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6.5.3
말씀: 히브리서 11:16
제목: 더 나은 본향을 향해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는니라]
I. 들어가는 말
한국 갤럽의 “한국인의 종교 1983-2025”에 따르면 우리나라 20대 젊은이 4명 중 3명이 무종교라고 합니다. 이유는 58%가 “관심이 없어서” 라고 합니다. 그 기사의 댓글을 보니 “모태신앙은 없어져야 한다. 신앙의 자유가 있다”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이 조사는 참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5월이 시작 되었습니다. 5/5일 어제는 어린이 날이고, 어린이들이 “오늘만 같아라” 했을 것입니다. 5/8일은 어버이 날엔 부모가, 5/15일스승의 날엔 선생님들이, 5/21일 부부의 날엔 부부들이 “오늘만 같아라” 할 지도 모릅니다. 저마다 자기들의 관점에서 볼 때 그럴 수 있다는 말입니다만,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굳이 정한 이유는 가정을 구성하는 가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반증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때 부모님을 생각나게도 하고 또 자식 된 도리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나게도 하는 것 같습니다. 개인 적으로는 돌아 가신 부모님 흔적이 점점 기억에서 지워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 많던 싱아! 봄이면 복숭아 꽃이 불타오르고, 개나리 꽃으로 감추진 뜰 안이 있는 고향 집의 그리움이 점점 희미해 집니다. 늙어 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면서 과연 나 자신은 나와 관계된 사람들이나 가족들에게 얼마나 오래 기억될 수 있을까? 내가 세상을 떠난 다면 내가 “본향”으로 돌아 갔다고 믿을까? 그렇다면 지금의 믿음과 지금의 삶은 어때야 하며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럴 때 마다, 점점 더 쉬울 줄 알았던 인생길이 점점 더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믿는 자니 믿음으로 잘 살고 믿음을 물려 주어야 하겠다는 다짐도 해 봅니다.
II. 더 나은 본향을 찾아서
본문은 그 유명한 히브리서 11장, “믿음장” 중에 있는 말씀입니다. 히브리 저자는 본문 말씀에 앞서 아벨과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등 선조들을 예로 들면서 그들은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였으며 약속을 바라보는 삶이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더 나은 본향”을 찾으며 갈망했다고 말씀하면서 왜 하나님께서 그 선조들을 자랑스러워 하시고, 왜 그들을 위해 도성(본향)을 마련해 두셨는지 이해 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히브리 기자 역시 자신의 “믿음”으로 선조들의 믿음을 읽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아벨이 ‘믿음 없이’ 가인 보다 더 좋은 예물을 드림으로써 형제간의 싸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에녹이 ‘믿음 없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린 것이 자기를 위한 것이었다고 하였더라면, 노아가 ‘믿음 없이’ 술 취해 자기 절제에 실패하여 손자인 가나안에까지 저주를 퍼 부은 것을 강조하였더라면, 아브라함이 ‘믿음 없이’ 자기 목숨을 구하려고 두 번이나 아내를 속인 것이나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은 냉정함에 관점을 두었더라면, 사라가 ‘믿음 없이’ 대를 이으려고 하갈을 남편에게 보낸 조급하고, 후에 시기하고 잔인한 모습을 보인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히브리기자는 그들이 애타게 “더 나은 고향”, 곧 하늘의 고향을 바라고 있다고 말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히브리 기자는 “믿음의 관점”으로 선조들의 삶을 보았습니다.
오늘날 히브리 기자가 가지는 “믿음의 관점”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부모님 세대의 신앙 생활을 보면서 자랐고, 그것을 우리의 “믿음의 눈”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동시에 우리의 신앙 생활은 후대에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부모님의 삶을 바라보고 또 자신의 믿음을 후손에게 물려줄 유산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1. 그러므로 우리는 “더 나은 본향”을 향한 믿음을 보여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에 나오는 선조들은 모두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히브리 기자는 선조들의 삶을 믿음으로 ‘더 나은 본향”을 찾기 위한 나그네의 여정”으로 보았습니다. 우리 인생은 무한정 지속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부모님의 삶도 언제나 이어지지 않습니다. 젊어서는 우리를 키우기 위해 불철주야 노심초사하시던 분들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이나 욕망을 누르고 자식을 위해 헌신하시던 분입니다. 부모님의 삶을 세상의 눈으로 보면 그냥 고생스러운 삶이었다고 보겠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나름으로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우리도 믿음의 눈으로 부모님을 보아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하찮은 부모님의 삶이었어도 부모님의 열정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열정 속에 사셨던 흔적을 우리를 위한 열정이었다고 받아 들일 때 부모님의 삶은 거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산다고 여기고 “더 나은 본향”을 향한 삶을 살아 내야 하겠습니다.
2. “더 나은 본향”을 물려 주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고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의 고향은 세월이 흐르면서 다 변하기 마련입니다. 어렸을 적에 고향은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누구나 다 고향 하면 애틋한 감정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게 뛰어 다니던 곳, 그렇게도 커 보이던 집과 개울, 나무, 산은 커서 보면 아무 볼 품이 없어 보여도 어렸을 때의 기억은 표현 못할 감정을 갖게 합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이 땅의 고향도 있지만 영혼의 고향도 있습니다. 우리는 알든지 모르든지 모두 영혼의 고향을 가지고 태어 납니다. 본문에서는 “더 나은 본향”이라고 말씀합니다.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한 믿음의 선조들처럼 우리도 하나님 나라를 바라는 믿음을 물려 주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후대에 물려줄 최고의 믿음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삶을 몸소 보여 준다면 분명 최고의 믿음을 물려 주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하늘의 고향을 바라 볼 대 비로소 후대들도 그 믿음의 눈을 물려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나은 본향”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영원한 처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며,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의 친구입니다. 그런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예비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다 살아 내고 돌아 갈 때 우리를 반드시 칭찬하실 것입니다.
Ⅲ. 나가는 말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 내는 연어와 같은지도 모릅니다. 거친 바다를 헤엄치며 살다가 알을 낳을 때가 되면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 본향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그 기억을 찾아 오늘도 오늘의 삶을 살아 내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영혼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하나님 나라의 사람들입니다. 그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의 눈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 볼 것이요, 후대에 전해 줄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아 헤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모두 그런 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