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절충문의 내용 생성과 구상
가. 논술
‘올바른 가족 제도’라는 제목으로 한 편의 글을 쓴다고 해 보자. 기껏해야 떠오르는 말은 ‘확대가족 제도와 핵가족 제도의 장점을 절충한 가족제도'라는 답 하나 뿐이다. 이런 진술은 단답형 진술은 될 수 있어도 논술형의 진술은 될 수가 없다. 논술을 해야 하는데 단답형 답만 두고 머뭇거릴 수는 없다.
다시 일상 대화의 세계로 내려가자. 거기서는 어떻게 더 많은 내용을 생성하고 결론을 내리는가? 영수와 철수가 일상 대화를 나눈다.
영수: 너는 박경림이 좋나, 장나라가 좋나?
철수: 반반이다.
영수: 반반이라니?
철수: 응. 박경림이는 생긴 게 사각로봇인데 성격은 좋잖아. 장나라는 아무 데나 뽀뽀하고 치, 근데 생기긴 너무 귀엽게 잘 생겼어 그지?
영수: 아, 성격도 좋고 얼굴도 예쁜 그런 여자 어디 없을까?
철수: 왜 없어? 우리 학교 여학생.
이 일상대화의 핵심 주장은 여자 중에 최고 여자는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좋은 여자라는 가치 명제이다. 그러나 이런 가치 명제적 결론은 아무런 근거 없이 주어진 것이 아니다. 박경림의 장단점, 장나라의 장단점을 파악하여 그것을 근거로 내린 판단이다. 이런 판단을 내린 근거를 좀더 차근차근히 따져 보면 아래와 같은 모양새를 갖출 것이다.
① 내가 좋아하는 여자는 박경림과 장나라이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② 박경림은 얼굴은 아닌데 성격이 매우 좋다.
③ 장나라는 성격은 날라리인데 얼굴은 예쁘다.
④ 그러므로 가장 멋진 여자는 박경림과 장나라의 장점을 합친 사람이다.
⑤ 그 여자는,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좋은 우리 학교 여학생이다.
①이 글로 쓰이면 서론이 되고 ②③은 본론이 된다. ④는 ②③을 근거로 내린 결론이고 ⑤는 그 결론을 구체화한 모습이 된다. 이쯤 해 두고 다시 ‘바람직한 가족제도’라는 원래의 논제로 돌아가 보자. 이제 단답형 서술보다 훨씬 더 많은 내용을 생성할 수 있지 않은가? ①②③④⑤를 토대로 삼아 ‘바람직한 가족제도’에 맞는 구상 메모를 작성해 보자.
① 가족제도에는 대가족 제도와 핵가족 제도가 있다. 올바른 가족제도란 어떤 것일까?
② 대가족 제도는 농경 사회에 알맞은 가족 제도로 가족간의 결속력을 높이는 장점이 있지만, 개인의 사생활을 침범할 우려가 있다는 단점도 있다.
③ 핵가족 제도는 산업 사회에 알맞은 가족 제도로 개인의 개성을 지켜주는 장점이 있지만, 가족간의 결속력을 떨어뜨린다는 단점이 있다.
④ 그러므로 바람직한 가족제도는 핵가족 제도의 장점과 확대가족 제도의 장점을 합친 가족제도 이다.
⑤ 그것은 1세대 부모님을 가까운 데 모시고 2세대와 3세대 가족이 핵가족을 이루어 그 주변에 모여 사는 대가족적 핵가족 제도이다.
①은 전체 글의 서론이다. ‘올바른 가족 제도’라는, 본론에서 언급할 내용의 제목(화제)을 제시했다. ②와 ③은 ④⑤라는 결론을 뽑아내기 위해 그 장단점을 구체적으로 분석한 본론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④와 ⑤는 전체 글의 결론인데 핵심적 판단이 드러난 부분은 ⑤이다. ④는 ⑤의 핵심을 말하기 위해 장치해 놓은 전제의 구실을 한다. 이런 구상 메모를 틀로 삼아 글을 쓰면 서론, 본론, 결론을 온전하게 갖추고 문단 구분도 비교적 뚜렷한 논술문을 완성할 수 있다.
이 중 하나를 뽑아서 글 전개 방식에 따라 확장을 해 보자. 구상에서 사용된 한 개의 문장을 문단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글의 전개 방식(다른 말로 사고의 전개 방식이라고 한다.)을 활용하면 좋다. ⑤를 확장해 보자.
그것은 1세대 부모님을 가까운 데 모시고 2세대와 3세대 가족이 핵가족을 이루어 그 주변에 모여 사는 대가족적 핵가족 제도이다. 일단 1세대가 도시로 옮김으로써 농경사회가 산업화 사회로 바뀐 사회 구조에 좀더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가 있다. 즉 도시화 산업화되는 사회에서 경제적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가 있다. 대가족제도에나 알맞은 1세대의 농촌거주로 말미암은 비효율성이 1세대의 도시 이주로 극복이 되는 셈이다. 또 가족 내적으로도 2세대들이 맞벌이를 함으로써 일어날 수 있는 자녀 가정교육의 빈 공간을 1세대가 맡아 기름으로써 핵가족 제도가 가진 결점도 아울러 청산할 수 있다. 2세대가 산업 역군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1세대는 3세대의 교육을 위해 힘쓰면서 가족의 결속력도 높이는 가족 제도가 바로 대가족적 핵가족 제도인 것이다.
이 글은 ⑤를 분석이라는 문단 전개 방식으로 문장을 문단으로 확장한 것이다. 나머지 부분도 글의 전개 방식을 이용하여 확장하는 연습을 부지런히 하면 언제 어디서라도 집필이 가능하다.
어쨌든 이런 순서에 의해 글을 쓰는 과정을 연습을 통해 반복하면 누구라도 논술 한 편을 거뜬히 쓸 수 있는 능력을 체득할 수 있으리라. 일반적으로 두 대상의 장단점을 절충하는 일상대화에서 얻을 수 있는 내용 생성과 구상 방법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도식화할 수 있다.
주제문: 바람직한 p는 a와 b의 장점을 합친 것이다.
서론(전제); p에는 a와 b가 있다. 바람직한 p란 어떤 것일까?
본론(비교 대조); 1)a의 장단점
2)b의 장단점
결론(주장); 바람직한 p는 a와 b의 장점을 합친 것이다. 그것은 c이다.
이 구상메모도 일종의 연역 추리이다. 선언(選言)삼단논법1)의 변용이다. 선언 삼단 논법은 ‘또는, 혹은, 아니면’등의 선택하는 말[選言]로 두 개의 개념을 이어 대전제로 만들고 이 중 하나를 거부하는 것을 소전제로 들어 결론은 나머지 한 개를 취하는 방법이다. 가장 간단한 예로, ‘그는 여자 혹은 남자이다. (대전제)/ 그는 남자가 아니다. (소전제)/ 그는 여자이다. (결론)’를 들 수 있다. 절충문의 구상 방법은 이런 선언 추리 둘을 합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즉 ‘p에는 a와 b가 있는데 a와 b에는 바람직한 것과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 있다. (대전제)/ a의 바람직하지 못한 점과 b의 바람직하지 못한 점은 바람직한 p가 아니다. (소전제)/ 그러므로 바람직한 p는 a와 b의 바람직한 점을 합친 것이다.’가 된다. 왜 이렇게 논리가 현실의 일상대화와 연결되는가? 그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현실 자체에서 논리가 나오기 때문이다. 가장 현실적이어서 논리적이 된 것이지 논리가 무슨 하늘에서 떨어지는 공식은 아닌 것이다. 웬만한 논술책자는 연역추리나 귀납추리를 반드시 언급한다. 그러나 이것을 논리적 구상법으로 활용한 참고서는 보지 못했다. 이 책의 경우, 일상대화라는 보물을 접하고 보니 막혔던 부분이 환하게 뚫린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1) 선언삼단논법: 대전제가 선택하는 말로 이루어진 문장으로 되어 있고, 소전제는 그 선택지 중의 하나로 되어 있으며, 결론은 소전제에 쓰이지 않은 선택지로 이루어지는 삼단논법이다. 가령, ‘그는 지능 부족이나 능력 부족으로 실패했다. (대전제)/그는 능력 부족으로 실패하지 않았다.(소전제)/그러므로 그는 지능 부족으로 실패했다. (결론)’와 같은 형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