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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교회

"000야" 하실 때(요 20:14~16)

작성자김 정연|작성시간26.06.09|조회수0 목록 댓글 0

일시: 2026.4.

말씀: 요한복음 20:14~16

제목: ○○○ 하실 

[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

 

I. 들어가는 말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기쁜 날입니다만 사실 부활을 이야기 하려면 죽음을 먼저 이야기 하지 않을  없습니다. 성경에서 죽음을  잔다 라고 표현합니다. 구약에서는 조상들과 함께 잔다 라던지, 신약에서도  안에서 잔다 라고 말씀합니다. 단지  땅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잠시 쉬었다가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는 문지방(門地枋)같은 것으로 여깁니다. 바울 사도는 장막을 벗는다라고도 말합니다. 그런데  죽음을 별세(別世)한다고  구절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 기도하고 계실  예수님의 얼굴 모양이 달라졌고, 예수님의 옷이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는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9:30~31)이라는 말씀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별세 헬라어는 엑소도스(ἔξοδος, exodos)”입니다.   밖으로 나가는   떠남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이라는  장소에서 가나안이라는 다른 장소로 옮겨가는 이동 의미를 담습니다. 구약의 모든 예언과 율법이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완성될 것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과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하나님은 죽은  가운데서 살리셔서 결국 구원의 완성으로 가는 길을 여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십자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 되었던 것입니다

죽음을 이야기 하려면 먼저  이야기 하지 않을  없습니다. 성경은 모든 것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3:1~8) 말씀은 너무나도 정확하게 인생을 말씀한  같습니다. 

 

II.   ○○○ 하실 

 

이렇게 우리 인생은 우여곡절의 삶을 살다가 누구나 끝이라는 종말을 맞이합니다.  끝이 죽음으로 종말終末된다면 우리는 죽음으로 가는 존재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끝이 죽음을 넘어 영생(永生)으로 이어진다면 우리는 영생으로 가는 존재 살아 가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 있음으로 죽어 보지 않아  끝이 언제, 어떤지  길이 없습니다. 죽어 보지 않아서 영생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없습니다. 

  성경은 부활이라 말씀합니다. 그러나 부활은 언제나 죽음을 앞세워야만 존재함으로 우리 스스로는 역시  길이 없습니다. 사람으로서 부활  사람 없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고 그것을 간증하던 어느 목사도 있었지만 결국 그도 다시 살았지만 다시 죽었을 뿐입니다.  무덤을 보고도   못한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성경에 그가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20:9) 말씀을 증거  뿐이고, 본문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알지 못한 것처럼 스스로는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베드로와 마리아일지도 모릅니다. 말씀에 대하여  지식을 한다고 하고 믿음에 대하여  믿음을 한다고 하고 신앙 생활에 대하여  열심 한다 라고도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예수님이 오셔서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심령이 가난하니 천국을 맞이할 것으로 믿었습니다. 애통 하는 마음이니 위로를 받고, 온유하니 땅을 기업으로 받으며, 의에 주리고 목마르니 배부를 것이며, 긍휼히 여기니 불쌍히 여김을 받을 것이며, 마음이 청결하니 하나님을 뵙게  것이고, 화평하게 하니 하나님의 아들 딸이라 불릴 것이며, 의를 의하여 박해 받으니 하나님 나라를 받게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허망하게 죽으셨고 희망이 아니라 절망만 안겨 주고 말았습니다. 그들에게 천국이나 위로나 하나님 나라나 구원의 완성은 현재에는 이룰  없는 꿈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그것은  세상을 떠나서야 이룰  있는 장래의 소망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과연 죽으셨지만, 과연 살아 나셔서 소망을 이루는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행적, 이적,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위격, 하나님 나라, 용서, 사랑, 위로, 긍휼, 구원의 완성을 이룰  있게  준다는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로서 십자가의 죽음이 저주가 아니라 대속이라는 것을 명백히 밝히셨습니다

 

우리는 열매를 거두게  것입니다. 천국을 얻을 것이며, 위로를 받을 것이고, 하나님 나라의 상속권을 받을 것이며, 배부를 것이고, 불쌍히 여김을 받을 것이며, 하나님을 만날 것이고, 하나님 자녀가  것이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소망을 거둘 것입니다. 

 

한편 부활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오셔서 자신을 계시하신 방법입니다.  예수님은 죽으셨고 부활 다시 자신을 계시 하신 것입니다. 흙이 되시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게 십자가 죽음이라는 종말을 넘어 그의 비밀을 계시 하셨습니다. 그것은 구원의 완성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시자  때에서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 알아 보았습니다 내가 여기 있다 하시면서 자신을 계시 하시자 마리아의 영적인 눈이 열리게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을 경험해야 합니다. 하지만 부활은 인생의 , 길을  살아 내고 죽음에 이르러서야 갖는 소망이 아니라 현재 살아 가는 길에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죽음은  우리  앞에 닥쳐  있습니다. 부활의  뜻은 새로움입니다. 부활은 반복이 아닙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예전 몸으로 부활하신다면  다시 죽으셔야 합니다. 부활은 예전 몸으로 다시 사는  아니라 죽음을 완전하게 넘어서 영광스러운   입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에 가난하고 고단하고 실패했다고 그렇지 않은 자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전생이라든지, 윤회설은 그들만이 주장하는 괴변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삶에서 새로움으로 거듭난 경험을 한다는 것은 영생으로 가는 자로서 최소한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깨닫고 아는 것입니다. 어떻게 경험할  있겠습니까? ○○○  하실  반응하는 것입니다

 

Ⅲ. 나가는 

 

우리가 예수님의 믿노라고 하고 사랑한다 하며 죽음을 이기고 부활 하신 예수님을 찬양한다 하면서 그에 따른 새로운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부활은 의미는 없는  아니겠습니까? 

오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 오셔서 ○○○ 하신다면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 하실 , 마리아가 랍오니하면서 반응한 것처럼 예수님을 모셔 들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 하실 ,    모든 것은  있다고 스스로 다스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 하실 , 물질의 어려움이나 질병이나 실패 했을지라도 이것이 끝이 아니라 반드시 새롭게 된다 라며 부활의 소망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하실 , 남들을 먼저 대접해 주고 위로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하실 , 남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대신 부활의 기쁨으로 격려와 칭찬의 말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하실 , 새로운 습관과 말과 행동과 정신으로 무장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 하실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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