귀가 예상된다.

 

염상섭은 이처럼 가족이란 사회의 세대별로 특징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 3.1운동 이전의 전통적 가치관을 대표하는 조의관 3.1운동직후의 현실에 대한 가치 상실 적인 상훈, 그리고 긍정적으로 다루어진 현실 포용적 부르주아 지식인인 덕기는 각각 당대 사회의 세대별 전형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러면 염상섭은 삼대에서 현실 원칙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을까?
염상섭이 삼대에서 보여준 소망 충족법은 이처럼 돈의 위력에 기대는 부르주아적 현실 타협주의에 기초해 있지만, 부르주아 사회를 집중적으로 다룬 이 작품은 당대 현실의 총체적 반영이라는 리얼리즘적 장편소설의 관점에 비추어 볼 때 그 한계는 자명하다. 그러나 삼대는 그 서사 과정에서 1930년대 한국 부르주아사회의 외면과 내면을 상식적으로 충실히 재현하였다는 점에서 사실주의적 장편소설로서의 일정한 가치는 인정받아야 한다.


이상에서 우리는 “부르주의 문학파” 라고도 불리는 “민족 문학파” 염상섭의 소망 충족법을 그의 대표작인 삼대를 통해서 살펴보았다. 그 결과 부르주아 작가 염상섭의 소망 충족법은 돈의 힘을 전제한 포용적인 현실 대처법으로 가족의 화합과 민족의 통합이라는 꿈을 실현하는 형식을 휘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당대 부르주아 사회의 표상 재현이라는 일정한 리얼리즘적 성과도 획득하고 있음을 알았다. 삼대와 관련한 급진 사회주의자였던 이기영이 『고향』에서 보여주는 소망은 무엇이고 그 해결법은 무엇이었는지 알아보자. 그 소망은 작게는 농민의 생존 문제 해결이고 크게는 계급 없는 사회라는 유토피아의 실현이다. 그 해결법은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농민들이 자신들의 결속과 사랑으로 억압하는 계급과의 투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한편 작자가 고향을 쓰고자 하는 욕망과 실현하고자 하는 유토피아에 대한 소망은 한결같이 다시 한국인의 8할을 차지하는 농민의 생존 문제를, 분명한  계급 투쟁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총체성 반영이라는 리얼리즘의 주요 원리가 상당 수준으로 구현되고 있다.


그 다음으로 동반자 작가이자 자유주의적 지식인인 채만식이 태평천하에서 제시하는 소망 충족법을 살펴보자. 위의 두 작품과는 달리 반어적 문체로 된 이 작품은 현실에 대한 풍자가 강한 반면 이 소설은 결말에서 젊은 사회주의자의 활동 소식을 전함으로써 미래 사회에 대한 소망을 암시하고 있다. 특히 판소리체의 담론을 통한, 친일적인 한국 부유층의 자기 상실적인 이기주의에 대한 비판이 계급 없는 사회나 민족의 독립 실현이라는 유토피아에 대한 소망 표현보다 더욱 강하게 보이도록 함으로써 당시의 엄격한 검열을 통과하게 한 것은 작자의 문체적 전략을 돋보이게 하는 점이다. 이로써 삼대와 더불어 고향과 태평천하 역시 욕망과 이념과 현실 원칙 내지 리얼리즘의 관계를 중심으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함을 짐작하게 하게 되었다. 우리는 편협하고 경직된 리얼리즘적 비평이나 연구의 방법을 풀고 열어 발전시키는 데 그들의 방법이나 시각이 좋은 시사를 주기 때문이다. 거듭 말해서 이제 우리의 문학 연구는 리얼리즘에 확고히 기초해 있으면서도 동시대적 논리와 감각을 잃지 말아야 하겠으며, 그렇다고 속류 마르크스주의 비평에 빠져들거나 문학의 자율성에만 매달리는 형식주의 비평에 경도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실로 우리의 연구 방법은 대상 작품 및 작가의 긍정적 해석에 충실하면서도 동시에 그 대상을 시대와 사회와 역사의 문맥에 놓고 제대로 읽는 것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나오며
이렇게 우리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관하여 정리를 해 보았다. 사실주의란 의미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현실 그대로의 사실이다. 나는 사회주의의 작품을 통해서 그 의미를 분명히 할 수 있었다. 보봐리 부인에서는 사실주의라는 이름 아래 자연주의 작가와 관련시켜 생각하는 경향이 많았다. 여기에서는 인간의 정신세계의 과거에 대한 추억, 미래에 대한 꿈이 지배하는 사실, 이들 모두를 생각할 수 있었다. 보봐리란 책을 곁 핥기식으로 읽는다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본다면 줄거리 이면에 문장 그리고 작가의 사상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에서는 산업시대에 접어든 우리 사회의 허구와 병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작자 조세희를 두고 객관적이라는 말을 할 때도 그가 산업화의 핵심적인 국면인 산업노동 현실 진단하는데 있어서 당대 사회현실의 객관적 묘사로서 리얼리즘이 정의될 수 있었다. 마지막 삼대에서는 돈의 위력에 기대는 부르주아적 현실 타협적인 리얼리즘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삼대의 한국 부르주아 사회의 외면과 내면을 상징적으로 충실히 재현하였다는 점에서 사실주의 장편소설로서 일정한 가치는 인정받을 수 있었다. 사회주의 소설은 바로 이러한 것이다. 극히 현실적이고 모든 범위를 포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관한 내용을 정리해보아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사회전역에 리얼리즘이 존재하고 있다.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주제의 방향과는 조금 다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우리의 문학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었다.

 

 

참고 문헌
이선영, 『리얼리즘을 넘어서』 民音社
윤여탁, 『리얼리즘의 이론과 실제』 태학사
윤지관, 『리얼리즘의 옹호』 실천문학사
코올-스테판, 『리얼리즘의 역사와 이론』 한밭출판사
버거. 존, 『사회주의 리얼리즘』 열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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