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6.6.21
말씀: 이사야 25:8
제목: 이긴 자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I. 들어가는 말
성경에는 장수의 복에 대하여 여러 말씀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말씀이 부모를 공경하면 생명이 길 것이라 하고 하나님의 법을 잊지 않으면 장수할 것이고 의인의 삶을 살면 장수와 구원을 주신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있어서 오래 산다는 것, 장수한다는 것을 단순하게 생각해 본다면 꼭 장수가 ‘복’일까 하는 의구심도 듭니다. 물론 성경에서 말씀하는 장수는 “형통”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만 사람이 오래 산다는 것은 어떤 면으로 보면 참으로 고독한 일입니다. 매사를 남에게 맡길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장수는 현대적 의미에서 반드시 복이라고만 할 수 없는 이유를 찾자면 차고도 넘칩니다. 사람이 결국은 혼자 와서 혼자 종말을 맞이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해야만 하는 날 수가 길면 길수록 서글픈 감정이 이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당나라 시인 두보의 호인 “소릉(少陵)”을 따서 우리나라 천상병 시인이 자신의 가난과 외로움과, 고독과 애환을 담은 “소릉조(少陵調)” 라는 시가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 가지도 못하나?
생각느니, 아 /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천상병,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죽음으로 가는 인생이지만 가난하여서 가지 못한다는 아이러니 속에서 자신의 깊은 외로움과 고독과 소외를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우리 인생의 길이라는 것도 외로움과 고독과 소외가 버무려져 살 수 밖에 없습니다만 그러나 어떠하든지 간에 결국은 종착역이 있어 그곳으로 달려 가지만 우리가 안심하는 이유는 “이긴 자”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긴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요 하나님이기 때문에 더욱더 안심할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기 때문에 한 치의 실수도 없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II. 이긴 자
본문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으로 심판하시지만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며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제하신다”라는 약속을 하십니다. 물론 그 대상은 이스라엘을 넘어서 “모든 민족”(7절)입니다.
1. 본문은 오늘날 우리에게 두려운 죽음과 가난한 삶의 고독과 외로움을 넘어서는 소망을 갖게 합니다. 이미 “이긴 자”로 살 수 있는 확신을 담은 말씀인 것입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계 21:4)하신 말씀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게 합니다.
2.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신다는 말씀으로는 위로와 회복을 담습니다. 현재를 살아 내면서 닥치는 상황으로부터 경험하는 괴로움과 슬픔과 상처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이긴 자”로 살 수 있도록 위로하시고 회복 시켜 주십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사망을 이기셨고 끝내 완전히 사망을 제거 하실 것을 보증하셨습니다.
Ⅲ. 나가는 말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에 관여를 하십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을 주관하시니 모든 것에 관여하시는 것입니다. 죽음은 사람에게 두려움이고 고통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는 몸이지만 예수님께서 부활을 통해 죽음에 결정적으로 승리를 거두셨고, 그것을 결국은 자신의 백성을 끝까지 돌보아 주시는 증거가 되셨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의 예정으로 택함을 받은 우리는 삶에서 패배자가 아니라 이긴 자로 살아 갈 힘을 예수님께로부터 얻습니다. 그러므로 “이긴 자”로 사는 것은 하나님께는 기쁨이요 우리 자신에게는 영광 돌리는 삶입니다. 모두 그런 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