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어(反語, irony)의 개념과 갈래
반어(irony)는 '거짓 꾸밈'을 뜻하는 말로,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와는 전혀 반대되는 표현을 하여 날카로운 멋과 예리한 감각을 발휘하는 기법이다. 반어에는 언어적 반어와 구조적 반어가 있는데 소월의 '진달래꽃'은 구조적 반어를 통해 주제를 형상화시킨 예이다.
문학적 장치로서 아이러니는 '變裝(dissimulation)'의 뜻을 가리키는 희랍어 에이로네이아(eironeia)에서 유래했다. 어원적으로 보면 아이러니는 변장의 기술이다. 고대 희극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윤리학>에서 분류한 두 가지 타입의 인물에 각각 에이론(Eiron)과 알라존(Alazon)이란 이름을 부여하여 주인공으로 채택했다. 에이론은 약자이지만 겸손하고 현명하며, 알라존은 강자이지만 자만스럽고 우둔하다. 이 양자의 대결에서 관객의 예상을 뒤엎고 약자인 에이론이 강자인 알라존을 물리쳐 승리한다. 아이러니의 시는 드러난 알라존과 숨어 있는 에이런이란 2개의 퍼소나를 가진다. 알라존은 시인이 전적으로 공감하지 않는 사상과 시점을 가진 목소리를 낸다. 이런 점에서 아이러니는 이중성과 복합성으로서 '종합'의 원리를 지니면서 동시에 분리, 단절의 원리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상충되는 2개의 시점, 그러니까 두 개의 화자와 어조가 공존하는 것이 아이러니의 기본 원리이지만 비평가에 따라 아이러니의 개념은 다양하게 정의되고 이런 다양한 정의 자체는 아이러니의 분류가 된다. 이에는 언어적, 낭만적, 내적, 구조적, 극적 아이러니가 있다.
언어적 아이러니는 '표현된 것'과 '의미된 것'의 상충에서 오는 시적 긴장으로, 이면에 숨겨진 참뜻과 대조되는 발언을 말한다. 귀여운 아이를 보고 '밉상'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낭만적 아이러니는 현실과 이상,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 有限我와 絶對我, 자연과 감성 등 이원론적 대립의식에서 발생한 것이다. 무한한 것, 이상세계에 대한 동경은 유한한 인간 존재에 내재하는 본질적 감정이지만, 유한적 인간의 한계의식에서 낭만적 아이러니는 필연적으로 페이서스의 어조를 언제나 띠게 된다. 이상 세계와 절대아는 유한한 인간 존재를 비참하게 되비추는 거울일 뿐으로, 시인은 불가피하게 알라존이면서도 동시에 이 알라존을 비웃는 에이런이다. 이런 이중적이고 모순된 인간의 존재성 때문에 아이러니는 미학적 가치이기 이전에 존재론적 가치를 띠고 있다.
겸손한 아이러니는 적과의 근본적 유사성을 지니고 있고 이 적을 필요로 하고 이 적에게 빚지고 있으면서 이 적의 밖에서 적을 바라보는 관찰자인 동시에 또한 자기 내부에 그 적을 지니고 있어 적과 동질적인 것이라는 감각에 의존한다. 인간은 자의식적 존재로서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마저 대상화하는 존재다. 작품 속의 두 개의 퍼소나는 동일한 시적 자아의 양면이기 때문에 겸손한 아이러니는 존재론적으로 필수적인 것이며 진정한 자아 발견을 위한 실마리인 것이다.
지적 관찰자가 비지적 관찰자의 탈을 쓰고 세계를 비판하는 아이러니를 '외적' 아이러니라 한다면, 낭만적 아이러니나 겸손한 아이러니는 화자가 바로 자신을 비판하는 '내적' 아이러니다.
외적 아이러니에서 어리석음이 외부세계에 있다면 내적 아이러니에서는 그 어리석음이 자신의 내부에 있다.
구조적 아이러니는 신비평에서 논의되는 아이러니로서, 한 작품에서 상충, 대조되는 요소들의 종합과 조화의 상태를 말하며, 매우 포괄적인 개념이다. 이에 따른다면 갈등을 포함한 모든 문학에 아이러니의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밖에 플롯의 역전 또는 반전, 주인공의 행위가 그가 의도한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 경우, 주인공은 모르고 있으나 독자는 알고 있는 경우 등을 가리키는 극적 아이러니(상황적 아이러니)가 있다.
아이러니의 본질인 변장성이란 이중성이며 이중성은 복합성이다. 아이러니의 복합성은 인생의 폭넓은 인식으로서 그를 통해 사물과 현실의 리얼리티에 도달하게 하는 기능을 가진다. 또한 독자로 하여금 이면에 숨겨진 것(의미된 것)과 표면에 오도된 것(표현된 것)의 이중의미를 찾는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출처: 돌베개 독서와 논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