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할머니와 멋진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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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멋쟁이들이 쇼핑하러 많이 가는 16구의 파시 거리에 ‘프랑크 에 피스’라는 패션 백화점이 있다. 어느 날
1층 모자 코너에서 분홍색 투피스를 차려 입은, 아흔 살 가량의 할머니를 봤다. 젊었을 때는 꽤 고운 자태였겠지만 지금은 앙상하게 뼈만 남은
몸매에 온통 주름진 피부로 세월의 흔적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외출하느라 애써서 투피스 정장을 차려입고 푸석하게 긴 금발도 빗어
올렸지만 거동이 불편할 정도의 노인이라 옷매무새가 반듯하질 못했다. 빗어 올린 머리도 한 줌이나 빠져 어깨 위로 내려와
있었다.
거울 앞에 선 할머니는 분홍색 투피스에 어울리는, 잠자리 날개처럼 하늘하늘 망사가 달린 분홍색 파티용 모자를 골라서 써
보고 있었다. 연세 많으신 분께 정말 실례되는 얘기지만 “아이고! 가진 것도 정리할 나이에 꼭 필요하지도 않은 모자를 사다니…”하고 혼잣말이
튀어나오려다 쏙 들어가고 말았다. 곁에 선 할아버지의 표정 때문이었다.
퉁명스러운 한국 남편들은 “나이 들어 주제 파악도 못하고
무슨 주책이람”하고 마누라에게 타박을 주고도 남았을 상황이다. 그런데 커다란 키의 그 할아버지는 얼굴에 지긋한 미소를 담은 채 아내를 너무나
사랑스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노부부의 외양에서 늙어가는 세월을 발견했지만 시선에 오가는 사랑에서는 늙음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 표정이 너무 감동스러워 두고두고 잊혀지지가 않는다. 할아버지가 보여준 사랑 때문에 나 역시 ‘주책스러운 할머니’로 볼 뻔한 여성을
‘예쁜 할머니’로 보게 됐다. 세상 사람 모두가 ‘늙고 주름진 할머니’로 여겨도 단 한 사람, 그 할아버지만큼은 여전히 ‘곱고 사랑스러운
여자’로 봐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듯 파리에는 예쁜 할머니, 멋진 할아버지가 많다. 나이 들어서도 옷을 근사하게 차려 입는 패션
감각도 뛰어나거니와 무엇보다 평생토록 멋진 남자, 아름다운 여자이기를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면서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와는 사회적 통념도, 결혼과 사랑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다르다. 한국에서는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 금방 ‘누구의 아내’ ‘누구의 남편’보다
‘엄마’ ‘아빠’로 살아간다. 자녀 공부시키고, 시집장가까지 보내야 독립시키는 걸로 여기니 자녀 나이가 서른이 넘도록 뒷바라지하느라 결혼 생활의
대부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자녀가 대개 18~19세가 되면 독립한다. 결혼 생활도 부부 중심이고, 자녀들이
떠나고 부부끼리 살아가는 기간도 훨씬 길다. 자식 키우느라 부부 사이에 벌어진 틈도 돌아볼 새 없는 한국에 비하면 부부 사이가 훨씬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게다가 나이를 중시하는 사회의 통념 때문에 우리는 훨씬 더 ‘나이의 구속’을 많이 받고 산다. 호칭부터 아가씨·총각
시절을 지나 아저씨·아줌마로 불리는 단계로 접어들었다가 마침내 할아버지·할머니로 나이가 묻어난다. 호칭의 변화에 무뎌지고 체념하면서 마음도 함께
늙어간다.
얼짱, 몸짱에 이어 요즘 불어닥친 동안(童顔) 신드롬은 그 같은 ‘나이의 구속’에 반기를 드는 현상 같다.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동안도 좋겠지만 영영 세월을 거스를 수 없는 게 인간이니, 프랑스의 노부부처럼 평생 사랑하고 아끼는 젊은 마음을 간직하는 것이 진정
세월을 뛰어넘어 젊게 사는 법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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