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6.2.15
말씀: 요엘 2: 12~13
제목: 하나님께로 돌아 가는 공식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I. 들어가는 말
바울 사도는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롬 1:20)라고 밝혔듯이 세상 만사에는 그분의 흔적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만물에 나타내는 데는 어떤 “공식”이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꽃은 나무의 기다림으로, 봄은 겨울의 기다림으로, 여름은 봄의 기다림으로, 가을은 여름의 기다림, 겨울은 가을의 기다림으로 오고 갑니다. 우리 자신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걸작 중의 걸작입니다. 태어남은 10개월의 기다림으로, 구원의 완성은 죽음으로, 천국은 종말의 기다림으로 들어 갑니다. 세상 만사, 인생 만사가 다 기다림 끝에 이루어 집니다. 그런데 기다림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은 “고난”입니다.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느니 불꽃이 위로 날아 가는 것 같으니라”(욥 5:7)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이 우리 삶에 구체적으로 나타나기를 소망하는 인내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상징어 즉 메타포의 단어가 있습니다. 가령 “고난”을 상징하는 말은 “바다”입니다. 적그리스도나 악한 것들이 나오는 상징적인 것이 바다입니다. 바다는 무질서하며 악의 근원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심판의 도구입니다. 바다는 “물”이 모이는 곳입니다.
우리는 바다 같은 세상에서 삶의 이어갑니다. 우리는 소망은 고난이 지난 후에 이루어진다는 “공식” 속에 살아 갑니다. 우리가 갖는 소망이 소망일 수 있는 이유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에 있기 때문입니다. 환희가 환희일 수 있는 이유는 고난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없다면 환희일 수 없습니다. 감사가 감사일 수 있는 이유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절망과 슬픔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하는 일종의 “공식”입니다.
“공식(公式)”이라 하면 숫자를 떠 올립니다. 히브리어의 알파벳은 각각 수 값과 의미를 가집니다. 알렙(א) 수 값으로 1이며 의미는 “소”, 베트(ב)는 2, “집” 이런 식입니다. 멤(מ, Mem)은 40이고 의미는 “물”입니다. 물은 생명이기도 하지만 홍수처럼 모든 것을 없애 버리기도 합니다. 물은 바다로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멤의 글자 형태는 어머니의 자궁과 비슷하다고 여겨 진다고 합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영혼의 성숙해지는 잠복기라고 여겨진다 합니다.
그들의 사고는 성경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단순하게 40이라는 수치를 나타내는 것을 넘어서 준비 과정, 고통을 견뎌내고 새로운 시작을 암시하는 상징을 나타냅니다. 홍수(창 7:17)사건에서 40일 밤낮으로 비가 내리는 광경은 죄악을 씻고 새롭게 시작하는 “정화”의 기간을 상징합니다. 모세가 미디안으로 도망갈 때 40세, 또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때도 40세입니다. 시내 산에서 40일간 머물면서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모세에게 40은 “준비”의 뜻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하면서 광야에서 40년간 고통과 시련을 견뎌내는 훈련의 세월을 보냈습니다(민 14:34). 다윗은 4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고(왕상 2:11), 사울(행 13:21)이나 솔로몬(왕상 11:42)도 40년간 다스렸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하며 사탄의 유혹을 이겨내셨습니다. 부활하셔서 40일간 머물렀습니다. 이렇게 “고난”을 견디시고 끝내 승리하여 “새로운 시작”을 담는 숫자가 40에 있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성경적 배경은 “사순절”로 이어져 내려 왔습니다. 사순절이란 숫자 4의 한문(사)과 10의 한문(순)을 합쳐 사순절이라 명칭 합니다. 영어로는 “Lent”로써 “봄”의 뜻을 담은 말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니케아 공의회(AD 325)에서 확정 되었습니다. 시작은 항상 수요일입니다. 이것을 “재의 수요일”이라 하고 부활절로부터 역산하여 40일로 하되 주일을 제외하고 계산합니다. 참고로 부활절은 매년 달라집니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정한 “춘분 이후 첫 만월(보름달)이 지난 다음에 오는 첫 번째 주일”이 되므로 올해는 4월5일이 부활절 주일입니다.
우리는 사순절을 동안 예수님의 “고난”에 기꺼이 참여함으로써 진정한 “새로움의 공식”을 다시 한 번 새길 수 있게 됩니다. 본문을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II. 새로움의 공식
본문은 엘리사 선지자와 동시대에 활동한 요엘 선지자의 말씀입니다. 메뚜기 떼의 습격을 겪으면서 죄악에 빠져 유다 백성들에게 장차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주의 날”이 닥쳐 올 것을 경고하고 하나님께로 돌아 오라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메뚜기 떼의 재앙으로 먹을 것은 켜녕 하나님께 드릴 곡식조차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형식적으로 겉옷을 찢고 금식하는 흉내를 내면서 마음으로는 전혀 하나님을 찾지 않는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1. 고난을 미리 보는 소망이라 여겨야 하겠습니다.
현실은 고난의 연속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소망은 고난의 기다림으로 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믿으면서 25년간 기다렸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적지 않은 고난을 겪었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익히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나 사라에게나 그 시간은 분명 고난의 기간이었습니다. 요셉도 형들에게 팔려간 후 억울하게 처절한 고난의 시간을 겪었습니다. 마침내 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역사는 장대하게 이루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다림은 고난이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우리에게 나타내실 공간을 마련하시는 사전 작업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소망을 미리 보게하는 하나님의 은혜라 여겨도 괜찮을 것입니다.
2. “늦기 전에 ”하나님께 돌아 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제라도 돌아와라 나에게로!” 말씀하십니다. “이제라도”라고 하신 것은 우리 상황이 어떻든지 간에 따지지 말고 무조건 돌이키길 원하시는 의지의 표현이십니다. 우리는 때로는 우리 생각이나 도덕적 잣대로 자신을 판단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조건이 만족하고서야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이제라도 돌아 오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 생각에 나중으로 미루거나 세상 것을 따르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면, “늦기 전에”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로 시선을 고정 시키도록 돌아 가야 하겠습니다.
3. “형식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 가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당할 수 없이 슬프거나 분노하거나 참회를 할 때 겉옷을 찢는 행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으로 겉옷을 찢는 행위를 경계하셨습니다. 진정으로 마음을 아파하면서 돌이키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종교적 행위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만약에 형식적인 예배나 주일 지킨다거나 기도한다면 “형식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 가야 하겠습니다.
Ⅲ. 나가는 말
우리가 사순절을 맞이하며 신앙을 점검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에 동참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나아가서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에 힘입은 자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자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적인 행위로서가 아니라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참 마음으로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고난을 미리보는 소망으로 여기고, 늦기 전에, 형식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 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이렇게 다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사랑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