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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과 게시판

[국문학사] 삼국시대의 문학

작성자mathmania|작성시간07.07.12|조회수52 목록 댓글 0

삼국은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면서 한문을 수용하고, 율령을 반포하며, 불교를 공인하는 등 국가적 체제를 정비하였다. 이 중 한문 수용이 선결 과제였고 불교는 일반 백성들까지 사람은 누구나 다 같은 사람이라는 명분론을 담당하였다. 또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차별을 제도화하고 국가조직을 유지. 집행하기 위해서는 유교가 필요했다. 따라서 한문으로 문장을 쓰는 능력이 우선 필요하게 되었다. 여기서 건국 서사시를 기록하게 되어 비로소 기록 문학이 등장하게 되었다. 국사 편찬에 종사한 사람을 태학박사, 또는 박사라고 했고 신라에서는 문사라고 했다. 이들은 어느 정도 그 직위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었는데 후에 신라에서는 이들이 고급 문학을 담당하게 되어 고래(古來)로부터 이어온 문학 담당층에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고구려 노래

지배 체제가 정비되어 가면서 상층의 문화와 하층의 문화가 분리되었다. 상층의 문화로 악(樂)이 생겨났다. 시(詩), 가(歌), 무(舞)의 종합적인 공연이면서 통치 체제를 상징하고 나라의 위엄을 자랑하며, 밖으로 문화 수준을 드러내고 안으로 백성을 감복하게 하는 것으로 무악(舞樂)과 가락(歌樂)으로 구분되었다. 이는 질서 유지가 특히 중요한 구실이었으므로 예악(禮樂)으로 일컬어지기 일쑤였다. 자료로 남은 것은 세 편이다. 내원성(來遠城)은 오랑캐가 귀순하면 머무르게 한 성으로, 이를 기념하여 지은 노래이다. 연양(延陽)은 어떤 사람이 남에게 쓰이는 바가 되어 죽기를 무릅쓰고 열심히 일하다가 자기의 신세를 나무에다 비해서 노래한 것이다. 명주(溟州)는 시련을 극복하고 사랑을 성취한 노래이다.

  

백제 노래

백제의 음악은 일본과의 교류에서는 뚜렷이 나타나지만 다른 자료는 거의 남아 있는 것이 없다. 고려사 악지(樂志)에 다섯 편의 제목이 전하는데 산 이름을 제목으로 한 것이 4편, 여인이 지어 부른 것이 4편인 것이 특이하다. 무등산(無等山)은 그 산에 성을 쌓자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되었음을 기뻐한 노래이고, 지리산(智異山)은 백제 왕의 폭정을 규탄한 노래이다. 방등산(方等山)은 도적에게 잡혀 간 여자가 자기 남편이 와서 구해주지 않는 것을 풍자한 노래이고, 선운산(禪雲山)은 남편이 부역을 나갔다가 기한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자, 아내가 산으로 올라가 기다리며 부른 노래이다. 정읍(井邑)은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정읍사(井邑詞)라는 제목으로 노랫말이 남아 있다. 형식은 한 줄이 두 토막씩이고 모두 여섯 줄인데, 다시 두 줄씩 합쳐 보면 네 토막씩 석 줄의 형식이어서 시조의 형식과 상통한다. 이는 우리 노래의 기본형의 하나이다.

  

신라의 이른 시기의 노래

유리왕 5년에 지어진 도솔가는 가악(歌樂)의 시작이 되었는데, 이는 나라를 편안하게 하자는 주술, 또는 기원을 곁들이면서 국가적인 질서를 상징하는 서정시라고 할 수 있다. 회소곡(會蘇曲)은 여자들의 길쌈 경쟁에서 불려진 노래다. 본래 악(樂)은 무(舞), 곡(曲), 가(歌)를 포괄한 개념이었으나 뒤에 분화된 것으로 보인다. 눌지왕이 지은 우식곡(憂息曲)은 일본에 볼모로 잡혀 있던 아우가 귀국하자 잔치를 베풀어 지은 것이다. 신라의 궁중 예악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용이 풍부해졌고 우륵은 가야금으로 새로운 음악을 만들었다. 그밖에 개인적인 감정을 담은 노래도 많이 불리워졌다.

  

향가, 사뇌가

향가의 개념에 대한 논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유력한 주장이 중국의 노래에 대한 우리말 노래를 지칭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당시에는 한글이 창제되기 이전이었으므로 우리말 노래를 표기할 방도가 없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한자의 음과 훈을 빌어서 표기된 신라의 노래를 말하는 것이다. '사뇌가(詞腦歌)', '사내가', '도솔가' 등의 여러 명칭으로 쓰였으며 향가의 완성 형식인 10구체의 향가를 특히 '사뇌가'라 하였다. 신라 26대 '진평왕조' 전후부터 시작되었으며, 사뇌가의 잔존 형태인 도이장가(悼二將歌)정과정곡(鄭瓜亭曲)을 고려한다면 12세기 정도(고려 광종까지)까지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삼국유사>에 14수, <균여전>에 11 수 등 총 25수가 전해진다. 진성여왕 2년, 각간 위홍과 대구 화상이 지었다는 삼대목(三代目)이라는 향가집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현전하는 작품

작 품 명

작  자

연  대

형  식

 내             용  

서 동 요

백제 무왕

진 평 왕

4구체

서동이 선화 공주를 차지하기 위하여 아이들을 꼬드겨 부르게 한 동요. 일종의 참요(讖謠)

풍    요

여러남녀

선덕여왕

4구체

양지가 영묘사 장육존상을 주조할 때 장안의 남녀들이 진흙을 나르며 불렀다는 노동요.

헌화가

어느노인

성덕왕

4구체

소를 몰던 노인이 이쁜 수로부인(水路夫人)을 위해 꽃을 꺾어 바치며 불렀다는 노래. 민요.

도솔가

월명사

경덕왕

4구체

해가 동시에 두 개가 나타나자 괴변을 없애기 위해 부른 산화공덕(散華功德)의 노래. 일명 산화가(散華歌)

모죽지랑가

득오

효소왕

8구체

화랑인 죽지랑(竹旨郞)을 사모하여 부른 노래. 만가, 추모가

처용가

처용

헌강왕

8구체

아내를 침범한 역신(疫神)을 용서하여 감복시킨 주술적인 노래.

혜성가

융천사

진평왕

10구체

침략해온 왜구와 큰 별을 범한 혜성을 물리치기 위해 부른 축사(逐邪)의 노래

원왕생가

광덕

문무왕

10구체

사후에 극락 왕생을 바라는 불교적 성격의 노래

원가

신충

효성왕

10구체

효성왕이 약속을 지키지 않자 그것을 원망하여 지어 잣나무에 부쳤다는 노래. 8구만 전해옴.

제망매가

월명사

경덕왕

10구체

죽은 누이를 추모하여 재(齋)를 올리며 부른 노래.

안민가

충담사

경덕왕

10구체

군(君)·신(臣)·민(民)이 각자의 할 바를 노래한 치국의 노래. 치세안민(治世安民)의 노래를 지으라는 왕의 요청을 받고 지음.

찬기파랑가

충담사

경덕왕

10구체

화랑인 기파랑을 찬양하고 추모하여 부른 노래. 문답식 구성.

천수대비가

희명

경덕왕

10구체

희명이 실명(失明)한 아들을 위해 부른 노래. 분황사 관음보살에게 아들의 눈을 뜨게 해 주기를 비는 노래.

우적가

영재

원성왕

10구체

영재가 대현령에서 도둑을 만나 도둑을 회개시킨 노래

보현십원가

균여대사

신라말∼고려초

10구체

예경제불가, 칭찬여래가, 광수공양가, 참회업장가, 수희공덕가, 청전법륜가, 청불주세가, 상수불학가, 항순중생가, 보개회향가, 총결무진가로 이루어진 노래

  

향가의 작품 세계

민요 계통의 노래

서동요(薯童謠)는 진평왕 때 서동이 지은 것이라고 하나 원래 민요였던 것이 향가에 편입된 것으로 보인다. 상하층을 나누는 사회적 장벽에의 불만이 민요에 고유 명사만을 갖다 붙이고 그럴듯한 이야기를 꾸민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풍요(風謠)는 민요를 뜻하는 말로 노동요이다. 사설 중의 '서럽더라'는 노동의 괴로움을 말한 것이기도 하고 인생의 무상을 표현한 것이기도 한 이중의 의미를 지닌다. 이런 까닭에 단순한 민요로 남지 않고 향가에 편입된 것이다. 헌화가(獻花歌)는 꽃을 꺾어 바치면서 부른 노래로 한시로 된 해가(海歌)와 연결되는 작품이다.

 

화랑의 노래와 그 변모

혜성가([彗星歌)는 진평왕 때 융천사(融天師)가 지은 노래로 융천사는 하늘의 일을 관장하는 천문관이고, 변괴를 물리치는 주술사인 까닭에 국왕의 고민을 해결해 주면서 화랑의 무리를 위해 노래를 지었다. 주술적 사고 방식 위에 화랑의 기백을 찬양하는 말을 덧보태면서 격조 높은 암시를 한 작품이다. 모죽지랑가(慕竹旨朗歌)는 죽지랑이란 화랑을 찬양하고 사모한 노래로 득오(得烏)가 지었다. 처용가(處容歌)와 함께 넉 줄 형식의 노래로 좀더 사뇌가에 가깝다. 이 노래가 지어진 효소왕 때에 이미 통일달성기의 고매한 이상이 무너지고 지배층이 횡포를 자행하는 사태가 벌어졌음을 알 수 있다. 원가(怨歌)는 효성왕 1년에 신충(信忠)이 지은 노래로 주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 주술은 혜성가에서처럼 보편적인 이념을 추구하는 데 쓰이지 않고 개인적인 영달의 수단으로 변질되어 있다.

 

월명사와 충담사

월명사(月明師)는 도솔가와 제망매가(祭亡妹歌)를 지었다. 도솔가는 경덕왕 때, 정치적인 위기를 주술적이고 종교적인 대응으로 타개하고자 하는 왕의 요청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두 줄 네 토막 형식이다. 유리왕 때에도 도솔가가 있었던 점으로 보아 '도솔가'는 노래 갈래 이름으로 나라를 편안하게 하는 노래이다. 제망매가는 월명사가 죽은 누이를 위해 제를 올릴 때 부른 것으로 다섯 줄 형식인 사뇌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월명사는 화랑이 밀려나는 시대에 태어나 길거리를 방황했고, 고독한 시인으로 미타를 찾아 피안을 희구하는 생각도 가졌으며, 개인의 노래를 지어 내면적인 정서를 토로하기도 하였다. 충담사(忠談師)는 안민가(安民歌)와 찬기파랑가를 지었다. 안민가는 경덕왕의 요청에 따라 지은 것으로 도솔가와 마찬가지로 나라를 편안하게 하고자 하는 노래이나, 보다 정치 상황과 밀착된 구체성을 갖는다. 찬기파랑가는 몰락한 화랑을 찬양한 것으로 사뇌가의 전형적인 작품이며, 사뇌가가 갖추어야 할 높은 뜻을 가장 잘 갖추고 있는, 숭고와 비장이 함께 보이는 노래이다.

 

불교 신앙의 노래

원왕생가(願往生歌)는 광덕(廣德)이 지은 노래로 종노릇을 하는 천한 사람도 불도를 닦으면 관음보살이 될 수도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천수대비가(千手大悲歌)는 승려가 만들어 놓은 기도문을 5살 된 희명(希明)으로 하여금 외우게 하여 그 아이가 작자인 것처럼 알려진 노래이다. 우적가(遇賊歌)는 승려 시인인 영재(永才)가 지은 것으로 이 때에 들어 사뇌가는 하층민에게도 충분히 이해되었다.

 

신라의 다섯 가지 놀이

최치원(崔致遠)의 시 신라아영오수(鄕樂雜영五首)에 흔히 오기(五伎)라고 부르는 다섯 놀이가 나타나 있다. 금환(金丸)은 금방울을 굴리는 곡예로 직업적 재인이 숙달된 재주를 자랑하기에 알맞은 것이다. 월전은 일종의 연극으로 난쟁이나 꼽추, 선비의 모습을 흉내낸 것이다. 대면(大面)은 금빛 가면을 쓰고 우아한 가락에 느린 춤을 추며 귀신을 쫓는 놀이이다. 속독은 탈을 쓰고 춘 춤으로 추측되며 산예는 사자춤이다. 이 다섯 가지는 오늘날의 오광대와 같이 다섯 과장으로 이루어진 한 가지 공연인 것으로 보인다. 이 오기의 기풍은 한 마디로 구김살이 없고 씩씩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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